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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북리뷰: 《스토리테크 전쟁》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4-01-26

 

이 책은 20년간 IT 현장을 취재해 온 필자가 지난 2세기의 스토리 산업 발전 과정을 개괄하면서 향후 어떤 변화가 닥칠지 예측하는 시장 동향과 트렌드 전망 보고서다. 20년 전인 2004년 조지프 나이(Joseph Samuel Nye, Jr) 하버드대 교수는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하드웨어를 비롯한 제조업 중심의 산업이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콘텐츠·문화 산업으로 크게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는데, 20년 전에는 전문가들도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콘텐츠 산업 내부의 새로운 변화 흐름이 격렬하게 일어나는 중이다. 

 

21세기 초 여러 전문가가 강조한 문화 콘텐츠의 힘은 할리우드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는 할리우드 콘텐츠 산업의 아이콘이었는데,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상징 같았던 스필버그가 20년이 지난 현재는 스트리밍 서비스용 영화를 만들고 있다. 거대한 영화관 스크린이 아니라 ‘보잘것없이’ 작은 화면용 영화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당시의 스필버그와 할리우드 감독들에게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컴퓨터 그래픽보다 아날로그 방식이 현실감을 더 잘 살린다며 여러 가지 고전적 촬영 방식을 고집하는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 감독 정도만이 할리우드 스튜디오 초창기 낭만을 지키고 있을 뿐, 많은 영화감독이 스트리밍 방식의 영화 생산에 거부감 없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플랫폼의 위력에 눈뜨다

 

초창기 영화 산업의 중심은 프랑스였다. 1800년대 말 개발된 영상 촬영 기법을 이용해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로 유료 영화를 상영했다. <열차의 도착>이 상영되자 일부 관객들은 기차가 벽에서 실제로 다가오는 걸로 착각해 도망을 쳤다고 한다. 영화 <아바타>를 3D 상영관에서 보다가 날아오는 화살을 피했던 나로서는 그때의 관객들 심정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SF 영화 역시 프랑스에서 발표됐다.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 감독의 <달나라 여행>은 파격적인 촬영 편집 기법으로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영화 선진국 프랑스의 명성은 배급과 마케팅 감각이 뛰어났던 미국에 그 영예를 넘겨주게 됐다. 그런데 땅값 비싼 뉴욕은 영화를 제작하기에 그렇게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더 좋은 촬영 환경을 찾아 떠난 영화 제작자들은 뉴욕보다 날씨도 훨씬 좋고 땅값도 매우 저렴한 캘리포니아에 새로운 스튜디오들을 세우고 제작 터전을 마련했다. 

 

인터넷으로 서버에 접속해 영화와 드라마를 재생해 보는 서비스 방식을 스트리밍이라고 하는데, 현대의 영상 콘텐츠 제작자들 역시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기에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것뿐이다. 2022년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애플TV+에서 방영된 <코다>가 스트리밍 영화 사상 최초로 작품상을 받았다. 2022년은 한국의 영상 산업에서도 이정표가 세워진 해였다.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시상식인 백상예술대상에서 넷플릭스 스트리밍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이 대상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TV 부문 15개 상 중에서 10개가 스트리밍 콘텐츠에 돌아갔다. 

 

세계 스트리밍 시장을 주도하는 넷플릭스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2억 3,000만 유료 회원을 확보한 넷플릭스는 영화 DVD를 우편으로 대여해 주는 배달 서비스로 출발했는데, 초창기부터 오프라인 회원을 관리하는 노하우를 계속 발전시켜서 고객 성향 파악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갖추게 됐다. 2011년 <하우스 오브 카드> 드라마 제작에 거액을 투자해 성공을 거둔 것은 치밀한 고객 성향 파악 기술의 승리였다.

 

시청자를 웃기고 울리는 알고리즘의 선택

 

넷플릭스 회원으로 가입할 때 좋아하는 영화 성향을 다양하게 물어보는데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고객 분석 데이터가 되고, 향후 회원이 실제 시청하는 영상들을 넷플릭스 시스템의 알고리즘이 분석해 새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자에게 추천한다. 시청자 성향을 치밀하게 공략하는 알고리즘 전략을 넷플릭스 이상으로 잘 구사하는 플랫폼은 유튜브와 틱톡이다. 

 

유튜브 사용자들의 총 시청 시간 중 70퍼센트는 알고리즘 추천에 의한 것이다. 개인 맞춤 기사 서비스로 시작한 업체 바이트 댄스(Bytedance)는 초창기부터 알고리즘 분석 노하우를 축적해 틱톡에서 그 전략을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시청자가 15초밖에 안 되는 짧은 영상을 보는 동안 알고리즘이 다음 추천 영상들을 준비한다. 시청자의 선호는 선택으로 이어지고 그다음 영상들을 계속 보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15초짜리 영상을 한 시간 동안 본다면 무려 240개 콘텐츠가 소비되는 것이다. 일본 칼럼니스트 이나다 도요시(稲田 豊史)가 지은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서 분석한 그 지점이다. 시청자들의 호흡 자체가 너무 짧아진 것이라고? 그 말도 맞지만, 시청자들은 그저 더 재미있는 것을 더 많이 소비하고 싶어 할 뿐이다. 길든 짧든 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더 ‘재미 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소비하려고 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커다란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영화관과 달리 무수히 다양한 사용자 기기들을 고려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대형 TV, 소형 TV,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디스플레이 장치들은 제각기 다르고 해상도 역시 천차만별이다. 넷플릭스는 120가지 사용자 옵션을 제공 중이다. 변화에 능동적이며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넷플릭스가 채택한 시스템 운영 방식은 ‘모듈화’인데, 우주정거장에 별도 모듈이 도킹하면서 여러 다양하고 새로운 기능이 제공되는 것처럼, 각각의 서비스를 모듈로 나눠 결합함으로써 유연하게 외부 변화와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넷플릭스 시스템은 회원 가입, 결제, 재생 등 700개 기능이 각각 모듈로 구성돼 서로 연결된다. 하나에 이상이 생기면 해당 모듈만 교체하면 된다. 현재 넷플릭스의 커다란 고민은 유료 구독자의 감소인데, 구독료에만 의존하던 기존 정책을 대폭 수정해 구독과 광고료 두 트랙으로 수익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구독료를 적게 내되 광고 시청을 감수하는 시청자 선택 옵션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무료 구독’은 ‘광고 수익’과 쌍을 이루는 것이어서 엄청난 회원 수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스트리밍 업체는 왜 스포츠에 진심인가 

 

애플은 어마어마한 하드웨어 판매 수익을 올리는 회사지만, 애플TV+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트리밍 업체이기도 하다. 충성도 높은 애플 고객들에게는 앞으로 새로운 아이폰, 새로운 아이패드 최신 사양으로 사용 가능한 구독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며, 이는 스트리밍을 비롯한 여러 콘텐츠 서비스와 연동될 것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Jeffrey Preston Bezos)는 아마존의 성장 방식을 설명하며 ‘플라이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탄력이 붙어 잘 굴러가는 바퀴라는 뜻이다. 낮은 이윤으로 대량 판매를 일으키고 다수의 고객을 확보한 다음 업체를 더 많이 입점시키며, 이들로 하여금 더 낮은 이윤으로 경쟁하도록 플랫폼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마존의 전략이다. 쿠팡도 마찬가지다. 

 

애플, 아마존, 쿠팡의 행보에서 주목할 점은 스포츠 중계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애플은 MLS(미국프로축구)를 독점 중계하고 있고, 아마존은 NFL(미식축구)의 목요 중계 독점권을 확보했다. 쿠팡 역시 유럽 축구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콘텐츠를 새롭게 발굴·제공하고 있다. 기존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하지 못하는 새로운 재미, 새로운 스토리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지 않던가. TV나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교체 주기는 적어도 7~10년이므로 제품 판매를 통한 수익 증대에 한계가 무척 많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가전제품을 만드는 세계적인 라이벌 기업인데, 놀랍게도 이 두 회사가 최근 주력하는 사업은 광고에 기반한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이다. 삼성은 ‘삼성 TV플러스’를 통해, LG는 ‘LG채널’을 통해 광고 수익을 창출하는 중이다. 광고업계에서는 광고에 기반한 무료 스트리밍(Free-Ad-Supported-Streaming)을 ‘FAST’라고 줄여 부르면서 별도 섹션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만큼 시장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는 것을 입증한다. 아마존의 프리비TV 역시 이 섹션에 포함돼 있다. 

 

KBS, MBC, SBS처럼 지상 안테나로도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방송을 지상파라고 하고 YTN, JTBC, tvN처럼 케이블로 전파를 수신하는 방송을 케이블방송이라고 하는데 광고업계에서는 이 두 종류 방송을 ‘선형 TV’라고 묶어 관리하고 셋톱박스나 인터넷 연결 등으로 시청 가능한 영상 서비스를 ‘커넥티드 TV’로 묶어 관리한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선형 TV 그룹인 지상파, 케이블의 위력이 꺾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통계는 2023년 7월에 발표됐다. 시청률 조사 기관인 닐슨에 따르면 미국의 지상파, 케이블 시청 점유율이 사상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간단히 말해 사람들이 영상을 볼 때 일반 TV 말고 다른 디스플레이 장치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뜻이다.


공짜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기존 TV를 디스플레이 장치로 그대로 사용하면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셋톱박스는 기술적 진화를 거쳐 이제는 작은 막대형 장치만 꽂으면 쉽게 이용이 가능해졌다. 북미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로쿠(Roku)의 약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순수하게 기계 장치 판매로 수익을 올리던 이 회사는 ‘로쿠 채널’이라는 스트리밍 서비스 중개업을 통해 광고 매출을 극적으로 향상시키고 있다. 수익 부문에서 하드웨어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소프트웨어 비중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2013년에 파라마운트에 인수된 플루토TV는 아무것도 새로 만들지 않고서도 커다란 광고 수익을 올리고 있다. 플루토TV의 콘텐츠는 유행이 지난 드라마·애니메이션·뮤직비디오 등이다. 사람들에게는 적적함을 달래주면서 거실에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그저 그런 영상 콘텐츠도 필요한 것이다. “No Credit Card, No Email…” 등을 광고 카피로 사용하는 플루토TV의 이용자들은 광고를 보는 것에 불만을 표출하지 않으며 광고 시청을 평범한 영상 콘텐츠 시청처럼 여긴다. 그래서 광고주들은 플루토TV를 좋아한다. 

 

개방적인 클라우드 제국을 구축하며 옛 명성을 뛰어넘고 있는 MS는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의 지휘 아래 반독점 소송 중인 구글의 독주를 견제하고 있다. MS는 넷플릭스와의 제휴 관계를 돈독하게 다지고 있는데,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MS에 인수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컴캐스트의 워너 브러더스 디스커버리 인수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어쩌면 그것이 할리우드의 생존 전략이 될지도 모른다. 2024년은 워너 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의 지배 구조가 변경 가능해지는 시점이므로 시장에서도 컴캐스트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알 권리 중시하는 미국

모를 권리를 중시하는 유럽연합

 

2023년 초 미국에서 틱톡으로 공유되는 ‘기절 챌린지’를 따라 하던 어린이들이 20명 넘게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기절할 때까지 목이 졸렸다가 잠시 후에 깨어나는 영상인데, 미국 법원은 사업자인 틱톡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에 가깝게 보장한 수정헌법 1조의 위력이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공개한 콘텐츠에 대해 사업자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통신품위법 230조가 있어 서비스 제공업체들에 매우 관대하다. 미국과 달리 유럽연합은 이런 경향에 무척 비판적이다. 유럽연합은 사업자의 윤리적 책임을 강하게 묻는 쪽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있으며, 나아가 개인 맞춤형 광고에 회원의 개인정보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저작권 범위에 대한 논쟁은 향후 2년, 그리고 더 오랫동안 첨예하면서도 중대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각종 콘텐츠 공모전의 방식도 크게 변화할 것이다. 2023년 7월 미국의 SF 전문 잡지사인 클락스월드(Clarkesworld)는 신인 작품 접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챗GPT를 이용해 만든 원고가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글쓰기·그림·디자인 등 다양한 창작 분야에서 AI가 작업한 결과물이 차고 넘칠 거라는 점은 쉽게 예상 가능하다. 유명 작가의 그림체를 본떠서 그림을 생성해 주는 스태빌리티 AI는 사진 저작권 중개업체인 게티이미지에게 소송당했다. 미드저니 같은 AI 서비스를 이용하면 영상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데, 미드저니로 만든 영상 콘텐츠는 현재 저작권 등록이 되지 않는다. 기존 데이터를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는 걸까? 우리가 갖고 있는 표절에 대한 범위를 이제는 달리 설정해야 하는 것일까? ‘작품성’이라는 개념은 흔들릴 것인가?


스토리 산업을 전망해야 하는 이유는? 

 

이 도서 리뷰의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는 스토리 산업의 생생한 ‘K-모델’ 성공담과 비화는 직접 책을 읽으며 확인하기 바란다. ‘약 스포’ 하나만 하자면, 스토리만 잘 만들면 스토리를 향수병에 담아 비싸게 팔 수도 있다! 

 

저자는 독자에게 또 한 가지 중요한 토론 주제를 던진다. 스토리 산업의 미래는 인간과 AI의 대결이 될까? 어쩌면 AI를 잘 활용하는 인간(기업)과 AI를 잘 모르는 인간의 대결이 되지 않을까. AI와 인간 작가들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작가 그룹과 AI를 잘 다룰 줄 모르는 ‘전통’ 작가들이 경쟁하게 되지 않을까. 

 

어떤 분야의 성장에는 다 이유가 있고 쇠퇴에도 이유가 있다. 이 책을 읽고 전망해 보자. 스토리 산업에서 더 주목받게 될 요구는 무엇이며 스토리 산업에서 외면받을 분야는 어디인지. 그런 전망은 우리 삶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이야기’에 울고 웃는 존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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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이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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