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취재기·제작기] 투데이신문 <디지털 신곡(神曲)> 취재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4-01-26

단테의 《신곡》에는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 등 일곱 가지 죄가 등장한다. 투데이신문은 이에 빗대 디지털 공간에 만연한 범죄를 유형화한 기사를 기획했다. 투데이신문이 〈디지털 신곡(神曲)>을 통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10여 년 전 이집트에서 반독재 민주화의 바람이 불 때,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는 권력자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민주주의 운동 확산의 배경이 됐습니다. 그때는 인터넷과 IT 기술의 발전이 축복처럼 보였습니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 집단지성이 발현되고 IT 기술은 사람들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2024년을 맞이한 지금, 온라인은 혐오와 비난, 증오의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뉴스와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누리꾼들은 마치 늘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혐오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절망을 경험하고 누군가는 세상을 등지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는 적어도 온라인 문화에 있어서는 한 걸음도 나아지지 않은 듯합니다. 

 

연예인과 유명인을 대상으로 했던 이른바 혐오의 좌표 찍기는 이제 일반인까지 표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과 발언을 하면 단죄의 대상이 됩니다. 이 가운데 피해자의 목소리는 오히려 제약받고 혐오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는 아이러니를 목격합니다. 

 

왜 단테의 《신곡》을 소환했나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하는 범죄와 비윤리적 행위를 다룬 <디지털 신곡(神曲)> 기획은 이 같은 배경에서 출발했습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얼마나 다양한 욕망이 일상적으로 우리의 비윤리적 행위를 충동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순간에 우리가 알지 못한 채 가해자가 될 수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신곡》을 기사 도입부마다 인용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비윤리적 행위들이 모두 죄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을 어떻게 지옥처럼 만들고 있는지를 비유적으로 보이고자 했습니다. 실제 기사를 쓸 때도 도입부에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우리가 이 주제를 왜 꺼내 들었는지 가급적 읽기 쉬운 신화와 비유를 담아 운을 떼고, 단테의 《신곡》을 거쳐 다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돌아보고자 했습니다. 읽는 사람의 시선을 끌어들여 조금이라도 더 기사에 몰입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성 과정에서는 개별적이고 지엽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그동안 개별 이슈가 잊히면 문제의식도 함께 희석되는 사례를 수없이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10편의 기사를 통해 온라인 전반을 관통하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기사의 생명력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쉽지 않았던 구체적 사례 확보 과정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그 종류와 수위가 다양해 분노, 질투, 색욕, 나태, 식욕, 탐욕, 교만 등 칠죄종으로 범주화하기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 아래 세부 소재는 사이버렉카, 악플, 디지털 성범죄, 알고리즘, 배달 산업, 투자 사기, 가짜뉴스 등으로 채워나가기로 했습니다. 

 

전체적인 기획의 틀을 잡은 후에는 구체적 사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모든 취재가 그렇겠지만 사건 피해자를 취재원으로 설득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세간에 많이 알려진 사례의 당사자들은 다시 한번 대중에게 언급되는 것을 꺼려 거절을 거듭했습니다. 사건의 직간접적 주변인들 역시 간단한 의견을 주는 것조차 어려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재팀은 사이버렉카 채널을 운영했던 유튜버를 비롯해 렉카 영상 피해자, 악성댓글 피해자, 코인 사기 피해자, 배달음식 업계 종사자, 청소년, 선생님, 학부모, 전문가 등 다양한 취재원들을 통해 사례와 의견을 취합했습니다. 

 

디지털 범죄에 노출된 경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자체 설문조사에서도 참여자의 46.3%가 ‘온라인에서 성범죄 피해를 직접 당하거나 목격했다’고 응답했고 81.8%는 ‘온라인 금융 범죄 피해에 직접 노출되거나 목격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실제 피해자 중 한 명은 개인적 친분이 있던 지인이기도 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연락을 취했을 때 그는 취재에 흔쾌히 응했지만 이른바 렉카 영상으로 좌표가 찍힌 후 세상을 등질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기도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아는 그는 누구보다 씩씩한 사람이었기에 그 절망감의 크기를 쉽게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 전문가도 온라인 익명성에 숨어 자행되는 괴롭힘은 이겨내기 어려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불특정 다수의 비난은 지나가는 사람마저 나를 미워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대인 공포, 광장 공포를 불러오고 끝내 안타까운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슈를 지키는 것도 언론의 역할

 

기획을 마무리하며 진행한 좌담회에서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디지털 공간을 통해 발생하는 범죄나 비윤리적 행위가 이제는 ‘풍토병’에 이르렀다고 진단했습니다. 국민 96%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으로의 연결이 가능한 세상이 구현된 가운데, 사람들이 비난을 놀이로 여기고 싸움과 미움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였다는 비판이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는 피해자들을 절망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행위의 배경이 단순히 돈 때문이라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분노를 충동해 서로 욕하게 만드는 것이 수익 창출의 핵심 요소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참담한 기분이었습니다. 온라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우리가 서로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잊게 만드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토록 많은 문제를 남겨둔 채 디지털 공간에서의 삶은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양한 기업과 기관들은 업무·학업·게임·공공 서비스 등 분야에 구분 없이 개별 메타버스를 구축하며 디지털 영토 전쟁에 한창입니다.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디지털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은 증가할 것이 분명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 듯합니다. 

 

정치권은 물론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등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이 방관하는 가운데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공간이 혐오와 비난과 증오의 상징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 취재팀이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디지털 공간의 범죄와 비윤리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한번 보여주고자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뉴스는 새로운 사실을 기본 개념으로 하지만, 했던 얘기를 또 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수차례 사회적 화두가 됐음에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한때 화제성 이슈로만 소비하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문제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문제들이 우리 사회엔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슈를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슈를 지키는 것 또한 언론의 중요한 역할임을 다시 한번 떠올립니다.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박주환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4-01-26
  • 조회수 : 11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