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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강원일보 <리빙랩 저널리즘> 취재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4-01-26

강원일보의 <리빙랩 저널리즘>은 기자가 관찰자 입장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여러 사회문제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시작됐다. 2023년 주민들과 함께 세 가지 실험을 진행해 호평 받은 이 연중 기획물의 탄생과 진행 과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기자는 지켜보는 것이 공익이야. 본인이 지켜본 것으로 뉴스를 만들어 온 세상이 알게끔 만드는 것이 기자가 추구해야 하는 공익이다!”

 

기자들의 삶을 녹여낸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사회부 캡 기자를 맡은 김공주(김광규 분)의 대사입니다. 수습기자들을 크게 혼내는 장면에서 나온 명대사인데요. 빙판길 취재를 나선 수습기자들이 얼음에 미끄러져 넘어진 시민을 곧장 부축하는 바람에 낙상사고 장면을 확보하지 못한 채 복귀한 상황이었습니다. “기자도 사람부터 구해야죠. 기자도 공익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수습기자들의 반박에 김공주는 지켜본 그대로를 보도하는 것만이 기자의 공익이라고 설명하며 호통을 쳤습니다. 이처럼 기자들은 정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위해 참가자가 아닌 관찰자의 입장을 고집해 왔습니다.

 

강원일보가 창안한 <리빙랩 저널리즘(Living Lab Journalism)>은 그 반대입니다. 기자가 그동안 지켜왔던 관찰자 역할에서 벗어나 참가자의 역할까지 함께 수행해 보는 첫 시도입니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에 직접 참여해 대안을 도출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리빙랩 저널리즘>은 더 나은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춘천사회혁신센터의 세 가지 주민 실험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는 폐지 줍는 노인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새로운 리어카를 제작하는 ‘리어카 프로젝트’, 만성적인 주차난에 시달리는 춘천시 후평1동 골목에서 원룸 소유주들의 양보와 협력을 통해 숨어 있는 주차 공간을 찾아내는 ‘골목 공유주차장’ 실험, 시각장애인들과 주민, 기자가 함께 점자를 배워 지역 곳곳의 점자 활용 실태를 조사하는 ‘점자 실험’에 기자들이 1년 동안 직접 참가했습니다.

 

낡은 리어카를 ‘스포츠카’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에게 리어카는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생계 수단이자 자산입니다. 문제는 이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리어카가 과연 폐지 수거에 적합하냐는 것이었습니다. 폐지와 재활용품만을 싣고 다니기에는 구조상 여러 가지의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어르신들의 불편함에 공감할 수 있어야 그들을 위한 보다 편리한 리어카를 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하 5도까지 떨어졌던 지난해 1월 30일, 춘천에서 폐지를 수거하는 어르신들이 일하시는 골목을 찾아 폐지 수거용 리어카를 2시간 동안 끌어봤습니다. 튼튼하고 덩치가 좋은 취재 기자도 2시간 동안 리어카를 끌어보니 팔 안쪽과 양 어깨에 근육통이 몰려왔습니다. 폐지가 가슴팍 높이까지 쌓이자 앞뒤로 뒤뚱뒤뚱 걷게 되고, 방향 전환도 쉽지 않아 골목에 주차된 차량을 긁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직접 리어카를 끌어보니 어떤 장치와 부품들이 리어카에 필요한 지 아이디어가 샘솟았습니다.

 

강원일보 기자들과 춘천사회혁신센터는 리어카를 직접 끌어보며 새로운 리어카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춘천폴리텍Ⅲ대학의 교수진을 섭외해 재능 기부를 받았습니다. 적재물 쏟아짐 방지 그물망, 따릉이 벨, 손시림 방지 핸들바 테이프, 부식 방지용 페인트 도색, 후미등 반사 테이프, 태양열 LED 번, 완충용 플라스틱 골판지가 부착된 ‘오렌지 리어카’가 탄생했습니다. 오렌지 리어카를 선물 받은 어르신들은 “고철 덩어리 같던 내 자가용이 스포츠카처럼 멀끔해졌어. 때 빼고 광내니까 이제야 좀 끌고 다닐 맛이 나네!”라며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가장 쉽고 안전하게 끌 수 있는 리어카는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된 ‘리어카 프로젝트’가 드디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리어카 프로젝트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오렌지 리어카 100대를 추가 보급해 폐지를 수거하는 어르신들의 교통안전을 확보하고, 지역사회의 자원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이바지할 계획입니다.

 

 


 

 

낮에 비는 골목 주차장, 시민과 공유

 

주차난은 누구나 공감하는 도시의 가장 큰 골칫거리입니다. 특히 차를 끌고 가기 어렵다는 인식은 골목 상권에 생존의 문제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에 춘천 후평초교 골목길 상인 14명으로 구성된 ‘후평동 뒤뜰’은 지난해 초부터 원룸 주민들을 설득해 낮 시간대 비어있는 주차장을 공유하는 실험을 벌였습니다. 이 실험에는 후평동 뒤뜰은 물론 통장 등 골목 주민과 춘천시, 춘천사회혁신센터, 강원일보도 힘을 보태 함께 했습니다. 원룸 소유주들은 골목을 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해 2023년 2월 주차장 9면을 내주고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핫핑크색 주차선을 그렸습니다.

 

원룸 주인들이 공유해 준 핫핑크 주차장에는 공유주차장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무인 센서가 설치됐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골목의 상가를 방문한 고객들은 원룸 주차장을 이용했습니다. 실험은 3개월간 지속됐고, 첫 달인 3월 206대의 외부 차량이 공유주차장을 이용했습니다. 4월에는 44% 증가한 296대가 공유주차장을 이용했고, 총 500여 명의 시민들이 골목상권을 찾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용자들의 평가 또한 긍정적이었습니다. 상가를 찾은 핫핑크 공유주차장 이용자 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2.2%가 공유 주차장 이용에 만족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실험이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응답자의 10명 중 9명은 공유 주차장이 확대돼야 한다(92.2%)고 생각했고, 주차 공간이 확대되면 현재보다 후평동 상가를 자주 방문할 것(86.7%)이라고 밝혔습니다.

 

실험이 끝난 뒤에도 공유는 계속됐습니다. 후평동 상인들의 공유주차장 실험은 지난해 5월 말 종료됐지만, 원룸 소유주들 모두 흔쾌히 연말까지 공유주차장 연장 운영에 동의했습니다. 


점자 배운 기자들 

시각장애인 안내지도 오류 찾아내

 

점자 실험에서 팀원으로 만난 시각장애인들은 기자들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의 아픔에 대해 대부분의 기자가 일회성 기삿거리만으로 대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리빙랩 저널리즘>은 그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취재 방식이 되어줬습니다.

 

지역의 점자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점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교육 3회차부터는 자음 정도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손이 날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연습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덧 시각장애인들과의 사이가 끈끈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달이 넘도록 함께 땀 흘리며 점자를 배우면서 진한 소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점자 교육을 통해 날렵해진 손을 펼쳐 3월부터 6월까지 춘천시 내 100개의 시설을 점검했습니다. 역시나 지역민의 일상 공간은 아직 시각장애인이 나서기에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춘천의 한 사회복지기관에 들러 보니 안내 촉지도마저 자동문 입구 바로 옆에 배치돼 있어 위치를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기본 음성 안내조차 없는 등 다양한 점자 오류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팀원들은 이렇게 현장에서 직접 수집한 점자 오류를 데이터베이스화했습니다. 이 양질의 자료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활용될 수 있도록 춘천시에 전달했습니다. 현재 춘천시와 춘천시의회 등에서는 점자 오류에 대한 개선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장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관찰자를 넘어 참가자로서 더욱 양질의 기사와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언론이 알린 실험

‘실험도시 춘천’ 으로 이어져


<리빙랩 저널리즘> 골목실험실 보도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리어카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자원 재생 전용 리어카인 오렌지 리어카를 만들어 배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골목 공유주차장 실험은 쉽게 주차장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원룸 건물주와 주민들이 낮 시간대 9개 주차면을 공유했고, 높은 만족도를 보이며 연장 운영에 돌입했습니다. 점자 실험 프로젝트에서는 60개 기관에서 발견된 점자 오류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춘천시청 등에 전달한 상황입니다.

 

이와 같은 언론의 새로운 시도는 지역사회의 큰 관심을 받았고 정책으로도 반영됐습니다. 춘천시와 강원일보, 춘천사회혁신센터, 춘천폴리텍대학, 강원대 지역혁신플랫폼, 춘천문화재단은 지난해 7월 ‘실험도시 춘천’ 선포식을 가졌습니다. 실험도시 춘천은 지역의 문제에 대해 행정과 주민, 언론 등이 생각을 공유하고 현장과 주민 삶 중심의 실험과 관찰을 통해 대안을 모색, 정책에 반영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춘천사회혁신센터 역시 그동안의 사회적 실험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언론이 참여한 골목실험실 기획 보도를 통해 여러 사회적 문제와 실험의 성과를 널리 알릴 수 있었습니다.

 

 


 

지역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다 

 

강원일보는 AI가 기사를 쓰고 SNS를 통해 지구 반대편과도 쉽게 교류하는 초연결의 사회에서 지역 언론의 역할과 미래에 대해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리빙랩 저널리즘> ‘일상에서 답을 찾는 골목실험실’ 기획은 이 같은 고민의 결과이자 지역 언론이 지역사회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골목실험실은 누구나 알지만 거창하지 않은 주제를 다뤘기에 독자의 호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당의 핵심 인사나 슈퍼스타 연예인의 행보가 아닌 우리 동네의 이야기를 보도하는 것. 독자들이 지역 언론을 사랑하고 고집하는 이유이자 지역 언론이 수행해야 할 역할에 충실한 것입니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원룸촌의 주차장을 실험과 기사 주제로 설정한 것이 증거입니다. 날마다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이면서도 그곳에 거주하는 지역민이 아니라면 문제점을 찾아내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주민과 지역 언론이 함께 고민하고 실험하는 <리빙랩 저널리즘> ‘일상에서 답을 찾는 골목실험실’을 2024년에도 연중 기획(시즌 2)으로 이어가며 지속가능한 플랫폼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지역 언론만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우리 동네 곳곳의 이야기. 리빙랩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핵심이자 시대의 흐름을 관통하기 위한 강원일보의 움직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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