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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도심에서 공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과거 작은 공장들이 밀집해 있던 곳은 대부분 카페나 식당으로 변모해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이를 ‘죽은 공간’을 살려낸 긍정적인 현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더스쿠프의 기획 취재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회사 근처에 갈 곳 많겠네요.”
회사 위치를 말하면 종종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회사 사무실은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습니다. 어쩌면 #문래동이 더 익숙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장을 개조한 특이한 카페, 일본식 술집, 연남동에서 보던 개성 있는 것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취재 일정이 빠듯하지 않은 날이면 종종 동료 기자들과 인근에 있는 ‘힙한’ 식당을 찾기도 했습니다. 공장의 갈고리, 체인, 도르래나 컨트롤 박스가 남아 있는 이런 식당이나 카페는 이제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상업적 트렌드가 됐습니다. 공장이 사라진 자리에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습니다.
문래동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청계천 을지로의 세운상가 일대, 성수동 역시 같은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공장의 높은 층고는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의 공간적 수요를 만족시켰습니다. 기계 부품을 만들던 청계천, 을지로 골목 속 공장들은 기존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카페로 변모했습니다. 익선동의 한옥은 사람이 사는 집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편집숍과 식당으로 변화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대 후반 재건축·재개발 대신 떠오른 도시재생 열풍에 힘입어 언론과 여론은 이런 곳을 긍정적으로 조망했습니다. ‘죽은 공간’을 살려냈다는 칭찬도 쏟아졌습니다.
그때마다 항상 의문이 일었습니다. 주목받지 못했던 건물들이 다시 쓰이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이런 흐름에서 빠진 것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학 시절 사학을 전공하며 들었던 ‘호고(好古)적 취향’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교수님은 “사학과 신입생 중 상당수는 본인의 호고적 취향과 학문적 관심을 구분하지 못해 헤맨다”고 했었습니다. 단순히 옛것을 선호하기만 하는 행위는 올바르지 않다는 경고였습니다. 그 강의의 한 토막이 항상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옛 건물에 사람이 찾아오게끔 만드는 건 정말 도시를 살리는 방법일까.
그래서 기사를 쓸 때도 항상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의문이 가장 커졌던 건 2018년 있었던 을지면옥 사태 때였습니다. 청계천, 을지로 개발을 앞두고 철거 계획이 확정됐습니다. 도심 속 공장들은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 전통을 이어왔던 냉면집은 그 장소를 떠날 수 없다고 했고 냉면집과 도시의 옛 모습을 지켜야겠다고 말한 사람들도 이 결정에 힘을 더했습니다. 결국 이 논란은 박원순 당시 서울 시장이 개입하면서 일단락됐습니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을지면옥은 잠시 ‘생활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그 수명을 더 연장했지만 2022년 결국 법원의 판단에 따라 더 이상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옛것을 지켜야 한다는 뜻을 가진 사람들 덕에 을지면옥의 철거는 잠깐 중단됐습니다. 하지만 그런 뜻은 잠깐이고, 또 오래 지속되지도 않습니다. 모든 옛 건물에 적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도시를 개발하려는 힘은 큽니다. 한번 결정되면 엄청난 규모의 돈이 움직이고 시간이 늦어질수록 그 비용도 더 커집니다. 그 부담은 개발 사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됩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의미 있는 건물은 언론과 여론의 주목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곳은 어떻게 될까요. 건물의 외형을 가까스로 보전해 카페로 리모델링하는 건 진짜 문제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른 답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공장을 남기는 것인가
제조업을 이어나가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품고 있던 2023년 6월, 영등포구가 ‘문래동 공장 통 이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또 도시 개발에 공장 이전을 추진하는 계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체가 달랐습니다. 통 이전을 원하는 건 문래동에 있던 소공인협회였습니다. 공장주들이 먼저 나서서 옮겨가겠다고 한 겁니다. 이미 도심 속 공장을 다룬 기사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도시가 개발되기 전 먼저 공장이 나가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그제야 공장 건물이 카페가 되고 생활 유산으로 보전되는 동안 느꼈던 애매모호함이 명쾌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공장처럼 낡은 건물의 ‘하드웨어’를 남기는 게 핵심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건 공장 속에 있는 ‘소프트웨어’인 제조업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였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개발에서부터 산업의 위기까지, 문래동 공장에 맞춘 장편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시리즈였습니다. 한 차례의 기사로는 도시 개발과 산업의 위축을 다룰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문래동 공장주들이 통 이전하려는 이유, 이전까지 도심 속 공장이 받던 대우, 이미 나왔던 대책과 그 결과, 그리고 앞으로 도심 속 공장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를 장편 기획 기사에 담기로 계획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통계 자료와 보고서를 참고했고 도심 제조업을 다룬 논문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도심 제조업을 ‘산업 무형자산’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제안은 기사의 전체 방향을 정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장 건물이라는 ‘유형자산’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조업과 노하우라는 무형자산을 기사화해야겠다는 의무감도 느꼈습니다.
여태까지 나왔던 많은 기사들은 도심 속 공장이 도시에서 쫓겨나야 하는 상황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래서 차별점을 넣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전’을 결심하게 된 문래동 공장주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매번 개발 계획이 발표되면 뿔뿔이 흩어지기만 했던 공장주들이 어떻게 ‘통 이전’을 결심하게 됐는지가 이전까지의 기사와는 차이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답은 과거에 있었습니다. 이미 청계천·을지로의 사례를 보면서 공장주들은 정부가 말하는 ‘대체 부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저렴하게 입주시켜 주겠다는 약속은 매번 깨졌습니다. 문래동 공장주들은 정부를 믿는 대신 ‘내 공장 갖기’를 목표로 공장을 지키려는 시도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통 이전 후보지 발굴 연구 용역을 발주한 소공인협회를 취재했고 그 속에서 숫자로만 존재했던 젊은 소공인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문래동의 도심 속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35세 이하 청년층은 1.8%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9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진 취재 기간 생긴 소공인협회 내 청년분과에서는 1% 이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청년분과가 생기고 나서야 인원을 집계할 수 있게 됐다던 젊은 소공인들도 있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젊은 소공인들이 얼마나 있고 어떤 마음으로 제조업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고령의 공장주들은 도시 개발 자체에도 비관적이었고 앞으로 일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소공인들은 다품종소량생산, 시제품 제작이 가능한 도심 제조업의 특성과 새로운 제작 기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연구, 기업의 프로토타입 제품 개발 등의 시장을 열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통계 속 1%로 기록됐던 젊은 소공인들의 생각과 새로운 시도를 지켜보고 취재할 수 있었던 건 좋은 기회였습니다.
다만 도시 개발 사업과 엮여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다수의 공장주가 공개적으로 인터뷰하는 것을 꺼렸다는 건 취재 과정에서의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특히 공장 이전과 관련해 비관적으로 생각하거나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털어놨던 소공인들은 거래처와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익명 인터뷰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끝나지 않은 도심 속 공장 이전 문제
이번 기획 취재에서 해외 취재 대상지로 선정한 지역은 일본 도쿄의 오타구(大田区)였습니다. 이미 1980년대에 일본 정부가 오타구 내 도심 속 공장인 마치코바(町工場)를 바닷가로 이전시키려고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고 마을에 녹아들었습니다.
오타구의 마을 공장 기사를 쓰기 위해 70% 이상을 미리 취재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사전 취재가 쉽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만든 자료를 분석할 때 언어의 장벽은 물론이고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명칭, 배치 순서도 알기 어려워 자료 정리 과정에서 애를 먹었습니다. 애초에 필요한 자료가 무엇인지 읽어내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에 단순 번역을 맡기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번역기를 사용해 하나하나 직접 자료를 만들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해외 취재를 위한 출국 일정과 사전 취재 일정이 빠듯하게 맞물렸습니다.
취재하려던 일본의 산업 협회에서는 별도의 홍보팀 이메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질문지를 전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결국 생활 솔루션 플랫폼을 통해 통역사를 건 단위로 고용하고 취재하려는 협회에 전화를 걸어 취재 목적을 설명한 뒤에야 이메일 주소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주 간단한 일인데도 언어의 장벽 때문에 며칠을 보낸 건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여행사에 맡기면 취재처에 연락해 일정을 잡아주고 해외 취재 일정의 전체를 계획해 준다는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장이 있는 거리를 많이 걸어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고 예산의 한계도 있어 현지에서 동행할 통역사를 시간 단위로 고용했습니다. 예상했던 취재만 이뤄진 건 아니라서 일본 내에서 비즈니스 통역 경험이 많았던 통역사가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추가로 취재해야 할 부분들이 생겼을 때도 외국의 기자임을 밝히자 예상보다 많은 이야기를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획 기사는 총 9편이었고 영상 기사도 5편으로 제작됐습니다. 도심 속 공장을 주목해 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있는 한편 경쟁에서 도태된 산업을 뭐 하러 주목하느냐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산업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경쟁합니다. 하지만 그 경쟁이 정말 평평한 운동장에서 시작된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중국 제품과의 가격 경쟁에서 패배해 국내 도심 속 공장이 사라지고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몰라도 ‘바람직한 일’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제조업에서 종사한 사람들의 노하우는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작은 공장들은 서로 도와 세상에 없는 시제품을 만들어 내는 요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노하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노하우가 가치가 없다면 애초에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고용주가 신입과 경력의 임금을 구분해 줄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비판까지 토론의 장에 진득하게 끌어오지 못하고 기획을 마친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렇기에 또 다른 기사를 기획할 수 있는 바탕도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도심 속 공장의 자리는 위태로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 이전 후보지를 찾기 위한 연구 용역은 마무리됐지만 도시 개발 논리에서 후보지를 선뜻 공개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스쿠프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시리즈는 지금까지의 도심 속 공장 상황을 확인하고 도심 속 공장이 위축된 과정을 조명했습니다. 끝나지 않은 문제를 이해하는 데 이번 기획 기사가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카페가 될 수 있는 공장’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도심 속 산업 무형유산을 이어받는데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산업 무형자산 이야기를 진득하게 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