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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0년 차 기자입니다. 어느 직업이나 그렇듯 일과 개인 생활의 균형, 즉 ‘워라밸’이 중요하게 여겨지는데요. 특히 기자는 늘 새로운 소식을 전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퇴근 후에도 뉴스에 신경 쓰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워라밸을 유지하며 살아야 할까요?”
익명의 기자
A.
안녕하세요. 질문을 받고 제가 10년 차 때 어땠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2003년 1월 기자 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꼭 22년 차가 되었는데요. 돌이켜보면 10년 차 즈음이 기자가 된 후 가장 왕성하게 일하던 시기였고, 워라밸 같은 걸 의식해 지킬 여유가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미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눈만 뜨면 정치권의 굵직한 비리 사건과 맞물린 미술품 비자금 사건이 터졌습니다. 사회부 법조팀 못지않게 일이 많았습니다. 주 6일 근무는 당연했고, 매일 신문 최종판 강판이 끝날 때까지 회사에 남아있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퇴근했습니다. 퇴근하는 택시 안에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했던 기억, 크리스마스이브에 밤 11시가 넘어 퇴근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일 톱기사도 네가 막아야겠다”는 데스크 전화를 받고 불 꺼진 방에서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20년을 버티게 해준 ‘나만의 영역’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도 저는 일에 완전히 잠식되지는 않았습니다. 제 안에는 회사뿐 아니라 절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밖에서 폭풍우가 쳐도 흔들림 없이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는, ‘내가 나이기만 하면 충분한’ 영역이요. 그 영역을 둘러싼 성채의 절반은 독서로, 나머지 절반은 글쓰기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독서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 경우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내면에 단단한 세계를 짓기 위해서였습니다. 책에서 읽은 아름다운 이야기들과 이상적인 인물들로 가득한 그 세계는 세속의 온갖 번잡하고 추악한 일들과는 한 걸음 떨어져 있었습니다. 낮에는 회사에서 갖은 범속한 세상사를 기사에 녹여내고, 일단 퇴근하면 뇌의 스위치를 내리고 내면의 세계로 침잠했습니다.
주중에는 현실 속 인간들의 각종 아귀다툼을 지켜보고 기록했지만, 주말에는 온전한 나로 돌아와 문학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 안에서 배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독서. 그간 읽은 책들이 알려준 수많은 인간 군상과, 제가 가보지는 못했지만 활자와 상상을 통해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던 다양한 세계. 눈을 지그시 감고, 어느 책에서 읽은 것처럼 빛나는 원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주위에 결계를 치면 그걸로 끝. 그렇다고 해서 회사에서 불쑥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월요일 회의 발제 거리를 무시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일에 대한 생각은 늘 머릿속에 있었고, 밥벌이로서의 일에 충실했지만, 그것이 제 인생의 전부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덕에 뛰어난 기자가 아니었고, 항상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갈등이 있었지만, 20여 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중과 주말에 다른 글을 쓰는 사람
그리고 제게는 글쓰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쓰는 사람이었지만, 주중과 주말에는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중에는 기사를 쓰고, 주말에는 에세이를 썼습니다. 기사를 쓸 때는 팩트와 객관성을 놓고 씨름했지만, 에세이를 쓸 때는 오직 ‘나’를 재료로 다뤘습니다. 주중의 밥벌이에서는 ‘나’를 완전히 삭제했다가, 주말의 글쓰기에서 다시 온전히 살려냈습니다. ‘나’라는 것이 없는 글만 쓰면서 살 수 있는 사람도 세상에는 물론 많지만, 저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남의 이야기로만 가득한 글을 쓰며 평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기질 때문에 초기의 신문사 생활이 제법 힘들었지만, 이후의 신문사 생활은 그런 기질이 있어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탁월한 회사원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회사에서의 미래를 그리기보다는 회사를 떠나서도 지니고 있을 수 있는 나만의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런 복잡 미묘한 마음, 칭찬받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생긴 좌절감, 회사 부적응자의 일상 등을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회사에서 운영하던 블로그에 풀어놓았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영향으로 글에 그림을 곁들여 썼는데 그 글들이 이상하게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쓰자는 제의가 왔고, 그렇게 《그림이 그녀에게》라는 제목의 첫 책을 내게 됐습니다. 서른 살에 에세이스트로 데뷔해, 지금까지 열 권의 책을 썼습니다. 계약한 책이 있을 때는 마감이 끝날 때까지 주말 책 쓰기를 루틴으로 합니다. 주말 이틀을 다 글쓰기에 투자하면 너무 힘들어 하루는 친구를 만나거나 TV를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다른 하루는 온전히 글쓰기에 할애하는 생활을 수년째 하고 있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것 만들기를
5년 차쯤 되었을 때 언론계 동료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 이 정도 회사를 다니면 다른 사람들은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 해. 그런데 네겐 아직 ‘나’가 남아있어.” 유능하고 일에 열정적인 이로부터 들었던 말이라 그런지 그 말을 아무리 생각해도 일과 저를 완전히 동일시할 수 없는 저 자신에 대한 질책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와 나는 그저 다른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인간이 있고, 그만큼 여러 부류의 기자도 있는 거라고. 일이 전부인 기자가 만드는 콘텐츠가 꼭 일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기자의 콘텐츠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촘촘한 팩트, 사회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야심으로 가득한 글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관조, 어떤 회의(懷疑), 숨 쉴 구멍이 있는 글 역시 신문에는 필요하니까요.
제 이야기가 너무 두서없었나요? 결국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만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워라밸은 저절로 지켜집니다. 그 좋아하는 것이 냉혹한 일의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해자이자 성벽이 되어줄 겁니다. 직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가와 상관없이, 그 세계는 내가 나인 것만으로 충족될 거니까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의 최우선 순위에 일이 놓이더라도 그건 그대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근로자에게 일이 가장 큰 즐거움인 것만큼 복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워라밸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또 다른 일처럼 느껴진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