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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스]수사학 관점에서 본 민희진 기자회견
아이디어스 | 등록일 : 2024-06-28

지난 4월 25일, 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파를 던지며 크게 이슈가 됐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자회견이 아니라 ‘도발’이라 했고, ‘기자회견의 모든 공식을 깼다’고도 했으며, 급기야 2001년 박준형, 2008년 나훈아 기자회견에 이은 ‘대한민국 3대 기자회견의 완성’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만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당황했고, 또 한편 매료된 것이다.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의 계기는 어도어의 본사인 하이브가 4월 22일 어도어 경영진의 배임 혐의 관련 감사에 착수하자 민 대표 본인이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그가 자신을 위해 기획한 미디어 이벤트였다. 기자회견 시작 전과 도입부에 수십 명의 기자들이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민 대표는 “사진은 좀 찍지 않을게요… 저를 인간으로 생각 안 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언론에 기선을 제압당하고 피의자처럼 취급될 수 있는 상황을 반전시켰다. 작심하고 나온 것이다. 그의 작심은 무려 2시간이 넘는 기자회견 동안 유튜브 생방송처럼 공과 사를 넘나드는 언어로 표현됐다. 민 대표는 기자회견 도중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으며, 솔직담백한 입담을 넘어 거칠고 상스러운 말도 내뱉었다. 이런 말과 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자들을, 아니 기자들을 먼저 몰입시켰다.

 

자신의 배임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나는 (일하느라) 배민은 많이 했지만 배임은 안 했다”는 말이나, 하이브 측에 대해 언급한 듯한 “X저씨들”, “들어올 거면 ‘맞다이’로 들어와, 뒤에서 XX떨지 말고” 같은 말은 뉴진스에 감정 이입한 팬과 일반 대중을 열광시켰다. 본인이 아이돌도 아닌데 그의 기자회견에 대해 몰입이나 열광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적절하냐고 할 수 있지만, 이는 기자회견 후에 일어난 현상들을 볼 때 충분히 인정된다. 민 대표가 착용했던 LA다저스 파란색 야구 모자와 초록색 줄무늬 티셔츠가 ‘기자회견 룩’으로 회자되고 티셔츠가 완판되는 해프닝이 일어났으며, 그의 의상, 태도, 말투가 SNS상에 수많은 패러디와 밈을 낳았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비롯해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를 본 시청자들 중 특히 2030 직장인이 열광에 앞장섰다. 그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스토리가 민 대표를 향한 회사의 갑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처음에는 과거 SM엔터테인먼트에서 소녀시대, 샤이니, 엑소 등 유명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와 브랜드를 담당한 스타 제작자로 알려진 민 대표를 취재 대상으로, 주목성 있는 기사를 쓰려는 태도로 참석했으나, 기자회견 도중에 청중으로 민 대표의 스토리텔링을 경청하게 됐다. 기자회견이 끝났을 때 수많은 기자들이 줄 서서 민 대표에게 명함을 건네는 모습이 이를 증명하는데, 대중에게 기사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청중이자 대중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을 설득의 원리를 연구하는 수사학의 입장에서 접근해 본다면 어떨까? 원래 인터뷰는 기자들이 묻고 취재원이 대답하는 대화의 형식이라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설을 주로 다루는 수사학과는 거리가 있는데, 민 대표는 취재원인 자신이 혼자 길게 말하고 기자들이 청중의 역할을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민 대표가 무언가 해명할 일이 있어 대중을 앞에 놓고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는 것도 ‘수사학적인 상황’이라고 하겠다.

 

수사학(레토릭)은 공적인 사안에 대해 말로 대중을 설득하는 기술로서,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민주정 시대에 발달했다. 민주정 하의 시민들은 스스로 법정에서 원고나 피고로, 민회에서 발언자로, 식장에서 청중으로 참여했고, 이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말의 힘을 추구하는 수사학이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됐다. 수사학은 이후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수사학》이라는 책에서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됐는데, 여기서 수사학은 설득의 원리에 대한 탐구로 정의된다. 단지 연설가의 기술이나 말재주를 기르는 방법이 아니라, 연설이 설득을 이루는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득의 원리 혹은 수단으로 제시한 세 가지는 현대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도 유명한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이다.1)

 

설득의 수단들 가운데 로고스는 주제 혹은 내용의 ‘논리’를 의미하며, 연사의 말 자체에서 설득이 되는 경우이다. 논리를 통한 설득은 각 사안에서 진실이나 진실로 보이는 것을 말할 때 생기는 것으로, 논변이나 수사학적 증명을 통해 설득이 이뤄지는 경우를 말한다. 파토스는 청중의 ‘감정’을 가리키며, 청중을 어떤 감정 상태로 만드는가에 설득이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즉, 청중이 연설을 통해 어떤 감정 상태로 이끌릴 때 설득이 일어나는 경우이다. 연사는 청중의 감정에 호소하며 청중에게 연사 자신의 목적에 맞는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에토스는 연사의 ‘성품’을 가리키며, 연사가 누구인가, 즉 연사의 성품이 어떠한가에 설득 여부가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성품을 통한 설득은 연사가 자신을 신뢰할 만하도록 말할 때 생기며, 이를 위해서 연사는 공정성과 현명함, 그리고 덕과 선의를 갖추어야 한다.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입고 나온 티셔츠는 품절 사태를 빚었다. <출처 – 캘리포니아제너럴스토어 웹사이트>

 

 

민 대표의 기자회견에서 로고스 부분, 즉, 논리의 측면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공룡 기업인 하이브와 그 자회사 어도어의 지분구조와 관련된 내용으로, 사실과 주장이 섞여 있어 언급하기 어렵다. 다만 자신이 ‘경영권 탈취’ 의혹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하이브를 대기업으로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고, 자신이 쏟은 열정의 대가가 자신을 죽이려는 결과로 나왔다는 식의 고충을 토로하는 전략이 큰 틀의 논리라고 할 수 있겠다. 

 

기자회견에서 청중에게 가장 어필한 부분은 파토스, 즉 감정일 것이다. 기자회견 석상의 좌우에 배석한 변호사들이 논리를 대표하는 사람들일 텐데, 이들이 민 대표의 파격에 당혹감을 보인 것 외에 별로 한 일이 없다는 점도 이 기자회견이 논리보다는 감정이 더 큰 역할을 한 것임을 증명해 준다. 기자회견 초입에 사진은 찍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기자들과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었으나, 두 시간이 넘는 기자회견 동안 기자들은 어느새 민 대표의 말을 경청하는 청중이 되었고, 그의 말은 청중이 된 기자들의 공감을 먼저 불러일으켰다. 이 공감이 기자회견 현장을 몰입 분위기로 만들었고, 이 분위기가 유튜브로 생중계되면서 동시에 대중의 감정에 공감을 넘어 열광의 물결로 전파됐다. 민 대표의 기획은 성공한 것이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에서 에토스, 즉 성품의 측면은 논란이 될 수 있다. 직설적인 표현을 넘어 반말과 욕설을 섞어 말하는 것은 공적인 언어와 태도를 지켜야 하는 기자회견 취재원의 성품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 대표는 자신이 그룹 뉴진스를 몸으로 낳은 “뉴진스 맘”으로서 뉴진스의 탄생에 얼마나 큰 산고를 겪었는지를 절절한 말과 몸짓으로 설명했고, “나는 명예가 중요한 사람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놀랍게도 뉴진스를 서사의 중심에 놓으면서도 뉴진스의 존재에서 자신의 역할을 부각시킴으로써 청중이 그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의 말을 거칠지만 솔직담백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내용을 신뢰하도록 만들었다.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이 수사학적 관점에서 좋은 기자회견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공적 말하기에서 갖춰야 할 공적인 언어와 태도를 유지하지 못했고, 시간도 일반적인 한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민 대표의 이번 기자회견으로 기자회견의 패러다임에 변화가 있을 것인지를 묻는다면 그것도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공식을 깨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자회견으로 여론이 민 대표에게 유리하게 변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차분하게 2차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 효과는 긍정적이었다고 하겠다. 대중을 사로잡는 파토스의 힘이다. 

 

 

 

 

1) 한국수사학회, 《위대한 수사학 고전들》, 을유문화사, 2024, 167-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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