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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의 계약》.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부제는 ‘넷플릭스와 K-드라마’다. 그럼 넷플릭스는 메피스토펠레스이고 K-드라마는 파우스트라는 의미인가? 넷플릭스는 한계에 도전하는 K-드라마를 지배하기 위해, K-드라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 계약을 맺었다는 의미인가?
저자인 한양대학교 이종수 교수는 문화와 삶의 관계를 질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연구자다. 그가 최근 출간한 《파우스트의 계약: 넷플릭스와 K-드라마》는 넷플릭스가 야기하는 다양한 현상에 대한 사회·문화적 접근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저자의 축적된 문화 연구의 성과와 역량이 잘 드러나는 책이기도 하다.
악마와 계약한 파우스트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의 소개로 서평을 시작한다. 독일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괴테의 《파우스트》는 인간이 외적인 속박을 벗어나 원하는 대로 자신의 의욕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면 결국 어떠한 결과에 도달하는가를 묘사한다. 모든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하나님이 가장 아끼는 인간인 파우스트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를 갈망하며 결국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는다.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의 계약 내용은 파우스트가 욕망을 달성할 수 있도록 메피스토펠레스가 봉사하며 그에 따라 파우스트가 한순간이라도 만족을 느끼게 되면 메피스토펠레스는 즉시 파우스트의 영혼을 가져가 자신의 종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파우스트가 만족을 느끼는 때는 바로 파우스트 자신이 인간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느껴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하는 경지에 이르는 때였다. 수많은 일을 겪었지만 파우스트는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만족을 느끼지 못했으며 근심에 젖어 들고 그로 인해 눈이 멀게 된다. 바다를 제방으로 막아 경작지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을 극복하는 사업이라는 생각에 이를 추진했던 파우스트는 눈이 먼 상태에서 주위에서 들려오는 삽질 소리를 듣는다. 파우스트는 이를 자신의 사업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만족해하며 “멈추어라 순간이여”라고 외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 소리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명령에 따라 인부들이 파우스트의 무덤을 파는 삽질 소리였다. 파우스트는 이 소리를 듣고 자신의 사업이 성공한 것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계약에 따라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가져가려고 할 때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파우스트를 천국으로 인도한다. 결국 파우스트의 영혼이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파우스트의 계약: 넷플릭스와 K-드라마》(이하 《파우스트의 계약》)는 3부 9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 ‘넷플릭스와 K-드라마의 만남’에서는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의 만남이 이뤄진 배경을 살피는 한편 넷플릭스로 인한 한국 드라마 제작의 변화를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으로 나눠 짚어본다. 1부를 읽으면 한계에 도전하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텔레스를 만나는 장면이 그려진다. 제2부 ‘넷플릭스 혁신 에토스’에서는 넷플릭스가 세계 1위의 글로벌 OTT 기업으로 성장하게 만든 비즈니스 전략을 오리지널 콘텐츠, AI 활용 개인화 추천 시스템, 빈지와칭(Binge-watching, 몰아보기) 중심으로 살펴본다. 2부를 읽으면서는 메피스토텔레스가 파우스트에게 무엇을 해 주려 하는지 알려주는 장면이 상상된다. 제3부 ‘K-드라마의 글로벌 스파클’에서는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의 성공 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한다.
넷플릭스와 K-드라마의 만남은 글로벌-로컬 문화의 연계
이종수 교수는 넷플릭스와 K-드라마의 만남을 글로벌-로컬 문화의 새로운 연계라고 정의한다. 흔히 넷플릭스는 변화와 혁신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넷플릭스는 1997년 DVD 대여업으로 시작해 2007년 미국 내 인터넷 스트리밍 사업으로 변신한 후 지금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초국적 OTT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발돋움해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결과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산업이익단체(trade association)인 미국영화협회(MPAA)의 회원사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성장 덕분에 전 세계 넷플릭스 가입자는 2024년 1분기에 2억 6,900만 명을 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23년 말 가입자가 1,2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처럼 넷플릭스가 미디어 시장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비약적인 성장을 했기 때문에 미디어 연구 분야에서 많은 책이 출간됐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넷플릭스를 검색어로 입력해 검색한 결과 미디어 연구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서적은 《파우스트의 계약》 포함 다섯 권뿐이었다. 물론 경제·경영·대중문화 연구 분야에서는 넷플릭스와 관련해 출간된 서적이 많이 검색됐다. 하지만 미디어 연구 분야에서 저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많지 않은 것은 의외다.
다섯 권 가운데 두 권은 번역서이며 저서는 세 권에 불과했다. 《파우스트의 계약》을 제외한 책들은 대부분 미디어 연구의 측면에서 넷플릭스의 전반적인 이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산업과의 관계에 대한 긴밀한 분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K-드라마의 만남은 글로벌-로컬 문화의 새로운 연계라 할 수 있으나 기존의 저서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크게 주목하지 않은 듯하다. 이종수 교수의 《파우스트의 계약》은 기존 서적에서는 치밀하게 분석하지 못했던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K-드라마가 깃들일 새로운 서식처인가?
이종수 교수는 머리말에서 한국의 미디어 시장은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서식처로 빠르게 이동했으며 그 새로운 서식처에서 글로벌 관객들을 만나고 유례없는 인기를 얻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징어 게임>은 2021년 9월 개봉해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이어서 <지옥>, <마이네임>, <지금 우리 학교는>, <더 글로리> 등도 글로벌 톱10에 진입했다. 2021년 4분기 비영어권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한국은 전 세계 넷플릭스의 최고 인기 콘텐츠 제공자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넷플릭스를 통한 K-드라마의 보급으로 한국 문화 콘텐츠의 소비자층도 넓어지고 있다. K-팝이 주로 어린 세대를 끌어들였다면 넷플릭스의 K-드라마는 고령층을 한류 열풍에 편입시키고 있다. 2022년 우연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시청한 영국의 80대 심리학자 루스 네일러(Ruth Naylor) 박사는 K드라마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생 내면에 도사렸던 두려움이 사라진 걸 느꼈다고 한다. 지금까지 본 한국 드라마가 100편이 넘을 뿐 아니라 상당수는 두 번씩 봤다는 네일러 박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드라마가 자신과 같은 고령층에게 주는 정서적 치유 효과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도 한다.1)
일견 K-드라마는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서식처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 속단하기에는 일러 보이기도 하다. 기술 채택 연구를 살펴보면 새로운 기술이 존속하는 기간은 점점 단축되고 있다. 이는 이제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찾아야 함을 의미한다. 새로운 서식처로 이동한다는 것은 대가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넷플릭스가 K-드라마에 가져다준 긍정적인 효과가 크기는 하지만 부정적인 효과 역시 그 못지않다.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 시장의 화수분이자 포식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 드라마 시장이 넷플릭스에 종속당할 가능성도 커진다. 글로벌 시장에서 K-드라마에 환호가 잇따랐지만, 작품의 영혼과 같은 지식재산권은 넷플릭스가 소유한다. 넷플릭스에 대한 K-드라마의 의존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생력을 잃어버릴 위험성 역시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딜레마가 되고 있다.
퍽(puck)이 갈 곳을 찾아서
흔히 우스갯소리로 동네 조기축구에선 사람들이 공을 따라 몰려다닌다고 한다. 그러나 진짜 선수들은 공이 갈 곳으로 움직이거나 공이 자신에게 오도록 움직인다.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 콘텐츠도 이제는 시장의 변화를 파악하고 시장이 움직이는 길목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
이종수 교수는 K-드라마가 시장이 움직이는 길목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스티브 잡스는 “나는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퍽이 갈 곳으로 움직인다”라는 캐나다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Wayne Gretzky)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종수 교수는 과연 우리는 퍽이 갈 곳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더 큰 문제로 드라마 복잡계에서 퍽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 역시 지적한다.
넷플릭스의 위상이 짧은 시간에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새로운 플랫폼은 언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언젠가는 넷플릭스도 새로운 플랫폼에 밀려 사양화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 한국 드라마가 국제화 문턱에 서 있다며 넷플릭스와의 관계를 진정한 의미의 파트너십으로 발전시켜야 하고, 이를 발판으로 제작 시스템의 선진화, 글로벌 어필 스토리텔링 전략, 지식재산권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한국과 한국인의 ‘로컬 진정성’에 대한 자신감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한국의 역사·사회적 굴곡, 한국인만이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이 글로벌 시장의 경쟁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한국 드라마가 어떻게 하면 글로벌 대중문화 시장에서 고유한 영역을 만들며 지속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살펴봄으로써 미래 비전과 지향점을 모색한다. 이종수 교수는 넷플릭스가 만든 거대한 스트리밍 시장판의 왁자지껄하고 치열한 경쟁 분위기 속에서도 한국의 드라마 창작자들이 각자의 영혼이 담긴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며 세계 어느 곳에 있는 관객에게서도 “멈추어라, 아름다운 순간이여”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
책을 덮으면서 K-드라마가 《파우스트》의 결말처럼 악마의 종이 되지 않고 천사 그레트헨의 인도로 천국에 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우스트의 계약》이 콘텐츠 산업 종사자들과 연구자들이 우리나라 콘텐츠의 발전과 미래 비전을 구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1) 최윤정, <K드라마 연구 푹빠진 80대 英심리학자…“우영우 보며 치유”>, 연합뉴스, 2024.2.11, https://www.yna.co.kr/view/AKR20240208183700085?input=1195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