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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뷰]WNMC 2024 참관기
미디어 리뷰 | 등록일 : 2024-06-28

세계신문협회(WAN-IFRA)가 주최하는 제75회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 2024)가 지난 5월 27~29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다. 1948년부터 매년 세계 미디어 리더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는 대표적인 글로벌 콘퍼런스인 이번 총회의 주요 행사를 요약·소개한다. 편집자 주

 

코펜하겐 티볼리콩그레스센터에 75개국에서 온 350여 개 미디어 리더와 언론인 1,0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에서도 한국신문협회 소속 언론인과 한국언론진흥재단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가했다. 행사 주제는 ‘AI 시대 뉴스미디어의 미래’. AI 대응과 디지털 전략, 미래 기술 혁신, 비즈니스 모델 변화와 독자 전략, 저널리즘과 언론 자유 등을 논의하는 자리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올해는 특히 ‘미디어 리더스 서밋(summit)’, ‘세계 편집자 서밋’에 더해 ‘디지털 미디어 서밋’ 트랙이 새로 마련됐다. 또 처음으로 50개 언어 AI 통역 서비스가 도입돼 관심을 끌었다. 참가자들은 “발언과 시차가 있지만 충분히 유용했다"고 호평했다.


AI, AI, AI… 홍역 앓는 세계 미디어

 

“소송할까, 팔아버릴까? 아니면 스크랩만 당할 것인가(Sue or Sell? or Get Scraped).”

 

총회 기간 반복해서 등장한 문구다. 각국 미디어가 언제 끝날지 모를 AI 저작권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다는 증거다. 언론사들은 AI 등으로 인한 ‘탈중개화(disintermediation)’로 위기에 처한 지 오래다. ‘AI 쓰나미’에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리게 됐다. 대한민국도 무풍지대가 아니다.

 

세계 미디어들은 대부분 오픈AI에 대한 접근 차단 조치를 취했지만, 유럽과 미국의 대형 미디어와 개발도상국 일부 매체는 콘텐츠 파트너십 체결로 나아가고 있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도둑에게 집 열쇠를 팔아 5달러(약 7,000원)를 벌었다고 만족하는 상황과 같다”고 지적한다. 총회에 참석한 경제 전문가도 “자료 품질이 낮고 경쟁이 이제 시작된 상황에서 부실한 개별 계약은 선점 효과가 없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현장에서 AI 기업과 미디어 사이에 불꽃 튀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오픈AI 바룬 셰티(Varun Shetty) 미디어 파트너십 책임자는 한 세션에서 “오픈AI는 미디어의 적이 아닌 협력자로서 많은 언론에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서로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표가 끝나자, 미디어 관계자들은 작정한 듯 질문을 쏟아내며 그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AI가 미디어를 학습하는 비용을 어떻게 낼 겁니까?”, “언론사는 오픈AI 검색으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오픈AI 톰 루빈(Tom Rubin) 지식재산권·콘텐츠 부문장도 달래기에 동참했다. 그는 “오픈AI는 지난해 미국 지역 뉴스룸 AI 활용을 위해 500만 달러(약 69억 5,000만 원)를 기부했고, 이번 총회에서 세계신문협회와 세계 128개 뉴스룸을 대상으로 3개월간 AI 도구 교육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반면 AI 관련 세션에서는 시간만 끄는 빅테크의 막강한 힘에 맞서 집단행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세계신문협회 미디어 정책 담당 엘레나 페로티(Elena Perotti) 전무이사는 “규제 당국이 관여하고 뉴스 미디어 커뮤니티가 단합하는 곳에서 지속적으로 더 나은 협상 결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AFP 파브리스 프라이스(Fabrice Fries) CEO도 한 세션에서 “AI 등에 대항해 지식재산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FP는 EU 저작권 지침을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기조연설에 나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CEO 존 리딩(John Ridding)은 “아무런 보상 없이 우리의 모든 작업을 가져다 쓰는 방식으로 발전한다면 뉴스 콘텐츠는 파괴될 것이다. 우리는 영향력이 있으며, AI 기업으로부터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합리적이다”라고 지적했다. 

 

 

AI가 주도하는 뉴스룸 혁신

생존 키워드는?

 

세계신문협회는 이번 총회 기간에 AI 관련 다섯 번째 보고서 <AI 인 액션(AI in action)>을 발간했다. 세계 123개 미디어 경영진 설문조사에서 AI가 뉴스 조직에 미칠 영향에 대해 52%가 ‘낙관적’이라 답했고, 37%가 ‘우려스럽다’고 답했다. 또 AI를 활용할 준비에 대해서는 13%만이 ‘잘 준비돼 있다’고 응답한 반면, ‘어느 정도 준비됐다’(45%), ‘준비가 부족하다’(40%)로 대부분이 대처가 미흡하다고 인식했다. 지난해 초만 해도 ‘AI 회의론’이 뉴스룸을 지배했지만, 이제 AI 역풍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다.

 

 

 

네덜란드 공영방송 NPO 에즈라 이만(Ezra Eeman) 전략·혁신 디렉터는 키노트 연설에서 “뉴스룸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독자 삶에 가치를 더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존 키워드는 AI가 대체 못할 ‘신뢰’다. 영국 이노베이션 미디어 컨설팅 그룹 후안 세뇨르(Juan Señor) 회장은 “최신 콘텐츠가 필요한 AI에 미디어의 영향력은 현재 학습 비율인 30% 이상이라 봐야 한다”며 “신뢰를 얻으면 독자를 얻게 된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신뢰다. 신뢰 회복 없이 규제만 하면 혁신을 질식시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봇이 아닌 신뢰할 만한 미디어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용자의 8% 정도만이 ‘AI를 신뢰한다’고 답한 조사 결과가 근거다.

 

 

발표 중인 라디나 하임가르트너 스위스 링기어 미디어 CEO ⓒWAN-IFRA

 


유럽과 개발도상국의 미디어 혁신 성공 모델

 

레거시 미디어 혁신은 뉴욕타임스 등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주로 유럽과 개발도상국에서 성공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덴마크의 ‘컨스트럭티브 인스티튜트(Constructive Institute)’설립자이자 CEO 울릭 하거렙(Ulrik Haagerup)은 워크숍에서 “우리의 핵심 가치를 제고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미래 저널리즘”이라며 “긍정 기사 비율을 알고리즘 성과지표(KPI)로 측정해 관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선정적인 기사를 내리고 긍정적인 기사를 다루는 이른바 ‘건설적(Constructive) 저널리즘(솔루션 저널리즘)’이다.

 

전국에 120개 지역 신문사를 보유한 노르웨이 A미디어는 데이터를 이용해 자동화된 동네 생활권 ‘하이퍼로컬’ 기사를 생산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누가 이웃 주택을 매입했는지, 평균 집값이 얼마인지 등 다양한 주제로 뉴스를 만들어 구독자를 많이 늘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데일리매버릭(Daily Maverick)은 멤버십 ‘매버릭 인사이더’ 이야기를 공유했다. 무료(free)와 프리미엄(premium)을 합한 ‘프리미엄(Freemium)’ 모델이다. 2018년 8월 출시한 멤버십은 현재 3만 명에 달하는 ‘활동 회원(active member)’을 확보했다. 활동 회원은 비용을 지불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회원을 의미한다. 모든 뉴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독자들이 참여하게 한 뒤 점차 유료 회원으로 유도했다. 지난 2년 동안 회원 수는 75% 성장했고, 독자 수익이 매출의 40%를 차지한다. 5년 내 이탈률이 4.6%에 불과한 것이 큰 자랑거리다. 

 

회원 기부 문화도 주목할 만하다. 일회성 기부가 수익의 3%를 차지할 정도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럭비월드컵 크라우드 펀딩 실험이다. 1,900만 원가량인 럭비월드컵 취재 비용이 없어 회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10일 만에 회원 720명이 기부해 목표 금액을 넘겼다. 성공 배경에는 감동과 참여의 조합이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미디어 제트랜드(Zetland)의 타브 클리트가드(Tav Klitgaard) CEO는 작은 뉴스룸으로 어떻게 독자 4만 명을 확보했는지 소개했다. 그들은 독자의 80%가 기사를 읽는 것보다 듣는 것을 원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롱폼(Long-form) 저널리즘’으로 하루에 단 한 개의 스토리를 생산하는 실험을 진행해 성공을 거뒀다.

 

이외에도 여러 미디어가 뼈를 깎는 혁신 과정을 공유하며 연대를 호소했다. 스웨덴 NTM은 ‘디지털 구독자 배로 늘리기 프로젝트’ 성공 사례를 공개했고, 독일 디차이트(Die Zeit)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뉴스룸 분리 전략과 20대 젊은 독자들을 참여시킨 대규모 토론 프로젝트 등 혁신 여정을 소개했다.


미래 독자 확보의 아킬레스건 ‘뉴스 회피’

 

뉴스 회피 문제도 깊이 있게 다뤄졌다. 뉴욕타임스 제품·구독자 경험 부문 에밀리 위드로(Emily Withrow) 부사장은 ‘디지털 전환과 독자 충성도 제고’ 세션에서 “많은 사람이 뉴스를 회피하거나 훨씬 적게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과제”라고 밝혔다. 구독자 1,050만 명 이상을 보유한 뉴욕타임스는 대표적으로 인기 게임을 홈페이지에 구축해 독자를 끌어들인다. 그는 “단순히 게임만이 아니라 뉴스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해 저널리즘에 참여하게 한다. 라이프스타일 등 독자 연구로 포트폴리오를 잘 구성해 매일 방문하게 하려고 노력중이다”라고 말했다.

 

뉴스 회피를 주제로 한 세션에 참여한 덴마크 대학생들 발언과 설문조사를 토대로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콘텐츠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교육적인 도움을 주는 콘텐츠 △용기를 북돋우는 이야기 △글로컬 콘텐츠(글로벌 이벤트가 로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그 반대) △휴머니즘 콘텐츠(열정과 영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 △다수가 영향을 받거나 참여하는 이벤트 △편향되지 않은 객관적인 콘텐츠 △최신 뉴스나 진행 중인 이벤트 등 시의성 있는 콘텐츠를 좋아하며, 과도하게 어렵거나 우울한 뉴스에 피로감을 느낀다. 언론은 진지한 탐사 저널리즘이 자랑스럽겠지만, 그들은 어떤 헤드폰을 사야 할지,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5가지 같은 뉴스를 더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이번 총회의 ‘CEO의 기회, 도전과 딜레마’ 세션 현장 ⓒWAN-IFRA

 

 

워싱턴포스트 마티 배런(Martin Baron) 전 편집장의 반성에도 시선이 집중됐다. 그는 “게임 등 번들 전략으로 성공한 뉴욕타임스와 ‘번들 전쟁’에서 졌고, 정치 뉴스 등 보도를 중심으로 미디어를 운영했다가 독자들이 뉴스를 회피해 떠났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가 뉴스에 더해 꼭 읽어야 할 이야기와 그들의 삶에 구체적인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매일, 종일 설득하고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념해야 할 2024 세계 미디어 트렌드

 

총회 마지막 세션에서는 ‘세계 뉴스미디어 혁신 연례 보고서’가 공개됐다. 후안 세뇨르 회장은 매년 마지막 순서에 등장해 세계신문협회(WAN-IFRA)와 함께 준비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주요 트렌드의 핵심을 전달한다.

 

그는 먼저 ‘3분의 3 전략’을 강조했다. 인쇄든 디지털이든 광고 수익 3분의 1, 구독 수익 3분의 1, 이벤트나 제휴, 콘텐츠 라이선스 등 기타 수익 3분의 1로 균형감 있게 매출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플랫폼 등 중개자를 피해 직접 독자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라고 제안했다. AP, 로이터 등 통신사에 의존하며 AI에 콘텐츠를 내주면 독자와 브랜드 가치를 잃게 되고, 구독료를 설정해 콘텐츠 비즈니스를 수행할 능력마저 상실하게 된다는 경고다. 현명한 미디어는 기업과 소비자 대상 거래 사이에 B2B 50 대 B2C 50 정도로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깊이 있는 콘텐츠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버티컬 미디어와 틈새 전략도 여전히 유용하다. 세뇨르 회장은 “이제는 가치가 가격을 결정한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희소성을 찾아야 통찰력을 얻고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면서 “최대한 1인치 정도로 좁고 1마일까지 깊이 들어가야 더 많은 점유율과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미디어가 채택한 페이월 이상으로 ‘데이터월’의 중요성도 짚었다. 그는 “지금은 데이터월과 페이월을 결합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라고 밝혔다. 무료와 데이터월, 페이월에 이르는 3단계 프리미엄 부분 유료화 모델이다.

 

나아가 이벤트 주최자 혹은 데이터 관리자로서 브랜드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콘텐츠 신디케이션(syndication)을 구축하고, 싱크탱크로서 게임 혹은 CRM 솔루션 등을 판매하는 IT 기술 제공업체, 교육업체, 자선활동 파트너, 제휴 마케터로 나아가는 등 새롭고 흥미로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 5월 28일 ‘뉴스룸 변혁’ 세션에서 독일 디차이트 온라인 요헨 베그너(Jochen Wegner) 편집장이 혁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세익

 

한편 세계신문협회는 올해 언론 자유를 수호한 ‘자유의 골든펜’ 수상자로 니카라과 컨피덴셜(Confidencial)의 카를로스 페르난도 차모로(Carlos Fernando Chamorro) 편집국장을 선정했다. 그는 정권 비판으로 지난해 국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협회는 또 이번 총회에서 라디나 하임가르트너(Ladina Heimgartner) 스위스 링기어 미디어(Ringier Medien Schweiz) CEO를 2년 임기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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