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Q.
부장과 평기자 사이에서 일하고 있는 차장 데스크 기자입니다. 후배들의 기사와 보고를 데스킹할 때 항상 고민이 됩니다. 저의 의견을 어느 정도까지 강하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요? 일을 가르치고 좋은 기사를 완성하려면 많은 피드백을 줘야 하지만, 젊은 후배들이 일방적인 지시로 받아들여 거부감을 갖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 때문에 말을 줄이면, 후배의 성장을 이끌어줘야 하는 선배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 같아 죄책감이 들어요. 후배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합니다.
익명의 기자
A.
‘멘트’란 말은 아무리 들어도 어색합니다. 영어(meant)로 ‘뜻한 바’를 말하는 건가 싶다가도 아닌 것 같고, 아마 영미권 저널리스트들이 취재원의 발언을 가리킬 때 쓰는 ‘코멘트(comment)’의 앞 한 글자를 뗐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어쨌건, 제가 기사를 데스킹 받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멘트 따와라”였습니다. 상대의 반론을 들어야 할 때도 많고, 기사의 흐름상 그 자리에 코멘트가 필요한 때도 많습니다. 사실 이미 따놓은 코멘트가 있는데, 기사 흐름에 어울리지 않아 일부러 뺀 때도 많았습니다. 데스크의 지시대로 코멘트를 넣으면 처음에는 제가 보기에 글의 흐름이 어색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기사를 다시 읽으면 코멘트를 넣은 흐름이 더 매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제 글을 누군가 고치는 건 당연히 싫습니다. 하지만 데스크는 제 기사를 읽는 독자 중 가장 글도 잘 쓰고, 의심은 제일 많고, 질문도 많고, 아는 것이 많은 독자입니다. 말을 많이 해주실수록, 가르쳐주실수록 좋습니다.
데스크에게 먼저 혼나는 게 낫습니다
저는 2020년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지금은 산업부에서 중소·중견기업을 맡고 있습니다. 올해로 5년 차입니다. 아직 댓글이 두렵습니다. 저도 저를 단순히 악의적으로 헐뜯는 댓글은 넘어갑니다. 하지만 사실관계가 틀렸다고 지적하고, 어떤 내용이 빠졌고, 논리가 빈약하다고 꼬집는 댓글은 무섭습니다. 이런 댓글은 얄밉게도 예의도 바릅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아 기사의 힘을 뺍니다. “기자가 이것도 모르네”, “독자보다 모르네” 대댓글로 욕을 더 먹습니다. 요즘 독자들은 똑똑합니다. 어차피 부족한 기사가 나가면 욕도 먹고, 독자들이 속으로 흉도 보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기사가 나가느니 데스크에 미리 꾸지람 듣는 편이 낫습니다.
비(非)언론계 지인들 얘기를 들으면 ‘기자는 모든 걸 알아야 한다’는 기대감이 여전합니다. 당신이 아는 걸 제가 모르면 “넌 기자가 그것도 모르냐”고 꼬집습니다. 그런데 제아무리 기자라고 세상 모든 일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심지어 제 취재 분야도 제3의 관찰자 시점으로 보기 때문에 그 분야의 종사자, 내부자, 관련자만큼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기사를 쓰면 “기자야 왜 나만큼 모르냐?”는 댓글이 달리는데, 당신만큼 모를 수도 있지요. 항상 ‘내가 모르는 게 뭘까’ 불안한 마음으로 기사를 씁니다. 가장 날카롭고, 의심이 많고, 질문이 많은 데스크가 제 기사를 검수해 준다는 게 제 최소한의 보호막입니다.
사람들의 말에는 날이 서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이불 밖은 위험해”란 말이 기사를 내보내기 전 제 심정과 똑같습니다. 독자에게 욕먹느니 날카롭고 예리한 데스크의 질문을 듣는 게 낫습니다.
저연차 기자는 모르는 게 많습니다. 내용만 문제가 아니라 자그마한 표현 하나도 틀리는 때가 적지 않습니다. 언젠가 온라인에서 <끌려가도 허허실실 ‘팀 클린스만’>이란 제목의 스포츠 기사를 봤습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던 위르겐 클린스만은 제대로 된 전술도 없이 약체라 평가한 아시아 팀들에게 끌려가는 와중에도 이기고자 하는 의지는 안 보이고 ‘실실’ 웃는 모습이 자주 포착돼 팬들의 화를 샀습니다. ‘상대의 허를 찌른다’는 허허실실이란 표현과 아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런데 기사를 쓴 기자는 허허실실이 허허, 실실 웃는다는 말로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젊은 기자들의 어휘력이 달린다’고 문제 삼을 일은 아닙니다.
과거 모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모 방송사가 “장례를 국가장으로 할지, 가족장으로 할지, 화장할지 정부가 고민 중”이라고 보도한 것 보면 꼭 요즘 20~30대, MZ 기자라서 표현을 틀리는 것은 아닙니다. 데스크가 많이 봐주셔야 합니다.
소주 한잔으로 풀어질 이야기, 전화도 좋습니다
모 일간지의 데스크를 지내고 지금은 퇴직한 한 원로 언론인은 당신이 데스크일 시절에 기사를 일선 취재기자에게 지시해 놓고, 반나절 기다리는 동안 자기가 기사를 아예 미리 써놓은 적도 많다고 했습니다. 마감 시간이 임박해 마음이 급한데 일선 기자는 마감 시간을 어기기 일쑤고, 막상 기사를 받아보면 이곳저곳 고쳐야 할 데가 너무 많아 차라리 당신이 기사를 써놓는 게 편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럴 때면 전화를 걸어 “기사가 이게 뭐야”, “아침에 내가 지시한 건 귓등으로 들었나”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끝에는 “당장 회사로 들어와”가 따라붙었습니다. 여기서 회사로 불러들이는 것은 기자를 한 번 더 혼내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기사를 고치는 동안 기자는 데스크 앞에 주눅 든 채 앉아있고, 일이 다 끝나면 데스크는 기자에게 “소주나 한잔하러 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저녁 자리에서 풀어줍니다. 기자가 “부장, 아까 그 말씀은 심하셨습니다” 하면 데스크는 “미안해 인마” 합니다.
선배들 얘기를 들으면 오전, 오후에는 기사를 정신없이 마감하고, 서로 해야 했을 얘기를 나중에 저녁 술자리에서 하며 데스크가 기자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어느 뉴스룸이든 일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문 최종판 강판이 끝나기 전까지 데스크와 기자가 소통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마감 시간은 정해져 있고 기사 하나를 두고 깊게 얘기 나눌 만큼 데스크와 기자는 여유롭지 않습니다. 당장 취재할 사안이 터졌는데 데스크가 기자에게 “이 사안을 취재해야 하는 이유”, “지금 쓰는 기사를 미뤄야 하는 이유”를 타이르듯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특히 온라인 기사가 많은 요즘은 데스크가 보도자료 기사까지 하루 수십 개 기사를 봐야 해 일선 기자들과 소통할 시간을 더 뺏기는 듯합니다.
예전에는 데스크가 술 한잔하자면 후배 기자는 따라가는 분위기가 컸습니다. 부서 엠티도 갔습니다. 요즘은 데스크가 후배에 “술 한잔하자” 권하기도 조심스러운가 봅니다. 권위적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걱정도 하고, 후배 기자들이 데스크의 점수를 매기는 상향 평가 영향도 있는 듯 보입니다. 또 데스크와 갈등을 겪으면 미련 없이 언론계를 떠나는 기자들이 많은 탓도 있을 것입니다.
데스크와 기자가 서로 할 말을 쌓아뒀다가 술자리에서 푸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감정 상할 일을 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점심시간에 봐도 됩니다. 그것도 어려우면 하루에 전화를 많이 해주시면 됩니다. 전화로 ‘네 기사는 어떻게 써야겠다’, ‘어디가 잘못됐다’ 숨김 없이 말씀해주세요. ‘너무 자주 연락하면 불편해하는 거 아냐?’ 이렇게 걱정하시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자주 연락하시면 당연히 불편합니다. 그런데 기자들은 그 불편함보다 좋은 기사를 쓰고픈 욕망이 더 큽니다. 하루하루 피곤하고, 악플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도 한 달에 한 번 좋은 기사가 나갔을 때의 피드백과 자기만족이면 그동안의 고달픔은 싹 사라집니다. 이 점은 데스크가 더 잘 아실 겁니다.
너무 저희의 감정에 신경 쓰지 마세요. 저희와 어떡하면 좋은 기사를 쓸지 고민해 주세요. 기사의 첫 독자가 저희보다 글 잘 쓰고 날카로운 선배라서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