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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을 악랄하게 착취한 불법 사채를 파헤쳐 독자들의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익숙한 주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하철역에 광고를 게재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고질적 사회문제를 집중 조명한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요즘엔 수십만 원 빌려주고 수천%의 이자를 받는다더라.”
히어로콘텐츠팀이 꾸려진 올해 1월, 우연히 만난 회사 선배가 불법 사채를 취재해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에 이어 고금리와 고물가, 경기 악화 ‘삼중고’로 불법 사채에 내몰리는 서민이 늘면서, 정부가 불법 사채 근절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습니다.
처음엔 시의성은 있지만 다소 진부한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경기가 악화할 때면 불법 사채를 고발하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정부가 대책을 내놓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불법 사채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까요. 히어로콘텐츠팀은 한 가지 주제를 약 6개월간 파고들어 취재하는 부서입니다. 불법 사채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였지만, 기존과 차별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취재팀 가운데 불법 사채 분야를 취재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습니다. 과거 보도와 자료를 탐독하고, 전문가를 만나며 ‘공부’하듯 취재했습니다. 당시 만난 취재원들은 “요즘 합법적인 대부업체들은 담보 없는 신용 대출을 거의 해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과거 TV에 광고하던 대형 대부업체들은 진작에 한국에서 철수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에는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겠다는 광고가 넘쳐났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굴까’. 취재할수록 이런 궁금증이 짙어졌습니다. 언론 보도로 접한 불법 사채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의심이 싹텄습니다. 빙산의 아랫부분까지 파헤친다면 익숙한 주제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채왕 찾기’로 시작한 취재
취재팀은 먼저 ‘사채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상징이 된 ‘김미영 팀장’ 같은 거물이 불법 사채 세계에도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사채왕을 찾기 위해 불법 사채의 속살을 잘 알 것 같은 사람을 만나고 판결문을 뒤졌습니다.
몇몇 취재원들이 특정 인물을 ‘거물’로 지목했지만, 전해 들은 얘기였거나 주관적인 판단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불법 사채 조직원들은 닉네임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들이 지목한 인물의 진짜 이름을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한 취재원이 ‘불법 사채의 원조’라고 지목한 인물의 흔적을 찾고자 전국을 돌며 그의 주변 인물을 접촉했지만 확실한 스모킹건은 찾지 못했습니다. 사채왕이 있긴 한 건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불법 사채의 세계에선 혼자 일하거나 조직을 꾸려도 점조직이라 서로 진짜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민들을 노린 불법 사채는 주로 평범한 사람들이 합니다. ‘명동 사채왕’ 같은 사람들은 이런 거 절대 안 해요”라는 불법 사채 생리를 잘 아는 취재원의 이야기는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막대한 자금을 가진 ‘큰손’이라면 일반인에게 소액을 빌려주는 것보다 기업에 대출하거나, 큰 이권이 걸린 사업에 자금을 대는 게 더 효율적이었으니까요.
취재 방향을 전면 수정해 피해자로 눈을 돌렸습니다. 불법 채권 추심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의 인생을 추적해 불법 사채의 심각성을 고발해 보자는 구상이었습니다.
‘대부 중개 플랫폼’에 주목하다
또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생활고로 자살한 사람 중 불법 사채를 쓴 사람은 있었지만, 자살에 이른 원인이 불법 사채 때문인지 판단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었습니다. 유족과 지인을 찾아 인터뷰하더라도, 얼마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생활고로 인한 자살자는 가족이나 지인 등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원하는 내용을 취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였습니다.
취재 방향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이번엔 불법 사채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는 ‘접점’에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그 접점이 바로 온라인 대부 중개 플랫폼이었습니다.

플랫폼이 불법 사채의 관문이라는 지적은 수년 전부터 나왔습니다. 2년 전 금융감독원의 설문조사에서 피해자 약 80%가 플랫폼을 통해 불법 사채를 접했다고 답했습니다. 실제 취재팀이 만난 불법 사채 피해자 상당수도 플랫폼에서 ‘정식 대부업체’ 간판을 내걸고 광고하는 업체에 대출을 문의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건 불법 사채업자였습니다.
플랫폼에서 광고하는 정식 업체들이 불법 사채 조직과 연결돼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업체의 수나 정식 업체와 불법 사채 조직 간 연결고리에 대해선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취재팀이 그 답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손품과 발품으로 건진 팩트
취재팀은 플랫폼에서 광고하는 정식 대부업체에 대출 이용자를 가장해 대출을 문의했습니다. 정식 대부업체의 가면을 쓰고 불법 사채 조직과 손잡은 업체를 특정하려면 위장 취재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취재팀이 업계를 수소문해 파악한 플랫폼은 25곳이었고, 크롤링 기법으로 파악한 광고 업체는 모두 818곳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4개 이상의 플랫폼에서 광고하는 업체 62곳을 검증 대상으로 정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전수조사는 어려운 만큼, 여러 플랫폼에서 활발하게 광고하는 업체를 선별한 겁니다.
검증 기준은 금융감독원과 변호사, 피해자 지원단체 관계자 등 전문가 7명에게 자문해 정했습니다. △법정 상한(연 20%)을 초과한 이자를 제안하거나, △대부업 등록번호가 없거나 밝히기를 거부하는 업체는 불법 사채와 연결된 업체로 분류했습니다.

정확한 검증을 위해 새 휴대전화 번호 62개를 개통하고, 번호 1개당 오직 업체 1곳을 검증하는 데만 사용하는 ‘일회용 원칙’을 세웠습니다. 불법 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에 한 번만 전화해도 그 번호가 유포되는데, 최초 유포자를 찾는 건 수사기관이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면서 불법 사채 조직으로 연결되는 정식 대부업체를 특정하려면 새 휴대전화와 일회용 원칙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취재팀은 3주간 62곳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통화와 문자 내용은 물론 통화 시각과 수신 번호까지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62곳 중 합법 영업하는 업체가 3곳에 불과하며, 36곳은 불법 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36곳의 사무실을 일일이 방문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에도 이런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해당 업체에 기자 신분을 밝히고 해명을 받았습니다.
‘1%의 가능성’에 베팅한 인물 취재
인물 취재도 병행했습니다. 불법 사채 피해자를 만나기 위해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신고센터, 한국대부금융협회 신고센터, 경기복지재단, 시민단체 등 피해자를 돕는 기관에 공문을 보내 섭외를 요청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자주 방문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제보를 요청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피해자 31명을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하지만 불법 사채를 쓴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는 일이나 보복을 우려해 대면 인터뷰에는 난색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몇몇 피해자들은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며 용기를 냈습니다. 시리즈 1회 주인공 강선주 씨(가명)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불법 사채 조직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직 조직원은 이름과 주소를 토대로 수소문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경우에는 그 가족을 설득해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조직원은 법정에서 접촉했습니다. 물론 이들이 취재에 응해줄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지만,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방법이라면 가리지 않고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몇몇 조직원이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인물 취재엔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불법 사채 피해자였다가 불법 사채 조직에 가담했던 김민우 씨(가명)를 섭외한 과정이 그랬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피해자 출신 불법 사채 조직원이 적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런 인물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강 씨는 취재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긴 제보 요청 글을 보고 먼저 취재팀에게 연락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조직에서 빠져나온 뒤 죄책감과 불안감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던 강 씨는 추가 피해를 막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제보를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일본 현지 전문가를 섭외할 때는 막판까지 마음을 졸였습니다. 약 20년 전 일본은 한국보다 불법 사채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규제로 지금은 불법 사채 문제를 크게 해결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불법 사채의 실체를 고발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제도 개선까지 이어지려면 일본 사례를 심층 보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려면 일본의 불법 사채 문제를 꿰뚫고 있는 전문가 섭외가 관건이었습니다. 일본 현지 전문가를 잘 아는 국내 단체와 전문가를 통해 섭외를 시도했지만, 한동안 답이 오지 않았습니다. 취재 마감이 임박해 일본 현지 취재를 포기할지 저울질하던 무렵,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취재팀은 곧바로 일본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취재팀이 마주한 불법 사채의 민낯
5개월간 취재로 확인한 불법 사채의 민낯은 처음 예상과 많이 달랐습니다. 불법 사채 조직원 상당수는 평범해 보이는 20, 30대들이었습니다. 이삿짐센터 직원, 식당 종업원, 화장품 도매업자, 휴대전화 판매업자, 회사원, 대학생까지. 판결문으로 확인한 대다수 조직원은 흔히 떠올리는 범죄자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취재팀과 인터뷰한 전직 조직원들은 “누구나 불법 사채를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실제 불법 사채를 하는 데는 두둑한 밑천이나 특별한 기술, 인맥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통장 잔액 1,000만 원을 인증하고 서류상 사무실만 갖추면 정식 대부업체로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플랫폼에 정식 대부업체 명의로 광고를 올리면 돈이 급한 피해자들을 불법 사채로 쉽게 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쓰기 때문에 걸릴 위험도 낮고, 걸려도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고 피해자에게 뜯어낸 법정 이자(연 20%)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범죄자 입장에선 ‘걸려도 남는 장사’였습니다. 이게 불법 사채가 근절되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지난 6월 24~27일 시리즈 4회가 게재되자 정부와 국회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대부업체 등록 요건을 강화하고, 불법 사채 계약을 무효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대부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취재팀이 불법 사채를 근절하기 위해 제안한 핵심 대안을 반영한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은 9월 정기 국회를 앞두고 불법 사채 관련 법안을 당론으로 추진할 방침입니다.
국민의힘도 9월 정기 국회 전에 불법 사채 근절 방안을 담은 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입니다. 개정안에는 6월 30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논의한 플랫폼 관리·감독 강화, 불법 사채 광고 차단, 불법 사채 조직 총책 법정 최고형 구형 등이 담길 예정입니다. 금융당국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정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정부와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만큼 제22대 국회에선 불법 사채를 막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닐 겁니다. 모든 범죄가 그렇듯, 사회적 감시가 느슨해진다면 불법 사채는 또다시 독버섯처럼 자랄 겁니다. 시리즈 보도는 끝났지만, 불법 사채에 대한 감시는 늦추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