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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서울신문 <빌런 오피스: 나는 오늘도 출근이 두렵다>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4-09-27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5년째. 서울신문은 여전히 만연하는 직장 내 괴롭힘에 주목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유형을 분석하고, 이를 둘러싼 다양한 현상과 쟁점을 취재했다. 지면과 온라인에 담고도 아직 다룰 이야기가 많다는 취재 후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브라질·아일랜드·호주에서는 보상을 위해, 캐나다에서는 동료를 배제하려고, 영국에서는 관심을 얻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 허위 신고가 발생합니다. 한국은 이 모든 이유와 함께 화풀이, 책임 회피, 보복 등 다양한 목적으로 허위 신고가 발생하며 사(社) 측에서도 정리해고, 노조 공격, 노조 갈등 유발의 수단으로 허위 신고가 활용됩니다.”

 

2023년 11월 ‘한국괴롭힘학회 창립 학술대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4년 만에 허위 신고가 급증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사망에 관한 뉴스가 이어지고 있는데 반대쪽에선 법의 허점을 활용한 새로운 괴롭힘인 허위 신고가 발생하는 모순, 그 배경이 궁금해졌습니다.

 

마침 그때는 새로 구성된 서울신문 기획취재부가 몇 주간의 토론 끝에 2024년 주요 취재 주제를 ‘정신과 예의(Mental & Manner)’로 정했던 시점이었습니다. 정권은 중후반기에 접어들었고 상반기엔 총선까지 예정된데다 경기 반등 징후도 없어 거시적인 정책 변화는 어렵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전년도에 인구 소멸 대응이나 노동·연금 등 4대 개혁처럼 거시적인 변화가 의제가 됐다면 올해는 개인들이 각자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 관심이 더 커질 것 같았습니다. 초등 저학년 ADHD질환에 대한 적시 개입 실태를 다룬 취재팀의 첫 기획 <마음성적표 F: 지금 당장 아이를 구하라>를 ‘마음(Mental)’ 취재로 본다면 ‘예의(Manner)’ 취재로 직장 내 괴롭힘과 조직문화를 깊이 있게 살펴보는 일도 좋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공인노무사와 변호사, 학자, 기업 인사팀을 만났습니다. 모두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어 회식 강요가 줄고, 직장에서의 지시나 말투를 한 번 더 점검하려는 노력이 생겼고, 무엇보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늘어난 것은 법 제정으로 인한 분명한 성과였습니다. 

 

반면 제도 시행 다음 해인 2020년 5,823건이던 노동청 신고 건수가 지난해 1만 건 이상으로 늘었음에도 여전히 무엇이 괴롭힘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신고 사건에 대한 처분에 대해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 다 반발하고, 이는 실효성 있는 해결이 이뤄졌는지 의구심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다른 쪽에선 괴롭힘 금지법으로 신고당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고 호소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괴롭힘을 참는 이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달라진 조직 문화에 초점을 맞춰야 하나 싶던 와중에 2019~2022년 승인된 자살 산재 200건 중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산재 61건의 판정서를 입수해 읽었습니다. 잠시 잊었던 문제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대체 이 법은 왜 애당초 구하겠다던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왜 누가 봐도 피해자인 사람들의 삶은 바뀌지 않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써내려간 유서에는 유독 특이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부모님을 향해 놀라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부모님과 따로 살며 직장을 다니는 경우 고인의 사정을 세세히 아는 건 부모님이 아니라 주변에 살던 친인척이었습니다. 괴롭힘 당하는 상황이 마치 부모님 뒷바라지 받아 들어간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고백으로 여기기라도 하는 듯 했습니다. 또래 친인척에게 슬쩍 괴로움을 털어놨을 때 “직장이 다 그래”라거나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말을 들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말은 이후 유가족들에게 비수로 돌아왔습니다. 세상의 웬만한 불의는 다 참지 말라고 가르치면서도 우리 사회는 왜 대체 직장에선 참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직장 내 괴롭힘 인식조사 그래픽 ⓒ서울신문

 

 

죽음으로 내모는 괴롭힘의 득세와 허위 신고가 공존하는 상황.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에 빗대 대충 상황을 설명해 보았습니다. 괴롭힘 피해자는 도라에몽에 나오는 진구, 난폭하게 괴롭힘을 시전하는 오피스 빌런은 퉁퉁이, 괴롭힘을 방치하는 조직은 퉁퉁이 옆에서 진구 괴롭히기를 돕는 비실이. 그럼 도라에몽은? 답은 물론 준비돼 있었습니다. 법을 만들 당시의 목표였던 심각한 괴롭힘 피해자 구제에는 힘을 못 쓰지만 어떤 곳의 일터 분위기는 경직되게 바꾸어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그럴싸해 보이기도 했지만 어딘가 허술한 이 비유를 얘기하던 회의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대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엔 무슨 일이 생기는 거야. 신고했던 사람들 모두 이제는 괜찮은 거야?”그때 이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신고했고, 노동청과 법원에서 잇따라 판정승을 받은 몇 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동청의 처분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위자료 판결문을 기자에게 보여주면서 이겼고 살아남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직장의 바깥에 있었습니다. 자신을 괴롭힌 직장의 밖에서 그래도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더는 함께 일하지 못하게 됐다고 아쉬워했고, 자신의 이력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다고 화를 냈습니다. 특정한 한 사람의 괴롭힘 때문에 퇴사했다는 한 명은 자신이 직장을 정말 좋아했는데, 더 이상 그때의 삶에 대해 남들에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이 괴롭다고 했습니다. 피해자 인정을 받고도 그들은 그 직장에서 이방인의 처지로 내몰려져 있었습니다.


AI로 분류한 가해자와 피해자 유형

 

새로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인 2020년 1월 1일부터 2024년 6월 30일까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기사를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검색, 2만 894건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5개 이상 매체에 보도되거나 사회적 파장을 크게 일으킨 대표적인 사건들을 추렸습니다. 최종적으로 취재팀 회의를 거쳐 주요 사건 27건을 추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처리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의 처지를 추적 조사했습니다. 

 

그다음 취재팀은 사건의 주요 내용과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로를 추적한 표를 정리해 생성형 AI인 클로드3에 학습시킨 뒤 유형별로 사건을 분리해 보았습니다. 생성형 AI의 분석을 토대로 취재팀이 다시 토론을 거쳐 재분류해 4개의 유형을 추출했습니다. 가해자의 경우 회사가 모든 일을 불문에 부치고 사직의 길을 열어 준 ‘안전이별형’, 낮은 징계를 내리는 ‘솜방망이 처벌형’, 징계도 없이 부서 이동 정도로 상황을 무마하는 ‘현상유지형’, 가해자가 응분의 처분을 받게 되는 ‘강제퇴출형’이 나왔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피해자 유형을 분류했습니다.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직장을 떠나는 ‘퇴사·이직형’,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망형’, 괴롭힘 조사 과정에서 추가 피해를 입는 ‘2차 피해형’, 가해자와 분리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분리 실패형’이 있었습니다.

 

가해자는 보호받고 피해자는 소멸하는 실태. 이것은 한국적인 특징일까요, 비즈니스 세계의 특성일까요. 노무사·변호사·임상심리 상담가 등 전문가들과 토론을 더해 사례 분류를 한 데 이어 조직 이론을 뒤졌습니다. 피해자가 겪은 문제보다 그의 문제 제기를 더 문제로 보는 ‘2차 피해 모형’, 사내 어떤 문제에도 다 같이 침묵하는 ‘조직침묵 모형’, 성과를 낸다면 괴롭힘은 감수해야 할 사안으로 취급하는 ‘권력 불균형 모형’, 순응적인 직원을 공격 표적으로 삼는 ‘독성 리더십 모형’으로 분류한 사례들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부조리한 조직의 모형이 사례와 맞아 떨어진 근간에는 괴롭힘 피해자가 호소하는 ‘메시지’보다 권위에 도전한 사례로서 ‘메신저’를 주목하는 동양의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깔려 있었겠지요.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쉽게 찾아지지 않는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2013년 이후 장기 계류 중이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추진의 기폭제가 되었던 양진호 사건 관련자들입니다. 2018년 웹하드 업체를 운영하던 양진호 당시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직원을 무차별로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에 국민은 분노했고 국회는 ‘제2의 양진호’를 막겠다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추진했습니다. 그래서 이 법의 또 다른 이름이 ‘양진호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양진호 전 회장을 신고한 이들의 행적이 묘연했습니다.

 

마치 법조 취재하듯 사건 관련자들을 찾은 결과 공익신고자 4명은 회사로부터 ‘쪼개기 고소·소송’을 당하고 있었고, 여전히 ‘보복의 굴레’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부당해고는 물론 복직 뒤 징계, 허드렛일 배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대 직원으로서 맺었던 각종 거래 관계가 횡령, 배임 등의 고소장 소재로 쓰일지 근심했고 실제 회사로부터 몇 건의 고소를 당해 방어해야 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괴롭혔던 회사가 직원을 고소하는 국면에선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했고, 직원은 먼지털이식 고소·고발에 알아서 대응해야 했습니다. 

 

양진호 사건 신고자들을 취재한 뒤 27건의 가·피해자 분석을 다시 보니 놓쳤던 사안들이 다시 잡혔습니다. 27건의 가·피해자 중 많은 이들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외 형법과 민법 등 다른 법을 활용해 대응하는 회사와 홀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가해자와 회사에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우회해서 괴롭힐 자원과 수단이 될 수 있는 법이 많았습니다.

 

할 이야기 많은 취재, 여전히 남아 있는 이야기들

 

공포와 두려움, 수치심, 분노. 수많은 감정에도 불구하고 직장이라서 한 번에 끊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취재 끝에 직장 내 괴롭힘이 없는 일터, 안전한 조직은 ‘매너’를 지키는 정도를 넘어서 좋은 직장을 기필코 만들어 내겠다는 ‘독한 마음’으로 만드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리즈의 제목 <빌런 오피스>의 제목은 매너가 아닌 마음의 말이 붙은 채로 확정되었습니다. <빌런 오피스: 나는 오늘도 출근이 두렵다>.

 

취재 역순으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양진호 사건 관련자도 구하지 못한 양진호법, 27건의 사건 가해자와 피해자들 사이에서 재현되는 양진호 사건의 그림자, 직장 내 괴롭힘으로 끝내 목숨을 끊으며 호소한 유서를 통해 부조리가 여전히 허용되는 곳으로서의 직장의 모습을 전했습니다. 누군가 직장 내 괴롭힘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조직 내 분쟁을 일으키는 행위로 보지 말고 한 번쯤 진지하게 들어주고,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다면 신고 이후 피해 회복 절차가 좀 더 촘촘하게 이뤄지고, 무엇보다 “요즘 회사가 힘들어”라고 부모님에게 말하고 그러면 “회사가 괴로운 곳이라면 문제가 있다는 얘기야” 일러주는 게 상식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1~3회가 직장 내 괴롭힘의 가장 어두운 면을 조명했다면, 4~5회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양적으로 급증한 면을 다뤘습니다. 일상 속 행동이 괴롭힘 신고 대상이 되고 이에 대한 판정이 다르게 나오면서 생기는 일상 속 혼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직장인의 마음을 살폈습니다. 세대별로 다르고 성별로 다른 마음들입니다.

 

조직 문화를 연구하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행복한일연구소와 함께 직장인 1,471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양진호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괴롭힘이 아니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치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직장이 괴로운 곳이 되는 ‘일상적인 이유’를 찾는 게 기획 후반부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직장에서의 마음가짐은 처지의 반영 그 자체입니다. 20대 여성은 어느 계층보다도 스킨십을 싫어합니다. 동성 직원 간 가벼운 스킨십이든, 격려나 친밀감의 표시로 하는 가벼운 스킨십이든 사절하는 응답이 많은 세대·성별입니다. 성범죄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큰 데다 성범죄의 상당수가 알고 지내던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등의 관련 교육을 받은 세대의 특성이 나타났습니다. 퇴근 뒤 카톡·전화 업무 지시에 대해선 직장인 대부분이 ‘노매너’라고 생각했지만, 특히 여성일수록 퇴근 후 연락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가사·돌봄을 비롯해 직장 외 할 일에 쓰는 시간이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다는 다른 통계와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정당한 인사 명령이나 상사의 업무 지시 때문에 괴로우면 괴롭힘’인지 묻는 조사에선 20대의 71.9%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50대의 53.6%만 ‘그렇다’고 했습니다. 괴로움과 괴롭힘을 혼동하는 바람에 정당한 업무 지시마저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직장마다 번지는 모습이 조사에서 드러났습니다. 저마다 그렇게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이 직장에서 존중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자살 산재 현황과 직장 내 괴롭힘 자살 산재 승인 사례 ⓒ서울신문 

 

 

지면에 담지 못한 내용은 온라인 기사로 작성하고 지면 기사 하단에 QR코드를 삽입해 다른 기사를 함께 읽도록 설계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자가 진단표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전문가 인터뷰 기사 대부분을 지면 기사 대신 QR 코드로 담아내야 할 만큼 할 이야기가 많은 취재였습니다. 그렇게 많이 취재했는데도 연재를 끝내고 보니 여전히 취재할 부분이 많이 남아 아쉽습니다. 직역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응 양상부터 AI 등 신기술이 접목되면서 달라지는 조직 문화까지 아직 취재할 이야기들이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우울하고 괴롭다는 한국인의 일상.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빼고 절반 이상을 보내는 직장이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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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홍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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