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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뷰]KPF 세미나-분쟁지역 취재보도 현안과 방향 토론회 참관기
미디어 리뷰 | 등록일 : 2024-09-27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난 9월 11일 제주 히든클리프호텔에서 <분쟁지역 취재보도 현안과 방향> 토론회를 열었다. 국내 주요 언론사 국제부장, 연구자 등이 참가해 국제 분쟁에 대한 국내 언론의 취재·보도 현황과 개선 방향을 논의한 이번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가장 재미있는 구경은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치부되는 이야기지만, 내가 다치지 않는 한 주변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인간의 잔인한 본성이 드러나는 말이기도 하다.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 함께 거론된 것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탓이었을까. 그렇다면, 싸움과 불이 뒤섞인 ‘전쟁’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된다.

 

미국외교협회(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에 따르면 현재 지구촌의 분쟁지역은 30여 곳. 이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 ‘우리는 은연중에 이 전쟁 구경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시시한’ 싸움엔 관심이 별로 없고, 최신식 무기가 동원되고 정보전, 첩보전으로 점철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영화 같은 전쟁 기사에 관심이 쏠린다. 그리고 많은 보도가 클릭 수를 노린, 제목만 낚시성으로 바꿔 단 경우가 많고, 열어보면 내용도 단순 전황 중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017년 로힝야족1) 난민촌 취재 후 답답함 아닌 답답함에 뒤척이던 중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분쟁지역 취재보도 현안과 방향> 토론회에 참석했다. 지난 9월 11일, 제주도 서귀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토론회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현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현안, △분쟁지역 취재 보도 현황에 대해 전문가들이 발표하고, 언론학자와 언론인이 전쟁(분쟁) 보도의 문제와 개선 방안을 논하는 자리였다.

 

관점 없는 한국의 국제뉴스

 

4시간 넘게 이어진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한국 언론 보도에 ‘한국의 시각’이 없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취재가 부실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 그로 인한 외신에 대한 높은 의존도에 따라 전쟁의 객관적 상황을 국민에게 제대로, 입체적으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가치 연대’ 담론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전쟁 보도의 문제점을 거론한 정의길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의 지적이 눈에 띈다. 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국내 보도는 러시아가 팽창주의 야욕에 입각해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서방 등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은 자유와 주권 침해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는 ‘가치 연대’ 담론 위에서 이뤄졌다”며 “이 같은 보도가 전쟁의 객관적 상황이나 실체를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 사진이나 화면이 대부분 우크라이나 전선 쪽에서 촬영된 것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우리의 보도는 전쟁의 한쪽 당사자인 러시아의 주장이나 현실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편파적이라고 하긴 힘들어도, 최소한 객관적이지 않은 보도와 통찰이 결여된 보도의 폐해는 결국 그 독자와 시청자, 즉 우리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전쟁 보도는 단순한 보도가 아니라, 지금 돌아가고 있는 국제 정세와 질서를 이해하는 창”이라며 “우리 언론들이 주로 약자(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식으로 보도하다 보니 국제 정세를 냉정하게 읽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분쟁지역 취재보도 현안과 방향> 토론회 현장 ⓒ한국언론진흥재단

 

 

김정섭 위원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이해’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3가지 관점을 소개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방 자유주의 진영 관점: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침략 전쟁이며, 러시아에 대응하는 것은 규칙 기반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투쟁, △러시아·중국 관점: 우크라이나 침공은 서구 민주주의 블록의 러시아 접근과 미국의 유라시아 패권 확장에 대한 반격, △글로벌 사우스(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등):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디까지나 유럽의 문제. 세계의 문제는 방치하다가 그 문제를 세계의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동참을 강요하는 것은 서방의 이중잣대이자 위선.

 

토론회 참석자들은 2년 이상 교착 상태에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합의점은 앞으로도 도출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정의길 선임기자는 “러시아는 당장 우크라이나 영토 점령보다는 우크라이나의 전력 고갈을 노리고 있다”고 했고, 김정섭 위원은 “소모전 양상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이기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의미 없는 희생을 멈추기 위해 현실적인 타협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제한된 현장 취재 환경, 신중한 ‘오픈 소스’ 활용도 방법


국내 언론의 국제뉴스, 전쟁뉴스에 한국의 관점이 없고, 사안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기사가 부족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중에서도 현장 접근과 취재의 어려움이 첫손에 꼽힌다. 김영미 다큐앤드뉴스코리아 대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유일의 전쟁 국가에 대한 취재와 보도를 ‘허가’하는 나라다.

 

실제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현지를 취재한 김신영 조선일보 국제부장은 “한국인은 우크라이나에 비자 없이, 여권만으로 입국할 수 있는 나라지만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방문 시 특별여권을 발급받도록 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입국을 지연시켰다”며 “그 과정에서 숱한 서약서에 서명했는데, 결국 사고 발생 시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절차였다”고 지적했다. 김신영 부장은 한 달을 기다려 특별여권을 받아 출국했지만, 귀국 때까지 그에게 특별여권 제시를 요청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인 기자라는 이유로 해당 지역에 신속하게 들어갈 수 없어서 인접 국가 국경에서의 취재가 다반사인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관점 없는 기사에 대한 책임을 한국 정부 등 언론사 밖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강훈상 연합뉴스 국제뉴스 데스크는 “잦은 인사이동으로 웬만한 개인의 노력 없이는 전문성을 쌓기가 쉽지 않다”며 “전문성은 낮고, 우리만의 시각이 부족한 보도는 한국 언론이 특파원 파견에 인색하고, 외신들처럼 현지 통신원(스트링거) 고용 등 탄력적인 인력 운용에도 소극적인 데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외신들처럼 전문 인력 양성, 현지 통신원 활용에 대한 필요성이 이구동성으로 강조되는 상황에서 선명수 경향신문 국제부 차장의 ‘오픈 소스’ 활용 제안도 있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경우 현장 취재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위성사진 등 공개된 정보를 활용하면 그 공백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선명수 차장은 “전선과 민간인 지역이 분리된 우크라이나와 달리 가자지구는 전선이 곧 난민촌, 병원, 학교 등 민간인 지역이라 구체적인 폭격 및 피해 관련 정보들이 거의 실황 수준으로 소셜미디어에 올라온다”며 “온라인상 공개 정보를 잘 이용하면 번역 및 베껴 쓰기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과 서방 매체 의존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벨링캣,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이 오픈 소스 활용 보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위성사진과 폐쇄회로(CCTV) 영상, 휴대폰 통신 기록 등을 활용한 우크라이나 부차(Bucha) 학살 보도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그러나 비교적 손쉽게 습득하는 정보인 만큼 주의는 필요하다. 홍건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전쟁 장기화로 큰 비용이 들다 보니 SNS와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 가짜 뉴스를 통한 ‘영향 공작(influence operations)’이 확대되고 있다”며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가짜뉴스까지 기승을 부리는 만큼 오정보를 차단하거나 삭제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홍갑 SBS 국제부 선임기자도 “방송사의 경우 영상 소스 활용이 중요하고, SNS 활용도 대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가짜뉴스 등의 문제가 있다”며 “시차별, 지역별 데스킹을 통해 24시간 가짜뉴스 판별 데스크를 운영하는 CNN과 같은 글로벌 언론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뉴스=강한 공공재’ 접근을

 

분쟁지역 보도는 투입 자원에 비해 열독률이나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 ‘고비용 저효율’의 기사에 해당한다. 강훈상 데스크는 “1꼭지당 200만 원이 넘게 투입된 기사지만 조회 수는 웬만한 사회 분야 기사의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보면 우리의 시각을 담은 기사는 필요한 만큼 경제적 지원이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쟁뉴스를 포함한 국제뉴스는 세계 10위 권의 경제 규모, 국제 무대 등 각 분야에서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위상과 입지를 감안하면 포기할 수 없는 분야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더 큰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관점을 담은 국제뉴스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서수민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국제뉴스에 문해력을 갖고 읽는 독자들은 외교관이나 비즈니스맨 등 고학력 소수 엘리트가 대부분이고, 영미권 국제뉴스 기자들도 사실상 일반 독자가 아니라 외교관 등을 상정하고 쓴다”며 “돈이 되지 않아도 기사를 생산하는 것은 국제뉴스의 강력한 공공재적 성격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쟁 기사를 포함한 국제뉴스를 공공재로 인식, 육성하고자 한다면 그 첫 단추는 취재 노하우의 축적과 공유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다. 김영미 대표는 “취재 현장에서 만난 기자들을 보면 각 언론사에서 분쟁지역 취재에 대한 경험이 공유·전수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국제 보도 취재 인프라 유지·확장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같은 선상에서 전문 인력 양성도 병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수민 교수는 “연합뉴스나 KBS 같은 공적 매체들의 역할이 더 중요한데, 연합뉴스의 경우 220억 원의 지원 예산 삭감 후 해외 지국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며 한국언론진흥재단이나 국립외교원, 외교부 등이 적극 나서 한 우물을 파는 이들을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초년생에서부터 간부급까지 40명의 언론인을 심층 인터뷰한 서수민 교수는 훌륭한 인적 자원 덕분에 앞날이 밝다고 했다. “현장 기자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 그리고 과거와 달리 전문성을 가진 기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높습니다. 에디터, 차장, 부장하고 싶은 친구들은 별로 없어도 전문기자로 일할 수만 있다면, 일반인들은 꺼릴 것 같은, 중동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의 이 목마름을 어떻게 끌어낼지가 관건이겠습니다.” 

 

 

 

 

 

1) 미얀마 내 이슬람교도 소수민족으로 2017년 미얀마 군부의 폭력 자행 이후 방글라데시 난민촌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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