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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뷰]언론중재위원회 <2023년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 리뷰
미디어 리뷰 | 등록일 : 2024-09-27

언론중재위원회가 <2023년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는 2023년 선고된 언론 관련 판결 169건을 분석한 내용과 청구 유형별로 주목할 만한 판결문이 실려 있다. 이중 두 건을 요약·소개한다. 편집자 주

 

 

<2023년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 표지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는 매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는 언론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및 기타 인격권 침해 관련 민사소송 사건에 대해 소송 형태와 판결의 경향을 보여주고, 주요 쟁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주요 판결문을 게재한다. <2023년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는 2023년에 선고된 언론 관련 판결 169건을 수집·분석했다(전수는 아니다). 수집된 판결문 중 청구 유형별로 의미 있는 내용이 담긴 판결문 전문을 수록했다. 자세한 분석 결과와 판결문은 언론중재위원회 홈페이지(https://www.pac.or.kr)에서 볼 수 있다.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의 저자인 손호영 판사는 판결도 하나의 이야기이고, 콘텐츠다”라고 했다. 갈등의 종착지인 법정에 올라온 치열한 다툼과 공방. 그 이야기를 듣고 판사는 오롯이 자신의 언어로 정리한다. 그리고 고민의 과정과 결과를 판결문이라는 그릇으로 담아낸다.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에도 재판부의 깊은 고뇌를 거친 판결문을 선별해 담았다. 판결문에는 원고와 피고의 팽팽한 논리 다툼, 그리고 이를 슬기롭게 풀어내는 과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보고서에 담긴 판결 사례를 꼼꼼하게 일독해보길 권유한다. 

 

손호영 판사는 판결문을 야구 해설처럼 풀어내려고 앞선 책을 펴냈다고 했다. 언론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판결문에는 퍼즐 같은 법리가 많다. 피해자 특정,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 구체적 사실 적시와 단순 의견 표명의 구분, 사회적 평가 저하, 공적 사안과 공적 인물, 위법성 조각사유, 진실 상당성 법리 등. 세상만사 모든 일을 담아내는 언론 보도, 그리고 그로 인한 명예훼손. 그렇다 보니 언론 소송 관련 법리는 복잡다단하다. 그래서 언론 관련 판결문도 누군가 해설해 주면 좋을 듯하다. 이에 <2023년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에 수록된 판결문 2편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자 한다. 

 

사실관계 꼼꼼히 살폈으면 달라졌을 결과

판례 1

 

A 방송사는 국립대 B 교수가 제자들의 명의를 도용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학생들이 모 협회 이사장을 뽑는 총회에 선거권을 달라며 협회를 고소했는데, 해당 학생들이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B 교수는 학생들에게 소송 취지를 설명했고, 당사자 동의를 받았다며 언론사를 상대로 기사 삭제와 정정보도, 그리고 1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 사건을 어떻게 판결했을까.

 

판결문을 살펴보자. 판결문은 주문-청구취지-이유 순으로 구성된다. 사건에 관한 결과를 먼저 알려주고(주문), 이 사건이 어떻게 시작됐고(청구취지) 법원의 판단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설명(이유)해준다. 판결문에서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주문이겠지만 흥미로운 내용은 이유에 있다. 당사자 간의 첨예한 대립을 법원이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해 가는지가 담겨있는 부분이다. 명의도용 사건의 이유는 어떻게 구성됐을까?

 

이유는 기초사실과 당사자의 주장, 그리고 그에 대한 판단과 결론 순으로 이뤄진다. 우선 이 사건에 대한 기초사실(당사자 간 다툼이 없는 사실)을 기재하고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정리한다. 원고는 피고가 허위 사실을 보도해 명예가 훼손됐으므로 정정보도도 하고 손해배상도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피고는 ‘명의도용’은 의견 표명일 뿐 사실 적시가 아니고 공인인 원고의 갑질 행태를 고발하려는 공익적인 목적이 있다고 항변한다. 

 

판단으로 넘어간다. 법원은 우선 해당 보도가 의견 표명인지 사실의 적시인지를 판단한다. 단순 의견 표명이라고 판단되면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 해당 기사가 사실 적시라고 본 재판부는 사실이 허위인지 아닌지를 보았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관련 법리(통상 대법원 판례 등)를 적시하고 제출된 증거와 변론 전체 취지, 그리고 사정 등을 통해 허위 여부를 판단한다. 이 사건 보도는 허위임이 밝혀졌다. 

 

해당 학생들이 소 제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동의했으며, 취재기자는 원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보도를 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면 원고의 승소로 끝난 것인가?

 

아직 한 단계가 남아 있다. 언론소송, 특히 명예훼손 사건에는 특이한 면책사유가 있다. 언론 보도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적시된 사실이 ‘진실한 사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위법성 조각 사유가 그것이다. 

 

이 사건에서도 위법성이 조각되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피고의 항변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보도의 핵심적 내용이 허위이고 기자가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충분하고 적절한 취재 활동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이 사건 보도 취지가 갑질을 고발하기보다는 명의를 도용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자극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기 어려우며,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보았고 그 범위는 여러 사정을 참작해 위자료 100만 원으로 정했다. 그렇다면 정정보도 청구는? 재판부는 피고가 허위 사실을 보도해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으므로 ‘언론중재법’에 따라 정정보도를 할 의무가 있다며 정정보도문을 이행하라고 판결했다. 

 

만약 언론사가 취재 과정에서 당사자인 교수와 취재원이었던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으면 어땠을까. 사실 확인을 위해 여러 관계자의 의견과 사실 관계를 더 살펴보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언론인은 취재 대상이 어떤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면 사실 관계를 좀 더 확인해 봐야 한다. 언론기관은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진실에 다가서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면책이 될 수 있다. 이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준 판결이다.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이 있다

판례 2

 

2018년 11월 C 방송사는 모 회장이 회사 자금을 자녀들의 유학 비용으로 유용했다는 비판 보도를 했다. 2022년 4월 D 유튜브 채널은 이 보도가 경쟁 업체의 청탁을 받고 기사화된 것이었다는 취지의 영상을 게시했다. 이 영상에는 방송사의 보도가 부정 청탁으로 이뤄진 것이고, 이 사건 보도를 위해 새로운 코너를 신설했다 1회로 끝냈으며, 방송사 사회부장은 청탁의 대가로 수입차를 받았고, 제보자가 사건 보도 후 진술을 번복했으므로 허위 보도라는 주장이 담겼다. 이에 대해 방송사는 영상의 내용이 모두 허위이고 명예를 훼손했으며, 방송사와 소속 기자들에 관하여 모멸적인 발언을 해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유튜브 채널 진행자와 유튜브 채널 사업자 및 대표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과 영상 삭제를 청구했다. 

 

재판부는 앞선 기초사실을 살핀 뒤 원고의 손해배상청구와 영상삭제청구를 나누어 판단했다.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판단에서 재판부는 우선 영상에 나온 발언 내용을 5개 부분으로 구분해 명예훼손이 성립하는지 살펴보았다. 각 부분은 다음과 같다. ①경쟁업체로부터 부정 청탁을 받고 보도했다. ②이 사건 보도를 위해 새로운 코너를 신설해 코너를 1회로 끝냈다. ③제보자 집을 회장 가족의 집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했다. ④사회부장이 보도 청탁 대가로 수입차를 받고 퇴사 후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 ⑤제보자가 제보 내용 진술을 번복했다. 재판부는 ①부터 ④ 부분은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 ⑤ 부분은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피고들의 추정적 내지 평가적인 의견 표명으로 받아들여진다며 청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①부터 ④ 부분의 허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재판부는 ①번과 ④번 내용은 피고들이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신빙성 있는 소명 자료를 제시하지 못해 허위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보았다. ②번 내용 또한 해당 코너가 1년 10개월 동안 총 24건의 기획 기사를 보도한 점에 비추어 허위라고 인정했다. ③내용에 대해서 재판부는 방송 보도에서 제보자의 집을 회장의 집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없고 그러한 취지의 발언도 없었다는 점에서 허위라고 보았다. 결국 유튜브 채널의 내용이 대부분 허위로 인정되어 원고인 방송사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돼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했다. 그럼 이제 위법성 조각 사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피고들은 해당 영상이 공적 관심 사안에 대하여 공익적 목적을 가지고 합리적 의심에 근거하여 제작됐다고 주장한다. 재판부는 어떻게 보았을까. 재판부는 우선 해당 영상이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일단 공익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유튜브 채널이 신속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일반 시청자들이 실제 사실을 오해하지 않도록 내용이나 표현 방법 등에 대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 이 영상은 사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별다른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단정적이고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피고들이 원고 및 소속 기자들에 대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으로 인격권이 침해됐으므로 이에 대한 위자료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1,200만 원을, 모욕 내지 인격권 침해에 대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3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영상 삭제 청구는 받아들여졌을까. 재판부는 방해배제 청구권으로 기사 삭제 청구를 판단할 때는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이라는 두 가치를 비교·형량해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하면서 이 영상과 관련한 원고의 명예나 인격권이 피고들의 언론의 자유보다 중하다고 보아 사건 영상을 삭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유튜브 채널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었다. 재판부는 유튜브 채널이 광범위하고 신속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영상으로 어떤 의혹을 제기할 때는 영상의 내용이나 영상이 주는 전체적인 인상으로 인해 시청자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튜브 등 인터넷 개인 매체를 통한 표현의 자유는 충분히 보장돼야 하지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기타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그에 따른 책임도 반드시 따른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판결이다.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에는 소개한 판결문 외에도 깊이 있는 성찰과 고민이 담긴 판결문이 많다. 각 판결문에는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고 침해된 인격권을 지키려는 재판부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각 판결에 담긴 재판부의 고뇌와 당사자 간 분쟁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2007년도부터 발간된 이 보고서가 앞으로도 언론법제 연구자들과 언론인, 그리고 언론법제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그릇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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