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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심각함에도 피부로 와 닿지 않는 해양 쓰레기 문제. 한국일보 취재진은 3개월 동안 국내외를 돌고 직접 배를 타며 해양 쓰레기를 ‘추적’했다. 흔한 환경 기사에서 벗어나 추적극 형식의 내러티브 유형을 시도한 이 기사의 취재 뒷얘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배 좀 태워주세요.”
무작정 찾아간 인천의 한 섬. 아직 살아있는 꽃게 분류 작업에 바쁜 어촌 작업장을 돌며 간청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말없이 고개를 젓거나 “진짜 혼자 왔어?”, “여자 혼자 섬에 왔어? 맹랑하네”와 같은 답이었습니다. 좁은 배에서 사고가 일어날 경우, 선장과 선주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과 당장 수산업 매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해양 쓰레기라는 주제가 무척 부담됐을 터였습니다. 돌아가는 배가 끊기고 해가 저물어가자, 무서운 마음까지 일었습니다.
간신히 한 선주로부터 “뱃멀미가 심할 텐데”라는 말을 듣자, 더 간절하게 ‘포부’를 밝혔습니다. “두 번 토하고 바로 밥 먹으면 멀미가 쑥 내려간다던데요!” 현장에서 지켜보던 어머님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선주는 “그래, 한 번 타봐. 대신 기사 잘 써야 해!”라고 당부하곤 승선을 허락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네 시 구명조끼를 챙겨 들고 도착한 선착장. 캄캄한 바다 위 환한 불빛이 켜진 갑판 위에 올라서자마자 예상치 못하게 제 ‘멘탈’을 단번에 깬 것은 뱃멀미도 아니요, 갑판 위에 뻥 뚫린 ‘구멍’이었습니다. ‘구멍’에 용변을 보면 그대로 바다 위로 떨어지는 구조였습니다. 귀퉁이가 한 움큼 깨져 있긴 했지만, 분명히 재래식 화장실의 모습이었습니다. 가방을 열어 혹시 몰라 챙겨온 성인용 기저귀를 확인했습니다. 출항하는 어민들은 한국인 선원 세 명에 미크로네시아 국적 선원 네 명. 선주님은 검은 비닐봉지에 소보로빵을 가득 넣어 들려주곤 “잘 다녀와!” 하며 어깨를 두드려 줬습니다.
조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구멍’을 통해 어민들에게 바다란 단순히 수산물을 잡는 곳이 아닌, 식재료를 얻는 곳이자 설거지 물을 끌어올리는 수원이면서 동시에 오랜 시간 오·폐물을 배출하는 공간이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물에는 꽃게 외에도 캔, 폐그물, 라면 봉지 등이 걸려 올라왔습니다. 선장님은 가끔 우럭, 아귀 같은 생선이 올라오면 점심거리를 위해 따로 주워 손질했습니다. 그러다 옆에서 기웃거리던 저를 불러, 손에 뭔가를 쥐여주었습니다. 선원들이 용변을 보던 바다에서 올라온 꼴뚜기. 바다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꼭 잡고 걸어 다니느라 시커메진 손에 받아 들고 한입 가득 우물거린 꼴뚜기는 그 어떤 오징어 회보다 달고 쫄깃했습니다.
오전 11시쯤 되자, 조리장을 맡은 한 어민은 바닷물을 길어 냄비를 씻곤, 역시 방금 바다 위에서 올라온 아귀를 넣고 매운탕을 끓여냈습니다. 방금까지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쳤을 아귀는 살만 남은 채 머리와 꼬리가 바닷속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갑자기 속이 안 좋아지는 듯했습니다.
“아, 저는 화장실 가고 싶을까봐 못 먹겠어요”라고 하자 선원들은 이미 그득 끌어올린 갑판 뒤로 가려진 그 화장실을 가리켰습니다. 원효대사님이 해골물을 마시고 느낀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결국 한술 뜨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먹었던 어떤 해물탕보다 감칠맛이 있었습니다. 연신 뭘 넣은 거냐고 여쭸더니, 수줍은 얼굴로 말없이 고추장 통을 가리키던 조리장님은, 나중엔 귀한 꽃게까지 쪄서 배를 뚝 갈라 주셨습니다. 예전에 잡히던 꽃게는 더 실했다면서, 그 실한 꽃게를 못 보여줘서 아쉽다는 말과 함께였습니다. 기사엔 담지 못했지만 쓰레기 가득한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어민들에게 바다가 어떤 곳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수 있었습니다.

현장에 가야 보였던 바다의 경고
어선이 사람을 태우면 해경에 승선 신고를 해야 합니다. 배에 기자 한 명을 태우면 선원 한 명을 덜 태울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물을 잘 끌어올리기 위해 바다에서 배로 들어오는 턱을 낮게 만든 만큼, 자칫하다 바다로 사람이 빠지기라도 하면 그 배는 해경과 해양심판원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사고 배’가 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제가 배에 타 어민들의 ‘바다 위 이야기’를 취재할 수 있었던 건 바다를 가장 잘 아는 어민들의 문제의식 덕분이었습니다. 배에서 내린 후 승선을 허락해 준 선주가 말했습니다.
“뉴스에선 꽃게가 풍년이라는데, 올해 우리 오랜 고객사에서 우리 물건을 안 받겠다고 했어. 이거 봐, 속에 먹장이 꽉 찼잖아. ㅇㅇ배들이 하도 쓰레기를 버리니까 펄이 다 썩어서 먹을게 없는 거지.”
엑설런스랩 기획취재팀은 환경 전문 취재팀은 아니었습니다. 해양 쓰레기로 탐사보도 주제를 정하자 개인적으로는 ‘이번에는 조금 쉽게 취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이미 언론에서 많이 다룬 주제인 데다 환경 전문 선배 기자들이 쓴 기사들을 참고하면 충분하겠다는 착각이었습니다.
많이 다뤄진 주제여서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전문가들을 만나도 기존에 나온 기사들 이상으로 생각이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거북이 목에 걸린 낚싯줄, 바닷가에 가득 쌓여있는 쓰레기, 아귀 뱃속에서 발견된 페트병 같은 이야기를 쓴다면 모두에게 식상함을 줄 터였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기사를 한 번 더 쓴다면 괜한 기사를 써서 중요한 환경 문제인 해양 쓰레기를 대수롭지 않게 느끼게 하는 역효과마저 낼 것 같았습니다.
실마리를 찾은 건 쓰레기 수거선이 입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은 부산항에서였습니다. 배 위에는 죽은 새우, 바닷가재 등이 걸려 썩고 있는 폐그물뿐 아니라 폐타이어, 폐냉장고 등이 가득했습니다. 어민들이 무척 안도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양 쓰레기 수거선을 지켜보던 어민 일부는 “저것 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며 혀를 찼습니다. “쓰레기를 내놓으면 돈이 되니까 부리나케 가져간다” 등의 이야기를 건네는 어민들도 있었습니다. 정부 홍보 보도자료를 뒷받침하는 형식적인 행사로 여겼던 현장에서 의외의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어민들의 이야기는 사실이었습니다. ‘폐어구 집하장 몇 곳을 늘렸다’거나 ‘해양쓰레기 몇백 톤을 수거했다’는 정부 보도자료의 현장을 따라가 보자 이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보도자료를 내며 홍보했던 폐어구 집하장은 텅 빈 채 몇 해째 쓰이지 않고 있었고, 폐어구 수거 사업은 ‘정부가 바다 위까지 감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어민들 사이에선 눈먼 돈을 타가는 사람들의 노다지로 불린 지 오래였습니다.

“먼바다에 가서 그물을 끌어올려 보면, 쓰레기 반 고기 반이다”, “배를 직접 한 번 타 봐야 얼마나 심각한지 안다”는 말도 힌트가 됐습니다. 기자가 배를 타고 조업 과정을 며칠이나 지켜본다는 것은 ‘바다 물정’을 모르는 부탁이었습니다. 하지만 취재뿐 아니라 뱃일을 돕겠다며, 함께 취재한 유대근(엑설런스랩 기획취재팀장) 선배는 몇 번이고 선주들을 찾아가 설득했습니다. 승낙을 받고도 출항 전날 밤까지 “이런 취재가 정말 가능할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주일간 뜨거운 갑판 위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선원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말도 일리가 있었을 뿐 아니라 안전사고의 우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주일간 통신마저 끊겼던 선배는 무려 5㎏나 빠진 핼쑥한 얼굴로 영진호 이야기를 가득 안고 돌아왔습니다.
하와이 해변에서 만난 ‘한국산 쓰레기’
‘뱃멀미보다 무서운 건 기사 쓸 게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절박함을 안고 떠난 현장에서 단지 거북이 목을 조일 뿐 아니라 검은 바닷속에서 배 프로펠러와 사람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폐그물에 동료를 잃은 어민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동료 선원을 잃고 범죄자가 된 선장님은 무작정 집 앞으로 찾아간 취재팀 진달래 선배에게 그날의 사건을 침통한 얼굴로 털어놨습니다.
동료를 죽게 한 혐의로 재판까지 받아야 했던 선장님은 오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남해의 한 섬 인근 바닷속은 이미 어민들 사이에선 ‘그곳에 가면 프로펠러에 그물이 감겨 배가 넘어간다’는 것이 상식이 됐을 정도로 폐어구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민 일부는 나일론 그물을 일회용 나무젓가락이나 휴지를 사용하고 휴지통에 넣듯 바다로 버리고 있었습니다.
‘해양 쓰레기가 해류를 타고 전 지구를 떠돈다’는 연구 결과도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중국 다롄에서 버려진 미역 양식용 쌍귀 부표는 일본 쓰시마섬 어촌과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섬 주민들 사이에선 이미 익숙한 물건이 된 지 오래였습니다. 미국 하와이 해변에서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검은 고깔 모양의 장어통발과, 그 물건에 적힌 한글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와이 항구에선 한국산 폐그물과 폐어구를 분명히 분간할 수 있는 어민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공들여 취재한 만큼 마지막까지 ‘환경 기사’라는 생각에 많이 읽히지 않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번의 단체 첨삭을 거쳤습니다. 한 가지 기사를 놓고 여러 가지 흐름의 기사를 쓰고 술술 읽힐 수 있게 서로 돌려 읽었을 뿐 아니라 대학교 4학년 학생 인턴 등 비전문가 독자들에게도 강평 받았습니다. 추적극 형식의 내러티브 기사 유형도 시도했습니다.
<추적: 지옥이 된 바다> 기사를 준비하며 개인적으로는 선배들이 말해온 ‘현장’이란 게 이런 게 아닐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번 취재의 특징은 ‘일단 표부터 끊고’ 무작정 출발한 출장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선 예상했던 수준 이상의 취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이 가능했던 것은 기자의 노력 덕분만은 아니라고도 생각합니다. 갑자기 집 앞으로 찾아온 기자에게 사고로 동료를 잃은 ‘그날’의 힘든 기억을 털어놔 주신 선장님, 여러 부담에도 승선을 허락해 준 선주님, 해 뜨기 전 바다 위는 평소보다 훨씬 춥다면서 바람막이를 챙겨 입혀주신 어머님들, 낯선 하와이에 찾아와 무작정 “참치잡이 어선 타고 싶다”는 한국 기자에게 흔쾌히 어선을 보여주시고 간식까지 쥐여 준 하와이 주민들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그분들의 바람은 모두 같았을 것입니다. “좋은 기사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맨땅에 박치기’하는 각오로 취재 현장으로 떠났던 저희의 경험이 취재 현장에서 고군분투할 동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