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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kr’로 표기된 웹사이트 주소는 신뢰할 만하다? 그러나 공공기관 도메인 다수가 관리 부실로 변질됐음이 비즈워치의 취재로 드러났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정부 기관 공식 누리집과 정부 조직 홈페이지를 일일이 확인해 이 문제를 고발한 비즈워치의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인터넷에 접속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뭘까요. 찾고 싶은 정보, 검색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 사이트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이트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인터넷 주소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www’로 시작하는 인터넷 주소를 입력해 엔터(enter) 버튼을 누르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온라인 세상은 시작합니다. 인터넷 주소는 어떤 내용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가장 기초적인 정보입니다. 전문용어로는 도메인(domain)이라고 합니다. 집에서 쇼핑하든 회사에서 업무를 하든 우리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도메인을 입력해 온라인 세상을 유영합니다.
다만 모든 인터넷 주소가 우리에게 유익하진 않습니다. 간혹 이상한 사이트들도 뜨죠. 그래도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주소만큼은 모든 사람이 의심의 여지 없이 믿고 이용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불법 도박 사이트 안내한 금융감독원
그 믿음이 깨진 건 지난 6월이었습니다. 우연히 증권사 사이트를 돌아보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사용하던 증권범죄신고센터 사이트 주소를 발견한 겁니다. 이 도메인은 2000년 금감원이 개설 후 20년간 사용하다 현재는 다른 도메인으로 주소를 바꾼 상태였습니다.
해당 도메인에 접속해 보니 그곳은 불법 도박 사이트로 변질돼 있었습니다. 금감원은 이 사실을 모른 채 공식 홈페이지에서 여전히 해당 도메인을 증권범죄신고센터 주소로 국민에게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금감원의 자료를 그대로 ‘복붙(복사+붙이기)’한 증권사와 상위기관인 금융위원회 역시 홈페이지에서 해당 주소를 증권범죄신고센터 사이트로 안내 중이었습니다. 공신력을 갖춰야 할 정부 부처와 금감원, 증권사들마저도 해당 도메인이 불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도 이후 금감원은 부랴부랴 홈페이지에서 해당 도메인을 모두 수정했습니다. 금융위원회도 불법 도박 사이트로 이어졌던 도메인 주소를 삭제했습니다. 증권사들도 기사를 보고 홈페이지에서 주소를 삭제했다고 연락해왔습니다.
설마 금감원만 그랬을까?
해당 보도 이후 공공사이트의 관리 부실 문제가 금감원 사례 하나만은 아닐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후 ‘버려진 공공사이트’라는 주제로 팀을 꾸려 행정안전부 등을 포함한 정부 조직 19부·3처·19청의 홈페이지를 전수 조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공공사이트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버려진 공공사이트팀은 정부 부처 홈페이지에서 비영리기관만 사용할 수 있는 or.kr 도메인을 검색해 나온 주소들을 샅샅이 훑었습니다. 일일이 검색해 나오는 주소를 하나씩 클릭해 해당 도메인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 확인했습니다. 하루에 수백 개가 넘는 인터넷 주소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작업은 지난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부처는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였습니다. 행안부는 국민과 가장 가까운 정부 조직 중 하나죠. 행정 자치, 선거, 치안, 소방 등을 관할하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자정부 서비스인 정부24를 관리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국민은 정부24에서 손쉽게 주민등록등본 등 행정업무에 필요한 서류들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전자정부 서비스는 다른 국가들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행안부가 디지털정부 서비스의 편리함을 위해 자체적으로 만든 KRDS(Korean Government Design System) 사이트 내에서 소개하던 다수의 공공기관 도메인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겁니다.
버려진 공공사이트팀이 KRDS 사이트에서 안내하고 있는 5,826개의 공공기관 도메인을 전수조사한 결과 공공사이트 2곳이 불법 도박 사이트와 성인용품 판매 사이트로 이어졌습니다. 아울러 356개 사이트는 접속이 아예 불가능했고 주소를 단순히 잘못 표기해 안내한 곳도 5곳 있었습니다. 행안부가 안내하는 사이트에도 다수의 문제점이 발견된 것입니다.
여성가족부가 안내하는 일부 공공사이트 역시 불법 도박 사이트로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해당 사이트는 경상남도 청소년수련원 홈페이지로 사용하던 주소였습니다. 불법 도박과는 거리가 가장 멀어야 하는 청소년이 이용하는 공공사이트마저도 불법의 온상이 됐습니다.
그 밖에 황당한 사례도 많았습니다. 경찰청 산하기관인 도로교통공단이 과거에 사용하던 주소는 10년 넘게 사주풀이 사이트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연구하는 한국연구재단이 과거에 쓰던 도메인은 일본어로 가득찬 사이트로 변질된 지 오래였습니다.

돈만 주면 ‘or.kr’도 사용 가능
공신력이 높아야만 하는 정부기관마저도 불법 도박 사이트를 안내하고 있는 현실은 당황스러우면서도 의아한 지점이었습니다. 수십, 수천 개의 사이트 중 한두 개 정도 잘못 연결되는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공공사이트가 접속되지 않고 불법 도박 사이트로 연결되고 심지어 이를 그대로 방치해놓고 국민에게 신뢰할 수 있는 사이트라며 안내하고 있는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습니다.
이에 버려진 공공사이트팀은 추가로 왜 공공사이트 도메인이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 결과 공공사이트 관리가 부실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도메인을 등록만 내주고 사후 관리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도메인은 2004년 제정한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관리되고 있는데요. 해당 법에 따르면 인터넷주소자원인 도메인 관리를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장관은 3년마다 인터넷주소자원 관리를 위한 기본 계획도 수립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본 계획 수립은 과기부 산하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도맡고 있었고 이 마저도 KISA는 5,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용역업체를 선정해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실질적인 도메인 관리는 KISA가 맡고 있었는데요. KISA는 도메인등록대행업자(민간업체)와 계약을 맺고 도메인 등록 업무를 맡기고 있습니다. 11월 초 기준 등록대행업자는 가비아, 반값 도메인, 닷네임코리아 등 15곳이 있습니다. 이들 대행업자는 일정한 비용을 받고 비영리기관이 사용하는 or.kr, 개인 등이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co.kr 등의 도메인을 등록해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비영리기관만 사용할 수 있는 or.kr 등록 과정에서 비영리기관임을 확인하는 서류를 받는 등의 별도의 절차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도메인 사전 관리도 문제지만 사후 관리도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는데요. 도메인의 직접적인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KISA는 등록대행업자에 대한 평가만 1년에 한 번씩 진행할 뿐 도메인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직접 점검하진 않았습니다.
도메인등록대행업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을 받고 도메인을 내주기만 할 뿐 해당 도메인이 본래 목적대로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점검하진 않았습니다. 최종 책임자인 과기부 역시 도메인 관리를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책무로서 소중히 관리해야 할 인터넷주소자원인 도메인 관리는 방치에 가까운 수준이었습니다.
공공사이트 관리 문제, 국정감사 이슈로 다뤄지다
보도 이후 행안부는 접속이 되지 않는 다수의 사이트를 정리했습니다. 불법 도박 사이트와 성인용품 사이트로 연결되는 공공사이트 역시 폐쇄했습니다. 과기부는 버려진 공공사이트팀에 직접 연락해와 “or.kr을 쓰는 불법 사이트를 경찰청과 함께 협조해서 대응하려고 자료를 빠르게 취합하고 있다”며 “도메인 관리 차원뿐만 아니라, 대승적으로 다 같이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공공사이트 관리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 이슈로 다뤄지기도 했습니다. 국감에 앞서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은 행안부에 공공사이트 관리 부실 문제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서면질의를 보냈습니다.
지난 10월 10일 열린 과기부 국감에서는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공 도메인의 관리 미비와 관련 KISA를 대상으로 현장 질의를 했습니다. 박 의원은 금감원의 증권범죄신고센터와 경남청소년수련원의 옛 도메인이 악용된 사례를 자료화면으로 보여주며 KISA의 도메인 관리가 부실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역시 KISA를 대상으로 서면질의를 통해 도메인 사전·사후 관리 강화 및 등록 대행업체 관리, 도메인 준칙 강화 등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김우영 의원실의 요청으로 버려진 공공사이트 이슈와 관련한 참고인으로 국정감사에 출석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KISA는 제7차 인터넷주소 기본 계획 수립에 비영리기관만 사용할 수 있는 or.kr의 등록 자격을 개인 또는 법인에서 비영리법인·단체로 개정하는 내용을 담아 도메인 관리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 3년 과기부 장관이 수립해야 하는 인터넷 주소 기본 계획에 버려진 공공사이트 보도에서 지적한 내용이 반영된 것이죠.
버려진 공공사이트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행안부가 운영하는 정부24에서 안내하고 있는 공공사이트 1만 4,988개를 추가로 전수 조사해 이중 765개(전체 도메인의 5.1%)가 접속되지 않고 불법 도박 사이트로 연결되는 등의 문제점을 추가로 꼬집었습니다. 이후 행안부는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본지가 조사한 문제 있는 공공사이트 리스트를 요청했고 현재 해당 사이트들은 삭제된 상태입니다.
금감원에서 시작한 도메인 문제는 전체 정부 조직까지 이어졌고 단순 보도에 그치지 않고 국정감사 이슈로 다뤄지는 성과를 냈습니다. 보도로 인해 기자가 참고인으로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이례적인 경험도 했습니다.
공공사이트 관리 문제는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진 않으니까요. 불법 사이트가 뜨면 꺼버리면 그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