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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방송》은 지난 11월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4개 방송사의 영상기자들을 만났다. 현장 중심의 치열한 취재에서 겪는 부담과 고민,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진솔하게 나눈 카메라 뒤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텔레비전 뉴스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여준다. 시청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카메라 뒤에서는 많은 영상취재기자가 더 좋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신문과방송》은 지난 11월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지상파 방송 3사와 뉴스 전문 채널인 YTN의 영상취재기자를 만났다. 카메라 뒤 기자들의 생각과 고민을 나눈 이날 간담회에는 선상원 KBS 기자, 하륭 SBS 기자, 현기택 MBC 기자, 홍성노 YTN 기자가 참석했다. 간담회는 홍성철 경기대 교수가 진행했다.
홍성철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경력과 함께 현재 하는 일도 소개해 줬으면 한다.
선상원 2012년 KBS에 입사한 13년 차 영상취재기자다. 취재 현장뿐만 아니라 영상 편집, 기획 부서, 인제스트 업무 등 다양한 내근직을 경험했다. 지금은 스포츠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기택 2006년 12월 MBC에 입사했다. 사회부 현장 기자를 오래 했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를 출입했다. 또 선거방송기획단, 검찰 출입을 하다가 지금은 사건팀 ‘영상 캡’을 맡고 있다. 영상기자들의 취재 업무 배분과 데스크 업무를 한다.
하륭 SBS 사회부 사건팀에서 일하고 있는 13년 차 기자다. 2년 간 국회 출입을 한 뒤 보도국에서 다큐멘터리 취재 및 편집을 하다가 5년 차부터는 사건팀에서 일하고 있다.
홍성노 2010년 4월 YTN에 입사했다. 사회부 사건팀에서 근무하다가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국민신문고’팀으로 옮겼다. 2019년부터는 영상기자가 기획, 섭외, 취재, 편집, 방송을 모두 담당하는 영상기획팀에서 일했다. 지금은 다시 사건팀에 돌아와서 취재하고 있다.
홍성철 먼저 사건팀 기자인 경찰서 출입기자의 일상을 알고 싶다. 취재 현장에 갈 때 취재기자와 함께 가는가.
현기택 과거에는 기자들이 경찰서에 상주하며 활동했기 때문에 ‘경찰기자’라고 했다. 현재는 상주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경찰서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를 취재하고 있어 이 명칭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회사로 먼저 출근한다. 그리고 영상 캡의 지시에 따라 취재 현장으로 배치된다. 영상 캡은 취재 의뢰를 받은 리스트를 정리해, 업무 상황, 영상기자의 능력과 연차, 전날 업무 강도 등을 고려해서 업무를 배정한다. 과거에는 취재기자와 한 번에 움직여서 현장에서 리포팅하고 촬영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분업화됐다. 사전 취재를 통해서 정보와 취재원을 분류한 뒤에 취재기자와 영상기자는 각자 맡은 부분을 취재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취재기자와 함께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홍성철 국회나 경제부 등의 부처 출입은 어떤가.
하륭 국회 출입기자는 대부분 국회의 영상기자실로 출근해서, 그곳에서 퇴근하게 된다. 그날 발생하는 사건·사고가 중심인 사건팀과는 달리 국회는 예정된 일정에 따라 취재가 이뤄진다. 사건팀의 경우 취재기자가 취재원을 매개한다면, 국회에서는 영상기자가 취재원을 만나서 직접 소통하고 영상에 담게 된다. 그만큼 자율성이 주어진다.
선상원 사건팀은 워낙 갑자기 발생하는 일이 많아 예측이 안 된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경제부나 스포츠부 등에서는 사전에 취재 계획이 세워진다. 그래서 미리 관련 자료 등을 찾아보고 어떻게 촬영할지,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보통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지만 취재원과의 약속이 늦은 경우에는 오후에 출근하는 등 출퇴근이 유연하게 조정된다.
좋은 영상 위해 기다림은 다반사, ‘불나방’은 숙명
홍성철 오랫동안 현장에서 취재를 해왔으니 영상기자로서 애환이나 보람이 있을 것 같다.
홍성노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100일쯤 됐을 때다. 당시 유가족은 자녀를 잃은 상실감이 매우 커서 언론 취재에 거의 응하지 않았다. 유가족이 삭발식을 하고 도보 행진을 할 때, 간신히 인터뷰해 방송했다. 2분 정도의 짧은 리포트였는데, 송출 뒤에 유가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맙다고, 앞으로도 이런 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후에는 유가족 관련 취재도 편해지게 됐다.
선상원 방송 뉴스는 편성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방송 시간에 임박해 발생한 건도 뉴스에는 신속히 반영해야 한다. 무사히 보도를 했을 때, “오늘 잘 막았다”고 표현한다. 많은 사람이 우리 뉴스를 잘 보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제대로 뉴스를 만들지 못하거나 편향된 내용을 내보냈다는 비판을 받을 때는 스스로 민망하기도 하고, 죄송스럽다. 언론사 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러한 마음일 것이다.
현기택 최근 기자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면서 ‘기레기’라는 표현도 나온다. 회사 로고가 찍힌 카메라를 들고 취재현장을 나가고 있기에 늘 표적이 된다. 간혹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현장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속상하지만 그것도 기록이고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선상원 좋은 영상을 위해서는 많이 기다려야 한다. 지난봄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한 LA 다저스 선수들이 고척돔에서 개막전을 했다. 오타니 결혼 발표 후 첫 공식 경기였기에 일본 매체들이 취재를 많이 왔다. NHK의 영상기자도 ENG카메라와 송출장비를 들고 사다리 위에서 1시간 넘게 촬영 자세로 기다리고 있더라. 그걸 보며 ‘전 세계가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륭 지난 4월에 대만에 지진이 발생해 출장을 갔다. 출근했는데 갑자기 1시간 뒤에 대만행 비행기를 타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서둘러 타이베이로 갔는데, 지진이 난 지역 도로가 다 끊긴 상황이었다. 얼마나 빨리 재난 현장 영상을 뉴스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이 컸던 순간이었다. 도로가 끊겨 고립되는 일도 많았고, 여진이 남아 있어서 안전문제 등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면 경쟁이 치열해 아무 생각도 안 나게 된다. 그 상황에서 안전하게 취재하라고 현장 기자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것이 데스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현기택 ‘불나방’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게 된다. 타 죽을 걸 알면서도 불 속에 뛰어드는 숙명을 지닌 존재다.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장에 가면 어쩔 수 없이 빨려드는 것 같다.
홍성철 최근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대형 참사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현장을 촬영하는 기자들 역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불안 장애 등에 시달리곤 한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 지 궁금하다.
현기택 큰 사고나 사건을 목격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이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을 때, 수많은 시체 인양 작업을 보면서 기자들이 큰 충격을 받고 심리적 불안 등을 경험한 사람들도 늘어났다. 회사에서도 이를 인식해 조금씩 변하고 있다. 가령, 2년 전 이태원 참사 이후에는 회사 측에서 당시 취재했던 모든 기자에게 심리상담을 받게 하는 등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회사에서 개인들의 심리적 변화를 모니터하지만,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에서도 큰 사고 발생 이후 기자들이 공포감을 극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쟁 및 분쟁 보도에 대한 안전 준비, 재난·재해 보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외신들은 기자 안전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 노하우 등이 공유돼야 한다. 과거 선배들의 경험이 후배에게 전파되지 않고, 상황이 발생하는 그때그때 개인에게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하륭 이라크 전쟁 당시 포로로 붙잡힌 선배 영상기자가 있었다. 포로가 돼 눈 가리고 손목을 묶고 하루 동안 무릎 꿇고 있다가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한다. 과거에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움직였지만 이제는 매뉴얼을 만들어 시스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해외보다 잦은 모자이크 처리, 사전 동의 이뤄지는 환경 돼야
홍성철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AI가 취재 현장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하륭 영상 편집 과정에서 음향 보정에 AI를 활용한 적이 있다. 이미지 컷 제작에서도 활용을 시도했지만 비용 문제와 내부 업무분장 등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었다. 최근 음성 재현 등 AI 기술을 활용한 프로그램 제작 시도가 있었지만, 음성을 재현하는 개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나 저널리즘 측면에서 윤리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선상원 음성을 문자로 바꿔주거나(STT), 문자를 음성으로 바꿔주는(TTS) 작업에는 많이 활용되지만 아직 영상에서는 활용이 더딘 상황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국영상기자협회에서도 AI 활용 영상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있다. <보도 영상 가이드라인>의 골자는 ‘AI로 생성된 영상’이라고 텍스트나 워터마크로 명확하게 표시해야 한다는 것과 AI 생성 영상 사용 전 적절한 검증 과정을 거쳐시청자가 사실관계를 오인하지 않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AI로 생성된 영상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다면 향후 큰 혼란이 올 수도 있고 자칫 영상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홍성철 국내 방송에서는 민감한 부분, 촬영 등에 대해서 모자이크 처리를 너무 많이 하고 있다. 그러면서 언론이 범죄자의 프라이버시를 너무 존중한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선상원 외국 언론과 비교하면 국내 언론은 과하게 모자이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초상권 등 법으로 따지고 들어가서 문제를 제기하면 곤란해지는 상황이 많아서, 방송사 입장에서는 보수적으로 대처하게 된다. 현장에서도 나중에 곤란해지지 말고, 애매하면 모자이크하자는 분위기가 있다.
홍성노 요즘 입사한 기자들의 영상 원본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아예 가리고 찍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어차피 모자이크를 하거나 흐리게 표현할 것이라면서 아예 얼굴이 나오지 않게 찍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본에서조차 이게 누구인지, 뭘 찍었는지 명확하지 않아지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하륭 살인 사건 등의 현장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를 많이 한다. 예전에는 민감한 집회 같은 경우에만 모자이크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집회에도 시위 참가자들을 가리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시위 참가자들도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나온 건데, 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역할을 스스로 깎아먹고 있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한다.
현기택 예전에 뉴질랜드 방송에서 시청 환영 홍보 행사를 촬영하는 것을 본 적 있다. 그들은 인터뷰하는 사람들에게 사전에 서류를 나눠주고, 촬영해도 되는지, 이를 방송해도 되는지를 묻는 사전 동의서를 받더라. 외국에서는 이게 일상이다. 해외 뉴스를 보면 한국처럼 발만 찍어서 나오는 그림은 거의 없다. 그런 걸 아예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다. 한국 언론들도 모자이크보다는 사전에 동의를 받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사회의 다양한 면에 관심 있다면 영상기자 도전하길
홍성철 마지막으로 영상기자를 선택한 동기와 함께 영상기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상원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기업에 취업했는데, 하루하루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되는 삶이 됐다. 그래서 그만두고 다시 영상기자를 준비했다. 한국 사회가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영상기자가 좋은 건 하는 일 자체가 보람을 많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돈벌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영상기자가 하는 일을 좀 살펴보면서 준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홍성노 대학 시절 스포츠 PD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포츠가 지닌 날것의 힘을 좋아했는데, 몇 년 동안 뽑는 데가 없었다. 그래서 비슷한 일을 하는 영상 기자를 선택했다. 15년 정도 영상기자로 일하다 보니, 날것이 주는 힘도 좋지만 그 현장을 선택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의 무게감을 느끼게 됐다. 현장에서 REC 버튼을 누르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무게감을 아는 친구들이 지원하고 후배로 들어오면 좋겠다.
하륭 대학 졸업 후 한 신문사의 뉴미디어팀에 취업했다. 3년 정도 근무했는데 당시 하는 일이 이미 짜여진 구조에서만 콘텐츠를 유통하는 일이라, 직접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직업을 찾게 됐다.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고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활성화되다 보니 누구나 영상을 접하기가 매우 쉬워졌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취재기자가 존재하듯이 누구나 영상을 찍는 시대에도 영상기자는 존재할 것이다. 그 속에서 가치를 발현하는 저널리즘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영상기자가 되면 어떨까 싶다.
현기택 대학 다닐 당시 6mm 카메라가 처음 보급됐는데, 카메라로 뭔가를 찍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재미를 느꼈다. 영상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운 좋게도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다시 같은 상황이 돼도 이 직업을 선택할 것 같다. 그동안 영상기자를 하면서 북한을 비롯, 전 세계의 곳곳에서 다양한 배경으로 촬영했다. 또 대통령, 기업인 등 유명한 사람들은 물론 쪽방촌에 사는 어르신들까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회의 다양한 방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영상 기자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