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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이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그 명성 뒤에는 그늘도 존재한다. ‘혹독한 아이돌 육성 시스템’ 아래 연습생은 ‘학생’으로, ‘노동자’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현지 취재를 통해 들여다본 K-POP의 현실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K-POP은 한국의 대표 산업이 됐습니다. 단순히 산업의 영역을 넘어 세계의 주요 문화로 자리 잡았죠. 특히 BTS와 블랙핑크의 성공은 한국에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K-POP의 성공은 ‘아이돌’만 유명해지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돌’을 배출해 내는 육성 시스템 역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하이브와 JYP 엔터테인먼트 등은 한국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해외에 수출하겠다고 선언하고 미국 진출도 공격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일 K-POP의 ‘핑크빛 전망’이 보도됐습니다. 유럽에서는 한국의 ‘혹독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종종 나왔지만, 한국에서는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돌,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024년 대한민국 노동법 수준에 이들을 맞출 필요가 없었죠. 그렇다고 동등한 투자자도 아니었습니다. 일명 동방신기 사태로 불거진 ‘노예 계약’ 논란, 2009년의 일이지만 여전히 아이돌 세계에서의 계약 문제는 유효합니다. 아이돌들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알고 보니) 스태프 회식비도 우리가 내는 거였다”, “뮤직비디오에 얼마를 썼는지 모른다”라는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죠.
아이돌은 점점 어려지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연습생, 심지어는 초등학생 아이돌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노동은 노동으로 취급되지도, 대등한 투자 관계로 취급되지도 않습니다. K-POP은 산업이었지만, 핵심 노동자이자 자산인 아이돌의 문제는 노동이나 산업 관점이 아닌 연예계 이슈로만 다뤄졌죠.
저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K-POP, 이대로 괜찮을까요?

철저한 사전 취재로 완성한 기획안
“기획 기사의 80%는 기획안이다.”
주니어 기자들이 모인 저널리즘클럽Q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한 선배가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국내 아이돌의 현실을 ‘노동’의 관점으로 취재하고,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수출 현황까지 파악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막연한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아이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내막을 알거나 취재원을 구하기는 어려웠죠. 한국언론진흥재단 기획취재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것도 관건이었습니다.
경제 분야를 주로 취재해 왔던 터라 ‘알던’ 취재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각종 SNS와 온라인을 통해 아이돌 세계의 ‘상식’을 쌓았고, 아이돌 ‘덕질’이 일상인 지인들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구체적으로, 논리 구조가 탄탄한 기획안을 쌓는 게 목표였습니다. 휴일을 활용해 틈틈이 사전 취재를 하고, 기획안을 작성하여 서로 안면이 없는 교수, 평론가에 “기획안을 검토해달라”며 연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난해 2월 한 달간 4부 16부작의 기획안이 완성됐습니다.
아이돌 공장의 글로벌화, 그리고 해외 취재
본격적으로 취재에 착수한 건 4월부터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기획취재 지원사업에 선정된 후부터였죠. 사업은 2024년 9월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일반 취재와 달리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요구하는 서류 형식에 맞게 작업해야 한다는 점도 난관이었습니다.
기획안의 논리 구조를 현실화하는 것도 과제였습니다. 취재를 거부하는 주요 반론은 “우리나라에서는 운동선수나 음악 전공자들도 연습생과 똑같이 연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관계자를 만나고 알게 된 사실은, 연습생은 ‘학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들이 받는 훈련과 연습은 학교에서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획사에서 사업을 위해 ‘상품화’하는 거죠. 기획사에는 교육자가 없었습니다. 즉, 연습생은 교육받는 학생도, 일을 하는 노동자도 아닌 겁니다.
취재를 통해 하나하나 기획안 내용을 채우며 논리를 완성해 갔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전·현직 아이돌 취재원 확보, △해외 취재입니다.
업계 특유의 폐쇄성 덕에 취재원을 확보하는 일은 물론, 이들의 이야기를 ‘실명’으로 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예전에 OO 기자도 취재하려고 했는데 못했다”, “아이돌 취재원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등은 실제로 K-POP 아이돌 육성 시스템 문제를 취재한다고 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막막했습니다. 원래 알던 취재원도 없었고, 요령도 없었습니다. SNS를 통해 무작정 연락하거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또 그의 아는 사람을 통해 하나둘씩 취재원을 늘려갔습니다. 업계 사람을 ‘아는 것’도 어려웠지만, 저희 취지에 공감하는 업계 사람을 만나는 건 더 어려웠습니다. 두 달간은 사람을 구하는 작업에만 몰두한 것 같습니다. 한 명을 만나면, 친밀감을 최대한 높였고, 그를 통해 또 다른 취재원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또 다른 난관은 해외 취재였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역을, 심지어는 기관 방문이 아닌 ‘현지 취재원’을 한국에서 확보한 후 출국해야 한다는 점이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취재로서 해외에 방문하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기획취재의 가장 우선순위는 ‘해외 취재’로 두었습니다. ‘사업’이다 보니 해외 취재 일정과 취재원 등 모든 계획이 미리 정해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 영국, 일본에 가기로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현지 수출 현황을, 영국과 일본에서는 ‘밴드’ 문화를 취재하고자 했습니다.
처음 2개월 동안은 아무런 진전이 없었습니다. 100여 명에게 섭외 메일을 보내면 1명 정도 회신이 왔습니다. 실마리가 잡힌 건 한 취재원의 말 때문입니다. “요즘은 K-POP 작곡을 대부분 스웨덴 작곡가가 한다”라는 한마디에, 노선을 영국 대신 스웨덴으로 틀었습니다. 실제로 K-POP에서 스웨덴 작곡가의 비중이 늘고 있었습니다. 출국 일주일 전 준비를 시작해 일주일 만에 모든 계획을 세웠습니다. 운명처럼 인터뷰이 확보, 일정, 항공편, 숙소, 통역 등 모든 준비가 완료됐습니다. 언론사 등록 기간이 지난 스웨덴 록 페스티벌에서 예외적으로 등록을 해주고, 주스웨덴 한국문화원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현지인들과의 연결을 도와준 덕이었습니다.
한국 언론사로는 최초로, 스톡홀름에서 차로 6시간 이상 떨어진 스웨덴 록 페스티벌 현장을 취재했고, 현지 작곡가와 음반 업계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6박 9일 일정이었는데, 한 시간 단위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귀국 직전까지 취재 일정이 있었습니다. 시차 적응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루에 인터뷰만 4번을 하는 등 아침부터 새벽까지 현장에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간다면 최소 앞뒤로 하루 정도는 여유를 둘 것 같습니다.
미국 취재는 범위가 넓었지만, 나름 요령이 생겼습니다. 하루에 한두 건 일정을 소화하자는 생각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시차가 있다 보니 현지 사람들과 소통도 새벽에 했습니다. 밤늦게 메일을 주고받거나 새벽 5시에 일어나 연락했습니다. 미국 LA와 뉴욕을 9박 12일로 갔습니다. 당초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몰려있는 LA에서만 취재를 계획했지만, 섭외 과정에서 뉴욕이 추가됐습니다.
해외 취재를 하면서 얻은 팁은 취재원을 섭외한 후 일정을 계획하는 게 아니라 먼저 대략의 일정과 시기를 정한 후 그에 맞게 취재원을 섭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해외 취재 일정은 출국 직전까지, 출국 이후에도 계속 조율했습니다. 현지에서 섭외된 취재원도 있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가는 터라 치안도 걱정됐습니다. LA에서는 호텔 인근에서 총을 맞아 사망한 사람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현지인들의 조언을 듣고 뉴욕에서는 대중교통을, LA에서는 우버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일본 취재는 홈페이지와 명함 등에 ‘메일 주소’를 명시하지 않는 일본의 관행으로 인해 난관을 겪었습니다. 대부분 건물 주소를 명시해 놓고, 연락을 위해선 편지를 보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섭외를 위해 일본어로 작성한 팩스를 보내거나 현지에 사는 지인에게 “대신 전화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운 좋게도 한 에이전시 관계자와 연락이 닿았고, 이 관계자를 통해 밴드들을 섭외했습니다.

효과적 스토리텔링 위한 ‘인터랙티브’ 시도
일반 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1)를 동시에 제작한 건 순전히 저의 욕심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시도해 볼 수 없었던 인터랙티브 기사를 이 기회에 꼭 제작해 보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습니다. 인터랙티브 기사의 장점을 포기할 수도, 일반 기사의 장점을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 다 하기로 했습니다. 인터랙티브 제작 역시 기획안 단계에서부터 구상했습니다.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하면서 제작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세부 데이터는 취재 전이었지만, 어디에 어떤 데이터를 넣을지와 인터랙티브 기사를 어떤 흐름으로 끌고 갈지는 기획 초기 단계에 정했습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 등과는 인터랙티브 형식과 데이터 삽입 개수를 먼저 논의했습니다.
핵심은 일반 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와의 차별성이었습니다. 일반 기사 연재는 기획안의 흐름대로 가되, 인터랙티브 기사는 모든 내용을 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 2부 내용을 중점으로 ‘스토리텔링’이 극대화될 수 있는 부분을 뽑았습니다. 일반 기사보다 구체화하고, ‘연습생의 하루’ 등 새로운 데이터도 삽입했습니다.
국내 기사뿐 아니라 인터랙티브형 기사의 시초였던 미국의 사례도 여럿 참고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구상안과 개발의 현실화를 조율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예산에 맞춰 단순하게 개발하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지도에 데이터가 표시되고, 이를 클릭해서 보는 방식 등의 인터랙티브는 생각보다 보기 불편했습니다. 인터랙티브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보기 쉬운 스크롤형으로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웹툰처럼 스토리텔링한 것도 인터랙티브 장점의 극대화를 고민한 결과입니다. 그간 국내 언론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삽화는 디자이너와 조율했습니다. 총 몇 장, 각각 어떤 느낌의 그림을 원하는지, 또 이 삽화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지 텍스트로 시안을 보냈고, 디자이너가 초안을 공유하며 완성해 나갔습니다. 개발자는 이를 웹페이지에 적용했습니다. 디자인과 개발은 별개의 영역이지만, ‘인터랙티브’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상 제작자, 디자이너, 개발자, 기자가 인터랙티브 모든 제작 과정을 공유해 작업했습니다.

당초 기획 단계에서는 ‘영어’ 버전 사이트도 구상했지만, 구축 단계에서 예산 문제로 포기했습니다. 대신 개발 단계에서 사이트 영문 번역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2024년은 단연 한국 K-POP 산업의 큰 변동이 있던 해입니다. ‘기획’ 취재는 끝났지만, 이 기획을 통해 축적된 정보들을 앞으로 다른 분들이 계속 발전시켜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아이돌과 연습생, 또 이들이 되길 원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