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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뷰]보고서 <미투 시대의 저널리즘>
미디어 리뷰 | 등록일 : 2024-12-27

국경없는기자회는 지난해 112개 국 국경없는기자회 특파원과 기자 113명이 참여한 심층 설문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서 <미투 시대의 저널리즘>을 발표했다. 2017년 세계 각국에서 펼쳐진 ‘미투 운동’ 이후, 언론계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고서 내용을 통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전 세계 미투 운동(#MeToo)을 촉발한 뉴욕타임스의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 성범죄 탐사보도가 나온 지 7년. 국제 언론 자유 감시단체 국경없는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는 이 사건이 언론 보도와 뉴스룸에 끼친 영향을 조사한 보고서 <미투 시대의 저널리즘(Journalism In the #MeToo Era)>을 2024년 10월 발표했다. 젠더 전문기자 로렌 데이카드(Laurène Daycard)가 저자로 참여한 이 보고서는 112개 국 국경없는기자회 특파원과 기자 113명이 참여한 심층 설문조사 내용이 기반이 됐다.

 

보고서는 미투를 계기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다룬 보도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고, 젠더에 초점을 둔 새로운 미디어가 설립되고 뉴스룸 내 정책이 개정됐으며 새로운 언론인 네트워크가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성의 권리를 취재·보도하는 일은 여전히 위험하다고 강조하며, 언론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와 경찰 및 사법 권력, 뉴스룸 등을 향한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이번 보고서를 총괄한 국경없는기자회 앤 보캉데(Anne Bocandé) 편집 디렉터는 “미투 운동이 언론 전반에 끼친 영향을 전 세계 규모로 다양한 문화권을 아우르며 다룬 것은 전례가 없다”면서 “특히 언론인이라는 직업적 측면과 뉴스룸의 역학, 젠더 문제 보도 방식을 조명한 것은 다른 미투 자료와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번 보고서는 과거 단체의 보고서 <여성의 권리: 금지된 조사>(2018)와 <성차별에 직면한 저널리즘>(2021)의 연장선상에 있다.


터져 나온 미투의 목소리들…  ‘페미니스트의 봄’

 

2017년 미국에서 시작된 ‘#MeToo’ 슬로건 이후 여성의 권리와 젠더 이슈, 젠더 기반의 폭력 등에 대한 보도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해당 설문 문항에 무려 80%가 넘는 응답자가 긍정했는데, 한국의 경우 서지현 전 검사의 검찰 내 성비위 폭로가 그 계기가 됐다고 보고서는 적고 있다.

 

이들 보도는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슬로건을 타고 더욱 널리 퍼졌다. 이 중에는 한국의 ‘미투’처럼 영문을 그대로 따른 것도 있지만, 문화적 맥락에 따라 각색되기도 했다. 가령, 러시아의 #яНеБоюсьСказать(난 말하기 두렵지 않다), 모로코의 #Masaktach(난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나, 예멘의 ةياصو نودب يزاوج) 후견인 없는 여권, 남성의 허락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운동), 태국의 #DontTellMeHowToDress(내게 어떻게 입으라고 말하지 마라)처럼 보다 구체적인 요구를 담은 경우도 있었다. 이외에도 보고서는 전 세계 최소 40개 이상의 슬로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젠더, 그리고 새롭게 디자인 된 데스크

 

젠더 특화 매체는 2017년 이전에도 있었다. 벨기에의 격월간지 악셀(Axelle, 1998년 창간)과 브라질의 아즈미나(AzMina, 2015년 창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미투 운동은 이들 매체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매체들의 창간을 견인했다. 동시에 여성의 권리와 젠더 이슈에 대한 탐사보도도 본격화했다.

 

2021년 크라우드펀딩으로 창간한 라데페랑트(La Déferlante)가 대표적이다. 언론인, 연구원, 활동가 아홉 명이 만드는 이 계간지는 불어권에서 발행 부수 2만을 자랑한다. 이들은 과거 레거시 미디어가 종종 간과한 이슈들, 이를테면 가정 폭력, 트랜스 포비아, 성적 지향, 새로운 가족 모델 등을 다룬다. 

 

이듬해 시작된 소말리아의 빌란(Bilan Media)도 고무적인 사례다. 소말리아어로 ‘빛’을 의미하는 빌란은 소말리아 최초이자 유일한 독립 여성 언론으로, 여성의 사회적 제약이 큰 환경에서 “여성을 대변하고, 학대 피해를 밝히고, 여성이 일하기에 안전한 공간을 제공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간 이 매체는 젊은 여성들의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일종) 중독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고아원에서 발생한 성범죄, HIV 감염자의 생활환경 등을 취재 보도 했는데, 뉴스룸의 한 기자는 국경없는기자회와의 인터뷰에서 “빌란이 없었다면 소말리아에 이런 종류의 저널리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주류 언론들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미투 운동은 매체들이 전반적으로 여성 인권 및 젠더 기반의 폭력을 보도하도록 독려했다. 일부는 별도 섹션을 마련하거나 전문 에디터를 임명하기도 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띠기도 했다. 미투 운동의 시초가 된 뉴욕타임스는 2017년 ‘젠더 에디터’라는 직책을 처음 만들고, 이 분야 베테랑 기자인 제시카 베넷을 임명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사명에 대해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페미니즘에 대해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남성성과 성적 지향, 성적 유동성, 인종과 계급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기사의 톤과 시각적인 표현, 누가 기사를 쓰고, 무엇을 인용해야 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에 이어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is, 2018년), 케냐 일간지 데일리네이션(Daily Nation, 2019년), 프랑스의 미디어파트(Mediapart, 2020년), 영국 비비씨(BBC, 2022년) 등 각국 언론들이 젠더 편집자를 임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113명 중 27%가 자국에 젠더 에디터라는 직책자를 최소 한 명 이상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여성과 소수자 권리에 대한 미디어 보도와 표현에서 구조적 변화를 야기했다. 또 젠더 기반의 폭력처럼 이전에는 뉴스에 별로 등장하지 않던 주제에 대한 심층 취재를 장려하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2017년 AFP는 편집국 자체 및 콘텐츠에서 여성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내부 조사를 실시해 기존 관행을 바꿔 나갔다. 남성 전문가만 인터뷰하지 않도록 취재원을 다양화하고, 여성의 외모를 묘사하거나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표현을 삼가도록 지침을 내렸다. 또 학계와 협력해 서면 콘텐츠에서 젠더 표현을 정량적으로 집계하는 도구를 개발했다.

 

브라질 일간지 폴랴드상파울루(Folha de S.Paulo)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2019년 젠더 에디터로 임명된 플라비아 리마(Flavia Lima)는 구글과 함께 ‘그들의 목소리(Voz Delas)’라는 앱을 만들었다. 이 앱은 기사의 여성 취재원을 정량적으로 계산하고, 전문가 프로필을 제안한다. 플라비아는 “각종 이슈를 젠더 관점으로 다루는 것은 대중의 이익에 부합하며, 독자들을 섬기는 데 매우 중요하다”면서 “현재 우리 구독자의 50%가 여성인 것은 그 노력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영국의 언론 감독기구인 독립언론윤리위원회(IPSO) 등 미디어 기관과 각종 매체들이 헌장과 윤리행동강령에 젠더 관련 항목을 추가, 재편했다. 언론인들은 국경을 초월한 젠더 폭력 탐사보도를 활발히 진행했고, 더 나은 젠더 보도 환경을 조성하고자 연대하는 네트워크들이 생겨났다.

 

여전한 온라인 괴롭힘과 살해 위협

 

이처럼 미투 운동이 전 세계 미디어에 이른바 ‘페미니스트의 봄’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권리를 옹호하는 취재·보도가 전보다 수월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설문 응답자 네 명 중 한 명이 ‘언론인이 여성의 권리나 젠더 이슈, 젠더 기반 폭력을 취재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답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페미니즘 이슈를 다룬 대가로 언론인들이 받는 위협의 층위는 다양하다. 지역을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인 위협은 ‘온라인 폭력’이다. 설문에서도 응답자 60%가 이런 사례를 한 건 이상 알고 있다고 답했는데, 비슷하게 국제언론인센터(ICFJ)도 여성 언론인 네 명 중 세 명이 온라인 폭력을 경험했다는 통계를 내놨다.

 

실례로 칠레 신문 엘시우다다노(El Ciudadano)의 호세파 바라자 디아즈(Josefa Barraza Díaz) 편집장은 2023년 축제 파티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경찰 집단의 존재를 폭로한 뒤 소셜미디어에서 괴롭힘을 당해왔다. 나이지리아 고등교육기관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실태를 고발, 에미상 후보까지 오른 다큐멘터리 <섹스 포 그레이드(Sex for grades)>의 리포터 키키 모르디(Kiki Mordi)는 전화번호와 주소, 가족관계와 같은 개인정보가 온라인에 유출돼 수차례 이사해야 했다고 호소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특정 형태의 사이버 폭력도 있다. 가령,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프랑스 기자 살로메 사케(Salomé Saqué)는 포르노 딥페이크의 희생양이 됐다.

 

온라인 폭력은 종종 오프라인 공격으로 이어진다. 여권을 제한한다며 카스트제도를 비판해 온 인도의 가우리 란케시(Gauri Lankesh) 기자는 2017년 자택 앞에서 살해 당했다. 앞서 그는 힌두 극단주의자에게 온라인으로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 LGBTQI(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던 북아일랜드 갈등 전문기자 라이라 맥키(Lyra McKee)도 시위 현장에서 북아일랜드 급진 민족주의 무장 조직의 

총에 맞아 숨졌다.

 

 

국경없는기자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보고서 <미투 시대의 저널리즘> ⒸRSF

 

 

국제언론인센터 조사에서 여성 언론인 20%가 온라인 폭력에 이어 오프라인 공격을 당했다고 답했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살해당한 언론인 486명 중 40명이 여성이다. 이 중 10명은 여성 인권과 젠더 폭력을 취재한 이력이 있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여성 언론인의 신변은 특히 위태롭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집권 이후 여성 언론인 대다수가 직업을 잃었고, 일부는 망명길에 올랐다. 이란에서는 2022년 히잡 시위 발화점이 된 마사 아미니의 죽음과 ‘여성, 생명, 자유’라는 이름의 페미니즘 운동을 취재한 언론인들이 투옥되거나 투옥 위협을 받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중국 미투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소피아 황쉐친(黃雪琴) 기자에게 헌사를 표한다. 그는 뉴스룸 내 성폭력을 폭로한 뒤 지난해 6월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현재 감옥에서 학대와 고문을 당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여성 언론인을 가장 많이 구금하고 있다. 동아시아지부 알렉산드라 비엘라코브스카(Aleksandra Bielakowska) 어드보카시 매니저는 “중국, 미얀마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언론 현장의 미흡한 여권 보호로 체계적인 (권리) 침해와 젠더 폭력, 직장에서의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쟁터, 저널리즘이 직면한 책임

 

이러한 상황에도 언론인들이 보호받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온라인 폭력은 익명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사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에 많은 언론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언론 현장을 떠나거나, 보도 과정에서 자기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고 단체는 우려했다.

 

“논평하는 이들은 미투 시대가 끝났는지, 아니면 이 언론의 자유가 계속될지 마음대로 논쟁할지 모르나, 저널리즘에는 미투 이전과 이후가 존재합니다. 저널리즘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티보 브뤼탱(Thibaut Bruttin) 사무총장은 보고서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여성 언론인의 지위와 젠더 기반 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젠더 영역의 진보는 저널리즘의 과제다. 국경없는기자회는 관련 보도가 지속·확대되고, 이를 취재하는 언론인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와 경찰 및 사법당국, 미디어 플랫폼, 뉴스룸에 16가지 권고안을 내놨다. 여기에는 젠더 전문기자들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높이고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다소 원론적인 내용부터, 온라인 폭력의 특정 형태를 형사법에 도입(정부), 언론인에 대한 사이버 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법적 기관의 가처분 명령에 즉시 대응하라(플랫폼)는 구체적인 제안도 있다. 

 

앤 보캉데 편집 디렉터는 “이 보고서가 언론인들이 (여성의 권리와 젠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면서 “언론 현장에서 인식과 행동을 증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보고서 발행에 그치지 않고, 권고사항 이행을 모니터링하고 정부와 사법기관, 미디어 플랫폼 등과 협력해 구체적 실행을 도모하고 있다. 또 정책 변화 선도 외에도 여성 언론인을 위한 안전 교육과 워크숍 등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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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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