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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뷰]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
미디어 리뷰 | 등록일 : 2024-12-27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 퓰리처상을 포함 세계 영화제 33관왕을 차지한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포위된 우크라이나의 항구 도시 마리우폴, 폭격이 끊이지 않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취재진이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편집자 주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전쟁 영화이자 기자의 역할을 질문하는 언론 영화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포위된 우크라이나 도시 마리우폴(Mariupol)에 유일하게 남은 AP 취재팀. 취재팀의 카메라에는 폭격과 화염 속에 사라질 뻔했던 진실의 이미지들이 있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18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잃은 부모의 눈물과 황망한 뒷모습, 평화롭게 축구를 하다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집에서 TV를 보다가 무참히 짓밟힌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얼굴이 취재팀의 카메라에 담겼다.

 

마리우폴이 전쟁의 주요 격전지가 된 이유는 간명하다. 러시아는 8년 전에도 이곳을 점령하려고 했다. 거대한 항구 도시이자 산업 도시인 마리우폴은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로 가는 유일한 육로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마리우폴을 반드시 점령해야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마리우폴 시민들은 자신들의 평온한 일상을 러시아군에 오롯이 내주어야 했다.


전쟁은 폭발이 아니라 침묵으로 시작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러시아 탱크들은 민간인들이 모여 있는 병원을 포위한다. 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군사 기지가 아닌 병원을 포위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전쟁 상황이라도 민간인의 생명을, 더군다나 그 생명을 지키는 병원을 포위하거나 폭격해서는 안 된다. 영화는 첫 장면만으로 러시아군의 만행을 정조준하고 있다.

 

영화의 내레이터인 AP 통신 소속 영상기자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Mstyslav Chernov)는 “전쟁은 폭발이 아니라 침묵으로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침묵하고 있는 도시는 러시아군의 폭격과 화염에 소란스러워진다. 침묵에서 폭발로 넘어가는 시간은 매우 순간적이다. 평화와 전쟁 사이의 간격도 이와 비슷하다. 침묵과 폭발, 평화와 전쟁 사이의 간격을 생각하면 이내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우리에게 가해진 위협과 지금보다 강하게 들이닥칠 재앙을 막기 위한 정당방위”라고 말한다. 그가 설명하는 정당방위 조치로 인해 왜 무고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희생돼야 하는가. 영화는 바로 이 물음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다.

 

AP 취재팀은 러시아와 가장 인접한 지역에 있는 레프트 뱅크(Left-Bank)로 이동해 한 여성을 만난다. 그 여성은 “아들은 직장에 있고, 저 혼자예요.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요? 어디로 숨어야만 하나요?”라며 취재팀을 향해 울부짖는다. 취재팀은 이 여성을 계속 촬영해야 할지, 멈추고 달래야 할지 망설인다. 취재팀의 고민에 카메라도 따라 흔들린다. 체르노우는 “집에 가만히 계세요. 민간인은 쏘지 않을 거예요”라며 여성을 달랜다. 조금 뒤 이 여성의 집은 러시아군에 의해 폭격당한다. 며칠 뒤 임시 대피소에서 취재팀을 다시 만난 여성이 질문한다.

 

 

AP 취재팀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포위된 우크라이나 도시 마리우폴에 유일하게 남아 전쟁의 참상을 기록했다. <출처 -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저보고 집에 가라고 했었죠? 민간인은 안 쏠 거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집에 갔는데 폭격 당했어요.”

 

러시아군의 폭격에 집과 재산을 모두 잃은 우크라이나인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취재팀에게 “이 상황에 대체 뭘 찍느냐?”, “따라오지 말라”, “꺼져 이 기레기야” 등의 부정적 반응을 쏟아낸다. 하지만 취재팀은 끝까지 시민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름을 묻는다. 취재팀이 카메라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리우폴에 유일하게 남은 언론으로서 이 참상을 기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참상을 기록해야만 하는 것일까.

 

기자(記者)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기록이란 미래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는 행위를 말한다. 이 건조한 사전적 정의를 풀어서 설명하면 기자는 참혹하고,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현재를 낱낱이 고발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기록한다. 기록함으로써 과거가 현재를 구원하고, 현재가 미래를 구원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저널리즘적 가치이자 언론인의 소명이다. 그래서 취재팀은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불려도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한다.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마리우폴 시민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임시 대피소 격인 아파트 지하실에 숨는다. 화가 난 표정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아이에게 체르노우가 질문한다. “왜 화가 났어?” 그러자 아이가 대답한다.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전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오늘 폭격 소리에 잠에서 깼어요. 전쟁이 시작된 거였죠”라며 대답을 마친 아이는 이내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체르노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카메라는 아이를 말없이 바라본다.

 

또 다른 주민들은 집에서 나와 헬스클럽에 몸을 숨겼다. 주민들은 헬스클럽에 있는 전신 거울에 테이프를 붙인다. 폭격을 당했을 때 유리 파편이 튀는 걸 줄이기 위해서다. 인산인해의 헬스클럽에서 카메라는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간다. 아직 얼마 살지도 못한 아이를 생각하며 엄마는 눈물을 흘리지만, 엄마 품에 안긴 아이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젖병을 빨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든다.

 

주민들만 두려움에 떠는 것은 아니다. 극한의 긴장 상태에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기자들에게 “찍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취재팀은 “부탁드립니다. 이건 역사적 전쟁이에요. 이걸 기록하지 않으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

 

AP 취재팀이 죽어가는 사람과 부서지는 도시의 풍경을 기록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앞선 언급처럼 취재팀은 일부 우크라이나 시민과 군인들로부터 항의를 받는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과 군인들은 취재팀에게 읍소한다. 이 같은 참상을 잘 담아서 전 세계에 알려 달라고. 전쟁의 비극을 세상에 알려 꼭 전쟁을 막아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한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은 취재팀이 러시아군을 피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엄호하고 또 엄호한다. 우크라이나 특별 기동대의 도움을 받은 취재팀은 점령지에서 100km를 달려 러시아 검문소 15개를 통과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도움으로 취재팀은 각종 카메라와 파일 기록들을 지켰고, 러시아의 전쟁범죄 은폐를 세상에 폭로했다.

 

슬픔과 애도의 시간마저 상실된 인간과 참혹한 도시의 이미지. 이 모든 상황이 취재팀의 카메라에 담겨 있다. 이들이 찍은 영상은 전 세계 뉴스로 퍼져나갔다. “마리우폴에 아기 시체들이 묻힌 참호가 있다. AP 기자들이 취재했다”라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바실리 네벤자(Vasily Nevenza)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가짜뉴스가 많다”라며 답변을 거부한다. 

 

러시아 수뇌부의 궤변에 마리우폴 외곽 아기 시체들이 묻힌 참호의 이미지는 거짓의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진실을 이야기해도, 사실을 보여주어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뻔뻔스러운 얼굴 또한 취재팀의 카메라에 담겨 있다.


전쟁이 얼마나 짧은 시간에 수많은 것을 파괴하는지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취재팀은 가짜뉴스를 반박할 수 있는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 전쟁터에 남았다. 물러서지 않고 최전선에서 전쟁의 참상을 취재했다. 무차별 폭격이 이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전 세계가 영원히 몰랐을 진실을 보도한 취재팀의 위태롭고 절박했던 20일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취재팀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23 퓰리처상 공공보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 세계 수많은 언론은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을 “전쟁의 참상을 객관적으로 그려내며 올바른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영화”, “전쟁이 얼마나 짧은 시간에 수많은 것을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영화”, “러시아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직시하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영화”로 평가했다.

 

체르노우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모든 영광을 러시아가 우리 국민 수만 명을 죽이지 않은 세상과 갇혀 있는 인질들이 석방되고, 고국과 시민을 지키다 감옥에 갇힌 군인들이 풀려나는 세상과 바꾸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역사를 바르게 기록하고, 진실이 널리 퍼지게 하며, 마리우폴의 시민들과 목숨을 잃은 자들이 잊히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20일의 시간 동안 취재팀이 손에 들었던 것은 단순한 카메라가 아니다. 평화로운 일상. 취재팀은 카메라를 통해 그런 하루하루의 중요성을 말하고싶었다. <출처 -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카메라를 잡은 사람과 앵글 속 사람 사이의 부단한 길항작용

 

모든 전쟁 영화는 반전(反戰)영화다. 형식적으로 결함이 있어도 내용적으로는 반전과 평화를 외친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영화에 날카로운 비평적 칼날을 들이대기가 힘들다. 특히 전쟁 상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영화들이 그렇다. 이런 영화들을 볼 때마다 일종의 교착과 혼란의 상태에 빠진다. 범박하게 말하면, 그저 적나라하고 참담한 전쟁 이미지들의 연쇄와 짜깁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쟁 영화뿐만이 아니다. 국가의 폭력이 개인의 일상을 잔혹하게 말살하는 내용을 담은 모든 영화가 공통적으로 빠지는 고민이 바로 ‘재현의 윤리’이다. 전쟁과 폭력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아니 재현해도 되는 것인가. 이 치열한 고민의 자장 안에서 어떤 영화들은 그저 전쟁이나 폭력의 참상을 전시하거나 나열하는 것이 아닌, 전쟁과 폭력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 끔찍한 살상의 현실을 견디고 버티는 이들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우리는 영화에 대한 엄정한 작품성을 논하기 전에 왜 이런 영화가 지금 이 시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야 한다.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사회 변혁에 실천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참여문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 역시 이와 맥이 닿아있다. 전쟁 영화가 선사하는 살육의 스펙터클과 유혈이 낭자하는 핏빛의 이미지는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관객들에게 어떤 말을 걸어오는가. 죽고 싶지 않다고, 전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의 표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 것인가.

 

20일의 시간 동안 취재팀이 손에 들었던 것은 단순한 카메라가 아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들었던 것은, 아니 지켰던 것은 전쟁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희망의 이미지였다. 혹은 그저 그런 하루하루다.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평화로운 일상으로서의 하루하루. 취재팀은 카메라를 통해 그런 하루하루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출처 -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최근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인간의 잔혹함과 존엄성이 극도로 평행하게 존재했던 시대와 장소를 ‘광주’라고 부를 때, 그 이름은 더는 한 도시에만 고유한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일반 명사가 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이 영화에서 마주한 마리우폴의 풍경 역시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일반 명사가 돼야 한다. 이 말은 누군가의 특수한 경험이 보편적인 경험으로 환원돼야 함을 뜻한다. 그래야 우리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연대하며, 치유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저 멀리 떨어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우크라이나 어느 도시에 사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우리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을 읽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P 취재팀이 들었던 카메라 안에 우크라이나인들의 눈물이 있고, 카메라 밖에는 취재팀의 땀방울이 있다. 카메라를 잡은 사람과 앵글 안에 있는 사람 사이의 부단한 길항작용.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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