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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예능 PD들이 지상파 방송에서 독립 제작사나 OTT로 이동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tvN 드라마 <정년이>의 정지인 PD 또한 또 하나의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지상파 방송은 왜 PD들을 떠나보내고 있는지, 이 현상이 시사하는 바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tvN의 주말 드라마 <정년이>는 명실상부한 2024년 하반기 화제작이다.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 국극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통해 한국전쟁 이후의 시대 배경을 새롭게 조명해 관심을 끌었다. 드라마 포맷과 전통극이 혼합된 독특한 구성으로, 국극단의 연습 과정과 인물들의 갈등, 성장을 세밀하게 그려내 시청자들의 이해도와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이다. 주인공 정년이 역할을 맡은 배우 김태리와 신예은, 정은채의 열연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요소였다. 특히, 정지인 PD의 세심한 연출력은 작품의 핵심적인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정 PD는 생소한 장르인 여성 국극 촬영 장면에 공을 들이며, 여성의 성장 서사를 탁월하게 그려냈다.1)
그러나 정지인 PD가 이끈 <정년이>의 성공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애초 <정년이>는 MBC 소속이던 정지인 PD가 기획·개발해 MBC에서 방영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작비 문제로 tvN 편성이 확정됐고, 정 PD는 MBC를 떠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지인 PD와 MBC의 갈등이 불거졌다. 정지인 PD는 “작품을 위해 (MBC를) 퇴사했다”고 말을 아꼈다.2)
정지인 PD의 이적은 단순히 개인의 커리어 이동을 넘어, 지상파 방송의 시스템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 사실, PD들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독립 제작사나 OTT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정지인 PD 이적으로 기존의 방송사 내부에서 창작자들이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됐다. <정년이>의 성공으로 지상파 방송의 위기를 더욱 실감하게 된 것이다.
정지인 PD의 이적과 <정년이>의 편성 변경은 단순히 드라마 한 편의 제작 과정을 넘어, 한국 방송 산업의 전반적인 변화와 직결된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여전히 폐쇄적 구조와 경직된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연출자들에게 유연함과 자율을 보장하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더 많은 인재 유출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 PD 사례는 지상파 방송의 구조적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며,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생존 전략을 모색할 필요성을 강하게 환기한다.
지상파 방송을 떠나는 PD들, 그 이유와 구조적 배경은?
정지인 PD 사례가 부각되긴 했지만, PD들의 활발한 이적은 더 이상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지상파 PD들의 이적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바늘구멍과 같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채 시험에 합격해 방송사에 입사한 이들은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히트작을 만들더라도 PD 개인의 브랜드 파워가 커지는 경우보다는 회사의 공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다플랫폼, 다채널 시대로 들어서면서 방송사의 간판보다는 콘텐츠 자체가 중요해지고, 연출자의 영향력이 커졌다. 그러면서 스타 PD가 등장하기 시작했다.3)
10여 년 전부터는 종합편성채널, 드라마·예능 전문 채널이 등장하면서 개인 브랜드 파워가 생긴 지상파 방송사의 스타 PD들이 거액의 연봉을 받고 이적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대표적인 이들이 KBS 예능 흥행을 이끌었던 나영석 PD와 신원호 PD다. 이들은 <1박 2일>, <남자의 자격> 등의 성공을 바탕으로 CJ E&M으로 옮겨 화제가 됐다. 드라마 PD 중에는 <직장의 신>, <태양의 후예>의 함영훈 CP가 KBS에서 JTBC로 옮긴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이 지상파 방송사 PD들의 이탈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OTT나 유튜브 등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독립 제작사를 직접 설립하는 PD들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이가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김태호 PD다.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 환경이 조성되면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연출자들이 과감히 조직의 틀에서 나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4)
가장 큰 문제는 지상파 방송의 경직된 창작 환경과 조직 문화다. 수직적이고 연공서열 중심의 문화는 창작자들의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와 함께 보상 체계 역시 연출자들의 공헌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정지인 PD를 비롯한 다수의 이적은 이러한 문제가 누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기획, 제작, 편성이 상하 구조로 이뤄진 체계는 PD들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어렵게 만든다.5)

결과적으로 PD들은 안전한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으며, 새로운 시도는 제한된다. 연출자들이 창의적 환경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더 나은 창작 환경과 자율성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밖에 없다.
사실, OTT와 독립 제작사가 제공하는 창작의 자유와 보상은 지상파 방송이 따라가기 어려운 장점이다. OTT 플랫폼은 콘텐츠 중심의 산업 구조를 지향하며 창작자에게 자율성과 창의적 실험을 허용한다. 이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의 틀에 얽매여 있는 것과 대비된다. 콘텐츠 중심의 산업 패러다임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이 창작자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결국, 지상파 방송이 PD들을 잃는 이유는 내부적으로는 경직된 조직 구조와 낮은 보상, 외부적으로는 새로운 플랫폼이 창작 환경에서 더 나은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연출자들의 유출은 지상파 방송사의 구조적 한계를 극명히 드러내는 사례다. 콘텐츠가 산업의 중심이 되는 시대에 지상파 방송사는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며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상파 방송사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탈 현상은 더 심화될 것이다.
인재 유출이 암시하는 지상파 생존의 갈림길
지상파 방송사들은 한때 한국 미디어 산업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제작 인력 유출이 잇따르고, 시청자와 광고주의 관심도 점차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쇠퇴의 기로에 서게 됐다. 앞서 살펴봤지만, 정지인 PD의 사례처럼 유능한 연출자들이 떠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경직된 제작 환경, 낮은 보상 체계, 그리고 OTT 및 독립 제작사 등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PD들은 더 이상 지상파 방송사를 최적의 공간으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인재 유출을 넘어, 지상파 방송사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창작 환경의 개선은 지상파 방송사의 생존을 위한 첫걸음이다. 현재의 제작 시스템은 기획과 편성 과정이 지나치게 수직적 구조를 띠고 있어 PD와 작가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마음껏 실현하기 어렵다. 이러한 경직성은 결과적으로 안전한 선택만을 강요하게 되며, 대중에게 신선함을 제공하지 못한다. 제작자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과 유연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지상파 방송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변화이다.
또한, 조직 문화의 개혁이 필요하다. 현재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 체계와 폐쇄적인 의사소통 구조는 창작자들의 동기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흉이다. 공정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고, 창작자들이 자신의 공헌을 인정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수평적 소통이 가능한 조직 문화를 통해 창작자들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창작자를 붙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상파 방송사가 다시금 매력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콘텐츠 전략의 전환도 필수적이다. OTT 플랫폼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대규모 투자와 파격적인 실험을 감행하며 성공을 거두는 동안, 지상파 방송사는 여전히 전통적인 광고 중심의 수익 구조에 머물러 있다. 지상파는 OTT와의 직접적인 경쟁 대신 차별화된 콘텐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성과 공공성을 활용해 OTT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또한, 더욱 적극적인 투자와 기획을 통해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
지상파 방송이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작 환경의 개선, 조직 문화 개혁, 그리고 콘텐츠 전략의 전환은 모두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지상파 방송사가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창작자와 시청자 모두를 잃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상파 방송은 여전히 중요한 미디어 플랫폼으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성을 벗어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창작자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지상파 방송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정지인 PD 사례를 통해 지상파 방송은 다시 한번 혁신의 필요성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1) 박수선, <‘정년이’ 정지인 PD “여성 성장 서사, 10대 시절 떠올리며 촬영”>, PD저널, 2024.12.2,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0498
2) 안은재, <‘옷소매’ 정지인 PD, MBC 떠난다 “오늘 사직서 수리”>, 뉴스1, 2023.10.13, https://www.news1.kr/entertain/broadcast-tv/5197949
3) 김민지, <방송국까지 떠나는 PD들…인력 대거 이탈 이유는 [N초점]>, 뉴스1, 2022.4.23, https://www.news1.kr/entertain/broadcast-tv/4657278
4) 강애란, <예능PD 대이동…CJ ENM 줄퇴사, JTBC는 영입에 속도>, 연합뉴스, 2022.4.26, https://www.yna.co.kr/view/AKR20220426079000005
5) 표재민, <지상파 예능PD가 말하는 경직 조직문화=인력유출 ‘악순환’>, OSEN, 2016.6.29, https://www.osen.co.kr/article/G1110445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