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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경기일보 <발암물질 위의 아이들>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5-02-28

경기일보는 경기도 내 초등학교와 유치원 8곳의 놀이터 시료를 채취해 바닥재 유해성 검사를 진행했다. 2016년 ‘우레탄 트랙’ 논란 이후 놀이터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1급 발암물질 검출 사실을 고발하며 무심히 지나쳤던 어린이 안전에 사회적 경각심을 되새긴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문제가 없단 말입니다. 내가 혓바닥으로 핥아볼 테니까 가져와 보세요!”

 

강렬한 외침이 귓가에 맴돕니다. 마지막 보도 후 3개월이 지났지만, 취재 과정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40편이 넘는 기사를 마무리하며, 제게 남은 것은 감사의 마음과 고무 바닥을 주시하는 습관입니다.

 

<발암물질 위의 아이들>은 경기도 내 유치원과 초등학교 놀이터의 탄성포장재 바닥에서 1급 발암물질인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가 검출된 사실을 고발한 연속 기획 보도입니다.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진 이 시리즈는 지면과 온라인 기사를 통해 세상에 공개돼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경기일보는 기사를 위해 ‘K-ECO팀’을 조직했습니다. 부장급 팀장과 차장급 선임 PD, 평기자 세 명과 한 명의 PD가 함께한 K-ECO팀은 환경(Environment), 비용(Cost), 조직(Organization)을 짚으며 지역 경제(Economy)를 아우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작은 팀의 막내인 제가 호기롭게 찾아간 ‘KS M 6956 개정 공청회’ 현장이었습니다. 전날 공청회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고 설렘을 안고 현장에 갔건만, 공청회에서 마주한 내용은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습니다. 일단 열심히 적고 보자는 생각으로 모든 소리를 받아 적었습니다. A는 뭐고, B는 뭘까. 부장의 “기자는 얕고 긴 지식을 갖는 게 유리하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보다 배울 게 많았던 1년 차 기자는 홀로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죄송할 지경이었습니다.

 

몇 시간의 과정이 끝나고 녹초가 된 채 정신을 집중하려 했습니다. 공청회를 마친 후 발언권을 많이 가진 A 대표에게 계속 내세우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기자는 상대 안 합니다. 책임질 수 있는 기사를 쓰세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2016년에도 ◦◦방송사, ◦◦일보,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호통에 가까운 외침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자초지종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덜컥 날아든 말이었지만, 다른 취재원을 찾아 빠르게 추가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이날 공청회는 탄성포장재 바닥재의 유해성 검증 방법에 대한 논란을 해소하고자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정부는 국제 표준에 맞는 검사 방식으로의 전환을 준비 중이었지만, 업계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되면 유해 물질 검출량이 늘어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며 반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공청회는 우리가 준비하는 기사 주제를 파악하는 중요한 배경이었습니다.


1,300여만 원 투입된 유해성 검증

 

<발암물질 위의 아이들>은 한 통의 제보로 시작됐습니다. 학교 인조 잔디 운동장과 육상 트랙은 현행법상 유해 물질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지만, 같은 학교 안에 있는 놀이터는 관리 의무 시설에서 제외돼 유해 물질을 품은 폐타이어가 집중적으로 재활용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2016년 ‘우레탄 트랙’ 논란을 기억하는 기자들은 아이들의 안전이 또다시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에 보도를 결심했습니다. 8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아이들의 놀이 환경은 정말 안전한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폐타이어가 집중적으로 재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연구가 필요했습니다. 일단 부장은 생소한 분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공부가 필수라고 말했습니다. 공청회에서 들었던 내용이 이거였구나 하면서도,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뼛속까지 문과인 기자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용어의 향연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자도 모르는 내용을 기사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차근차근 알아가기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우선 공청회 자료부터 훑어봤습니다. “울트라 소닉 베스, 전처리된 물질을 기계 분석, 즉 GC-MS에 넣어서 크로마톤그램…” 그렇게 자발적 야근으로 새벽까지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공청회 원본 자료와 보고용 정리 자료, 용어 정리본을 만들어 1차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비록 대단한 자료는 아니었지만, 맥이 잡히는 듯했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취재를 위해 K-ECO팀은 경기도 내 초등학교와 유치원 8곳을 선정해 연구를 맡기기로 했습니다. 언론사가 어린이 건강을 이유로 학교 땅을 무단으로 파헤칠 수는 없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사 취지에 공감한 경기도의회 안광률 교육기획위원장의 협조로 허가 하에 초등학교와 유치원 8곳 놀이터 시료를 채취했습니다.

 

장소는 결과의 공정성을 위해 시공 연도와 지역을 다르게 선정해 확보했습니다. 연구가 끝난 후 손상 없이 복구가 가능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 전문 업자와 동행해 네모반듯하게 놀이터 일부 탄성포장재 포를 떠냈습니다. 이후 채취한 놀이터 시료를 국가공인시험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에 가져가 유해 물질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발암물질 위의 아이들> 시리즈 첫 회 지면 ⓒ경기일보

 

 

놀이터 바닥의 유해성 검증을 위해 업계도 자주 찾는 연구기관입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 자체 예산 1,300만 원가량이 투입됐습니다. 부담이 커졌습니다.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의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요하지 않고, 보도를 위한 준비를 차분히 이어갔습니다.

 

“아이들은 작은 어른이 아니다”

 

결과지가 도착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열어본 결과, 경기 지역 8개 초등학교와 유치원의 탄성포장재 놀이터 바닥재에서 PAHs(다핵방향족탄화수소) 등 유해 물질이 검출됐습니다. 연구소에서는 “파장이 일 수 있으니 연구기관을 공개하지 않는 건 어렵냐”고 조심스레 물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객관적 보도 원칙을 지켜야 했습니다. 따라서 예정대로 기관 공개를 결정하고 이전에 확보한 자료와 결과지를 토대로 보도 방향을 잡아갔습니다.

 

기사는 2024년 7월부터 11월까지 총 40편이 넘게 보도됐습니다. 우선 연구소 검사 결과를 토대로 초등학교와 유치원으로 나눠 분석·해설하는 기사로 시작했습니다. 전문가 자문을 통해 연구 결과 속 수치가 갖는 의미를 풀어냈습니다.

 

생소한 화학 용어가 등장하고 연구 결과에 대한 풀이가 이어지는 만큼 독자들의 이해를 높이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검사 결과에 따른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알리기 위한 기자 개개인의 공부와 후작업이 수반됐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전문가 자문이 중요했습니다. 놀이터라는 환경적 특성과 그 안에서 검출된 물질에 대한 이해, 정책적 방향 등 다양한 분야의 시각이 필요했습니다. 우선 화학 분야에 오랜 관심을 둔 교수들과 연구자를 찾았습니다. 다각적인 의견을 위해 취재원은 오랜 시간 놀이터 유해 물질을 주시해 온 교수와 주제를 정하지 않고 순수 학문 연구에만 몰두한 교수 등 다양하게 알아봤습니다.

 

이때 만난 순천향대 환경보건학과 박정임 교수와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그간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는 박 교수는 “무엇에 홀렸는지, 기사 내용을 설명하는 한 통의 전화에 덜컥 인터뷰를 수락했다”는 말로 우리를 반겼습니다. 연구 결과지를 들고 찾아간 순천향대 교수실에서 “아무도 모르는 위험이 숨어있다. 하지만 모르니까 위험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단호한 말로 연구 결과가 갖는 대책의 필요성을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작은 어른이 아니다”라는 핵심도 짚었습니다. 이 말은 기사를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 됐습니다.


국내외 현장을 누벼 실현한 솔루션 저널리즘

 

취재 과정 중 인증 담당 협회가 오히려 바닥 유해성 검증 기준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층부는 상층부처럼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층부의 PAHs 검사 항목을 없애려는 것이었습니다. 협회 관계자들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런 기사가 우리를 다 죽인다”는 호소를 들으면서도, 결국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이 우선이라는 점에 공감하며 서로의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보도 이후 국회에서는 관련 입법 활동이 이어졌습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교보건법 및 환경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은 전수조사 및 긴급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경기도교육청은 환경부와의 회의를 통해 검사 기준 강화를 건의하고, 자체적으로 유해성 검사를 실시해 기준치를 초과한 놀이터의 교체를 약속했습니다.

 

같은 시기, K-ECO팀 기자와 PD는 독일과 스위스로 해외 취재를 떠났습니다. 선진 사례를 탐방하고 해외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현하고자 밤낮없이 현장을 누빈 노력 덕분에 우리의 기획 보도는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경기 죽화초등학교 박상철 교장은 우리 보도를 본 후 “보이지 않아 외면하는 위협을 짚어준 고마운 기사”라며 “솔잎이 깔린 흙바닥 위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죽화초 아이들의 모습을 소개하고 싶다”는 반가운 연락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현재 안전한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기 위한 작업은 지난 12·3 비상계엄 여파로 신규 예산집행에 제동이 걸리며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일보는 앞으로도 해당 문제를 지속 보도하며 아이들의 안전한 놀이 환경을 위한 촉구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발암물질 위의 아이들>이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던 건, 경기일보의 아낌없는 지원과 K-ECO팀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좋은 결과를 끌어낸 팀원들, 신뢰를 바탕으로 중요한 자문을 주신 업계와 단체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끝까지 함께 힘을 모아주신 편집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헌신이 이 기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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