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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매일경제 <대한민국 경로당 보고서>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5-03-28

노인을 위한 휴식 공간인 경로당은 전국에 약 7만 곳이 자리하고 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경로당은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신설된 매일경제신문 시니어팀이 조명한 경로당을 통해 한국 노인 문제의 단면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신문 안 보니까 나가세요.”

 

매일경제 시니어팀이 <대한민국 경로당 보고서>를 취재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신문사에서 취재 나왔다고 하면 반사적으로 돌아오는 답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르신들마저 신문을 외면하는구나’라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경로당 취재가 목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신문의 위기를 절감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신문이 살길은 다른 신문과 차별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뚜렷해졌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 경로당 취재였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까다로웠습니다.

 

한겨울 눈을 맞으며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언덕 위 경로당으로 향할 때면 ‘지금 나는 어디에 있고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믹스 커피를 쥐어주며 날 추운데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격려하는 어르신들을 만날 때면 다시 발품을 팔 용기가 생겼습니다.


외딴섬이 돼버린 경로당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내에도 경로당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령의 노인들만 드나들 뿐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속하는 60대나 70대 초반 노인들이 그곳으로 향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경로당은 마치 외딴섬과 같았습니다. 평소 무심하게 지나쳤던 경로당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노인 이슈를 다루는 시니어팀이 신설되면서 경로당에 대해 집중적으로 취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습니다.경로당은 과연 노인들에게 어떤 공간인가. 저희 팀이 품었던 질문입니다.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 노인 문제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경로당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노인들의 사회적 교류와 여가 활동을 위해 지어진 경로당은 전국적으로 약 7만 곳에 이르는 거대한 복지 인프라이기도 합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책정한 예산만 연간 6,000억 원이 넘습니다. 사립이든 공립이든 예외 없이 지원금을 받는 공적 공간인 것입니다. 회원 수만 287만 명에 이르는 대표적 노인 여가 복지시설인 경로당을 제대로 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은퇴 이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노인들이 과연 대안으로 경로당을 선택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취재했습니다.

 

 

한 어르신이 경로당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모습. 2층 이상에 있는 경로당 가운데 82%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 ⓒ매일경제

 

 

<대한민국 경로당 보고서>를 취재하는 데 계기가 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7월 저는 서울경찰청 출입기자로 각종 사건 기사를 다뤘는데 당시 경북 봉화군 봉화읍의 한 경로당에서 농약이 든 커피를 마신 노인들이 위독해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사건이 보도됐습니다. 짤막한 기사였지만 이면에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찰 조사로 드러난 사건의 발단은 경로당 노인들 간 불화였습니다. 과연 이곳만의 문제일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됐고 경로당이라는 공간에 대해 취재하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취재팀은 당시 사건을 되짚어보기 위해 직접 현장을 찾았습니다. 경로당에서 만난 한 노인은 사건 이후 서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습니다. 동네 유일의 사랑방인 경로당을 이용하는 인원 역시 크게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경로당의 현실

 

<대한민국 경로당 보고서>는 경로당의 실태를 조명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현장’이었습니다. 경로당 취재를 위해 우선 경로당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대한노인회가 비공개 정보라며 건네주지 않았던 전국 경로당 6만 9,071곳의 주소지를 우선 확보했습니다.

 

경로당의 위치는 알게 됐지만 연락처가 나와 있지 않거나 유선전화 자체가 없는 곳이 많아 사전취재 협조를 얻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경로당 취재를 위해서는 무작정 가서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스마트폰 맵에 좌표를 표시하고 동선을 짜서 걷거나 때론 차량을 이용해 경로당으로 향했습니다. 취재진은 서울, 경기, 인천, 충남, 경북에 위치한 경로당 120여 곳을 취재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경로당은 노인들의 사회적 교류를 장려하고 특히 1인 노인가구의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충북 청주에 사는 한 할머니는 코앞에 있는 동네 경로당을 놔두고 20분 넘게 떨어진 경로당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가족과 함께 이사 온 이 할머니는 새 경로당 문을 두드렸지만 환대는커녕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이곳 경로당 회장은 할머니의 행색을 살펴보더니 경로당에 오기에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그들만의 공간이 돼버린 경로당에 이웃이 들어설 공간은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출근한 후 마땅히 갈 곳이 없던 할머니는 결국 이전에 다니던 경로당으로 다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혹시나 주민들 눈 밖에 날까봐 하소연도 제대로 못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경로당 내 텃세와 따돌림으로 발길을 끊는 노인들이 늘고 있고 이는 노인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누적되면서 경로당은 60~70대 이른바 신(新) 노년 세대가 외면하는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서울시 노인들의 경로당 이용 현황 자료를 확인해 보니 서울시 노인 중 실제 이용 인원은 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노년층이 등을 돌리면서 이대로 가다간 경로당이라는 공간 자체가 소멸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었습니다.

 

 


인천의 한 미등록 경로당 외관이 잔뜩 녹슬어 있는 모습. 지원을 받지 못하는 미등록 경로당은 전국적으로 1,500곳이 넘는다. ⓒ매일경제

 

 

대안 찾으려 팻말 들고 거리로

 

취재팀은 독자들에게 차별화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시민들의 개방형 경로당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고 경로당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길거리 앙케트를 병행했습니다.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신촌에서 ‘노인과 청년이 함께 쓰는 경로당 찬성하십니까’라고 묻고 스티커를 붙여 답변하도록 한 결과 시민 102명 중 80명(약 78%)이 개방형 경로당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다양한 세대가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경로당’에 대한 인식이 우호적이며, 경로당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경로당에서 만난 어르신 1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데이터를 얻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경로당을 이용하는 이유, 시설에 대한 만족도, 개선 방안, 회비 여부, 개방형 경로당에 대한 선호도 등을 조사해 통계화했습니다. 취재팀이 방문한 경로당 이용자들의 평균 나이는 80.4세에 이르렀습니다. 경로당 방문 당시 평균 인원은 4.5명에 불과했고, 4명 중 1명은 경로당 시설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경로당은 대표적인 노인들의 여가 복지시설임에도 아무런 프로그램도 없이 사실상 방치돼 있다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보건복지부를 통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경로당 10곳 중 3곳은 연간 단 1건의 프로그램도 진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취재팀이 찾은 경로당 10곳 중 4곳에서는 별다른 여가 활동이 이뤄지지 않았고, 노인들은 고스톱만 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전국 경로당 예산 현황, 미등록 경로당 현황, 식사 미제공 경로당, 엘리베이터·와이파이 미설치 경로당 등 최신 통계자료를 확보하여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조명하고자 했습니다.한 경로당에서 일하는 식사 도우미는 70대 고령에도 20명분에 이르는 식사를 혼자서 책임지고 설거지에 마당 청소까지 하면서 한 달에 30만 원도 채 안 되는 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열악한 시설과 안전 문제로 신음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전국적으로 1,500곳에 이르는 미등록 경로당은 실질적인 동네 경로당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부 지원에서 배제돼 있었습니다. 상당수 경로당이 지하나 2층 이상에 위치하지만, 엘리베이터조차 없어 불편을 초래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번 경로당 보고서 취재를 통해 한해 경로당에 지원되는 자금이 6,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경로당 숫자가 워낙 많고 일부는 관리가 허술하게 이뤄지다 보니 공금을 중간에서 유용하는 문제 역시 뿌리 뽑히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경로당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한편, 노인 여가시설이 안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일본의 사례도 제시했습니다. 일본의 ‘살롱’은 한국의 경로당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시설입니다. 한국 경로당이 신노년층에 외면받는 것과 달리 일본의 살롱은 노인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세대 간 장벽이 사라지고 지역 주민들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텃세나 폐쇄적 문화가 들어설 여지가 사라진 모습에 주목했고 이를 통해 경로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습니다.

 

 

경북의 한 미등록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고 있다. ⓒ매일경제

 

 

속속 제시되는 개선책에 보람 느껴

 

보도가 나간 이후 독자의 피드백과 정부의 개선 방향을 확인하면서 기사를 쓴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80대 어르신은 기사를 보고 메일을 보내와 경로당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으면 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거주했던 아파트 경로당에서 지원금을 유용해 구청으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며 관련 자료를 보내왔습니다. 그동안 제보할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경로당 기획기사를 보고 차곡차곡 모아왔던 자료를 보낸다며 문제점을 꼭 보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사를 본 한 독자는 메일을 통해 “기사를 보고 경로당 위치나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관심있게 보게 됐다”며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로당을 보면 왜 하필 여기로 지었을까 생각하게 됐고 노인들이 자주 모이는 곳에 왜 지원 시설이 없는지도 궁금해 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것들을 더 취재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시니어팀은 향후 독자가 지적한 의문점을 꾸준히 취재할 계획입니다.

 

보도 이후 정부에서도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밝혔습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설명 자료를 배포하고 “경로당의 역할과 기능 발전을 통해 어르신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생활을 지원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경로당이 노인 누구나 기꺼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경로당 현대화 연구용역을 실시했으며, 이를 통해 경로당을 활성화하고 지금보다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복지부는 “거주 지역에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특별경로당 시범운영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폐쇄적인 운영 방식을 개선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본지가 제시한 방향과 일치했습니다.

 

지방자지단체에서도 개선책을 내놓았습니다. 예컨대 서울 양천구는 경로당 어르신에게 보다 안정적인 점심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1개월 30시간 근무 시 지급되는 활동비에 월 10만 원의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고, 청주시에서도 식사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당 급식 도우미를 지난해 240명 규모에서 올해 400명으로 증원하기로 했습니다. 상당수 지자체 경로당에서 여가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로 했고, 울산 동구, 충주시 신니면 등에서는 지역 내 미등록 경로당에 대해 난방비를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서울시의 한 지자체 공무원은 취재진에 “자치단체에서 배울 점이 많은 기사였다”면서 “구에서도 적극적으로 경로당 관리에 참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리즈 전체적으로 1,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는데, 특히 월 29만 원의 급여를 받고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경로당 급식 도우미 문제를 지적한 보도에는 380여 개의 댓글이 달릴 만큼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했습니다. 기사가 경로당에 대한 일종의 공론장 역할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저희가 <대한민국 경로당 보고서>를 보도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 분야 외에도 정치·사회·문화 등 다방면으로 깊이 있는 취재를 장려하는 매일경제신문 편집국 특유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대한민국 경로당 보고서>는 첫 회 시리즈를 1·2·3면에 배정했고 총 5회 시리즈에 종합면 6개 면을 할애해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이 같은 편집국의 문화는 남들과는 조금이라도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마음먹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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