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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 나라의 미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경남도민일보가 6회에 걸쳐 기획 보도한 <빛 좋은 개살구 아이돌봄서비스>는 이 문구를 회차마다 담았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외면해선 안 될 아이돌봄서비스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짚은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해수야, 오늘 아침에는 머리를 감으면서 ‘진짜 그만둬야지’라고 생각했다가 머리를 말리면서 ‘그래도 다녀야지’라는 마음이 들더라.”
20대 중반, 갓 수습을 뗀 후배 기자를 집까지 태워주던 선배 기자가 불쑥 말을 꺼냈다. 맞장구나 위로를 기대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한숨처럼 뱉은 말이다. 선배는 당시 6살, 3살 두 아이가 있는 워킹맘이었는데 이날 이후로도 한참 더 회사에 다녔다.
우리는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 아이는커녕 결혼도 안 한 그때 나는 ‘신입한테 저런 말 할 정도로 많이 힘드신가 보다’ 정도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이 둘을 낳고 보니 이제야 선배 말에 담긴 깊은 고민과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6편에 걸쳐 보도한 기획 기사 <빛 좋은 개살구 아이돌봄서비스>는 지독한 생활밀착형 기사다. 기사의 시작은 지난해 육아휴직 시절 실제 아이돌봄서비스 이용을 시도했다 좌절한 경험에 있다.
대기 가구가 80곳이라고요?
10년 차 맞벌이 부부, 워킹맘 7년 차.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 서글프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배우자 눈치도 보이고, 회사나 주변에 아쉬운 소리 할 일이 많아진다. ‘누가 시켰냐?’라고 해버리면 딱히 할 말도 없다. 아이를 원한 63대가로 ‘갓생’을 살고 있다.
육아휴직을 3개월 남기고 아이들 맡길 곳을 찾느라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아이가 한 명일 때는 그럭저럭, 남편과 이어달리기하듯 아이를 챙겼다. 그런데 둘이 되니 전혀 다른 차원으로 들어서게 됐다.
성별, 연령, 요구사항, 능력치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두 아이를 한 명이 돌보기란 (내 기준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아이돌봄서비스라는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육아 동지였던 첫째의 유치원 친구 엄마가 ‘아이돌봄서비스’를 써보라고 권했다.
정부가 인증한 아이돌보미가 집으로 찾아와 아이들을 돌봐준다고 했다. 출퇴근 전후로도 이용할 수 있고, 아이돌보미와 협의만 되면 저녁 늦게까지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이렇게 좋은 제도를 몰랐던 게 억울할 정도였다. 당장 신청 절차에 들어갔다. 행정복지센터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담당 센터에 서비스 이용 등록을 했다.


순탄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는데 담당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담당자는 “지금 신청하시면 2~3개월 걸릴 거예요. 대기 가정이 80곳 정도 있어서”라고 했다. 대기 가정이 8곳도 아니고 80곳? 귀를 의심했다. “넉넉잡아 3개월 기다리면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그때 돼서 돌보미가 있어야 하는데 확답은 못 드려요”라고 했다.
하루하루 복직일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조급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자식은 자식이다. 엄마를 만날 때마다 걱정을 털어놨나 보다. 불안해하는 딸을 보다 못한 친정 엄마의 결심으로 돌봄 공백 소동은 일단락됐다.
쓰고 싶은 기사, 생생한 사례를 찾다
여차저차 회사로 복직했다. 원직 복직이 원칙이지만 직전 부서의 정원이 차 있었다. 편집국장은 별도 출입처를 주지 않고 “네가 쓰고 싶은 기사를 쓰라”고 했다. 아, 쓰고 싶은 기사. 쓰고 싶은 기사라. 국장의 배려였겠지만 출산휴가 포함 15개월 동안 아이 둘 돌보느라 집 현관까지 친절하게 배달되는 신문도 못 챙겨봤는데, 쓰고 싶은 기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 가장 관심 있는 주제는 뭘까? 아이돌봄서비스가 떠올랐다.
그 무렵 <경남도민일보>에 아이돌봄서비스를 홍보하는 칼럼이 게재됐다. 서비스를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런 불편은 ‘없는 셈’ 치고 이용을 독려하는 글이었다. 뭔가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우선 통계부터 확인했다. 경상남도 가족센터에서 지난해 11월 아이돌봄서비스 대기 가구 수와 평균 대기 일수를 받아봤다. 경남 18개 시군 대기 가구는 653곳, 평균 대기 일수는 57.8일, 두 달 정도였다.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평균 대기 일수가 가장 긴 의령군은 240일, 약 8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8개월이면 부모 중 한 명이 일을 그만두든 민간 돌보미를 구하든 다른 대책을 찾고도 남을 시간이다.
통계만으로 기사를 쓸 수 있지만 한두 편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돌봄서비스 대기 문제를 알리고 개선하려면 더 많은 독자의 관심이 필요했다.
독자들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생생한 사례를 찾아야 했다. 주변 엄마들을 수소문했으나 사례자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경남 지역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를 뒤졌다. 서비스 이용 불편을 호소하는 게시글이 있었지만 수개월 전이라 시의성이 떨어졌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며칠 만에 접속한 커뮤니티에 새 글이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돌보미 퇴사로 수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너무 막막하다는 내용이었다. 댓글도 심상치 않았다. 서비스 이용자로 보이는 사람이 ‘이 서비스, 정말 문제 많아요’라고 댓글을 남겼다.
곧바로 쪽지를 보내 메시지와 연락처를 남겼다. 그날 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엄마들의 눈물… 아이돌봄서비스의 한계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기사에 소개된 김민정(가명) 씨였다. 커뮤니티에 글을 쓴 그는 아이돌봄서비스를 6년 동안 이용했다고 했다. 부부가 각각 자영업을 하고 있는데 돌보미가 그만둬 자신이 일을 접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 시간이 길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도 떨어진다고 호소했다. 몇 가지 질문과 답을 주고받던 민정 씨는 어렵사리 첫째가 마음의 병을 얻어 상담 치료를 받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이가 세 살 무렵부터 2년간 돌보미가 세 번 바뀌었다고 했다. 아이는 6개월마다 바뀌는 새 돌보미 양육 태도에 맞춰야 했고, 일부 정서적 학대로 의심되는 일도 있었다.
민정 씨는 2년 전 이야기라며 덤덤하게 그때 상황을 설명했지만 당시 심정을 묻자 울음을 터뜨렸다. “제 욕심 때문에 아이를 아프게 한 것 같아서 한동안 매일 울면서 잠들었어요.” 순간 취재원 사연이 아닌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큰 교실에 홀로 남겨져 있을 때, 주말에 엄마 없이 아빠랑 여행을 갈 때, “나도 학원 안 가고 놀이터에서 놀면 안 돼?”라고 물을 때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내 욕심 때문에 아이를 힘들게 하나.’
나도 모르게 “아니에요. 어머니 잘못이 아니에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감정이 북받치지만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남은 질문을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민정 씨가 “사실 저는 아이 다 키웠어요. 1~2년 뒤면 제 손이 많이 필요 없을 거예요. 그런데 앞으로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처음으로 여성가족부에 전화도 해봤는데 바뀌는 게 없어요. 기자님이 기사를 잘 써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다음 날 댓글을 남긴 이용자 몇 명과도 연결이 됐다. 대기 외에도 아이돌보미 전문성 부족, 카톡방 블랙리스트, 이용액 지원 시간 부족, 정서적 학대 위험 등 다양한 문제점이 있었다.
6편의 기사에 담은 다양한 시각
이용자들의 사연만 들었을 땐 아이돌보미들에게 문제가 많아 보였다. 그렇다면 아이돌보미는 시스템에 만족하고 있을까.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경남본부 측에 요청해 아이돌보미를 소개받았다.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아이돌보미는 16년 차 베테랑이었다. 그는 이용자에게서는 들을 수 없던 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용 가정에서 겪는 어려움, 적은 임금과 불안한 고용, 처우 문제 등 전문성을 키울 수 없는 현실을 비판했다. 물론 일부 문제가 되는 아이돌보미가 있지만 아주 극소수이며, 그들 때문에 진심으로 아이를 돌보는 아이돌보미들이 피해 보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이돌봄서비스를 직접 이용하고 제공하는 이용자와 돌보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구조가 기이하게 느껴졌다. 엉성한 제도 안에서 두 주체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대기 문제로 출발했지만 보다 입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이용자와 아이돌보미, 여성가족부, 경상남도,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 각각의 시각을 6편에 담았다. 기사를 준비하면서 아이돌봄서비스라는 주제에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까 궁금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경험 영향으로 객관성을 잃진 않았는지 계속해서 경계했다.
다행히 기사가 보도된 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이를 다 키운 독자들도,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지인이 있는 독자들도 사례와 통계를 통한 문제 제기에 공감하고 기사를 응원했다.
마지막 편에서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한정 예산을 쓸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이런저런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겠지만, 현실적으로 당장에 뾰족한 답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용자, 돌보미, 전문가 세 사람의 대화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지는 방식으로 마무리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일
서두에 말한 선배 자녀는 어느덧 고등학생, 중학생이 됐다.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학교생활을 잘하고, 학업에도 충실하게 임하고 있다. 선배도 힘든 시절을 견뎌낸 뒤 옮겨간 자리에서 인정받고 취미생활도 즐기며 지내고 있다. 결국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부모 생각보다 훨씬 강하며 언젠가 지금을 ‘그땐 참 힘들었지’라며 추억할 날도 올 것이다.
아이에게 돌봄이 꼭 필요한 시기는 10년 남짓이다. 이때만 지나면 아이도 부모도 얼마든지 사회 구성원으로 자기 역할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아이돌봄서비스 아이디어는 매우 반갑다. 맞벌이뿐 아니라 한 부모 가정, 청소년 가정, 장애인 가정 등 돌봄 조력자가 절실한 가정에 꼭 필요한 정책이다.
다만, 기사에 담았듯 각 가정 상황에 맞도록 정책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내 아이 돌보는 일도 힘든데 남의 아이를 돌보는 건 몇 배로 힘들다. 아이돌보미가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그래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환경도 필수다.
예산이 필요하다면, 이를 확보하기 위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공이 모든 걸 챙길 수 없다면 민간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민간 업체가 영리만 쫓아 노동자를 착취할 수 없도록 감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겠다.
“이건 이 나라의 미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라는 문구를 기사마다 담았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라는 말이 있다. 얼마 전 신문에 출생아 수가 9년 만에 증가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걸 봤다.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제도가 제대로 정착한다면, 더는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런 뉴스는 단신 정도? 아마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날을 기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