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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전북일보 <청년 이장이 떴다!>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5-04-25

전북일보가 기획 보도한 <청년 이장이 떴다!> 프로젝트를 위해 박현우 기자는 한동안 기자직을 내려놓고 농촌 마을 이장으로 지냈다. 내 이웃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가볍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기사를 만들고 싶어 시작한 3개월의 대장정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전북일보 2025년 신년 프로젝트 <청년 이장이 떴다!>에서 활동한 박현우·문채연 기자 캐리커처 ⓒ전북일보

 

 

“내일은 경로당으로 출근하겠습니다.”

 

지난 1월 말부터 시작한 기획 보도 <청년 이장이 떴다!>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매번 퇴근 전 “내일은 어디로 가?”라고 묻는 부장님께 죄송할 정도로 이 말을 반복했다. 회사에서 4년 동안 기자로 근무하면서 출입처·사무실이 아닌 농촌 마을, 그것도 경로당으로 출근한 것은 처음이다.

 

어김없이 경로당으로 출근한 어느 날, 《신문과방송》에 <청년 이장이 떴다!> 취재기를 싣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받고 기쁘기도 했지만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왔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단순히 메일 한 통이겠지만 나에게는 ‘내가 잘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진짜? 맞아? 스팸은 아니겠지⋯?’ 참고하라고 보내준 타 언론사 취재기·제작기를 보니 더 막막해졌다. 이 기획은 남들처럼 무거운 기사도, 거창한 취재도 아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취재기라고 하기는 부담스러우니 무모한 도전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아직 20대잖아, 그걸 살려보자!

 

보통 언론사는 기자마다 별도의 출입처가 있다. 직전에 문화·경제부에서 뛰었던 터라 출입처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도내 지역종합일간지 최초로 ‘디지털미디어국’이 신설돼 발령이 나고부터 집을 잃었다.

 

별도 출입처 없이 쓰고 싶은 기사를 쓰라는 주문은 받았지만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부서원과 마주했다. 부장님과 당시 수습도 안 뗀 후배 기자, 그리고 4년 차 된 나. 세 명은 몇 날 며칠 같은 고민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던 중 번뜩 하나의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바로 <청년 이장이 떴다!>다. 수년 전 지역 언론에 새바람을 일으킨 부산일보 <산복빨래방>, 경남신문 <심부름센터>를 잇고 싶었다. 전북에서 가장 큰 이슈인 새만금, 완주·전주 통합 등 정치적인 문제에 치여 가장 가까운 도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점점 살을 붙여 나갔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갈수록 인구는 줄어드는 데다 청년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결국 고령층만 남으면서 지역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도시보다도 농촌 마을은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 소멸’ 하면 매번 이야기 나오는 마트가 멀어서,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없어서, 일자리가 없어서 등 실현이 어려운 상황을 전달하는 건 그만하고 싶었다. 우리는 당장 보도한다고 해도 사람 없는 농촌 마을에 마트를 세우고 문화 생활을 들여오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실현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게 바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기사도 좋지만 아침 일찍 신문을 봤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기사를 쓰고 싶은 마음도 컸다. 도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자와 취재원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면 어떨까? 젊으니까 청년 이장이 돼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호기롭게 시작했다.

 

시작은 했는데 더 큰 벽이 있었다. 기자라면 공감할 수 있겠지만 가장 어려운 ‘섭외’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다행히 알고 있는 마을 하나가 있었다. 전주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완주군 고산면 화정마을이라는 곳이다. 올해 연중 기획으로 연재 중인,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어르신들을 소개하는 <팔팔 청춘>을 통해 알게 된 마을이다. 곧바로 전화해 마을 이장님부터 만났다. 실례를 무릅쓰고 다짜고짜 전화해 “이장님, 저희가 화정마을에서 뭔가를 해 보고 싶은데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좀 드리고 싶어요. 괜찮으실까요?”라고 물으니 이장님은 흔쾌히 “그래요! 오셔요!”라고 답을 주셨다.


옛 마을회관에 둥지를 틀다

 

이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며칠 지나지 않아 1일 차 임무를 시작했다. 지낼 사무실도, 집도 없지만 떡부터 돌렸다. 이사를 하면 떡 돌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35가구 집집마다 다니며 어색하지만 인사를 나누고 떡을 선물했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마을에서 청년을 보는 일은 쉽지 않은 터라 주민들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대문 앞까지 나와 배웅해 주는 것은 기본, 출출함을 달랠 간식과 따뜻한 차도 주고 안아 주기까지.

 

일단 주민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마을 공유 재산인 옛날 마을회관에 청년 이장 아지트를 만들었다. 오래전 새로운 마을회관이 생기면서 임대를 내놨던 공간이지만 이장님과 주민들의 배려로 3개월 동안 무료로 지낼 수 있게 됐다.

 

들어가서 보니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거미줄에 먼지는 기본, 장판은 다 들떠서 난리도 아니었다. 기자들은 잠깐 노트북과 펜, 카메라를 내려놓고 청소부터 장판 까는 것까지 모두 직접 했다. 주민들이 “와, 여기가 이렇게 변했어?”, “여기서 뭘 할 수 있다는 건가 했는데 잘 수도 있겠네?”라며 감탄을 보냈다.

 

주민과 가까이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거처를 완성했다. 이 공간은 오직 주민을 위한 곳이다. 주민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활동할 때마다, 앞을 지나갈 때마다 편히 들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손주, 자식처럼 주민 삶에 스며들다

 

일주일에 이틀을 마을에 상주하면서 진정 주민들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 갔다. 주민 대부분이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여건상 다 제치고 자식만 키우면서 살았다. 60대 중후반 주민도, 90대 초중반 주민도 다 똑같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청년 이장’이 주민들의 삶에 더 깊게 침투하기로 했다.

 

전북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 재능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추렸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KBS1 시사·교양 프로그램 <인간극장> 등에 출연한 김제 차정환 농부, 서학동사진미술관 이일순 대표와 그의 남편 김삼열 작가 등을 섭외해 필라테스, 미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또 일손이 부족한 농촌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본사에 있는 기자들, 직원들까지 불러모아 비료를 나르는 등, 주민들의 요청을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았다. 이렇게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진행할 때마다 주민과 점점 가까워졌다.

 

 

3개월 동안 함께 호흡한 화정마을 주민들 ⓒ전북일보 

 

 

 

화정마을 어르신들이 화정경로당에서 열린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있다. ⓒ전북일보

 

 

연세가 많은 탓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덜덜 떨리는 팔을 꼭 부여잡으면서까지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어쩌면 이게 그들에게는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럴수록 마음이 더 아팠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 욕구도, 꿈도 꾹 참으면서 평생을 사셨겠구나 싶었다.

 

90대 최연장자 할머니는 “청년 이장님들 덕분에 화정마을이 호강혀. 다 늙었는디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네.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께!”라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할머니는 “자식들 다 키우면 나도 편하게 살 줄 알았는디, 60대에 넘어지면서 지팡이 신세가 됐어. 귀도 안 들리고, 괜히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았어. 젊은 사람들이 오니까 참 좋네. 살 이유를 찾은 것 같어”라고 이야기하셨다. 기획하는 동안 원동력이 되는 말이었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아버지들도 “벌써 갈 때 돼서 어쪄. 이제 정이 들었는데 떨어져야 하는 거여? 그래도 청년 이장님들 좋은 소식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기분이 좋네?”라며 손주처럼, 자식처럼, 소중하게 대해 주셨다.


어딘가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일

 

처음 화정마을 주민들은 멍하니 앉아 있거나 경로당에 모여 화투 치는 게 전부였다. 아지트라는 공간을 활성화한 이유 중 하나다. 이후 아지트에 함께 모여 필라테스, 영어 공부, 미술, 풍선 아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동안 그들이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짜 즐길 게 없어서, 찾다가 할 게 없어서, 이게 그나마 재미있는 일이라서 멍때리고 화투를 즐긴 거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가 주민과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화정마을 주민들은 활기를 찾았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화정마을에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하나 던진 것처럼 큰 울림이 생겼다. 그때부터 우리는 이 기획에 더 진심으로 임하게 됐다. 그렇게 정말 기자가 아닌 청년 이장이 됐다.

 

석 달 동안 지내면서 틈틈이 지역이 살아남는 방법, 농촌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농촌 마을에서 지내면서 느꼈던 점에 집중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이 어딘가에서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농촌 마을에 병원을 짓고, 교통을 만들고, 문화생활을 들여오는 건 쉽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 이 마을을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일. 성공했다.

 

석 달간 어려웠던 일을 꼽자면 설득이었다. 한 번도 마음 놓고 문화생활을 해 본 적 없던 주민들에게 우리의 기획은 부담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농촌 활력을 위해, 기사를 위해, 꼭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처음에 주민들은 같이 뭘 하자고 말만 하면 “난 몰라!”, “난 그런 거 못 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계속 설득했다. “어머니, 아버지! 다 하는데?”부터 “저희가 같이 할 건데요!”, “진짜 이건 아무 데서도 할 수 없어요”까지 시도해 봤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듯 진짜 여러 번 물으면 넘어오신다. 이제 새로운 프로그램 한다고 말만 꺼내도 “몇 시에 시작해?”, “어떤 선생님 와?”라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신다. 볼 때마다 괜스레 뿌듯해진다.

 

 

청년 이장 아지트에서 열린 그림 교실에서 설명을 듣고 계신 할머니들 ⓒ전북일보

 

 

이렇게 기자와 주민 간 노력 덕분에 서로 잘 지내던 중 “어차피 곧 갈건디, 뭐”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다들 믿지 않는 눈치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항상 이야기한다. 거리를 두는 듯해 괜히 서운하기도 했지만 포기할 수 없다. 주민들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원래 기자는 취재원과 거리를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이 기획은 달랐다. 그래야 농촌의 문제가 잘 보이고, 주민들의 이야기가 잘 들리고, 우리가 원하는 기획을 만들 수 있다.

 

우리 기획의 가장 큰 목표는 가장 가까운 삶의 현장에서 지역민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는 지역 언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목표를 달성했다. 어차피 맨땅에 헤딩이니 뭐라도 해야 시작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다.


지역 신문의 기자라면 일단은 해보자

 

뭐든 일단 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실패도 무언가를 했을 때만 맛볼 수 있다. 해 보기도 전에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는 이유로 포기하기보다는 해 보고 포기했으면 좋겠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3개월의 취재를 마친 뒤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드리는 청년 이장들 ⓒ전북일보

 

 

우리만 봐도 그렇다. 보도된 후 많은 연락을 받았다. 직접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만나서 이야기를 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타 언론사 기자들은 “신선하다”, “재미있게 보고 있다”, “어떻게 이런 걸 할 생각을 했냐”라고 묻기도 하고, 전에 알고 지냈던 출입처 직원들은 “진짜 배꼽 잡고 웃었다”, “이런 기사 너무 좋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기획하면서 느낀 점, 주변 반응 등을 보면 지역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했던 것 같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중요한 일이었을 텐데 그동안 너무 간과했던 건가 싶다. 기자라면 멀리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좋지만 바로 옆에 있는 이웃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귀 기울이는 날이 오길 바란다.

 

“청년 이장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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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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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 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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