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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암장, 이주 노동자의 감춰진 죽음>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5-04-25

2022년 기준, 한국에서 한 해 숨지는 이주 노동자는 3,000명이 넘는다. 한겨레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이주 노동자의 죽음과 장례, 남겨진 사람들, 송출국의 현실을 추적·보도했다. 이주 노동자의 죽음 뒤에 감춰진 우리 사회의 민낯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시작은 이주 활동가들의 제보였습니다. 요즘 이상할 정도로 이주 노동자의 ‘돌연사’가 많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잠자다 숨지는 일이 너무 많은데, 아무래도 열악한 노동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거란 짐작이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산재 인정조차 받지 못한 채 속전속결 처리되는 이주 노동자의 죽음이 전국적으로 무척 많을 것이라는 추정이었습니다.

 

이주 활동가들이 피부로 느낀 이야기였지만, 짐작과 추정만으로 쉽사리 취재의 발을 뗄 수 없었습니다. 돌연사로 숨지는 이주 노동자들은 대부분 접촉이 쉽지 않은 미등록 신분인 데다, 돌연사는 사고사와 달리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도 어려워 기록이 남아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런 만큼 이주 노동자 돌연사와 관련해선 자료도 선행 보도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주 노동자가 어떻게 병들고 숨지는지 알 방법 자체가 없었습니다.

 

이주 노동자가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지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왜 여전히 이들의 죽음은 ‘모르는 이야기’로 남아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이주 노동자 문제를 둘러싸고 무엇을, 왜, 어떻게 모르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한겨레는 한국 사회가 애써 눈치채지 않으려 했던, 그래서 무지와 무례와 무책임 속에 암장된 이주 노동자의 죽음을 파헤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겨레의 기획보도 <암장, 이주 노동자의 감춰진 죽음>은 그 무지의 어둠을 더듬어나간 결과물입니다.

 

 

2023년 3월 경기도 포천의 한 돼지 농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뒤 야산에 유기된 태국인 이주 노동자 분추 프라바세눙의 장례가 고국에서 치러지고 있다. <출처 - 유족 제공>

 


숫자가 증명한 한국 사회의 무지·무례·무책임

 

모르는 이야기를 추적해 기사화하는 일은 기자 본연의 일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 취재 경험상 아무런 지식 기반 없이 취재를 시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적어도 통계 자료 등을 통해 큰 그림이 보일 때야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고, 취재의 발판이 마련되며, 기획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구절처럼 언론은 숫자를 좋아하니까요.

 

이번 기획의 핵심적인 난관은 이주 노동자 사망에 대한 종합적인 통계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내국인 사망은 연도별로 정확한 사망자 수와 사망률, 주요 사망 원인까지 정리·발표되지만, 이주 노동자의 사망은 그 어떤 통계 자료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라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말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이주 노동자의 죽음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데도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충분히 모르고 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주 노동자 사망에 대한 정리된 통계가 없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사회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취재를 시작하기 어렵게 만드는 커다란 장벽이기도 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치 ‘어둠 속의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어려웠던 이번 기획은 온전히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님의 연구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김 교수님이 수행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는 우리 취재의 기반이자 ‘코끼리의 밑그림’이 돼주었습니다.

 

김 교수님 연구를 통해 최소 추정치로나마 이주 노동자 사망 규모를 따져볼 수 있게 된 뒤에야 이 문제의 심각성은 구체화됐습니다. 최초로 한국의 이주 노동자 사망 규모 추산을 시도한 이 연구는 7개 기관 행정 자료와 5개국 대사관 자료 등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합니다. 각 기관에 조각조각 존재하는 행정 자료를 최대한 동원해 이주 노동자 사망 현황을 정리한 결과, 2022년 기준으로 한 해 한국에서 숨지는 이주 노동자가 3,340명에 이른다는 추정치를 도출했습니다.

 

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인 숫자의 연속이지만, 대부분의 결론은 ‘정확히 알 수 없다’로 향합니다. 한국의 행정 시스템에서 기초적인 신원 정보(국적, 성별, 나이, 직업, 사망 시점, 의료적 사인, 비자 형태 등)를 파악할 수 있는 ‘아는 죽음’은 6.4%에 그치며, 나머지 93.6%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유실된다는 결론은 우리 사회의 무지를 지적했습니다. 변사 또는 무연고사로 숨진 이들이 최소 436명(13%)에 이르지만 이들 중 57.5%는 사인조차 모른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무례를 꼬집었습니다. 전체 사망자 중 산재 신청을 한 이들이 169명(5%)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무책임을 고발했습니다.

 

줄곧 힘없는 사람들의 주장에 숫자로 힘을 실어주는 연구를 해온 김 교수님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주 노동자 사망에 관한 지식이 생산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우리에게 ‘앎의 의지’가 없었다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이주 노동자 사망의 큰 그림을 그리는 첫 기획보도가 나왔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앎의 의지’는 정부에게만 없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취재하는 것만큼이나 아직 없는 것, 빠진 것, 모자란 것을 취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김 교수님과의 협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이주 노동자의 죽음

 

숫자만큼 중요한 것이 맥락이었습니다. 이번 취재는 이주 노동자의 죽음을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다뤄보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죽음과 그에 뒤따르는 상실은 한 존재의 존엄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주 노동자의 죽음은 단발적 사고 기사로만 다뤄져 왔습니다. 안타까운 사연과 기업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지만, 기존 보도는 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이미 3년 전 보도된 이주 노동자 사망 사건으로 기획의 포문을 연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태도를 똑 닮았지만 단발적인 기사로만 소화됐던 이 사건을 입체화해 우리가 모르고 놓쳐온 맥락을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사건은 2023년 경기도 포천의 한 돼지 농장에서 벌어졌습니다. 10년간 미등록 노동자로 일하다가 대동맥 파열로 숨진 태국인 분추 프라바세눙의 주검을 농장주가 야산에 유기한 충격적인 사건은 이미 개요와 범행 이유(미등록 노동자를 고용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확정판결(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까지 모두 보도됐습니다.

 

이 사건은 한겨레가 기획으로 그리고자 했던 대한민국과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노동력으로서 쓸모가 있을 때는 법 위반을 감수해가며 충분히 이용하다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한국 사회의 무지, 무례와 무책임 말입니다. 이주 노동자를 사람이 아닌 노동력으로만 취급하면서 유족에게서 애도의 기회를 빼앗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마저 같았습니다.

 

한겨레는 범행 내용의 자극성과 가해자가 받은 형벌에만 집중했던 기존 보도와 달리, 사건을 심층 취재해 입체화했습니다. 김채운 기자는 사건이 벌어진 포천을 수시로 드나들며 분추의 지인, 유족, 농장주 동료, 마을 주민 등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농장주와 분추의 사이가 좋았다”라는 농장주의 동료, “잔인한 농장주가 남편에게 욕을 하곤 했다”라는 유족, “죽으면서 집에 한턱(합의금) 주고 갔으니 다행”이라는 마을 주민의 많은 말속에서 납작한 동전 같던 사건은 새삼 눈덩이처럼 굴러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분추가 평생 외국을 떠돌며 일해왔고, 조만간 고국으로 돌아가 아내와 농장을 가꾸며 노후를 보낼 예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아울러 분추를 “분추 삼촌”이라 부르던 태국 출신 지인이 그의 실종을 눈치채고 최초로 사건을 신고하면서 분추의 주검을 무사히 고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는 애틋한 사실도 길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2023년 한국에서 동생을 잃은 벨라옛이 동생의 상속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에 제출한 서류 뭉치들 ⓒ이지혜 한겨레 기자

 

 

아끼고 걱정하는 사람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가해자는 그렇게 쉽사리 분추의 주검을 내다 버릴 수 있었을까요? 그의 인생을 이해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했습니다. 이주 노동자의 고통뿐 아니라 그걸 견뎌내는 이들의 저력에도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이들의 죽음뿐 아니라 이를 수용해 내는 유족의 애도 과정에도 귀 기울이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우리 사회가 알아차려야만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긴 장례식 같았던 이주 노동자 취재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주 노동자 취재원들을 자주 만나다 보면, 이들이 대체로 도전적이고 영민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국경을 넘어 낯선 곳으로 이주를 감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랬듯, 독자들도 이주 노동자들이 삶을 대하는 치열한 태도에 감탄하길 바랐고, 이들이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체념하고 살아간다는 점에 마음 아프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주 노동자의 삶이 가진 역동성과 복잡성을 상상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획 2회의 <10년간 일하다 숨진 이주노동자…가족 유산 상속 절차만 수개월> 기사에 등장한 이주노동 12년 차 방글라데시 사람 후세인 벨라옛도 삶의 역동성과 복잡성을 가진 취재원이었습니다. “여기 10년 있으면서 깨달았는데, 제가 빠져도 상관없고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잘해줄) 마음을 안 먹는 것 같아요. 10년 뒤에 또 한 사람, 10년 뒤에 또 다른 사람….”

 

10년 뒤에도, 그 10년 뒤에도 한국에 오려는 사람이 줄 서 있기 때문에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벨라옛의 혜안은 이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습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을 구조적·지속적으로 착취할 수 있었던 배경을 정확하게 꼬집은 것입니다.

 

누군가는 ‘누가 한국에서 일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라고 쉽사리 말하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산업화 시기 한국인들이 그랬듯, 이들은 계급상승에 대한 열망과 가족에 대한 헌신으로 열악한 노동조건과 폭력적인 차별마저 감수하고 있으며, 한국은 적극적으로 그 열망과 헌신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벨라옛 자신도 그 착취의 굴레 안에 있습니다. 2023년 9월 한국에서 동생을 돌연사로 잃었고 산재 신청은커녕 체불임금도 받지 못한 처지였지만, 그는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다고 했습니다. 혼자 한국에서 고생하면 본국의 가족들은 ‘돈 때문에 못하는 건 없을 정도로’ 살 수 있다는 겁니다. 벨라옛은 “우리 아들들은 힘든 일 안 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며 “방글라데시는 제게 무덤이다. 여기서 일하고 거기 가서 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착취 구조에 들어오는 이주 노동자들이 있는 한 한국이 당분간 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는 요원해 보였습니다. 실제로 이주 노동자 송출국들은 고용허가제 쿼터가 깎일까 두려워 한국 정부에 마땅한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 이주 노동자 착취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한국 사회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민과 이주 노동이라는 문제는 눈덩이처럼 계속 커질 것입니다. 인구 문제를 해결할 거의 유일한 대책으로 이민이 떠오르지만, 한국 사회는 전혀 준비돼 있지 않습니다. 이번 김승섭 교수님의 연구와 한겨레 기획보도가 이주 노동자 죽음의 규모를 추정하고 그 양태와 배경을 짚은 최초의 시도일 정도니까요. 내내 긴 장례식을 치르는 것 같았던 이주 노동자 취재는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눈을 떼지 않고 이주 노동자 인권을 위한 취재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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