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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느덧 10년 차가 된 방송기자입니다. 아직도 취재하는 것이 설레고 행복하지만, 저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뛰어나게 단독을 잘하지도, 방송 진행을 잘하지도, 조직 생활을 잘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저, 기자 생활을 계속해도 될까요? 기자 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어떻게 자평할 수 있을까요?
익명의 기자
저도 저연차일 때 비슷한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기 중에 누가 입봉을 먼저 하는지, 메인 뉴스 톱 리포트를 누가 먼저 하는지, 정치부나 경제부 같은 소위 더 잘 나간다고 평가받는 부서에 발령받을 수는 없는지, 그리고 그 기준에 못 미치면 나는 기자가 잘 안 맞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공부를 더 하는 게 내 길은 아닌지 고민하면서 괜히 학교 사이트들만 찾아보곤 했습니다.
남들 기준 아닌, 나에게 맞는 길을 찾기까지
그런데 기자 생활 30년을 맞은 올해 돌아보면, 나한테 잘 맞는 일이나 부서가 꼭 남들이 생각하는 ‘기자라면 잘해야 하는 일이나 잘 나간다고 하는 부서’가 아닌 경우가 오히려 더 많더라고요. 저의 경험을 공유해 드리면 저는 4년 차 때 보도제작부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뉴스추적>에 발령받았어요. 당시 제 연차에는 잘 가지 않는 부서였고, 심지어 여성 기자로는 탐사보도 부서 첫 발령이라 좀 당황했지요.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제가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꿈꾸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일을 하는 곳이더라고요. 그래서 더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자들이 주로 만나 인터뷰하는 사건·사고의 피해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에 관심이 생겨 이후 야간대학원을 다니면서 ‘저널리즘과 트라우마’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후에 그 분야로 하버드대에서 니먼펠로우(Nieman Fellow)로 연수까지 하게 되면서 국내 언론에서 ‘저널리즘과 트라우마’ 관련 화두를 개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또 10년 차 즈음에는 ‘미래부’라는 중장기적인 어젠다를 들여다보는 새로 생긴 부서에 가게 됐어요. 그때도 데일리 뉴스 관점에서 보면, 메인이 아닌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고 연구를 발주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새로운 방법을 익히는 특별한 경험을 갖게 됐어요.
저는 지금도 상담자가 언급한 단독이라든지, 방송 진행을 특출나게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언론인의 트라우마에 대해 20년 넘게 공부하면서,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여성기자협회에서 공동으로 만든 ‘언론인트라우마위원회’에서 언론의 관행을 트라우마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꿀지 논의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공부가 뒷받침돼 언론인트라우마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수 있었어요. 또한 미래부라는 부서에 방송기자로서 흔치 않게 20년을 있다 보니 국내외 각 분야의 엄청난 지식인 네트워크가 생겨 포럼 기획에서도 남들과 차별되는 전문성을 가지는 행운도 얻게 됐어요.
넓게 멀리 보고, 타사 언론인과도 교류하길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사안을 순발력 있고 발 빠르게 다루기보다 진중하게 들여다보고 깊이 있게 다루는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데일리 뉴스보다는 제작·기획에 훨씬 더 장점을 발현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물론 제 스스로 깨달은 것은 아니고, 어쩌면 회사에서 저를 먼저 알아보고 관련 부서로 보내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서 만약 제가 지금의 상담자라면 본인이 기자 업무 가운데 더 잘하는 일은 무엇인지, 더 관심이 가는 쪽은 무엇인지 자문해 볼 것 같아요. 지금은 언론 분야도 플랫폼도 훨씬 다양해졌기 때문에 목표나 기준을 너무 좁게 보지 말고, 언론인으로서 본인의 강점을 좀 더 탐구해 보는 시간을 가질 것을 추천합니다. 또 매일 만나는 같은 회사 동료나 선후배를 넘어, 타사 동료나 선후배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에도 많이 참여했으면 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프로그램이라든가, 방송기자연합회 강의, 삼성언론재단의 소규모 언론인 모임 등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 새로운 방향성도 찾고 자극도 받게 되더라고요. 또 그런 자리에서 친해진 사람들이 있다면, 회사 내부인에게 고민을 상담했을 때 혹시 소문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도 합니다.
저는 2년 전 방송기자연합회 트라우마 전문과정으로 같이 호주 연수를 다녀온 타사 선후배들과 매달 삼성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언론과 트라우마’ 관련 공부 모임을 하고 있고, ‘피어 서포트’라고 하는 동료지지 모임도 소규모로 실험해 가고 있어요. 일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을 챙기는 이러한 다양한 모임도 저에게는 제 일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고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내가 잘하고 있나’ 고민한다는 것만으로도 상담자가 언론에 애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차면 후배들이 볼 때 벌써 자리를 잡아야 하는 엄청 연차 높은 선배로 생각할 수 있지만 선배 입장에선 아직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너무 좋은 연차라고 생각해요. 건강 잘 챙기면서, (제가 다시 10년 차로 돌아간다면 저는 운동이든 건강 관련 취미를 꼭 만들 것 같습니다) 나에게 맞는 분야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다 보면, 분명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분야나 전문성을 꼭 찾게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자’라는 직종이 예전만큼 인기가 많지 않다고도 하지만, 복합 위기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직종이 기자라고 믿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더 멋진 언론인으로 성장해 가시길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