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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제주MBC <전국 7만 명 역베팅…수천억 다단계 사기 피해>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5-05-30

베팅한 점수와 실제 경기 결과가 다르기만 하면 수익을 내는 이른바 스포츠 역베팅 사기 사건이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단순한 스포츠 도박을 넘어 다단계 사기 사건을 직감하고 보도에 나서 경찰 수사를 이끌어낸 제주MBC의 취재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미용실에서 속닥속닥 몰려간다니까요.”

 

올해 초 제주에서 한 소문을 전해 들었습니다. 50~60대 여성들 사이에서 축구 베팅 게임이 유행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참여하기만 하면 수익금을 얻는 게임이라며 미용실과 마사지 업소, 카페 등에서 회원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청소년의 불법 스포츠 도박 문제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장년 여성들이 축구 베팅 게임에 빠져있다는 사실은 새로웠습니다. 게임의 구조를 들여다보니 단순한 스포츠 도박과 양상이 달랐습니다. 스스로 경기 결과에 베팅하는 것이 아니라, 텔레그램을 통해 누군가 지시하는 대로 돈을 거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주에서는 20여 년 전 비슷한 구조의 다단계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전국에서 2조 원대 피해가 발생한 JU그룹 마케팅 사건으로 지역민들이 돈과 직장, 가족을 잃은 겁니다. 이번 사건도 게임이라는 수단만 다를 뿐, 지시대로 움직이면 수익금을 주고 하부 회원을 모집해 돈을 투자하도록 하는 수법을 보니 전형적인 다단계 사기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소문은 파다했지만, 게임과 회원 운영 방식에 대해 말해 줄 제보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해당 사이트가 별문제 없이 회원들에게 수익금을 주며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여자 대부분은 불법이나 사기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일부 회원들은 사기를 의심하면서도 당장 수익금을 얻기 위해 참여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도박 행위자로 낙인 찍힐까 취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단계식 회원 모집 방식과 텔레그램 방에서 이뤄지는 운영진에 대한 신격화, 한 게임당 94%의 승률로 0.4~1%의 배당금을 가져가는 수익 구조를 보면서 조만간 투자금을 들고 도망갈 수 있는 사기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피해자도, 제보자도 없었지만 취재원을 찾아 나선 이유였습니다.

 

그러던 중 게임 참여 회원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알게 됐습니다. 채팅방에 잠입해 정보를 얻고, 구체적인 정보를 알고 있는 회원들에게 연락처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 텔레그램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게임 사이트 운영진이었다는 남성이었습니다. 그에게서 게임 사이트 운영진이 해외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사기 조직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이 조직이 보이스피싱 범죄와도 연관됐다며 신빙성 있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이하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정부합동수사단에서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제주 곳곳을 수소문해 회원들을 모집하는 오프라인 센터 2곳을 파악했습니다.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할 첫 번째 회원을 찾아 보도를 시작했습니다.

 

 

대규모 1차 피해가 발생한 축구 베팅 경기 ⓒ제주MBC

 

 

역베팅 수익 보장? “불법 사이트 심의 요청”

 

실제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을 만나 운영 방식의 불법성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해당 사이트가 스포츠 베팅을 가장한 다단계 사기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회원들이 자율적으로 경기 결과를 맞히는 스포츠토토와 달리, 회원을 모집하는 운영진이 텔레그램 방에서 날마다 베팅할 축구 경기와 점수를 골라주면 그대로 베팅해 수익금을 얻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만들어 낸 ‘역베팅 방식’은 베팅한 점수와 실제 축구 경기 결과가 다르기만 하면 수익금을 낼 수 있는 구조로 사기성이 더욱 짙어 보였습니다.

 

회원들이 접속한 텔레그램 방의 활동들이 주요 증거가 됐습니다. 적게는 30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을 베팅한 회원들이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에 7만 명이 넘었습니다. 최소 200억이 넘는 베팅 금액이 오가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제주에서 회원을 모집하는 사무실 2곳을 찾아가 직접 센터장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불법이 아닌 합법적인 외화 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게임에 참여하는 60~70대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이들의 말을 믿고 전 재산을 끌어다 게임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1차 피해 발생 후 만들어진 새로운 텔레그램 방 ⓒ제주MBC

 

 

회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게임에 대한 공인 기관의 불법성 판단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경찰은 아직 피해자가 없어 불법성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소극적인 입장이었습니다. 공식 스포츠토토를 운영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문의해 해당 사이트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곧바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요청했습니다. 

 

보도 이후에도 불법성을 믿지 않고 베팅을 계속하는 회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단계 사기로 추정되는 이유를 밝히기 위한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회원들이 왜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기 위해 회원들을 상대로 한 수천만 원의 차량 이벤트 진행 영상을 입수했습니다. 운영진이 당첨자를 추첨하는 영상도 회원들을 수소문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주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 대전, 천안 등 전국 곳곳에 10여 개의 오프라인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다단계 회원 모집을 위해 이벤트를 진행하는 운영진 ⓒ제주MBC

 

 

이벤트에 참여할수록 출금 신청까지 베팅해야 하는 횟수를 늘려, 투자금 출금을 제한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습니다.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정부합동수사단으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를 보도해 수만 명의 회원들에게 추가 투자를 멈춰야 한다고 주의를 촉구했습니다.

 

 

전국 각 지역 센터에서 회원 모집을 위해 이벤트 상품 추첨 등을 진행하는 모습 ⓒ제주MBC

 

 

전국 센터 10여 곳… “당장 출금이 안돼요”

 

보도로 제기했던 사기 우려가 사흘 만에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운영진이 정해준 축구 경기와 점수가 실제 경기 결과와 맞아버린 겁니다. 전국에서 7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모든 투자금을 잃었습니다.

 

초기 가입 금액인 30만 원씩 계산해도 최소 210억 원. 1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는 회원들도 많아 피해 금액은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운영진들이 회원들의 보유금을 뺏기 위해 알바니아의 프로 축구 경기 승부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했습니다.

 

그동안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회원들이 이 사태로 불법성을 인지하게 됐습니다. 전국에서 피해 제보 전화가 빗발쳤고,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이 모인 피해자 단톡방이 생겨났습니다. 제주경찰청과 충북 옥천경찰서, 강원 동해경찰서 등 전국 경찰서에 피해 신고가 잇따랐습니다. 모든 수사기관을 총괄해 제주경찰청이 수사를 담당하게 됐습니다. 춘천과 충북 등에서는 공직자들이 이 불법 게임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돼 감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주 센터장 2명 구속, 방심위 접속 차단 조치

 

단순한 도박 사이트가 아닌 사기 혐의를 증명할 만한 증거를 발견해 추가로 보도했습니다. 모든 회원이 돈을 잃은 경기에서 직접 베팅을 하지 않았던 회원들도 사이트상에서 게임에 모든 보유금이 자동 베팅된 정황이 나타난 겁니다.

 

제주경찰청은 최근 제주 지역 오프라인 센터를 운영한 센터장 2명을 구속했습니다. 전 지역의 중간책들을 특정해 수사하는 한편, 해외에 조직을 둔 총책과 사이트 운영진을 쫓고 있습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경찰로부터 사이트 폐쇄 요청을 접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게임 사이트 20여 개에 대해 접속 차단 조치를 결정했습니다.

 

 

제주로 원정 고소 온 피해자들 ⓒ제주MBC

 

 

 

최근 구속된 제주 센터장 ⓒ제주MBC

 

 

보도 이후 우려했던 사기 피해가 드러나면서, 일부 회원들은 보도로 인해 운영진들이 돈을 들고 사라졌다며 취재진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보도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사기라는 사실도 모르고 게임에 참여해 전 재산을 투자한 어르신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부업을 찾던 50대 이상 여성들. 용기를 내 취재에 응해준 그들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취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텔레그램 방과 유사 사이트가 만들어져 2차 피해가 발생했고, 후속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운영진이 검거될 때까지 계속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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