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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1,000만 관중’ 시대, 올 시즌 신축 구장에 새롭게 둥지를 튼 한화 이글스의 인기도 고공비행 중이다. 스포츠 구단과 지역 연고의 관계를 조명하며 신축 구장의 명칭 변경을 이끌어낸 중도일보의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지난 1월, 프로야구 2025시즌을 앞두고 팬들에게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기 위해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떠난 시기에 새 야구장 명칭을 놓고 구단과 대전시가 갈등을 빚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당시 대전에서는 프로야구 연고 구단인 한화 이글스가 2025시즌부터 사용할 신축 구장 공사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보도는 명칭 사용권을 갖고 있는 한화가 이미 신축 구장 명칭을 정했는데 대전시가 돌연 딴지를 건다는, 지자체의 ‘갑질’을 지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한화 이글스 등 한화그룹이 대전시에 486억 원을 지불하고, 개장 후 25년간 구장 사용권과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명명권, 광고권 등을 확보해 새 구장의 이름을 ‘한화생명 볼파크’로 정하고, 공식 석상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대전시가 갑자기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를 사용하라고 공문을 보냈다는 겁니다. 시즌 파행까지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지역 연고 구단이 왜 구장 명칭에 지역명을 쓰지 않는 거지?”라는 질문에서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저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저는 한때 중도일보의 전략적인 배려로 한화 이글스 전담 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지방지 기자로서는 특이한 이력입니다. 김성근 감독 시절 홈경기부터 원정 경기까지 140경기 남짓 취재를 했습니다. 모든 구장을 다니며 각 구단의 분위기와 스포츠 언론사의 취재 환경 및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특히 당시 창원이나, 광주, 대구 등 신축 구장을 보면서 대전에도 신축 구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팬들의 관람 편의는 물론, 구단의 수익 창출, 최상의 경기력을 통한 선수의 성적 향상 등 신축 구장의 많은 이점을 느꼈습니다. 그때 타 구장의 명칭에 지역 연고 명칭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왜 한화만 ‘대전’을 사용하지 않는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당시 한화는 옛 한밭야구장을 리모델링해 홈구장으로 사용했는데 명칭이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였기 때문입니다. 구단 관계자는 구장 명칭 사용권은 시설 개·보수를 지원하며 갖게 된 것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대전시도 “(협약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며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별다른 성과 없이 가슴 한편에 궁금증을 묻어뒀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때의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 듣고 싶어졌습니다. 신축 구장 건립으로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역 언론에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
첫 보도를 하기 전부터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대전시가 여론에 부담을 느껴 한화 구단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입니다. ‘명칭을 변경하기에는 이미 시기를 놓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한 문제 제기로 사안이 끝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문제의 본질은 다르지만, 처음 보도한 언론사 입장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데스크와 보도 여부를 논의했습니다. 결론은 지역 언론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이야기라며 데스크가 힘을 실어줬습니다. 그렇게 1월 13일 자 1면 톱기사로 <대전 신축야구장 명칭서 ‘대전’ 빠진다> 보도가 나갔습니다. 당시 보도에는 1면 기사와 함께 18면에 <한화 이글스의 대전 지우기>라는 기자 칼럼이 함께 실렸습니다. 안돼도 할 말은 해보자는 의미에서 기자의 생각을 쓴 글이었습니다.
첫 보도 이후 사내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편집국장을 비롯해 회사 임원진까지 “신축 구장에 지역 명칭을 넣어보자”라며 힘을 실어줬습니다. 그렇게 관련 보도는 일주일이 넘게 매일 1면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명칭 사용을 위한 논리 마련이 중요했습니다. 첫 번째는 우선 타 구단과의 비교였습니다. 한화를 뺀 프로야구 9개 구단 중 서울과 부산을 연고로 하는 4개 구단을 제외한 나머지 구단은 모두 구장 명칭에 지역명을 넣고 있었습니다. 잠실과 고척, 사직도 사실 따지고 보면 지역 명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니폼과 엠블럼도 비교했습니다. 지역명 유니폼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유래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홈 유니폼에 팀명이 들어가고 원정 유니폼에 지역명을 표시합니다. KBO 구단들은 한동안 지역명을 유니폼에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KBO의 경우 구단 이름이 모기업과 팀 명칭의 결합 형태로 이뤄지다 보니 유니폼에 지역명 대신에 모기업이나 팀 이름을 표기합니다. 그러던 중 타 구단들은 지역민들의 사랑을 얻고 지방자치단체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케팅 수단으로 지역명 유니폼을 만들었지만, 이것도 한화 구단만은 예외였습니다.
구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BI도 살펴봤습니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두산과 LG를 비롯해 KT와 롯데, NC 등이 지역명을 엠블럼에 넣었습니다. 타 구단은 연고지를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깊이 들었습니다. 특히 ‘서울의 자존심 LG트윈스’라는 문구는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신문의 특성을 살려 이런 점을 비교하는 기사를 더욱 돋보이게 했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사진이나 이미지를 활용하니 한눈에 비교가 가능했습니다. 뒤에서 묵묵히 지면을 만드는 편집기자의 고마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역은 구단의 뿌리다
보도를 이어갈수록 주변에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구장 명칭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습니다. 야구팬 입장에서 구장 명칭은 대수롭지 않다는 의견도 다수였습니다. 찬반 의견이 혼재돼 여론 동향이 중요한 상황이 됐습니다. 다행히 주변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해 팬 카페 등에 가입해 관련 보도에 대한 여론을 수집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사 방향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지방자치단체인 대전시에 불만을 표시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2군 구장 건립 과정이나, 신축 야구장 조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등 팬 입장에선 답답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에도 대전시의 갑질이라는 기사도 있었던 만큼, ‘오죽하면’이라는 여론도 컸습니다. 그래서 대전시의 행정 미숙을 인정하면서 한화 구단의 지역 홀대를 부각했습니다.
구장 명칭은 명명권이 있는 한화 구단 마음대로 아니냐는 논리도 있었습니다. 명명권은 신축 구장 건축 비용으로 486억 원을 지원하고 얻는 것입니다. 25년 동안 사용하니 연간 약 20억 정도의 임대료를 내는 셈입니다. 대신, 관중 수익이나 광고료 등 구장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은 한화 구단이 갖게 됩니다. 반면 대전시는 구장 건설에 1,438억 원의 세금을 썼습니다. 막대한 혈세를 쓴 이유는 시민의 스포츠 관람 편의 증대와 주변 상권 활성화 등을 고려한 점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화 구단을 사랑하는 지역사회의 배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막대한 세금을 들인 공공체육시설에 지역 연고 명칭을 쓰지 못한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를 보도에서 강조했습니다.
한편, 구단 중심 여론에 대해서도 반박했습니다. 프로스포츠의 근간은 팬이고, 지역과의 연고가 가장 중요합니다. 재정 적자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팬층이 더 깊어져야 합니다. 구단 운영에 따른 무형적 가치인 브랜드 가치도 고려해야 합니다. 중앙에서 다뤄지지 않는 이런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지역의 자존심, 구장에 새겨진 ‘대전’
보도 이후 대전시는 찬성 여론을 등에 업고 다시 한화 구단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구장이 위치한 대전 중구를 비롯한 5개 구청장들도 지역 명칭 사용이 필요하다고 나섰습니다. 여기에 지역 야구계를 비롯해 지역 국회의원들도 신축 구장 명칭 변경에 힘을 보탰습니다. 특히 한화 구단과 동고동락한 원조 팬들이 ‘지역 명칭 사용’ 필요성에 목소리를 냈습니다.

결국 첫 보도가 나간 지 일주일 만에 한화 구단은 신축 구장 명칭을 ‘대전 한화생명볼파크’로 하겠다고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그렇게 신축 야구장에 ‘대전’ 명칭 사용을 위한 노력은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됐습니다. 올 시즌 한화가 고공행진을 벌이면서 전국에서 많은 야구팬이 ‘대전 한화생명볼파크’라는 간판을 보고 있습니다. 중계방송 카메라에도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이라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번 보도는 단순히 구장 명칭 변경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프로구단이 가져야 할 연고지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구장 명칭 논란 이후에도 한화 구단이 한화생명 본사 건물인 ‘63빌딩’ 대형 조형물을 설치했다가, 지역과 연관 없는 상징물이라고 철거하기도 했습니다. 지역 연고는 한국 프로야구를 빠르게 안착시킨 요인이기도 했지만, 프로야구에 참가하는 기업들 다수의 직접적인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향토기업이 아닌, 전국 단위 대기업이 단지 창업자의 고향이나 창업 장소 등의 인연으로 엮어서 연고지를 설정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창업자 세대가 막을 내리고, 대기업이 전국을 넘어 글로벌 영업을 하는 상황에 지역 연고의 가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업 마케팅에 치중하면서 지역 정체성이 흐려지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프로스포츠 구단에게 연고지는 존립의 기반이자 인기의 기본적 토대가 됩니다. 구단과 지역사회가 서로를 응원하고 교류하며 정체성을 공유하는 프로스포츠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