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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4~6일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세계신문협회(WAN-IFRA)가 주최하는 제76회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 2025)가 열렸다. 세계 70개국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미디어와 저널리즘에 대해 논의한 이번 총회의 주요 행사를 요약·소개한다. 편집자 주
“구글을 믿지 마세요!”
폴란드 크라쿠프(Kraków)의 ICE 콩그레스 센터 3층 세미나실이 순간 웃음으로 가득 찼다. 명랑하다기보다는 무겁고 자욱한 웃음이었다. 구글이 검색 서비스에 AI를 도입하고 나서 언론사 홈페이지 트래픽이 눈에 띄게 감소했으며 이 추세는 점차 심화할 것이라는 발표를 막 마친 참의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구글은 검색 결과 상단에 ‘AI 개요’라는 이름의 자동 생성 답변을 노출하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대표는 AI 개요에 있는 링크가 일반적인 구글 검색 결과에 있는 링크보다 클릭률(CTR)이 더 높다고 강변했는데, 이는 실측 데이터와는 동떨어진 주장이라는 게 답변의 요지였다. 그러니 구글이 하는 말을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구글은 언론사의 ‘주적’인가, ‘동반자’인가
세계신문협회(WAN-IFRA) 주최로 지난 5월 4~6일 열린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를 관통하는 소재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AI였다. 모이기만 하면 AI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AI는 언론이 처한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올해 행사의 대주제는 ‘미디어의 새로운 전략 익히기(Mastering Media’s New Playbook)’였다. 산업적 측면에서나 직업윤리적 측면에서나 AI가 언론 지형을 크게 뒤흔든 탓에 게임의 판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뜻이다. 뱅상 페레뉴(Vincent Peyregne) 협회 대표(CEO)가 회원사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독립적 언론을 지원하는 것이 협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행사에서 논란이 된 AI 이슈는 주로 오픈AI를 비롯한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사의 기사 데이터 무단 학습 등 저작권 문제에 집중됐다. 반면 올해 행사에서는 좀 더 생존에 직결된 영역이 주된 논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주적’은 구글이었다. 검색 서비스 업체인 구글은 빅테크 중에서는 그래도 최근까지 트래픽을 언론사에 돌려주는 사업 모델을 운영해 왔다. 언론사들은 지난 20여 년간 구글이 지배하는 검색 시장에 적응해 트래픽에 기반한 광고를 주요 수익모델로 삼아왔다. 그러던 구글이 AI 검색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자 수많은 언론사가 존립 기반이 무너지는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 발표를 맡은 연사들은 반드시 새로 주목해야 할 현상이라는 듯 연신 ‘구글 제로’를 입에 올렸다. 구글을 통해 들어오는 트래픽이 제로(0)에 수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러나 플로어에 있는 참석자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수없이 들었을 뿐 아니라 이미 겪고 있는 일인 까닭일 것이었다.
구글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한 참석자는 문답 시간을 이용해 마틴 배런(Martin Baron) 전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에게 이렇게 질문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 언론사가 구글로부터 돈을 받아야만 할까요?” 배런 전 국장은 “물론이죠, 왜 안 되겠어요?”라고 되묻고는 “그들이 당신의 콘텐츠와 저널리즘을 이용하고 있으니 윤리적인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처럼 행사 내내 AI와 기술기업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지만, 다른 한편에선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 설정에 고심하는 모습도 비쳤다. 구글은 이번 행사에서 단 둘뿐인 ‘플래티넘 후원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재퍼 자이디(Jaffer Zaidi) 구글 글로벌 뉴스 파트너십 담당 부사장은 발표 시간 30분을 할애 받아 직접 연단에 오르기도 했다. 자이디 부사장은 “우리는 뉴스 생태계와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좋은 동반자는 항상 서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토론과 논쟁을 통해 더 나아지도록 도전하는 것”이라고 인정에 호소했다. 이어 ‘구글 제로’ 논란을 의식한 듯 “AI와 관련 상품 개발 과정에서 몇몇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하고 있지만 이는 아직 상당히 초기 단계의 일”이라며 “검색은 항상 진화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구글은 매일 수십억 건의 ‘클릭’을 언론사에 전달하고 있다고 슬쩍 강조하는가 하면 경성(硬性) 뉴스와 관련된 검색어가 입력될 때는 AI 개요를 표시하지 않으니 언론사로 가는 트래픽에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도 암시했다.
오픈AI도 언론사 달래기에 나섰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지난해 행사에서 세계 128개 뉴스룸을 지원하는 ‘뉴스룸 AI 촉매’ 파트너십을 공개한 톰 루빈(Tom Rubin) 오픈AI 최고지식재산·콘텐츠부문장은 올해 2년 연속으로 참석해 기조 발표를 맡았다. 루빈 부문장은 해당 파트너십의 대상 지역을 호주와 뉴질랜드로 확대하고, 150만 달러(약 21억 원) 규모의 AI API 크레딧을 제공하는 기금도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사들이 뉴스룸에 AI를 도입할 수 있는 ‘당근’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협회 쪽에서도 제스처를 보였다. 라디나 하임가르트너(Ladina Heimgartner) 협회장은 루빈 부문장이 발표를 마치자 그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잡아두고는 “작년에 코펜하겐에서 첫걸음을 내디뎠고 이제 두 번째 중요한 단계를 밟게 됐다”면서 “우리가 함께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관계를 과시했다. 하임가르트너 회장은 즉석에서 페레뉴 대표까지 불러 루빈 부문장과 셋이 함께 무대 위에서 ‘인증샷’을 찍는 모습도 연출했다.
실제로 오픈AI나 구글 등이 기사를 AI 학습용 데이터로 무단 사용했다는 문제는 올해 중점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기술 기업들과의 계약을 맺을 때 단호하게 대해야 한다는 조언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기술 기업들과 AI 데이터 관련 계약을 체결한 비중이 0.5~1%에 불과하다는 것도 잠깐 스치듯 언급됐다.
행사장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구독’
그렇지 않아도 뉴욕타임스가 성공적인 온라인 유료 구독 모델을 안착시킨 이후 전 세계 언론이 구독을 미래 수익 모델로 고민하던 참이다. 그러던 차에 검색엔진에서 들어오는 트래픽 급락이 예상되면서 유료 구독이라는 매력적인 대안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는 모양새였다. 사흘 내내 참석자들의 ‘연결’을 책임져준 와이파이 접속용 비밀번호부터가 다름 아닌 ‘subscription(구독)’이었다.
후안 세뇨르(Juan Señor) 영국 혁신미디어자문그룹 대표는 검색엔진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오는 트래픽이 아니라 ‘직접’ 트래픽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만약 전체 트래픽의 70%를 직접 트래픽으로 유치하지 못한다면 성공적인 언론 사업을 구축하기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플랫폼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구독자를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독자를 봐라봐야 한다는 것은 독자들의 뉴스 소비 습관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고, 충성 독자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세뇨르 대표는 “충성 독자 한 사람의 중요성은 조회수 수백만에 맞먹는다”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이런 맥락에서 기사의 양보다 질에 집중하는 고품질 저널리즘으로 구독자를 늘린 사례도 제시됐다. 폴란드 최대 일간지 가제타 비보르차(Gazeta Wyborcza)의 로만 이미엘스키(Roman Imielski) 수석 편집부국장은 2023년까지만 해도 하루에 기사를 200건 넘게 보냈지만, 지금은 150건 정도로 줄여 송고한다고 밝혔다. 이미엘스키 부국장은 “여전히 너무 많다”라면서 송고량을 더욱 줄일 뜻을 내비쳤다. 기사량을 줄여 기자들에게 시간을 벌어준 다음, 이를 바탕으로 고품질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전략인 셈이다. 비영리로 운영하며 상업 광고도 정부 지원도 없이 오로지 구독자에게서 99%의 수익을 얻는 프랑스 독립언론 메디아파르(Mediapart)도 드문 사례로 언급됐다.
일부 언론사는 구독 모델을 더욱 강화해 회원제(membership) 클럽에 가깝게 운영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의 영어 매체 키이우 인디펜던트(The Kyiv Independent)는 커뮤니티 중심의 회원제를 꾸리고 있었는데, 전쟁이 시작되자 회원 수만 명이 크라우드펀딩 모금으로 매체를 지원했다. 경제 전문 매체인 포브스는 기업인들을 위한 회원제 서비스를 운영한다.
세뇨르 대표는 구독자와 충성 독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핵심 성과지표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낚시성(clickbait) 기사’로 조회수 높이기에 몰두했거나 도달률(reach rate) 높이기를 목표로 삼아왔다면 그 전략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제시한 지표는 유지율(retention rate)이다. 요컨대 수많은 ‘뜨내기’ 독자보다 소수의 ‘단골’ 독자가 더 낫다는 설명이다. 단골 독자가 없으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고, 데이터가 없으면 광고주에게 판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달률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된 나머지 독자의 신뢰를 잃는다면, 그렇게 높인 도달률은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신뢰 잃으면 도달률도 무용지물
그러고 보면 충성 독자를 얻기 위해서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 것도 AI에 좌우되는 미디어 판도와 무관치 않다. 수익 구조상 트래픽에 목을 매야 하는데, 트래픽은 구글 검색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다 보니 보도 가치가 없는데도 자극적이거나 흥밋거리 위주의 기사를 양산해 내고는 서로가 서로를 베끼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보도 행태가 AI와 결합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생성형 AI를 도입하면 기사를 양산하고 베끼는 것은 더욱 쉽고 편리해진다. 꼭 기사 송고에 AI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AI 때문에 생기는 가짜 뉴스 또는 허위 조작 정보(disinformation)를 제대로 된 검증 과정 없이 언론이 보도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루시오 메스키타(Lucio Mesquita) 혁신미디어자문그룹 선임 자문위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교황처럼 묘사한 AI 이미지를 예시로 들며 “이는 단순히 소음일 뿐이고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라면서 “소음이 아니라 신호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허위 조작 정보에 속지 않고 줏대를 잡고 보도하려면 언론은 낮은 위치에서 신중한 태도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이와 같은 허위 조작 정보가 만연하게 된다는 사실도 새삼 지적됐다. 배런 전 국장은 “AI의 또 다른 측면은 전 세계에 즉각적으로 확산되는 수많은 가짜 오디오·비디오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이라며 “우리는 그 확산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미라 셀바(Meera Selva) 영국 인터뉴스 대표도 “미국은 특히 극단으로 양분돼 있어 허위 조작 정보가 잘 먹힌다”라고 말을 보탰다. 이미엘스키 부국장은 최근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 기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허위 조작 정보를 목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답은 다시 사람, 다시 신뢰
AI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AI로 인한 수많은 부작용을 타개할 방법으로 여전히 사람이 거론됐다. 세뇨르 대표는 언론사들이 AI를 앞다퉈 적용하느라 다소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인간적인 부분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첫째도 사람, 마지막도 사람(Human first and human last)”을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물론 보도에 AI가 적용되는 것을 반대하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앞으로 많은 보도 작업을 AI가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인정하면서도, 그 내용이 반드시 편집자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간 중심 보도를 강조한 이유는 역시 신뢰 때문이다. 저널리즘이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우려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가치는 역설적으로 신뢰가 무너진 시점에서 더욱 돋보이는 모양새다. 행사 첫날 우크라이나의 독립 언론이 올해 ‘자유의 황금펜상’을 수상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인 사건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 허위 조작 정보, 적국의 선전과 싸워가며 또 일부는 목숨을 잃어가며 용감하게 사실을 보도한 언론인들이 모두가 AI만을 이야기하는 2025년에 수상자로 결정된 셈이다.
행사의 첫머리부터 마지막까지 AI가 온통 언급됐음에도, 폐막 패널 토의 때 무대에 올라온 알렉산드라 보르하르트(Alexandra Borchardt) 협회 전문가 패널은 “우리는 AI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라고 단언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AI는 우리가 다루게 될 일반적인 조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I는 하나의 조건이나 환경일 뿐이며 저널리즘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행사 참석자들은 데스크에서 등록할 때 파란색 에코백을 하나씩 받았다. 가방에는 4컷 만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자못 의미심장했다. 20세기 초 라디오가 개발됐을 때, 그로부터 50년 뒤 TV가 보급됐을 때, 그리고 다시 20세기 말 인터넷 시대가 열렸을 때 언론은 늘 위기였다는 것이다. 언론은 언제나 위기를 딛고 더욱 크게 성장하는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보였다. 그리고 2025년 AI의 등장을 맞이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올해 행사의 마지막 순서였던 폐막 패널 토의는 서로가 낙관하는 언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끝을 맺었다. 지금껏 언론이 겪어온 역사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