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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YTN <1,022마리 산양, 그 겨울의 마지막 기록>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5-06-27

2024년 겨울, 설악산과 비무장지대 등에서 천연기념물 산양 1,022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보도됐다. 국내 서식하는 정확한 개체 수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대다수의 산양, 혹은 적어도 3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에게 잊혀가던 이 사건을 데이터 저널리즘 기법으로 다룬 YTN 데이터랩의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잠이 안 올 때 머릿속에서 양의 숫자를 세어 보면 스르륵 잠에 든다고 한다. 하지만 숫자 세기가 놀이가 아니라 재난 상황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확히 말하면 양이 아니라 산양,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라 사체, 게임이 아니라 생태적 재앙이다. 국립공원 등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산양 사체를 한두 마리 세어 가다가 그 숫자가 1,000마리까지 넘어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1,022마리의 천연기념물 산양이 한꺼번에 죽어간 그 잔혹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사람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이 역대급 사건에 대해 정부는 명확한 원인 분석을 내놓지 않았다. ‘미제 사건’으로 남은 셈이었다. 지난겨울 우리는 PC 속에 쌓여있던 산양 파일을 붙들고 막바지 정리에 몰두했다. 수주 간의 시각화와 디자인 작업 끝에 인터랙티브 사이트 <1,022마리 산양, 그 겨울의 마지막 기록>1)을 지난 2월 선보일 수 있었다. YTN의 기자 2명과 디자이너 1명, 연구원 1명, 모두 4명이 합심해서 만든 디지털 기록물이다.

 

죽음을 둘러싼 단서들

 

데이터 저널리즘을 담당하는 기자였던 필자는 지난해 여름쯤 환경단체와 국회의원실을 통해 데이터를 입수해 산양 집단 폐사를 둘러싼 여러 가능성을 살펴봤다. 설악산의 산양이 폐사한 현장도 눈으로 확인하고 주민들의 얘기도 들어봤다. 폭설이나 먹이 부족이 원인일까? 생태계 교란이 산양을 죽였을까?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감염병이 원인일까? 여러 시나리오를 추측해 보았다. 1차적인 공간 데이터 분석 결과는 기록적 폭설과 서식지 교란 2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자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African Swine Fever) 차단 울타리를 주목했다. 그런데 차단 울타리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란 심증은 있었지만 과학적 물증이 부족했다. 전문가들도 딱 떨어지는 증명 방법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중요한 실마리를 학술 데이터베이스의 한 문헌에서 발견했다. 산양의 평균 행동권 면적을 연구한 논문이었다. 행동권이란 야생동물이 생활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영역이다. 집단 폐사한 산양 대부분이 1~3월에 발견된 만큼, 겨울철 행동권 면적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겨울철엔 평균적으로 50만㎡가 행동권 면적이니 둥근 원 면적으로 환산하면 지름 798m의 영역에 해당했다. 설악산 국립공원 일대는 ASF 차단 울타리가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거기서 798m 이내에 들어오는 산양 사체 지점이 있다면, 죽은 산양이 울타리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즉, 탈진한 산양이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서식지를 가로막는 울타리에 때문에 곤경에 처했을 거라는 시나리오다. 설악산 국립공원 일대 사체의 위치 정보 241건 가운데, 울타리 798m 안에 위치한 사체는 117건. 설악산 구역 사체의 49%에 달했다. 즉 절반에 가까운 산양 사체가 울타리 영향권에 있었다.

 

 

 

나머지 절반, 울타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사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위성 영상 등을 기반으로 당시 눈이 많이 내린 곳과 사체 지점을 겹쳐 보았다. 설악산 내부 백담사 인근 계곡과 신흥사 주변 계곡과 길목에 사체 지점이 줄줄이 있었다. 3D로 시각화하니, 국립공원 내부에 몰린 사체 지점들이 대부분 계곡 부위에 줄지어 찍혀 있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가파른 벼랑에 살던 산양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오다가 눈이 깊이 쌓인 계곡에 갇혔을 수 있다.

 

복합적인 맥락이 작용한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그중 가장 인위적인 요인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바로 ASF 차단 울타리다. 울타리는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울타리가 막으려던 감염 멧돼지는 남부 지방 곳곳에서도 속출했다. 막으라는 멧돼지는 막지 못하고 산양의 발목을 잡은 것일까? 전문가 사이엔 ASF 차단 울타리가 별 의미가 없어졌는데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의견과 함께 ASF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돼지 농장을 중심으로 차단 방역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SF 울타리, 존치해야 할까? 철거해야 할까? 정부는 아직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빠진 조각들 사이로 지도를 그리다

 

필자가 관련 취재 정보를 집대성한 디지털 특집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또 다른 겨울이 닥치고 있을 즈음이었다. 산양의 사체 지점 데이터는 구조 당시 촬영된 사진에 기록된 경위도 좌표로 해결한 터였다. 그런데 차단 울타리의 위치 정보가 부족했다. 설악산부터 접경지대까지 광범위한 영역의 ASF 차단 울타리를 커버하려 했지만, 화천군과 양구군 등 민통선 북쪽의 울타리 정보가 문제였다.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설치한 2차 울타리 정보가 특히 부실했다. 지리정보시스템 GIS 파일 자체가 없거나, 있어도 위치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다. 차단 울타리가 강 한가운데를 지나가거나, 차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기도 했다. 지방자치단체 울타리 설치에만 수백억 예산이 들어갔다는데 대부분 지역의 정보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정보공개청구 끝에 시군에서 받아낸 도면을 바탕으로, GIS 지도 위에 울타리 구간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복원했다. GIS 도구로 이미지 도면을 도로와 물길 등의 배경 지도와 정렬시키고, 손으로 울타리를 조금씩 그려가는 방식이었다. GIS 시각화용 울타리 지도 제작에는 한 달 이상이 걸렸다. 그렇게 울타리와 산양 사체 지점의 상관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지도를 완성했다. 그러나 여전히 민간인 출입통제선 너머 화천과 양구군 등의 지역은 사체 지점의 패턴이 명쾌하게 설명되진 않는다. 차단 울타리 외 우리가 모르는 펜스나 추가적인 생태계 교란 요인을 상상해 볼 뿐이다. 지도는 추후 모니터링을 위한 공적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아울러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오랜 세월을 이 땅에서 함께한 ‘살아있는 화석’ 산양의 과거와 오늘, 미래를 생각해 보는 코너도 제작했다. 아득한 과거부터의 역사적 맥락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 앞으로 16년 안에 남한에서 산양의 자취가 대부분 사라질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했다. 생존의 갈림길에 선 야생동물의 미래를 상상해 보도록 했다.


당신이 선택하는 산양의 생존 시나리오

 

특집 사이트는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도록 글을 산양 1인칭 시점으로 풀어냈다. 소설 형식을 응용한 인터랙티브 코너를 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팩트를 중시하는 언론으로서는 파격적인 실험일 수 있다. 폭설이 내린 설악산에서 먹이를 찾아 얼어붙은 산속을 헤매는 산양의 여정. 설악산 장수대와 오색 지역을 서식처로 살아가는 3마리의 산양을 주인공으로 했다.

 

독자가 3마리 산양 중 하나의 캐릭터를 선택하고 다시 3가지의 경로 중 하나를 택하면 40여 가지의 시나리오 체험이 가능하다. 산을 타고 내려온 산양은 울타리에 막혀버리거나 민가로 들어가거나 로드킬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산양이나 사슴, 순록 등의 이동 특성과 에너지 소모량, 생태 등과 관련한 수십 편의 국내외 논문을 참고하고 전문가의 감수도 받았다. 당초 산양의 에너지 레벨 변화와 이동 경로까지 실감 나게 시각화하려 했지만, 기술적 한계로 일부 경로를 구현하는 데 그쳤다. 시뮬레이션은 트와인(Twine)이라는 인터랙티브 도구의 형식을 참고하되, 설계와 코딩에는 스택블리츠(StackBlitz)의 볼트(Bolt) AI 도구를 활용했다.

 

 

사이트에서는 독자가 3마리 산양 중 하나의 캐릭터를 선택하고 다시 3가지 경로 중 하나를 택하면 40여 가지의 시나리오 체험이 가능하다. <출처 - 인터랙티브 사이트 화면 갈무리>

 

 

분석이 끝나도 질문은 남는다

 

흔히 데이터라고 하면 숫자로 똑떨어지는 무언가를 기대한다. 당연히 데이터 저널리즘은 실증적 분석과 객관적 보도를 지향한다.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명확한 증거와 수치를 스모킹 건으로 제시하며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기도 한다. 반면에 안갯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길을 찾아가야 할 때도 있다. 산양 떼죽음의 원인 분석 보도가 딱 그런 경우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기사가 ‘현시점에서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나은 버전’의 설명인지를 고민하면서 기사를 썼다.

 

 아직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사체는 사람들이 다니기 쉬운 도로나 산길에서 주로 발견됐고, 깊은 숲은 조사하지 못했다. 접경지대 울타리의 전모도 알 수 없고, 이 땅에 남은 산양의 정확한 수조차 우리는 모른다. 질문은 이어진다. 산양 집단 폐사의 비밀은 언젠가 밝혀질까? 멸종위기종 보호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중요한 의제로 자리하고 있을까?

 

정부는 차단 울타리 철거 여부를 관련 연구 용역이 마무리되는 올해 여름 이후에 결정할 예정이다. 계속 지켜볼 생각이다. 부디, 다시는 잔혹한 숫자를 세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1) https://arcg.is/y5y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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