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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오마이뉴스 <[참사 아카이브: 공항 계단의 편지] 100일째 수취인불명>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5-06-27

지난해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회적 재난 앞에 ‘잊지 않겠다’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일쑤다. 179명의, 숫자로만 표현해서는 알 수 없는 고인들을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애도’의 취재 여정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참사 아카이브: 공항 계단의 편지] 100일째 수취인불명>이라는 기획을 구상하기 시작할 당시에는 애도하는 마음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간 한국 사회는 여러 참사를 겪으면서 무수히 많은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해왔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것은 정말 ‘하는’ 것일까? 기억이라는 것은 어쩌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만일 기억이 ‘되는’ 것이라면 시간이 흐른 탓에 잊혀가는 마음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한동안 그런 답이 없는 질문을 품기도 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79명이 사망했다. 제주항공 참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로 한국 내에서 가장 많은 이가 사망한 사회적 참사다. 그러나 참사가 있고 두 달이 지나도록 유가족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찾기가 어려웠다. 여기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다음의 질문을 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목소리를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인이 품은 이야기를 되살려 기록하고 또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러다 전남 무안국제공항 청사 내 계단에 빼곡하게 붙은 포스트잇 사진이 떠올랐다. 2024년 12월 29일 이후 공항에 온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남긴 포스트잇에는 참사를 처음으로 목도한 이들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참사 첫날의 무너질 것만 같은 감정이 메시지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 메시지를 읽자 두 달 만에 다시 종이에 벤 듯 참사 첫날의 선명한 감정이 차올랐다. 무안공항에 있는 메시지를 오마이뉴스에 그대로 싣고 기사로 담은 것은 참사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동시에 넘어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절실한 마음이 담긴 2,636개의 편지 앞에서

 

무안국제공항은 참사 이후로 더는 비행기가 이·착륙하지 않기 때문에 청사 계단에는 편지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통해 유가족들 역시 공항 계단을 지나갈 때면 가끔 그 편지를 읽기도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계단 위의 편지 2,636개를 그대로 실은 기획 기사를 내고 나서는 ‘이렇게 많은 편지를 어떻게 다 촬영할 수 있었느냐’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지난 2월 말 소중한 오마이뉴스 사건팀 팀장과 함께 무안국제공항에 와서 청사 양옆 계단을 빈틈없이 채운 편지를 보았다. 처음에는 이걸 하나씩 다 찍을 수 있을까? 싶어 막막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계단 위에 앉아 편지를 한 장씩 촬영하며 그 안의 내용을 읽기 시작하자 그런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오마이뉴스 제주항공 참사 100일 특집 <[참사 아카이브: 공항 계단의 편지] 100일째 수취인불명> 기획 첫 페이지 노출 화면 ⓒ오마이뉴스

 

 

편지를 촬영하는 내내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삼키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한 장씩, 한 장씩 촬영했다. 그곳에 남겨진 편지는 대부분 참사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성된 것이다. 아물지 않은 선연한 상처가 포스트잇 위에 드러났다. 글씨가 번진 채로 그대로 매달린 편지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 절실한 편지들 앞에서 내 마음도 순식간에 참사 첫날로 되돌아갔다. 참사에 대해 어떻게든 애도의 말을 전하고 싶지만 구름이 뭉게뭉게 끼고 눈물이 흘러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던 순간이 떠올랐다. 도무지 계단의 끝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소중한 팀장과 나는 아무런 말 없이 편지를 촬영했다. 고요한 공항에 카메라의 ‘찰칵’ 소리가 간혹 계단을 지나치는 유가족의 작은 목소리와 섞여서 들렸다. 왼편 계단은 내가, 그리고 오른편 계단은 소 팀장이 맡았다. 팀장에게 묻지는 않았으나 그도 분명히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꼬박 이틀을 촬영해 2,636개의 편지를 모을 수 있었다.

 

청사 바닥을 쓸고 다녀 지저분해진 바지를 그대로 입고서 서울로 돌아왔다. 그 뒤로는 메시지를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내용을 옮겨 적고 분류하는 작업을 거쳤다. 유가족, 지인, 공직자, 자원봉사자, 시민, 다른 참사 유가족까지 다양한 이들이 많은 메시지를 남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계단의 편지 ⓒ오마이뉴스

 

 

‘무명’의 시민들이 공항에 남긴 메시지를 보니

 

‘100일째 수취인불명’ 기획을 고민하던 당시 인터넷상에서는 참사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가 극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나와 같은 언론사에서 일하는 남편은 2025년 1월 1일 잠에서 깨자마자 제주항공 참사 기사에 달린 댓글 창을 닫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해야 했다. 해가 넘어가는 그 순간마저도 누군가는 유가족을 모욕하는 댓글을 쓰고, 허위 사실이 담긴 게시물을 온라인에 올리고 있었다.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가 극심해지자 경찰은 “수사력을 집중해 끝까지 추적하겠다”라고 했지만 미처 닫지 못한 포털사이트 내 뉴스 페이지 댓글 창에는 여전히 유가족을 비난하는 댓글이 오르내렸다.

 

그런 모욕이 수사와 처벌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와는 다르게 고인들과 일면식도 없이 무안공항까지 찾아와 애도와 연대의 마음을 전하는 시민들도 많았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다. 홀로 앉아 휴대전화를 열어 수시로 악성 댓글을 확인하다 보면 전국 각지에서 무안공항에 모인 시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다. 공항 계단을 수놓은 시민들의 수많은 편지는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그리고 애도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대개는 이름을 남기지 않은 ‘무명’의 시민들이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간 편지에는 이미 정부가 참사를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모두 나와 있었다. 시민들은 고인을 향해 애도의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라는, 참사 대응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세 가지 요구 사항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무지개를 보았어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 믿어요. 이제 가족분들과 저희가 연대할게요. 끝날 때까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때로 계단의 메시지는 다른 참사의 유가족이 연대의 목소리를 내는 장이 되기도 했다. 한순간에 이전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경험했지만, 온전히 애도만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도 무안공항을 찾았다.

 

“남아있는 가족분들의 아픔과 충격. 시간이 갈수록 그리움은 더할 것이라 짐작합니다. 매 순간 보고 싶고 심장이 조여오지만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하루하루를 견디게 될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아는 저도 이곳에서 유가족 옆에서 조금이나마 마음을 보탭니다.”

 

유가족과 계단의 편지를 함께 읽었다

 

여러 차례 편지를 읽다 보니 중복해서 편지에 등장하는 희생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인의 친구들이 함께 공항에 방문해 고인에게 편지를 남긴 것처럼 보였다. 여러 번 공항에 와서 “오늘도 왔다”라고 편지를 남긴 이들도 있었다. 가장 많은 편지를 받은 희생자의 유가족에게 대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는 편지의 내용을 통해 고인에 대해 일부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인터뷰이기도 했다. 참사 유가족 인터뷰 섭외는 쉬울 수 없고 쉬워서도 안 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유가족과 어떻게 인터뷰를 할 수 있을지 내 자신을 먼저 이해시키니 설득하는 일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이는 공항에 앉아 편지를 촬영한 시간이 만들어 준 것이기도 하다.

 

 

계단의 편지 ⓒ오마이뉴스

 

 

그렇게 고(故) 박예원 씨의 어머니 이효은 씨와 고(故) 이민주 씨의 어머니 정현경 씨를 만났다. 고(故) 박예원 씨와 고(故) 이민주 씨는 친구 사이로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비록 ‘수취인 불명’일지도 모르나 그럼에도 가장 많은 편지를 받은 희생자들이다. 유가족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고인 앞에 남겨진 편지를 같이 읽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는 편지를 모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이들이 또 다른 방식으로 고인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했다.

 

내가 이런 기획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종호 데이터저널리즘 전문기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소중한 팀장이 무안공항에서 촬영해 온 2,600여 장의 사진을 이종호 기자가 가장 적절한 형태의 인터랙티브 기사로 구현해 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종호 기자는 작은 포스트잇부터 비닐 포장지에 쌓인 엽서까지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편지를 읽기 좋게 만들기 위해 포토샵을 이용해 3일간 작업했다고 했다. 고인의 이름을 모두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작업도 이종호 기자가 맡았다.

 

 

무한 스크롤’ 방식을 통해 무안공항 내 편지를 볼 수 있도록 구현했다. ⓒ오마이뉴스

 

 

그는 ‘무한 스크롤’ 방식을 택해 어느 기기를 이용하든 독자들이 손쉽게 공항의 편지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기술 없이는 불가능한 기획이기 때문에 그가 아니었다면 기사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기획 <아이들의 방>을 지나서

 

그것이 무엇이든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는 말을 믿는다. 나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대학생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참사 이후 2015년부터 고인이 된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의 비어 있는 방을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방>이라는 기획 기사 수십 편을 2023년까지 내왔다. 기사에는 빈방을 참사 이전처럼 유지해 2014년 달력이 걸려 있는 방에 대해, 빈방에 다른 물건을 들여놓자 간신히 머물러 있던 아이의 냄새가 사라져서 상심한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는 이 기획을 보고 오마이뉴스에 입사했다.

 

오마이뉴스는 그간 여러 참사를 거치며 진상 규명에 대한 보도를 이어가면서도, 동시에 유가족의 목소리를 담고자 노력한 여러 언론사 중 하나다. 참사 유가족과의 인터뷰는 당연하게도 섭외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동안 쌓아온 오마이뉴스의 참사 보도를 바탕으로 유가족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짐작된다.

 

다만 취재기를 쓰면서도 여전히 참사의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100일째 수취인불명’ 기획을 보도하고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2025년 4월 민주언론실천상을 받게 됐다. 모든 기사는 ‘취재원’이 있어야 쓸 수 있기에 수 시간이 넘는 인터뷰에 응해주었던 유가족들에게도 수상 소식을 알렸다. 이들과 축하의 인사와 함께 간단한 안부를 나누었다.

 

그런데 몇 분 뒤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내가 인터뷰를 했던 분의 남편, 그러니까 참사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전화를 다시 건 것이었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내게 지난 몇 달간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고, 앞으로는 심층 취재를 부탁한다는 당부를 남겼다. 그 전화를 끊고서 ‘연루된다’라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연히 작별할 수 없는 세계”(«연루됨», 글항아리, 2024)가 여기 있었다. 179명의, 숫자로만 표현해서는 알 수 없는 고인들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여기까지 왔다. 비록 기획 기사가 마무리됐더라도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생각한 이유다. 유가족들은 제주항공 참사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는 고인들을 잘 보내주기 위해서는 고인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사망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진상 규명 없는 온전한 애도는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는 상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고통이고, 또 공포이기도 하다. 많은 공포영화가 누군가의 상실을 다루고 있는 이유는 상실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죽을 때까지’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밤마다 가슴 찢기는, 사지가 절단되는 고통의 연속”(계단 위 편지의 일부)이다.

 

가끔 나도 거리에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사람(닮은 사람일 것이 분명한)을 만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그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없이 슬퍼진다. 그러나 그저 개인의 상실이 아닌 사회적 참사로 사망한 이들은 한국 사회가 기억‘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아직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이 기획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듬거리며 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해보았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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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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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 202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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