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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23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10대 학생은 모두 1,151명. 청소년들이 더 이상 세상을 등지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EBS는 <청소년 마음건강 심층 기획> 보도로 청소년의 마음건강을 살피는 교육의 필요성을 소개했다. 청소년을 넘어 국민 마음건강의 중요성을 되새긴 취재기를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학생 자살 사망 사안 보고”
‘10대 청소년의 마음건강을 위한 교육’에 대한 기획의 도입 기사를 구상하던 중, 정보공개 포털에서 발견한 문서입니다. 홀린 듯 클릭했습니다. 교육청부터 학교명까지 공개된 이 서류는 예상대로 비공개였습니다. 알아야 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알수록,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더 적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두 달 가까이 자살 보고서 원문을 찾기 위해 매달렸습니다. 지역과 학교급을 구분해서 30건 넘게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해당 학교와 교육청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고 따져 묻다, 이의 신청을 했습니다. 개인정보만 비공개 처리하고 공개하라는 법의 취지를 설명해도 사망한 이에게 적용되지 않는 각종 법률을 이유로 모두가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공식적인 정보공개청구뿐 아니라, 취재원을 통한 자료 요구, 개별 학교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소송 직전에서야 학생들의 전수조사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교육 당국에 신고된 모든 학생 자살자의 이야기가 담긴 7년간의 보고서였습니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10대 학생은 모두 1,151명이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건 사회에 뿌리박힌 편견
“1.7일에 한 명꼴로 10대가 자살한다.” 2017년 연간 114명이었던 학생 자살자는 2023년에는 214명으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문제는 자살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7년간 평균 72%의 경우 “학생의 자살 전 변화는 목격되지 않았다”라고 조사됐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자살은 한두 가지의 대책이나 지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기획팀이 내린 기획의도이자 결론은 “학생 모두를 위한 마음건강 교육·사회 정서 학습이 필요하다”였습니다. 위기 청소년을 선별할 수 없으니 학생 전체에게 필요한 학습이 제공돼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통계 분석뿐 아니라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 간 10대, 자살 사건이 발생한 학교와 구성원, 새벽마다 자살을 고민하는 학생들을 상담하는 센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의 정서 학습을 위해 두 팔 걷고 나선 교사들, 미국 등 해외 우수 사례,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를 비롯한 학교정신건강의학회 등 이해 당사자 대부분을 취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취재진이 만난 청소년들의 교육 환경은 30대인 기자들의 학창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입시와 대학, 경쟁, 취업. 마치 경주마를 기르는 듯한 한국의 교육 제도에서 아이들에게 정작 절실한 정서 학습은 후순위였습니다. ‘지금 내 기분은 어떤지’, ‘내 기분과 감정을 친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내가 힘들 때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정신질환은 얼마나 흔한 것일까, 치료가 가능할까, 저절로 나아지는 걸까’처럼, 간단하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과 답을 10대들은 전혀 배우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교육은 간헐적으로, 정규 교육 과정 밖에서 교사 등의 자발적 노력과 헌신으로만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교육 당국, 학교의 지원도 아쉬움이 컸습니다. 수업이나 쉬는 시간에 “OO아, 위클래스(상담실)로 와라”라고 말하는 상담교사에 대한 증언도 있었고,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OO아, 너 공황 있는데 이렇게 사람 많은 거 괜찮아?”라고 묻는 담임교사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곳 가운데 1곳은 아직도,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자살을 신고했지만, 지역 자살예방센터로 연계되지 않은 경우도 발견됐습니다. 특히, 학교 밖 청소년은 위센터처럼 무료로 편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가장 심각한 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편견이었습니다. “조금 지나면 괜찮겠지”, “병원에 가거나 상담까지 받을 정도는 아니야” 같은 생각이나, 우울증이나 공황 등 보편적으로 겪는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특별대우’를 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것입니다. 이런 인식이 사회에 규범처럼 퍼져 있다면, 정신 건강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고 편하게 들여다보거나 늦지 않게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특히, ‘우리 아이는 아닐 거야’라는 생각, 혹은 ‘의지가 약해서 그래’라는 양육자의 편견은 10대의 마음을 더욱 곪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자살 위기 청소년 가운데서도 양육자의 편견과 비난으로 제대로 된 지원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보편화 된 ‘사회정서학습’ 연구, 한국은?
우리나라의 제대로 된 정서 교육은 더디기만 합니다. 올해부터 전국으로 확대된 ‘사회정서학습’은 6차시에 불과하고, 초·중·고 등 학교급에 맞게 반복적으로, 연계해서 이뤄지지 않습니다. 미국은 22년 전부터 학교 교육에서 사회정서학습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교육과정 안에서 교사가 담당하는 것을 넘어서, 카운슬러나 사회정서학습 담당자가 별도로 존재합니다. 사회정서학습은 별도로 분리된 것이 아닌, 교육 시스템 전체에 포함돼 교육 과정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사회정서학습이 실제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연구에서 사회정서학습을 경험한 학생은 정서적 우울감과 문제 행동이 각각 10%와, 9% 줄어들었고, 사회정서적 기술과 학업 성취도는 각각 23%와 11%가량 향상되는 효과가 확인됐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학교 10곳 중 8곳에서 사회정서학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국뿐이 아닙니다. 지난 2018년, 인도 델리 주(州) 정부는 공립학교 1,000여 곳에서 사회정서학습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청각·후각 등 감각 자체에 집중하거나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알아보는, ‘마음 챙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야기 속 인물의 상황을 알려주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하며 친구의 마음에 공감하는 연습을 하기도 합니다. 인도 델리 주 학생들은 이 같은 활동을 매일 45분씩 일주일에 6일간 진행합니다.
사회정서학습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됐습니다. OECD는 지난 2023년, 특정 국가와 도시 등 16개 지역 학생들의 사회정서학습과 수학과 언어, 예술 분야의 학업 성취도를 분석했습니다. 한국도 이 연구에 참여했는데, 학생들의 사회·정서 역량 수준이 높을수록 수학과 언어·예술 영역의 학업 성취도가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회·정서 역량이 하위권인 학생에 비해 중상위권인 학생의 수학 성취도는 22.4%가량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회·정서 역량과 학업 불안, 일탈 행동, 삶의 만족도 간의 상관관계 역시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의 사회정서학습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학생들이 ‘비상사태’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철야 촬영을 했던 학생모바일상담센터에는 살려달라고, 살고 싶다고, 그저 들어달라고 절규하는 아이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음성보다 문자가 편한 10대들은 카카오톡이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촬영 당일에도 한 10대가 센터를 통해 “자살하고 싶다”라며 도움의 손길을 구했습니다. 구체적인 자살 방법까지 언급되니 상담사는 즉각 경찰에 신고한 뒤 청소년의 응급 지원을 도왔습니다. 이 센터에서만 연간 7만 건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30건 수준이었던 112, 119 자살 신고 건수는 2023년 65건으로 늘어난 뒤, 지난해 8월에만 238건까지 폭증했습니다. 이마저도 ‘살려달라’고 말할 힘이 있는 아이들이고, 그조차 어려운 아이들은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다 세상을 등지는 겁니다.
코로나19 여파가 학생들의 정신건강과 자살에 통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자살 학생이 사망 전 ‘학습 의욕 부진’을 겪은 경우는 2019년 4건이었지만 2023년 23건으로 5배 넘게 늘었습니다. 학업 실패를 두려워하는 경우도 각각 9건에서 22건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정신건강 문제를 겪으며 마음의 병까지 생긴 경우는 2017년 15건에서 2023년 53건으로 4배 가까이로 뛰었습니다. 우울증 증상을 보인 경우는 2017년 24명에서 2023년 81명으로 증가했고, 지난 2023년 자살한 학생의 92.3%는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교육부에는 사회정서, 정신건강 영역만을 위한 별도의 과가 생겼습니다. 또 존재조차 하지 않던 교육에 이름이 붙고 발돋움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위기 수준이 경보가 아니라 절망에 가까운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마음건강, 청소년만의 문제일까?
기획보도가 나간 지 약 6개월이 흐른 지금, 전국 학교에는 6차시의 사회정서학습이 도입됐습니다. 또, 서울시교육청은 국립정신건강센터, 그리고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와 함께 고위험군 학생을 관리하는 데서 나아가 일상적인 마음 교육도 늘렸습니다. ‘스쿨닥터’처럼 정신건강 전문가 네트워크를 상시로 운영해 학교와 학생, 전문의 사이의 연결 고리를 더욱 촘촘히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답보 상태입니다. 이 글을 적는 2025년 6월 5일, 기획보도의 시작이었던 정보공개 포털에는 “학생 자살”로 검색하자, 모두 16건의 비공개 문서가 떠오릅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서울부터 부산까지. 여전히 나이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10대 청소년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인터뷰에서 만난 10대 학생은 시험 기간만 찾아오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털어놨습니다. 조금만 먹어도 늘 음식이 올라와 게워 낸다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성적 경쟁이 치열해져 이제는 친구를 친구로 보지 못하는 세태가 일반화됐다는 겁니다. 이 학생은 취재진에게 “같은 반 친구보다 성적이 안 나왔다고 학교폭력 신고를 하기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조기에 진단받지 못한 마음의 병은 대학생이 돼서도 이어집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진로 고민과 부족한 자기 인식으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대학생 대다수는 대학 상담센터를 이용하는 데도 짧게는 1, 2개월, 길게는 반년씩 기다려야 합니다.
지난해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전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를 심층 조사해 봤더니, 20대의 10명 가운데 8명이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20대는 평균 5.18개의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는데, 이는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였습니다. 또, 대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온전히 교육부의 소관도 아니고, 보건복지부의 담당도 아니어서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조차 없는 상황에서 마음의 병을 키운다는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변화는 우리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10대뿐 아니라 20대에서도 정신건강 분야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미국에는 또래 전문 상담가가 수만 명에 이릅니다. 한국에서도 ‘피어스페셜리스트’라는 이름으로 10대가 10대를 전문적으로 돕고, 20대 대학생들이 각자의 대학에서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프로젝트 ‘영마인드 링크’가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 전체적인 마음건강을 끌어올리는 일은, 세월의 흐름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객관적이고도 다각적으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긍정하는 데서 나의 변화, 선한 영향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난 2월 기획팀이 ‘생명존중 우수보도상’을 수상할 때 소감을 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동료 기자들에게 나눈 이야기를 복기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최근 학생들이 많이 아픕니다. 그리고 마음의 병을 가진 교사들도 많습니다. 교육 당국이, 우리 사회가 10대 청소년을 위해, 그리고 교사들을 위해 어떤 울타리가 되어주는지, 어떤 지원과 대책이 있는지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교사에 대해 비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교사가 입에 담기 힘든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교사를 비난하기 전에 사회 구조적 문제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작은 우리가 바로 옆에 있는 동료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부터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1년 넘게 우울증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씁니다. 어떤 병이, 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무엇이 불가능하다고, 어떤 사람일 거라고 판단하기보단 한 명의 사람으로, 동료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나로부터 시작해 사회로 퍼져나갈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