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최강야구>를 제작한 장시원 PD와 JTBC가 이른바 ‘맞짱’을 뜨고 있다. 이 사태는 콘텐츠 주도권이 방송국에서 플랫폼을 거쳐 창작자와 팬덤으로 이동하는 미디어 생태계 변화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PD 대 플랫폼’의 공방과 갈등이 빚은 이번 사태의 시사점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2022년 론칭한 <최강야구>는 스포츠 리얼리티에 드라마적 서사를 가미해 충성도 높은 팬덤을 구축한 JTBC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2025년, <최강야구>를 연출했던 장시원 PD와 주요 출연진이 방송사를 떠나 <불꽃야구>를 독립적으로 제작해 유튜브에서 공개했다. 현재 장시원 PD와 JTBC는 제작비 과다 청구 및 신뢰 훼손, <최강야구> IP 소유권 문제 등을 두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장시원 PD는 JTBC의 부당한 개입과 제작 압박, 출연진의 자율권 침해 등을 주장하며 JTBC와 이른바 ‘맞짱’을 뜨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 같은 ‘PD vs 플랫폼’의 팽팽한 공방과 갈등으로, JTBC는 <최강야구> 새 시즌 제작을 중단하고 새로운 제작진을 꾸렸다. 이에 장시원 PD는 <최강야구>가 아닌 <불꽃야구>를 새롭게 제작했고, 유튜브 플랫폼을 선택했다. 그러나 “유사 프로그램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며 JTBC는 유튜브에서 공개되는 <불꽃야구>를 저작권 침해로 신고했고 최근까지 공개된 5회분 영상은 모두 차단된 상황이다. 그리고 2025년 6월, SBS Plus가 <불꽃야구> 생중계를 결정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지난 6월 23일 <불꽃야구>는 급기야 독자적인 플랫폼 스튜디오 C1을 오픈했다.
방송사 없는 콘텐츠, 가능할까?
많은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이 사태는 단순히 제작비 갈등이나 저작권 분쟁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디어 산업의 구조, 콘텐츠 유통의 권력, 창작자의 자율성, 플랫폼 종속성 등 콘텐츠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탄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태의 본질은 ‘콘텐츠는 방송사를 떠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실제 실험이자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불꽃야구>는 기존 방송 시스템의 테두리를 벗어났지만, 팬덤 기반의 시청자 후원과 자체 직관 시스템을 형성하며 복잡한 미디어 시장에서 자립 가능성을 입증하는 중이다. 방송사에서 콘텐츠가 제작되고 편성·방영되는 전통 시스템은 서서히 무너지고, 콘텐츠가 다양한 플랫폼을 찾아 떠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물론 이러한 행보가 모두 긍정적으로만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 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단독 론칭은 법적으로 자칫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방송사 없이 콘텐츠 성공을 도모한 제작사의 시도가 업계의 새로운 흐름이 될지, 혹은 법적·윤리적 논란의 출발점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20년간 레거시 플랫폼 PD로 일해 온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콘텐츠가 플랫폼 없이도 자립 가능한가, 창작자는 플랫폼을 초월할 수 있는가, 그리고 시청자는 누구를 따르는가?
창작자 중심 멀티호밍 전략의 등장
미디어 시장 전반에서 멀티호밍(Multi-homing) 양상이 확산되는 추세다. 멀티호밍이란 이용자가 한 플랫폼에서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거나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콘텐츠를 OTT에서도 보고, 유튜브에서도 소비하는 현상이 그 예다. 멀티호밍은 최근 몇 년 사이 점차 가속화됐지만, 2024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왔다(황용석·김헌, 2025). 플랫폼 간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시청자의 콘텐츠 선택권은 확대되고 있다. 특히 Z세대를 중심으로 한 ‘모바일 네이티브’ 세대는 콘텐츠 중심으로 플랫폼을 능동적으로 넘나드는 미디어 소비 패턴을 보이는 중이다(천종성, 2023).
그리고 <불꽃야구> 사례처럼, 최근 콘텐츠 생태계에서는 창작자와 콘텐츠 자체가 멀티호밍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불꽃야구>는 JTBC를 떠나 유튜브에서 공개돼 팬들과 직거래하며 입지를 다졌고, 이후 SBS Plus 생중계를 통해 케이블 방송으로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팬은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의 세계관’과 ‘브랜드화된 창작자’를 따라 이동했다. 이 흐름은 프로그램 창작자가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플랫폼을 선택하며 콘텐츠 주권을 획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비슷한 사례로는 <정년이>와 <피지컬: 100>이 있다. <정년이>는 당초 MBC에서 기획됐으나, 제작비 이슈로 갈등을 겪다가, 연출을 맡은 정지인 PD가 tvN으로 이적하면서 결국 성공적으로 방송됐다. <피지컬: 100>의 장호기 PD는 MBC에서 시즌 1을 성공리에 마친 뒤, 시즌 2는 갤럭시 코퍼레이션에서, 시즌 3는 김태호 PD의 제작사 TEO에서 제작을 진행했다. 창작자가 이동해도 콘텐츠의 생명력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되는 흐름은, 이제는 플랫폼보다 창작자의 스토리텔링 능력과 팬덤이 더 중요해진 시대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시청자와 창작자 모두, 목적에 따라서 다양한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멀티호밍의 시대다.
미디어 빅블러가 가져온 경계 해체
<불꽃야구>는 플랫폼 경계가 해체되는 미디어 ‘빅블러(Big Blur)’ 현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빅블러란 플랫폼, 장르, 직군, 포맷 간의 경계가 점점 무의미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조용호, 2013). 원래는 산업 간 융합을 가리키는 경영학적 용어였지만,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콘텐츠 생산과 유통, 소비 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계 해체 현상’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현재 많은 콘텐츠가 서로 다른 영역을 초월하기도 하고, 하나의 콘텐츠에서 다른 콘텐츠로 파생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이동미 외, 2024). 콘텐츠는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채널로 유통되며, 플랫폼 정체성은 흐려지고 있다. 미디어 장르, 제작 방식, 유통 구조의 경계가 해체되며, 콘텐츠는 플랫폼 정체성에 영향을 받기보다 창작자의 감각과 팬덤 충성도에 의해 그 본질이 결정되고 있다.
전통적 제작 방식의 ‘포맷은 방송사, 유통은 플랫폼’이라는 공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콘텐츠는 하나의 브랜드로 독립하며 확대되고, 창작자는 자율적 콘텐츠 환경 설계자이자 팬덤 커뮤니티의 호스트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콘텐츠를 둘러싼 기존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 위협일 수도,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콘텐츠 소비자들은 이미 플랫폼 간 경계가 사라지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으며, 플랫폼은 점차 ‘선택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팬덤의 선택과 콘텐츠 주권의 이동
이 모든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은 결국 팬덤이다. JTBC가 유튜브 측에 요청해 <불꽃야구> 영상이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을 때, 팬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해시태그 운동, 댓글 캠페인, 슈퍼챗 후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그램 편에 섰다. 이들은 단순한 시청자가 아니라, 콘텐츠를 둘러싼 생태계에서 능동적이고 실질적 주체로 활동한다. 이제 플랫폼은 더 이상 콘텐츠 소비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팬덤은 감정적 몰입, 세계관 공유, 창작자 신뢰를 기준으로 콘텐츠를 자유롭게 선택하며, 플랫폼 간 이동도 손쉽게 감행한다. 이러한 팬덤 중심의 콘텐츠 소비 구조는 기존 방송사 중심의 ‘편성 기반 소비 구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팬은 플랫폼보다 크리에이터를 따라가고, 프로그램보다 세계관을 지지하며, 브랜드보다 연출자의 감각과 코드를 신뢰한다. 이 흐름 속에서 방송사의 권위와 플랫폼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콘텐츠가 다양한 플랫폼으로 자율적으로 이동할 것이며, 그 동력의 중심에는 팬덤이 있다. 지금, <불꽃야구>가 그 현상을 반영한다.
2025년 6월, SBS Plus는 <불꽃야구>의 경기를 생중계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법적 분쟁 중인 콘텐츠를 기존 방송 플랫폼이 수용한 국내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스포츠 중계라는 명분이 있더라도, 본질은 창작자 중심 콘텐츠가 방송 영역과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넘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불꽃야구>를 품은 이유에 대해 SBS Plus는 “다수의 시청자가 관심을 갖고 열광하는 콘텐츠를 서비스할 예정이다. 시청자들에게는 좋은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이에 성실히 응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콘텐츠의 영향력이 플랫폼의 권위보다 강하다는 인식을 대중과 산업계 모두에 각인시켰고, 향후 유사한 콘텐츠 이동과 분화의 명분을 만들어 줄 초기 사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JTBC는 강한 반발을 표했지만, 콘텐츠가 더 중요한 시청자들은 플랫폼의 논리보다 감정적 연대에 반응한다. 이 구조는 향후 플랫폼 간 경쟁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다. 단순히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을 넘어, 창작자와의 관계, 팬덤과의 신뢰, 플랫폼 유연성 등이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력을 작동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콘텐츠 주권 시대의 도래와 콘텐츠 생태계 전환점
<불꽃야구>는 방송사 중심 생태계에서 창작자와 팬덤 중심 생태계로 전환하는 징후를 선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창작자는 더 이상 방송사에 종속되지 않으며, 팬은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와 세계관을 따라간다. 앞으로 플랫폼은 더 이상 콘텐츠를 소유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도적, 산업적 재설계다. 또한 방송 콘텐츠 산업의 계약, 권리, 제작 관행 등을 다시 논의하고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방송사와 제작사 간 권리 분쟁은 이른바 상도덕이나 애매모호한 내부 합의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K-POP 산업에 이미 ‘경업금지 조항’이 도입된 것처럼, 방송 콘텐츠 분야에서도 공정하고 명확한 표준 계약서와 분쟁 조정 기구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자 중심의 IP 구조와 합리적 계약서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유사 포맷에 대한 윤리적·법적 판단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
콘텐츠는 이제 ‘누구의 것인가’를 넘어, ‘누가 어떻게 만들며, 누가 함께 소비하고 성장시키는가’로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다. 플랫폼 중심의 콘텐츠 산업이라는 지난 시대의 프레임을 넘어, 창작자 중심의 콘텐츠 생태계라는 새로운 지형 위에 서 있다. <불꽃야구>는 하나의 예외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의 예고편이다. <불꽃야구>는 이 변화의 선두에서 미디어 산업 전반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할지는, 지금 이 변화하는 생태계 안에 있는 이용자들의 몫이다. 이제 콘텐츠는 플랫폼에 귀속되지 않으며, 플랫폼은 더 이상 콘텐츠를 소유할 수 없다. 누가 먼저 이 변화를 인식하고, 제도와 구조를 유연하게 설계하느냐가 미래 콘텐츠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엄격한 경계 짓기가 아니라, 경계 넘기를 받아들이고 현실적으로 제도화하는 일이다. 창작자의 권리와 팬덤의 선택을 존중하고, 플랫폼과 방송사, 제작사가 대등하게 협업할 수 있는 미디어 콘텐츠 생태계의 구축이야말로 이 전환기의 핵심 과제다. 앞으로 콘텐츠는 더 이상 어디에 있느냐보다 누가 만들고, 어떻게 연결되며, 왜 지지받는가로 가치를 평가받을 것이다. 플랫폼을 떠난 콘텐츠는 스스로 길을 만들고, 팬덤은 그 여정에 기꺼이 동행하고 있다.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변화의 최전선에서, 콘텐츠의 시대는 과연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떻게 새롭게 정의될까? 지금의 <불꽃야구> 행보를 유심히 그리고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