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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세계일보 <심층기획-탐욕의 금융>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5-07-25

20만 원 대출이 1억 원으로 불어날 수 있는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불법 사금융 피해 사례는 수시로 언론에 오르내리지만, 실질적인 대책에 대한 보도는 들려오지 않는다. 불법 사금융을 비롯, 가상자산 사기, 사모펀드 문제까지 대한민국 금융의 구조적인 문제를 추적한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저기…혹시…기자님이신가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청년의 쑥스러워하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첫 대화부터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상황을 토로하는 그의 이야기에서 세계일보 <심층기획-탐욕의 금융>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제가 만난 26살의 인호 씨는 호기심으로 알게 된 온라인 도박사이트 광고를 보고 불법 사채업자에게 20만 원의 돈을 빌렸고, 결국 어머니의 퇴직금 1억여 원으로 갚았습니다. 20만 원이 1억 원이 되는 이야기는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처럼 불법 사채업자에게 어머니의 퇴직금까지 뜯겼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협박입니다. 제대로 된 차용증도 없었지만 가족과 친구들, 심지어 회사 대표 연락처까지 넘긴 그는 불법 사채를 썼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전전긍긍했습니다. 결국 인스타그램에 개인정보 유출범이라는 오명까지 쓰며 이른바 박제를 당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저당잡힌 것이라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그런 그는 올해 또다시 20만 원을 빌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불법 사채업자는 그에게 1,700만 원을 갚으라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계속 불법 사채를 쓰는 그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액이라 언제든 갚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당장 다음 주에 40만 원을 갚아야 하는데 못 갚다 보니, 어느샌가 1,700만 원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불법 사채업자는 인호 씨가 다니는 회사 대표에게 전화해 인호 씨의 불법 사채 이용을 알리며 협박했다고 합니다.

 

이는 돈을 빼앗는 경제 범죄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인호 씨의 불법 사금융 이용으로 가족은 해체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이미 불법 사채업자들에게 피해를 본 인호 씨의 형과 누나는 인호 씨와 절연한 상태고, 어머니는 인호 씨의 빚을 갚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가족의 생계마저 위협받는 상황입니다.

 

그간 금융당국을 출입하는 기자로서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로 취재해 왔지만, 마음 한쪽에선 서민들에게 금융은 먼 것이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돈을 잃는 자본시장에서 승자와 패자는 있기 마련이고, 특히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금융은 오랜 기간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도구라 비판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금융의 또 어두운 이면에는 은행을 비롯한 제도권에서 받아주지 않는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이 존재했습니다. 어쩌면 금융당국을 출입하는 기자로서 불법 사금융에 관심 갖는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만 원 빚이 순식간에 2천만 원으로 불어나

 

불법 사금융을 심층 취재하겠단 마음을 먹고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다방면으로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주무 기관인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신고센터를 비롯해 경찰과 검찰 등에 피해자들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고, 얼마 뒤 경북의 한 경찰서에 불법 사금융 관련 고소장이 접수됐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수소문 끝에 인호 씨와 연락이 닿았던 것입니다.

 

인호 씨뿐만 아니라 취재 기간 대부분 시간을 불법 사금융의 여러 피해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할애했습니다. 최대한 많은 피해자를 만나 공통점을 찾아낸다면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불법 사금융의 추세와 특징 등을 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기자가 만난 피해자 대부분은 20~30대 청년들로 여자친구 생일선물을 사주기 위해, 생활비가 모자라서, 차량 할부금 갚을 돈이 없어서 등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이유로 20~50만 원을 불법 사채업자에게 빌렸습니다. 그리고 그 돈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2,000~5,000만 원의 살인적인 빚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중에선 온라인에 사채를 썼다는 신상이 퍼져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20대 취업준비생도 있었습니다.

 

피해자 중에는 현직 경찰의 자녀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현직 형사인 한 청년은 지난해 10월 50만 원을 빌렸다 6개월 만에 1,900만 원을 갚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봐 갚아줄 수 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수의 제보자를 만난 뒤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기자가 가진 궁금증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SNS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온라인 범죄 조직의 특성상 오프라인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습성이 있고, 특히 수사기관의 수사선상에 오르는 것을 끔찍히 싫어합니다. 원금 20만 원을 빌려주고 협박을 일삼으며 피해자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가는 불법 사채 조직의 범죄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에 불법 사금융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기 위해 불법 사채업자를 꼭 만나야 했습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만으로는 언제나 그렇듯 ‘수박 겉핥기식’ 취재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 된 원인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SNS에 개인정보 유출해 피해자를 협박

 

경찰과 검찰 등을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서울 중구 을지로 한 사무실에서 조폭 출신 사채업자를 만났습니다. 180cm의 큰 키에 말쑥한 정장을 입고 반듯한 모습으로 나온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돈이 되니 하는 거죠”였습니다.

 

20대부터 조직에 몸담으며 온갖 산전수전을 겪은 그가 자리 잡은 곳은 불법 사금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는 피해자들이 이자를 낼 시기가 되면 같은 회사 다른 직원이 연락을 취해 또다시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빚을 불렸습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을 뿌리는 등으로 협박해 연이율 2,000%에 달하는 살인적인 이자를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불법 사금융이 아니라 사기와 협박 등 범죄로 진화한 것입니다. 불법 사채업자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얼마나 벌고 있는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그에게서 피해자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죄책감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불법사채업자는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기자에게 당당히 소개해 줬습니다. 피해자들과 똑같은 2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한 앳된 모습의 20대 남녀들이 전화기 10대가 있는 책상에 앉아 저마다 대출을 권유·추심하고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은 다른 업체인 줄 알지만, 사실 같은 회사 직원들끼리 정보를 공유해 상환일이 되면 먼저 연락해 돈을 빌려주고 피해자의 빚을 늘려 나간다는 게 불법 사채업자의 설명이었습니다.

 

특히 직원 한 명은 과거 이 업체로부터 돈을 못 갚아 불법 채권 추심을 당했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일을 하는 피해자였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추심에 실패하면 제가 받을 돈에서 빼기 때문에 저희도 어쩔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불법 사채업체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시중 은행 본사들이 즐비한 을지로역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던 기억이 납니다. 생활비가 필요해 인생을 담보로 불법 사금융에 손을 댄 피해자들과 이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돈을 받아내야만 하는 또 다른 가해자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불법 사금융 시장은 이제 살인적인 이자를 받아내는 금융 범죄를 넘어 범죄의 피해자와 범죄자를 양산하는 범죄 양성소가 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피해자들의 연령이 낮아지면서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협박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제가 취재하며 SNS에서 모은 개인정보 유출 사진만 무려 120여 장에 달합니다. 현실 세상 못지않게 온라인상의 본인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피해자들을 협박하기 위해 불법 사채업자들은 이들과 가족, 지인들의 사진까지 온라인에 게재해 협박용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 교묘하게 마치 피해자들이 개인정보 유출범인 것처럼 포장해 이들을 고소하라며 조롱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취재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인스타그램에서 개인정보 유출범을 검색하면 불법 사금융 피해자 수십 명이 돈을 갚겠단 각서를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습니다.

 

피해자 못 막는 정부와 금융당국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하게 할 정도의 악질적인 협박, 그 이면엔 제어할 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이 있습니다. 단순히 돈을 벌려는 욕심을 넘어, 타인의 삶을 짓밟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불법 사금융의 근본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지난해엔 불법 사채업자의 추심을 견디지 못한 한 엄마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의 사례가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고 있지만 우리 금융당국을 포함한 정부는 이런 피해자들을 지키는 데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은 온라인에서 본 불법 사금융 배너 광고를 보고 불법 사채업자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금융당국은 한해 1,000~2,000건의 불법 사금융 정보를 차단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합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기막힌 사실은 이 정보의 80% 이상이 각하되고 있단 사실이었습니다. 즉 불법 사금융 피해자 양산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삭제 조치를 요청하지만 막상 삭제하려고 들어가 보면 이미 불법 사채업자들이 게시물을 삭제했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몸담았던 한 방심위원은 기자에게 “불법 정보는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만들어졌다가 빠르게 삭제된다”며 “애당초 금감원이 적발한 뒤에 방심위에 이첩이 되고, 그 후에야 심의에 나서는 상황인데 불법 사채업자들이 그 온라인 정보를 그래도 남기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금융당국의 인식이 얼마나 안일한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기자의 지적에 방심위는 “금융당국이 관련 정보를 너무 늦게 준다”라는 입장을, 금융당국은 “방심위의 심의 자체가 너무 오래 걸린다”라는 입장입니다. 사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책임 공방을 벌이는 와중에도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은 계속 양산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도 불법 사금융을 바라보는 인식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불법 사금융을 단순히 경제범죄로 보고 있었고, 사건처리는 지지부진하기만 했습니다. 불법 사금융 관련 피의자 중 구속 비율이 1%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은 이런 수사기관의 안일한 인식을 뒷받침했습니다. 피해자 중 일부는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지만 “온라인상에서만 이뤄진 거래는 대포폰일 가능성이 있어서 즉각적인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많은 피해자는 이런 수사당국의 안일한 대처에 “절망적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길모퉁이에 붙은 ‘카드 대출’ 광고 전단. 불법 사금융의 진입로는 이렇게 평범한 도시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 ⓒ뉴스1

 

 

기자는 불법 사금융 사무실을 운영 중인 조폭 출신 사채업자에서부터 최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불법 사금융의 피해자들, 불법 사금융을 근절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변호사, 불법 사금융에 대한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 출신 국회의원 등 가능한 많은 관련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취재하면 할수록 과연 금융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대한민국 금융의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법률»에서 “이자를 붙여서 돈을 빌려주어서는 안 되고, 그런 돈을 빌린 사람은 이자도 원금도 일절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금융의 위험한 속성과 욕망을 제어할 줄 모르는 인간의 습성을 간파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불법 사금융의 현실은 이런 인간의 욕망과 제어되지 않는 금융의 문제가 극에 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후 취재진은 불법 사금융을 넘어 다양한 각도에서 대한민국 금융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점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동산 경매가 최대치로 올라가고 있는 현재 사상 최대 이익을 내는 은행에서부터 새로운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는 가상자산 관련 사기, 홈플러스 사태로 불거진 사모펀드에 대한 불편한 진실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취재는 없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 학계와 법조계, 국회 등의 의견을 듣고 다방면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번 <심층기획-탐욕의 금융> 기사로 인해 불법 사금융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인류의 발전은 일부분 그런 욕망 위에서 발전합니다. 다만 이번 기사가 금융당국과 수사당국의 인식 전환에 작은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금융을 대하는 자본시장의 시각이 내부보다는 밖을 향해 서민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심층기획-탐욕의 금융> 기사를 준비하며 개인적으로는 서민들의 삶에 직접 닿아있는 금융의 무서운 모습에 몸서리쳤던 적이 많았습니다. 기사를 출고한 날 미국발 관세 부과 유예로 코스피 지수가 올랐다는 기사를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언론에서 언급하는 증시와 가상자산, 부동산 등으로 자산을 불려 나가는 누군가와 20만 원을 빌려 인생을 저당 잡힌 청년들의 이야기는 지금 대한민국 금융이 처해있는 양면적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했던 금융은 대한민국에서 순기능을 넘어 인간의 탐욕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취재가 가능했던 것은 제 개인의 노력 덕분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치부일지 모르는 자신의 과거를 용기내어 말해준 제보자들과 취재에 도움을 주신 관련 부처 관계자들, 함께 자료를 찾아주신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의 이승은 선임비서관, 각자의 업무와 녹록지 않은 취재 환경에도 불구하고 선뜻 취재에 나서준 박미영·김병관 기자, 기사가 길을 잃지 않게 도움을 주신 김용출 부국장과 우상규 경제부장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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