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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 인구 2만 명 이하의 질병을 희귀질환이라 한다.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희귀질환자들은 의료 파업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년여 동안 희귀질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세상에 알려 변화를 이끈 경기일보 알파팀의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우리 기획취재,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2024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 친한 이호준 경제부장과 마주 앉아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역신문이 가진 많은 한계들,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고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섞이며 이 고민은 꽤 긴 시간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이 흘러 이 부장으로부터 ‘막내급 기자 2명을 부서 업무에서 아예 배제하고 기획팀 업무만 하게 하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받았다. 가능한 일인가 반신반의했고, 가능하다면 후배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일간지로 매일의 이슈를 다루다 하나의 이슈를 세밀히 다루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팀이 만들어졌다. 당시 사회부였던 오민주 기자, 정치부 이진 기자가 첫 번째 알파팀의 팀원이 됐다. 취재와 보도 기간을 고려해 희귀질환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기획 기사가 연이어 보도될 수 있도록 4개의 경기알파팀을 우선 구성했다. 그렇게 톱니바퀴와 같은 준비를 끝내고, 기획팀 구성을 마쳤다.
버려진 희귀질환자를 마주하다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하기 전 아이템 선정에만 두 달 정도가 걸렸다. 처음 한 달은 어떤 아이템을 정할지 고민했고, 남은 한 달은 그 아이템을 어떻게 풀지에 대해 고민했다. 처음에는 세 사람이 모여 앉아 한참 대화를 나눴다. 주제를 정하지도 않고, 평소 하고 싶었던 아이템들을 그냥 공유하는 자리였다.
“얼마 전에 희귀질환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시설을 전전하고 있다고 해요.”
이진 기자가 생후 38개월 아이의 사연이라며 지호(가명)의 얘기를 꺼냈다. 지호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서 희귀질환을 이유로 버려졌다고 했다.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고, 장애가 있어 입양도 되지 않아 장애아동 거주시설을 전전하고 있었다.
지호의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희귀질환. 유병 인구가 많지 않은, 말 그대로 희귀한 질환을 앓는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던 보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지난해는 의대생 증원 논란으로 의정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이라 희귀질환자뿐 아니라 환자라면 누구나 병원 진료에 불편을 겪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희귀질환자들의 불편은 더 크지 않을까. 그렇게 지호의 이야기에서 고통의 굴레 희귀질환 시리즈는 시작됐다.
희귀질환자와 보낸 한 달
아이템을 선정한 뒤부터는 마음이 급했다. 자신의 병을 외부에 드러내야 하는 일에 이들이 협조해줄까 걱정스럽기도 했고, 희귀질환자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다루려면 최대한 많은 희귀질환자를 만나고, 친해지고,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야 했다. 이 과정을 해내지 못한다면 이 기획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끝이 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곧장 다음날부터 희귀질환자를 찾아갔다. (사)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을 비롯해 여러 환자 단체와 접촉했고, 희귀질환자의 고충에 대해 들은 뒤 실제 환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병원 진료에 동행하기도, 등굣길을 함께하기도 하면서 이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육체적 고통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 민수(가명) 씨는 매일 밤잠을 설쳐야 했다. 잠든 지 몇 시간 만에 깨 고통과 사투를 벌이며 수면제를 털어 넣길 반복했다. 4개월을 넘긴 의료 파업으로 진료도 쉽지 않았다. 한번 집 밖을 나서려면 25알의 약을 먹어야 했다. 밤잠을 설치고, 지팡이에 몸을 기대 대학병원까지 2시간이 걸려 도착한 민수 씨는 네 곳의 진료과를 돌아다니며 굳게 닫힌 문을 확인했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8시간 30분을 꼬박 병원 진료에 쏟아야 했다. 그가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했어요. 팔다리를 다 잘라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병원 진단에만 일생 쏟는 희귀질환자들
병원에 가 진료를 받고 검사를 해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는 일. 당연한 것 같은 그 일이 희귀질환자들에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우리가 만난 희귀질환자들은 진단을 받기 위해 수많은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이유조차 알 수가 없었다. 희귀질환으로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1,000일이 걸렸다. 3명 중 1명은 다른 질환으로 진단받아 치료하다가 제대로 된 병명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이는 환자가 200명 이하로 유병률이 극히 낮거나 별도의 상병코드가 없는 극희귀질환자, 병명을 확정 짓지 못했거나 진단이 불명확한 상세불명 희귀질환, 새로운 염색체 이상으로 별도의 상병코드가 없는 기타염색체 이상질환의 경우 더 심했다.
‘펠란-맥더미드 증후군’인 찬영(가명)이의 어머니 수현(가명) 씨를 만나 확인한 이들의 진단 방랑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수현 씨는 찬영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매일 기록한 일기를 우리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울지 않던 찬영이를 처음 만나던 날의 기록과 함께, ‘황당’하다는 감정으로 시작해 ‘강직’, ‘우심증’, ‘우측 귀 청력 소실’ 같은 의학적 용어들이 하나둘 등장하기까지의 과정, 뇌병변 진단을 받은 찬영이를 보며 무너지던 수현 씨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수현 씨는 2년이 지나서야 찬영이의 제대로 된 병명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수현 씨뿐 아니라 모그항체질환을 앓고 있는 수일(가명) 씨와 사르코마리투스를 앓는 재석(가명) 씨도 모두 우리에게 진단까지의 어려움이 컸다고 털어놨다. 수일 씨는 4년을, 유전성강직대마비를 앓는 정우(가명) 씨는 13년을, 재석 씨는 무려 20년을 정확한 병명도 알지 못한 채 고통받아야 했다.
병마보다 무서운 사회의 시선
희귀질환자 보도를 꼭 해야겠다고, 잘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한 건 열두 살 지영이와 만나면서다. 엔젤만증후군을 앓는 지영이는 또래 아이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을 누리지 못한 채, 상처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지영이가 워터파크에 갔던 어느 날, 몸을 제어할 수 없어 뒤에서 걸어오던 아이의 손을 치게 됐다고 했다. 그때 그 아이의 아빠는 “왜 이런 아이를 여기에 데려왔냐”며 소리를 질렀다. 지영이의 엄마는 그 사람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고 했다. 지영이가 받을 상처가 걱정되면서도 자신이 아이를 데려온 게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 마트에 갔을 때도, 식당에 갔을 때도 지영이를 향해 모진 말을 뱉고 심지어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면증을 앓는 윤경(가명) 씨와 손발바닥농포증인 종규(가명) 씨는 사회적 시선과 병에 대한 무지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았고, 직장생활조차 어려울 만큼 큰 심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보도해야 할 이유가 명확해졌다. 오민주 기자, 이진 기자와 함께 이들의 사연을 정리하면서 ‘이 보도로 사람들의 편견이 조금이라도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꼭 좋은 보도로 그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오민주 기자와 이진 기자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두 기자는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취재를 이어갔다. 오죽했으면 두 기자와 회의할 때면 일부러 식당에서 만나 억지로 밥을 먹여야 했을 정도였다.
열세 편의 보도…변화가 시작되다
그렇게 한 달에 걸쳐 13편의 기사를 썼다. 비싼 약값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희귀질환자들의 이야기까지, 이들에게 실질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까지 마치고 난 뒤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
경기도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신문인 만큼 경기도의회로 가 의원들을 만났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보도된 기사를 전달하고 어떤 지원들이 필요한지 설명했다. 그러자 하나둘 관심을 갖는 의원들도 생겼다.
김용성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의원(광명4)은 경기도가 희귀질환자를 위한 조례까지 만들고도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다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는 그동안 희귀질환자를 위한 지원이 전무했는데, 예산을 만들어 지원을 시작하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그 결과 전국에서 처음으로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가 희귀질환자 지원사업 예산을 편성했다. 5,000만 원. 적은 돈이지만 희귀질환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왔다. 전국 최대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가 변했으니 다른 광역단체의 변화 역시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러는 사이 희귀질환을 앓고 있음에도 이를 인정받지 못해 지원을 받지 못했던 미인정 희귀질환 중 일부가 희귀질환으로 인정되는 성과도 나타났다. 하나둘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희귀질환 시리즈
실질적 변화가 나오면서 다시 한번 희귀질환자를 위한 보도를 하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보도 이후 오민주 기자, 이진 기자까지 모두가 정치부에 발령받아 모이게 됐다. 알파팀 활동 기간이 끝나 취재 시간을 보장받진 못했지만, 후속 보도를 하자는 말에 두 사람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주말을 쪼개 일주일간 전국 희귀질환자 227명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했다.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어떤 지원을 원하는지 물었고, 그걸 기사로 구성해 3편의 연속 보도를 마쳤다.
나아가 미인정 희귀질환이다가 올해부터 희귀질환으로 인정돼 산정특례 적용을 받는 손발바닥농포증 환자 화정 할머니의 병원 진료에 동행해 실제로 달라진 점이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이후 김용성 의원이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계속하며 예산 사용처를 고심할 때도 언제나 함께 했다. 그렇게 고통의 굴레 희귀질환 보도는 1년째 이어지고 있다. 보도된 기사는 어느새 24편에 달한다.
그렇지만 아직 끝은 아니다. 희귀질환자들의 고통이 남아있는 한 앞으로도 관련 보도는 이어질 예정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사람이기에 그들의 삶에 보도로 힘을 더해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