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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해외 방송법 사례와 시사점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5-09-26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공영방송의 핵심 쟁점이다. 세계에서 공영방송의 위상과 정통성으로 이름난 독일, 영국, 일본 방송법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가 참고할 만한 시사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방송3법’은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하나로 묶은 표현이다. 법안마다 KBS·MBC·EBS 등이 적용 대상으로, 전반적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방송3법 개정의 핵심은 첫째, 이사회 추천 방식 변경, 둘째, 사장 선임 방식 변경, 셋째, 방송 종사자들의 자율성과 보도 독립성 강화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KBS는 이사 수를 11명에서 15명으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9명에서 13명으로, 그리고 EBS이사회는 9명에서 13명으로 확대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서 1987년 이후 38년 만에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완전히 바뀌게 됐다.

 

이번 방송3법 개정안의 핵심 쟁점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 여부다. 개정안을 추진한 정부 여당이 내세운 명분도 정치적 독립성 확보였고 반면 이를 반대하던 야당의 논리도 정치적 독립성 침해였다. 

 

공영방송 정치적 중립성에 민감한 독일

 

독일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에 민감한 국가 중 하나다. 나치 시절 방송이 철저히 체제 선전 도구로 전락했던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1933년 이후 나치 독일은 각 주에 속했던 방송에 대한 권한을 중앙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방송을 통제하기 위해 별도로 정부에 국민 교화 및 선전부(Reichsministerium für Volksaufklärung und Propaganda)를 뒀다. 게다가 자신들의 체제 선전을 위해 국민에게 값싼 라디오 수신기를 보급하고, 외국의 방송 청취를 금했다. 심지어 이를 어길 시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연합군은 독일 방송을 차단하고 연합군의 군사 방송을 송출했다. 이후 연합군 점령 지역 각 주에 공영방송국을 설립했고, 이들의 연합체가 제1공영방송(ARD)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독일은 국가의 방송 개입을 최소화하고 의견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법과 제도를 체계적으로 구축해 놓았다. 특이한 점은 대표적인 성문법 국가인 독일에서 정작 방송법은 판례법이라 불릴 정도로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1961년 이른바 ‘제1차 방송판결’로 불리는 독일 텔레비전(Deutschland-Fernsehen) 판결에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방송은 국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며, 각 주 방송사가 설립과 프로그램 등에 관한 권한을 가지며 연방은 단지 중계 기술에 관한 권한만을 갖는다고 판시했다. 이로 인해 연방정부에 의한 단일방송국 설립은 무산되고 각 주의 단일 공영방송 설립 계기가 마련돼 독일 제2공영방송(ZDF)의 법적 근거가 됐다. 이러한 제1차 방송 판결의 의의는 첫째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인했다는 것과, 둘째 방송의 권한을 중앙정부가 아닌 주 정부로 분산함으로써 방송의 권력분립을 통해 다양성을 확보하게 했다는 점이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와 제2공영방송 ZDF 로고 ⓒ연합뉴스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관련된 판결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1967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ZDF 내부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인 ZDF-텔레비전위원회(Fernsehrat)의 위원을 정치인, 정당인, 종교단체나 자선단체 등 사회 각계 단체 대표 포함 총 77명으로 구성하게 했다. 위원회는 ZDF의 운영 지침과 경영 감독뿐만 아니라 방송국 이사회로서 기능인 내부 규칙 제정과 개정, 연간 예산 및 특수 예산 승인 등에도 참여하므로 정치적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2013년 라인란트-팔츠주와 함부르크주 미디어청은 ZDF-텔레비전위원회 구성의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소를 제기했다. 당시 ZDF의 텔레비전위원회 구성원 중 정부와 정당에 의한 선출 인원이 45.4%에 달했는데,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ZDF-텔레비전위원회 77명 가운데 전·현직 정치인과 정당인, 정부 인사가 최대 52명까지 포함될 수 있는 구조를 확인했다. 2014년 연방헌법재판소는 ZDF 등 독일 공영방송 지배구조에서 정치인의 비중을 3분의 1 이하로 낮추라고 결정했다. 이후 ZDF-텔레비전위원회는 60인으로 축소됐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결정의 기속력으로 인해 ARD 및 공영라디오방송사(DLR)의 관련 방송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처럼 독일의 경우 방송의 자유와 관련한 입법은 일련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가 바탕이 됐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국왕 칙령’ 따라 정치적 영향력 차단하는 영국

 

한국에서 공영방송을 논할 때 정치적 독립성과 우수한 콘텐츠를 확보한 롤모델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방송이 바로 BBC다. BBC는 세계 최초이자 영국 최대 공영방송사로서 1922년 설립 이래, 공영방송의 교과서로 불려 왔다. 영국 방송의 법적인 기초는 역사적으로 ‘국왕 칙령(Royal Charter)’에 의해 제도화됐다고 볼 수 있다. 13세기부터 유래된 국왕 칙령은 특정 조직의 목적과 구성, 자치권을 내용으로 독립 법인격을 부여한다. 국왕 칙령에 의한 설립 근거는 국왕의 특권(Royal Prerogative)이기 때문에 해당 기관에 대해서는 헌법적 특별 지위가 상징적으로 부여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대상 기관은 법적 독립성과 업무의 자율성이 보장된다. BBC의 설립 근거 또한 국왕의 칙령(The Royal Charter for the continuance of the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이다. 이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의회가 제정 법률을 따를 경우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영국 공영방송국 BBC(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연합뉴스

 

 

실제로 BBC는 국왕 칙령 제3조에 따라 공영방송의 사명, 공익 증진과 관련된 모든 사안에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 특히 편집 및 창작에 관한 결정, 그 결과물과 제공에 관한 방식과 시점, 관련 사안의 관리가 이에 해당된다.

 

영국 BBC의 최고 의결기관인 이사회(BBC Board)는 총 14명으로, 10명의 의장을 비롯한 비상임이사(non-executive members)와 4명의 상임이사로 구성된다. 비상임이사 중 의장과 지역 대표 이사 4명(잉글랜드·북아일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은 정부 추천을 받아 국왕이 임명한다. 나머지 비상임이사 5명과 사장을 포함한 상임 이사진 4명은 BBC 내부 선임위원회 추천으로 구성된다. 비상임이사의 임기는 4년 이하이며, 예외적으로 1년 추가 임명 시 임기가 특정된다. 상임이사의 임기는 임명 시 각각 정해지며, 이사회 의장의 청구로 이사회가 승인할 경우 임기 전 해임이 가능하다. 이사회의 구성을 보면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기 어려운 구조임을 알 수 있다.

 

법률적 근거 없이는 간섭과 규제받지 않는 일본

 

NHK는 공영방송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국가의 통제로부터 자립해 공공의 복지를 실시하는 방송”이라 정의하고, 스스로를 “정부로부터 독립해 수신료로 운영되고 공공의 복지와 문화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방송 사업체이며, 앞으로도 공공방송으로서의 책임과 자각을 가지고, 그 역할을 수행하여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은 법률에서 정한 권한에 근거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의 간섭이나 규제를 받지 않는다(제3조). 방송 프로그램의 자유와 공정을 위해 법이 상정하는 구체적인 사항으로는 공안 및 선량한 풍속을 해치지 말 것, 정치적으로 공평할 것, 보도는 사실을 폄하하지 말 것 등이 있다.일본 NHK의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인 경영위원회는 합의제 의결기관이다. 경영위원회는 위원 12명으로 조직된다(제30조 제1항). 위원은 “공공복지에 관해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고 넓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자” 중에서 양 의원의 동의를 얻어 내각총리대신이 임명한다(제31조 제1항 전단). 아울러 선임에 있어서는 “교육, 문화, 과학, 산업, 그 밖의 각 분야 및 전국 각 지방이 공평하게 대표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실제로 위원 총 12명 중 8명이 광역 지역 대표(홋카이도·도호쿠·간토·주부·긴키·주코쿠·시코쿠·큐슈)로 구성됐고, 이는 일본 방송법에 규정돼 있다.

 

따라서 일본 NHK 경영위원회의 공정성과 공평성은 선임·임명 요건과 더불어 중·참 양의원의 동의를 법정화해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인적 구성 면에서 확보하고 있다.

 

개정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 차단 가능할지 지켜봐야

 

그동안 KBS 이사는 법적 근거 없이 이른바 관행적으로 11인 중 여권이 7명을, 야권이 4명을 추천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비하면 이번 「방송법」개정안은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치권의 영향력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은 공영방송 존속의 핵심 가치다.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공영방송 지배구조에서 정치인의 비중을 줄이는 방식으로, 영국은 국왕 칙령이라는 법적 형식을 통해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일본은 경영위원회의 위원 구성에서 교육, 문화, 과학, 산업, 그 밖의 각 분야 및 지역 대표성을 보장하고 중·참 양의원의 동의를 법정화는 방식으로 확보하고 있다. 어떤 특정 방식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계속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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