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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음식물 쓰레기’라고 하면 먹다 남은 음식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 중 상당량은 먹지 않은 채 그대로 버려지는 폐기물이다. 음식 폐기물의 행방을 추적해 음식물 쓰레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낸 CPBC의 다큐멘터리 <낭비미식회> 제작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소비기한이 임박한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버리기엔 아까운 음식이지만 선택받지 못하면 폐기된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편의점 수는 약 5만 5,000개로 ‘편의점 공화국’이라 불리는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 그렇다면 전국 편의점에서 버려지는 폐기 식품의 양은 얼마나 될까. 그 양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폐기의 행로가 궁금했다. 다큐멘터리 <낭비미식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매일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장을 보는 현대인들에게 음식물 쓰레기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외면받는 주제였다. 그간 언론도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깊이 다루지 않았다. 플라스틱 줄이기나 에너지 절약 등 기후 이슈가 마케팅 소재, 캠페인 콘텐츠로 소비되면서 환경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후 위기 문제만큼은 보는 이들의 ‘개인적 책임’을 환기하는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었다.
식재료의 무덤이 된 냉장고를 시작으로, 그 전 단계인 마트와 편의점, 농가의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포착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잔반’이 아닌 ‘먹지 않고 버려지는 음식’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해답을 찾는 게 이번 보도의 목표였다.
‘먹을 수 있는’ 쓰레기를 찾아서
2023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 총량은 500만 톤. 이 가운데 3분의 1은 먹을 수 있음에도 버려지는 음식물이다. 냉장고 속에서 잊힌 식재료, 소비기한이 남았지만 폐기되는 조리식품, 작은 흠집 하나에도 버려지는 감자가 여기에 포함된다. 문제는 먹지 않고 버려지는 음식의 양이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을 의무화했다. 가정이나 식당 등에서 직접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 양을 알 수 있지만, 포장된 가공식품이나 편의점의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 관련 폐기량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유통 과정에서 버려지는 식품이 상당하지만, 데이터가 불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낭비미식회>를 기획하며 가장 먼저 주목한 곳은 편의점이었다. 이용객이 늘면서 편의점 본사들은 다양한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지만, 팔리지 않아 버려지는 식품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재 국내 편의점 업계에서 식품 폐기량을 조사한 통계도 없다.
편의점 창업 카페에 가입해 취재원을 찾았다. 게시판에는 “버려지는 삼각김밥이 너무 많아요. 매달 손해가 큽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계속 올라왔지만, 점주들은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점주들에게 쪽지를 보내고, 섭외 글을 올렸다. 한참 기다린 끝에 경기도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와 자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소비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이나 도시락은 집으로 가져가 음식물 쓰레기로 배출하거나 상가 내 음식물 수거함에 버리고 비용을 낸다고 했다. “발주에 아무리 신경 써도 날씨나 요일에 따라 재고가 달라진다”라고 호소했다. 본사에서는 일부 재고의 폐기 비용을 보상하고 있지만, 그 혜택도 발주량이 많은 점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결국 남은 식품의 책임은 모두 점주가 떠안고 있었다.
숫자도, 그림도 없는 취재 현장
먹을 수 있는데도 대량으로 버려지는 식품을 포착해야 했다. 섭외의 어려움은 각오했지만, 실제 식품 폐기 현장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마트에선 소비기한이 한 달 넘게 남은 식품도 진열대에서 회수되고 있었다. 업체가 수거해가는 식품의 행방은 알려진 게 없다. 기업에서 처리 현황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민간 음식 폐기물 업체 수십 곳에 전화를 걸었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취재는 어렵겠네요.” 관계자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음식물 쓰레기가 많아야 먹고 사는데 무슨 말을 하겠냐”라며 전화를 끊었다.
결국 무작정 현장을 찾았다. 새벽 경매가 끝난 가락시장에서 안 팔린 과일의 행방을 알아보기로 했다. 상인들을 붙잡고 안 팔린 과일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상인들의 손사래였다. 정식으로 취재를 요청하고 찾은 대형마트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마감 할인에도 안 팔린 조리식품이 어떻게 버려지는지 점원의 꽁무니를 쫓다가 항의받고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거 되는 걸까” 하며 팀원들과 막막함을 나누는 시간이 길어졌다. 의원실을 통해서도, 환경 전문가를 통해서도 ‘먹지 않고 버려지는 음식’의 경로는 포착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낭비’를 따라가다 보니, 결국 문제는 ‘그림’이었다. 아무리 방송기자라도 긴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간과하기 쉬운 게 영상이다. 기자들은 2~3분 분량의 리포트에 익숙하다 보니 인터뷰만 있으면 방송을 채울 수 있다고 착각한다. 리포트는 인터뷰와 그래픽, 자료화면만으로 어찌저찌 채울 수 있다. 하지만 50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절대 그렇지 않다. 아무리 훌륭한 인터뷰라도 나열만 해선 이야기의 힘이 생기지 않는다. 그림을 반드시 찍어야 했다. 고민하다 취재 방향은 자연스레 ‘가정 냉장고’로 초점이 맞춰졌다. 집마다 냉장고 속 식재료를 살펴보고, 충동구매나 정리 습관을 진단하기로 했다. ‘낭비’라는 주제에 더 적합한 구성이 됐다.

일본의 ‘쓰레기 후회’ 프로젝트
취재팀은 2023년 일본 도쿄 아라카와시에서 진행됐던 ‘쓰레기에 대한 후회(아라카와 모타이나이) 작전’ 프로젝트의 연구진을 만났다. 이 프로젝트는 190세대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냉장고 정리만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본 실험이었다. 당시 주민들은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어두고는 결국 잊어버리게 된다”라고 말했다. 취재팀은 연구를 진행한 와타나베 코헤이 테이쿄대(帝京大學校) 교수와 함께 실험이 이뤄졌던 아파트를 다시 찾았다. 주민들은 지금까지도 냉장고 정리와 계획적인 소비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 일상이 된 삶이었다.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의 냉장고가 유독 크다는 점이었다. 한국 가정의 냉장고는 800~900L 용량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김치냉장고도 필수 살림으로 여겨진다. 반면 일본 가정의 냉장고는 400~500L가 보편적이다. 두 국가 간 주거 공간과 식문화 차이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음식 소비’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 한국인에게 음식 소비는 ‘식재료를 구매하는 행위’에 머문다면, 일본인은 ‘식재료를 모두 소진하는 과정’까지를 소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차이를 발견하자 기획의 방향이 더 분명해졌다. 통계로만 음식물 쓰레기를 설명하기보다 실천을 만드는 이야기여야 했다. ‘냉장고만 정리해도 환경에 도움이 된다’라는 메시지가 다큐멘터리 <낭비미식회>의 핵심 주제가 됐다.
나누는 냉장고, 낭비를 줄이다
다큐멘터리 <낭비미식회>가 제시한 음식물 쓰레기 해법 중 하나는 ‘공유냉장고’다.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화하거나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건 현재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막대한 자원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실효성엔 의문이 따른다. 근본적으로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는 획기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그 해법의 실마리를 ‘공유’에서 찾았다.
2012년 독일에서 시작된 공유냉장고는 누구나 식재료와 음식을 자유롭게 넣고 가져갈 수 있는 냉장고다. 우리나라에는 2018년 처음 설치됐으며 현재 경기 수원시에만 40여 대가 운영되고 있다. 공유냉장고는 지역 공동체를 살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 취재팀은 공유냉장고가 놓인 아파트를 취재하고, 새롭게 설치하는 현장을 기록하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하나의 해법을 담았다.
물론 한계도 뚜렷했다. 관리 인력이나 참여가 부족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공유냉장고도 있었다. 그럼에도 보도 후 공유냉장고에 대한 반응이 가장 많았다. 취재하다 보면 거창한 문제 제기에 비해 대안은 전문가의 말을 빌려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기획에선 공유냉장고 사례가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큰 공감을 샀다. 일본의 와타나베 교수 역시 한국의 공유냉장고 운영에 관심을 보이며 문의를 보내왔다. 다큐멘터리 <낭비미식회>의 내용은 서울환경연합과 녹색서울시민위원회가 진행한 ‘종량제 30주년 포럼’에서 소개됐고, 일부는 자원순환 정책 개선을 위한 공동 제안서에도 반영돼 서울시에 전달됐다.
취재 과정에서 먹지 않은 음식이 대량으로 버려지는 현장을 포착하지 못한 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일상 공간 곳곳에서 음식물 쓰레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끌어올렸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종교 언론이 지닌 사명
종교 언론은 교회나 신앙만을 주제로 다룰 것 같지만, 환경과 생명, 평화 등 공동체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취재한다. 사회문제를 성찰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고민하는 일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종교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나아가 종교 언론은 사회문제를 윤리적으로 조명하고 실천적 해법을 제시하는 데 큰 비중을 둔다.
영국의 기후변화 전문가 조지 마셜은 《기후변화의 심리학》에서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외면하는 이유를 “단순히 ‘환경’ 문제로 정의해 다른 문제에 밀려나게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기후변화를 ‘타협할 수 없는 신성한 가치’로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은 가족과 공동체를 보호하는 일이며, 그 책임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라는 구체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큐멘터리 <낭비미식회>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도 같다. ‘우리 집 냉장고’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시작한 성찰이 공동체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방송을 보고 냉장고를 정리하게 됐다”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기후변화를 늦추는 일은 거창한 관심이 아니라 냉장고를 정리하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번 주말, 시간 내어 냉장고 문을 한번 열어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