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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 매일신문 <숭고한 나눔, 기적 같은 선물>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6-01-30

미국을 비롯한 해외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장기기증 희망 등록률은 눈에 띄게 낮다.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선택, 미담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장기기증 문제를 집중 조명해 대중의 인식과 언론의 역할을 되새긴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언론에 발을 들인 이후 ‘장기기증으로 하늘의 별이 됐다’라는 표현을 자주 접해왔습니다. 짧은 사연과 함께 의식불명의 환자가 마지막 숨결로 여러 생명을 살렸다는 내용이 뒤따랐습니다. 기사를 읽을 때마다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지만, 동시에 늘 같은 질문이 남았습니다.

 

‘내 자식과 배우자, 부모가 세상을 떠난다는 통보를 받고도 어떻게 생명나눔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가족이 의식불명이라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 그 비통함 속에서 건넨 손길의 무게를 언론은 과연 제대로 담아왔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됐습니다.

 

장기기증은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장기기증은 여전히 특별한 선택, 혹은 미담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보도 역시 대부분 결과에 집중돼 왔습니다. 몇 명이 새 삶을 얻었는지, 기증자가 얼마나 대단한 선택을 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시간과 감정, 그리고 그 이후 유족이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무게는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언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번 <숭고한 나눔, 기적 같은 선물> 기획은 한 편의 기사에서 출발했습니다. 화재로 숨진 아이가 부모의 선택으로 여러 생명을 살렸다는 보도였습니다. 기사 한 편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고통, 그럼에도 생명나눔을 선택할 수 있었던 마음의 판단, 그리고 그 선택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남는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생명의 조각을 건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록


중환자실 앞에서 유족을 만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가족을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잃은 이들은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순간, 기증 권유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또 하나의 상처로 남아 있었습니다.

 

열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세 살배기 아들의 장기를 기증한 아버지는 취재 도중 여러 차례 말을 멈췄습니다. 기증을 결정하면 자식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 같았고, 기증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중환자실 앞을 하루 종일 서성이며 갈등했던 시간은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 곁에서 저는 질문을 던지는 기자이기 이전에, 함께 슬픔을 교감해야 했습니다. 의무가 아닌 당연한 태도라 생각했습니다.

 

딸의 장기를 기증한 한 어머니는 취재 과정에서 겪었던 또 다른 상처를 털어놓았습니다. “돈은 얼마 받았느냐”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그동안 지켜온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했습니다. 눈물 속에서 자식의 생명을 타인에게 나눠줬지만, 사회는 그 선택의 가치를 온전히 존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장기기증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취재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초 세 편으로 계획했던 시리즈를 다섯 편으로 확장했습니다. 기증자 유족의 이야기만으로는 장기기증을 둘러싼 구조를 설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식 대기자와 수혜자, 기증과 이식을 잇는 코디네이터, 의료진과 전문가의 목소리를 함께 담아야 비로소 생명나눔의 전체 그림이 드러난다고 느꼈습니다.

 

이식 대기자 취재는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인터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렵게 만난 한 환자는 30년 가까이 이틀에 한 번씩 네 시간 동안 신장 투석을 받아왔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이식이 가능할 것 같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죽음의 문턱에도 숱하게 섰습니다. 노폐물을 걸러주는 신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칼륨이 쌓여 심정지를 겪었던 겁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제2의 인생을 기다린다는 그 간절함을 잊지 못합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인공심장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대기자도 있었습니다. “기자님, 언제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 앞에서 저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질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7살 때부터 시력을 잃고 확대경에 의존하면서 지냈던 안효숙 씨. 30년 만에 각막을 이식받고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되면서, 자신 또한 훗날 다른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매일신문DB

 

 

취재 과정에서 장기기증과 이식이 개인의 결단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의료 인력 부족, 지역 간 의료 격차, 제도적 한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특히 최근 의정 갈등 이후 전공의 이탈로 기증 현장의 여건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점은 단순한 수치 감소 이상의 문제였습니다. 수술에 바쁜 교수들이 직접 기증 환자를 살펴야 하는 현실, 그로 인한 피로와 부담까지 함께 기록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건네받은 생명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언론의 몫

 

타인으로부터 생명의 조각을 건네받은 수혜자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책임감을 안겨줬습니다. 장기를 이식받은 이들은 병원을 벗어나 학교와 가정에서 일상을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생명을 헛되이 쓰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 생의 끝이 또 다른 생명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심장을 이식받은 한 수혜자는 매일 아침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당신은 세상을 떠난 게 아닙니다. 나와 함께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고, 그러한 시간이 오랜 시간 지속되도록 건강 관리를 잘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합니다. 이러한 감동적인 사연은 독자들의 장기기증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숭고한 나눔, 기적과 같은 선물> 시리즈를 단발성 기획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장기 기증자가 발생했다는 보도자료가 나오면, 반드시 챙기겠다고 취재하며 스스로에게 약속했습니다. 생명나눔의 가치는 한 번의 기사로 기억되기에는 너무 무겁고 깊었기 때문입니다.

 

장기기증 및 이식 관련 제도가 바뀔 때마다 이를 놓치지 않고 다룬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025년 8월부터 신분증을 발급 또는 갱신할 경우,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안내받는 제도가 최초로 시행됐습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주민센터 3,596곳과 여권 업무를 맡는 구청(257곳), 운전면허증 관련 경찰서(906곳)와 면허시험장(27곳), 선원신분증을 취급하는 지방해양수산청(11곳) 등이었습니다. 생명나눔 가치를 일상에서 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움직임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순환 정지 이후 장기기증(DCD, Donation after Circulatory Death) 도입이 실현된다는 소식은 <숭고한 나눔, 기적 같은 선물> 기획보도의 의미가 커진 계기였습니다. DCD는 뇌사 중심의 기증 체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사회적 합의와 제도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하는 영역입니다. 감정에 기대기보다, 왜 이 제도가 필요한지 차분히 설명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획 기사를 작성하는 데 고민도 많았습니다. 절절한 사연을 전하기 위해선 원고를 끊임없이 다듬어야 했습니다. 자녀의 장기를 기증한 아버지들의 사연을 전할 때 어떠한 표현이 적절할지 고민하며 열 번도 더 수정했습니다. 또한 ‘어디까지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거듭 판단을 거쳤습니다. 감정을 앞세우면 미담이 될 수 있고, 제도만 강조하면 사람의 이야기가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 큰 고민이었습니다.

 

 

부산 시내 한 병원에서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가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매일신문DB

 

 

 

기자가 먼저 장기기증 희망 등록에 서명한 이유

 

작성한 기획보도는 기자 개인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사들이 본격적으로 출고된 이후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신청했습니다. 30대의 나이에 조금 늦게 기증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생명나눔 의사를 구두가 아닌 서면으로 남겨야 하는 데는 개인적으로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뇌사에 빠져 법상 장기기증이 가능한 순간이 오면, 내 가족이 중환자실 앞에서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타인을 위해 장기를 기증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없을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생전 기증 의사를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면 그 고통은 배가 됩니다. 식물인간과 달리 뇌사는 다시 깨어나는 기적이 없어서 기증 의사를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생명나눔을 문서로 반드시 남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한 사람의 장기기증은 최대 9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조직까지 나누면 100여 명이 되살아나는 기적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생명의 조각을 끝없이 기다리는 환자들이 다시 걷고 숨을 쉬는 데 힘을 보태고자 했습니다. 생을 마감하면 한 줌의 재로 사라질 장기들을 건네면서, 죽음을 앞뒀던 환자들이 인생의 제2막을 써 내려갔으면 합니다.

 

마지막 이유는 기증 희망 등록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에 생명나눔 문화가 뿌리내릴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미국 등 해외 기증 선진국은 60% 이상의 장기기증 희망 등록률을 보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2023년 기준 전체 인구 대비 3.4% 수준에 그칩니다. 그 결과 실제 기증으로 이어진 건수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같은 해 한국의 인구 100만 명당 뇌사 기증자 수는 9.32명에 그친 반면, 미국은 48.04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부모님이 주신 신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 가치관이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해외처럼 장기기증이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선, 더 많은 국민이 기증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느낍니다.

 

기증을 결코 강요할 수 없다는 점에 이견은 없습니다. 다만 사회가 그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언론이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직업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강조하자면, 언젠가 누군가는 장기기증을 결정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 덕분에 새 삶을 얻게 될 것입니다. <숭고한 나눔, 기적 같은 선물>은 그 과정을 따라간 기록입니다. 한 생의 마지막이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관련 보도를 챙길 것을 약속합니다. 그 끝에는 장기기증이 소수의 영역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기적의 순간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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