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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8~19일 서울 상암문화광장에서는 실제 가수와 버추얼 가수들을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례적인 공연이 펼쳐졌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던 < MBC 버추얼 라이브 페스티벌 with 쿠팡플레이>
“아…안돼~ 제발 이러지 마.”
공연 전날 버추얼 팀의 리허설이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무대의 LED월이 전부 멈췄습니다. 중계차와 현장의 수많은 송출 모니터도 동시에 정지 화면이 됐고, 그 순간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 입에서 동시에 탄식이 나왔습니다.
상암문화광장 무대에서 전국으로 실시간 스트리밍되는 버추얼 아티스트들의 공연은, 예상은 했지만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버추얼 가수들의 모션, 음향 및 LED 출력 그리고 실제 가수와 함께 무대에 섰을 때 위치와 비율 등 모든 부분이 동시에 맞아야 했습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무대는 엉망진창이 돼버렸습니다.
리허설은 길어졌고, 스태프들은 ‘방송 사고가 나면 안 된다’라는 압박감 속에 버추얼 아티스트와 실제 가수가 함께 출연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을 하나씩 점검해 나갔습니다. 공연장과 집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을 보는 몇만 명의 관객들이 중간에 끊기거나 멈추는 일 없이 < MBC 버추얼 라이브 페스티벌 with 쿠팡플레이>(이하 <버추얼 라이브 페스티벌>)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가 됐습니다.
이 제작기는 공중파 방송이 변화하는 음악 환경 속에서 무엇을 시도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지금, <버추얼 라이브 페스티벌>인가
따로 무대를 구성하는 것이 제작자나 출연자나 훨씬 쉽고 편한데 왜 함께일까요? 지금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는 아티스트의 형태와 정체성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Z세대에게 버추얼 아이돌과 버추얼 유튜버(VTuber)는 더 이상 특수 장르가 아닙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일본,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는 버추얼 아티스트 단독 콘서트가 흥행 가능성을 검증했습니다. 데뷔한 지 18년이 된 버추얼 아이돌의 시초 ‘하츠네 미쿠’는 여전히 월드 투어를 다니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K-POP은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절정 이후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도 분명합니다. 글로벌 Z세대는 ‘익숙한 성공 공식’이 아닌 ‘새로운 K-POP’을 찾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관계자가 새로운 스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버추얼 라이브 페스티벌>은 지상파 최초로, 대한민국 대표 버추얼 아이돌과 인기 K-POP 아티스트가 한 무대에 서는 ‘새로운 음악 페스티벌’을 시도했습니다. 이번 공연에는 버추얼 아이돌 10개 팀과 K-POP 아이돌 10여 개 팀, 그리고 YB, 코요태, 존박 등 레전드 아티스트들이 함께했습니다. 장르 역시 댄스, 힙합, 발라드, AI 기반 음악까지 확장했습니다.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하나 된 무대
버추얼 아이돌 섭외는 기획 단계부터 ‘한국버추얼휴먼산업협회’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현재 등록된 한국의 버추얼 아이돌은 100개 팀 가까이 됩니다. 그중에 플레이브(PLAVE), 이세계아이돌 등 강력한 인기팀을 헤드라이너로 세우고, 버추얼을 처음 접하는 방송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매력이 있을 만한 실력 있는 팀들을 4~5개월 전부터 섭외했습니다. 여러 팀이 하나의 무대에 서는 작업이라 기술적 변수까지 고려하면 빠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실제 가수들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게 가능해요?” 혹은 “버추얼 가수들은 무대할 때 어디에 있어요?”였습니다. 가상과 현실이 함께하는 그림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가수들은 예상보다 훨씬 오픈 마인드였고 즐거워했습니다.
YB 윤도현은 재미있을 것 같다며 버추얼 아티스트 ‘카오’로 페스티벌 무대에 섰습니다. 카오의 의상이나 외형에 대한 본인의 취향을 자세히 어필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습니다. 존박과 버추얼 가수 호수의 듀엣 무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사람은 사전에 전화로 파트 및 편곡에 대한 음악 이야기를 나눴고, 선후배 가수로서 교감을 쌓았습니다.
버추얼 아이돌 나이비스(nævis)와 아뽀키(APOKI)의 컬래버 무대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각 제작사의 버추얼 캐릭터는 다른 셰이더(shader)1), 라이팅, 모션 데이터(motion data) 규격으로 만들어져 한 무대에 세우면 제각각으로 어색해집니다. 결국 그래픽 규격을 통일하거나 변환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SM과 에이펀 인터렉티브(AFUN Interactive) 두 회사가 합심해 예쁜 듀엣 공연을 만들어 냈습니다.

관객들의 조금은 다른 성향도 걱정됐습니다. 기존 K-POP 팬덤과 버추얼 팬덤은 서로 다른 색깔을 가졌다고 알려져, 페스티벌에서 자연스럽게 융합될지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팬덤들이 “저 버추얼 가수 노래 좋네, 잘한다” 혹은 버추얼 팬이 실물 가수 무대에 “저 형들 음악 너무 멋있다. 집에 가는 길에 계속 들었어”라며 서로 스며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좋은 음악 공연에는 가수의 외형이 중요치 않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지만, 분명 음악 안에서 함께 즐긴 페스티벌로 기억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처음 공중파 무대 데뷔에서 페스티벌까지, 수많은 시행착오
맨 처음 버추얼 아이돌을 만난 건 <쇼! 음악중심> 연출이던 2022년 여름쯤이었습니다. 넷마블과 카카오엔터가 손을 잡고 ‘메이브(MAVE:)’라는 4인조 여성 버추얼 아이돌을 만들려고 하는데, 출연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그 무렵 메타버스와 XR(Extended Reality) 등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흔쾌히 수락했지만, 메이브를 음악 프로그램 무대에 올리기까지 장장 6개월이나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이때부터 가상 무대와 DMX 조명2)을 제작하는 회사인 메타로켓과 버추얼 음방 무대를 시도하게 됐습니다. 그 뒤로 플레이브, 슈퍼카인드, 나이비스 등 여러 버추얼 아티스트들이 <쇼! 음악중심>에 출연했는데 매번 가장 크게 느낀 건 ‘준비 과정은 버추얼마다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몇 년간의 경험으로 호기롭게 여러 버추얼 아티스트와 실제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합동 공연을 기획했지만, 역시나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계속됐습니다.
“노 PD, 사람을 살릴까요, 버추얼을 살릴까요?”
가수 존박과 버추얼 가수 호수의 듀엣 무대 리허설 도중 조명감독이 물었습니다. 비디오 컬러와 조명을 사람에 맞추면 그 강한 빛의 LED에서 버추얼 가수가 안보였고, 버추얼을 살리려 조명을 약하게 하면 실물 가수 얼굴은 흙빛으로 어두워졌습니다. 둘을 동시에 완벽하게 살리는 값은 없으니 매 순간 선택해야 했습니다.
카메라팀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공연 전 실제 가수들의 안무 영상은 본 적이 있지만 버추얼 아이돌들의 안무 영상은 처음이라 낯설어했고, 무대 위 버추얼 아티스트를 클로즈업해 찍으려다 LED 픽셀이 도드라지면 깜짝 놀라 ‘줌아웃’하기도 했습니다.
기술팀은 스스로 “합숙 훈련 중”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바빴습니다. 국제 올림픽 중계도 쉽게 하는 프로들이었지만 4K 이상의 고화질 버추얼 무대가 현장과 라이브 스트리밍 화면에 시간 오차 없이 동시에 송출되도록 하는 건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더 멋지고 자연스러운 공연을 원하는 PD, 작가들의 이런저런 요청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문과’라고 절규하며 처음 듣는 각종 기술 용어와 오류에 괴로워했던 연출 후배들과 작가진, 거기에 몇 달간 버추얼 아티스트의 무대들을 준비한 각 버추얼 회사의 제작 스태프들까지, 각 가수 담당자와 전화 통화만 수십 번, 오간 파일들만 수백 개였습니다. 나중에는 시간이 없어 외장하드를 퀵으로 보내고 새벽까지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분들이 이 공연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셨습니다.
또한 이 도전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결과보다 가능성을 먼저 믿어준 동반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쿠팡플레이는 이 기획의 미래성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큰 비용이 드는 페스티벌을 지원하며 함께 고민해 준 파트너였습니다. 이 제작기를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배운 것들
이번 페스티벌은 완성된 해답이라기보다, 여러 번의 좌절과 선택 끝에 도달한 하나의 중간 기록에 가깝습니다. 아쉬운 점도 분명 많지만, 그 모든 부분은 결국 새로운 문화적 흐름 앞에 선 제작진의 고민으로 앞으로 계속 풀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버추얼 아티스트와 실물 아티스트의 협업은 이제 실험을 넘어, 글로벌 무대로의 확장을 꿈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페스티벌에서는 해외의 버추얼 아티스트들과도 함께 무대를 꾸려보고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의 버추얼 아티스트와, 또 다른 국가에서는 그 지역의 문화와 기술이 반영된 협업을 통해 공연이 글로벌 교류 플랫폼이 되는 무대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길은 혼자서 갈 수 없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이 변화의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 줄 동행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번 <버추얼 라이브 페스티벌>이 그 첫 문을 연 시작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1) 3D 장면의 적절한 빛과 어둠, 색, 깊이를 계산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편집자 주
2) 여러 조명의 색상, 밝기, 패턴 등을 제어할 수 있는 디지털 통신 시스템. 편집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