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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 동아일보 <헌트: 치매 머니 사냥>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6-01-30

우리나라 치매 노인의 자산 규모는 약 154조 원. 문제는 이 거대한 자산을 노리는 이른바 ‘치매 머니 사냥’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공식 통계 부족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치매 머니 사냥, 그 실태를 파헤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유효한 문제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각해질 문제들. 처음 ‘치매 머니’를 아이템 후보에 올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고령화 흐름 속 치매 노인은 계속 늘어날 텐데, 이들의 자산을 노리는 ‘치매 머니 사냥’에 대한 실태는 조사조차 이뤄진 적이 없는 사각지대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5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치매 노인들의 자산 규모를 154조 원으로 추정한 직후, 치매 머니 관련 보도들이 이어진 바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은 치매 노인의 자산이 묶여 있고, 이를 순환시켜야 한다는 내용 위주였습니다. 특정 사건,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미래에 심해질 ‘사냥 문제’를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치매 머니 사냥은 ‘미래 문제’처럼 보였습니다.

 

이 문제가 한국에서 ‘지금, 현재’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우리 사회는 ‘사냥꾼’들을 막을 준비가 돼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상의 끝에 치매 머니를 최종 아이템으로 정했습니다. △‘사람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 것, △해결 가능한 문제를 다룰 것, △보도를 통해 적어도 한 가지는 바꿀 것 등 취재팀이 초창기 세운 취재 대원칙과 부합하는 아이템이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치매 노인과 가족 36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학대 판정서 379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치매 머니 사냥’은 개인의 불행이 아닌 시스템의 방조 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동아일보

 

증언할 수 없는 사람들


그러나 취재는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이 문제가 왜 지금까지 공론화되지 않았는지 깨닫는 것 역시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치매 머니 사냥 문제를 입증할 ‘당사자의 증언’과 ‘데이터’가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인지 능력과 판단력이 떨어진 치매 환자는 자신의 돈이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피해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기억이 나더라도 구체적인 상황을 복기하지 못했습니다. 증언해야 할 당사자가 ‘목소리를 잃은’ 셈입니다. 치매 머니 사냥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국가 차원의 실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피해 규모를 입증할 데이터가 없다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검경은 사기나 횡령 사건의 피해자 가운데 치매 환자를 따로 분류하지 않고,,관련 법원 통계조차 없었습니다. 주무부처들도 ‘금융 범죄는 수사기관의 몫’이라며 화살을 돌렸습니다. 대한민국 부처 어디도 치매 머니 사냥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 곳은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취재의 실마리가 된 건 노인이 남긴 기록과 가족의 도움이었습니다. 취재팀은 치매 노인과 그 가족들을 수차례 설득했고, 36명이 어렵게 ‘사냥’의 기억을 꺼냈습니다. 그중 8명은 사냥 기록이 담긴 통장 내역을 모두 취재팀에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 속에 남겨진 내역과 가족들이 은행,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등에서 확인한 기록, 노인들의 희미한 기억을 종합해 노후의 자산이 약탈당하는 과정을 복기했습니다. 

 

40년 만에 찾아온 고향 친구에게 속아 땅 800평을 빼앗기고 세상을 떠난 고(故) 강대용 씨(76)의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그의 통장과 수첩에는 친구를 가장한 사냥꾼이 평생 일해 번 돈 4,200만 원을 약탈해 가는 ‘사냥기’가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통장 기록을 활용한 내러티브 전개와 그래픽 활용은 시리즈 1회 기사의 주요 테마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故) 강대용 씨는 믿었던 고향 친구에게 인생과 다름없는 땅 800평을 빼앗겼다. ⓒ동아일보

 

 

 

‘암수 치매 머니 사냥’을 찾아서

 

사연만으론 부족했습니다. 치매 노인의 재산을 노린 범죄 피해 규모는 여전히 그늘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해 규모가 만연하다는 걸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자칫 일부 나쁜 놈들의 일탈로 치부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고민하던 중 전문가의 조언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한국노년학회(이하 학회) 소속 한 교수는 “치매 노인 대상의 경제적 학대로 재판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라며 “가해자 대부분이 가족일 가능성이 높고, 노인의 증언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건이 수면 아래 묻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학회와 함께 수면 아래 묻힌 ‘암수(暗數) 치매 머니 사냥’의 실태를 직접 추적하기로 했습니다. 실제 학회는 연간 경제적 학대 피해율(0.4%)에 국내 치매 인구를 대입하고, 치매 환자가 일반 노인보다 금융 착취에 3.7배 더 취약하다는 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해 ‘암수 사냥’ 건수를 도출했습니다. 그 결과, 최근 5년간 약 6만 7,000명의 치매 노인이 금융 학대를 당했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수치가 나왔습니다.

 

법원의 유죄 판결문에 나타난 치매 피해자는 최근 5년간 고작 49명뿐입니다. 피해자가 1,000명이라면, 법의 심판을 받는 가해자는 1명도 채 되지 않는 셈입니다. 이후 전국 38개 노인보호전문기관의 ‘경제적 학대 판정서’ 원문 379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사냥꾼의 95.8%는 가족, 요양시설 종사자, 지인 등 가장 가까운 이들이라는 내용도 확인됐습니다. 믿었던 혈육과 돌보미가 노인의 판단력이 흐려진 틈을 타 포식자로 돌변하는 참혹한 현실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동시에 전국 요양원 321곳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현장에서도 국가의 감시망에 잡히지 않은 암수 사냥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습니다. 응답한 곳 중 54곳에서 “입소 중인 치매 노인이 재산 사냥을 당한 사례를 명확히 알고 있다”라고 답한 것입니다. 성년후견제도 등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는 존재했으나, 실제 이용률은 극소수였습니다. 제도라는 방패는 사냥꾼들이 쳐놓은 촘촘한 그물을 찢기에 너무나 무력했던 것입니다.

 

접촉한 요양원 중 한 곳인 우리요양원에는 사냥을 당한 뒤 요양원에 방치된 치매 노인 3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 다달이 기초연금을 뺏겨 통장 잔고가 바닥난 노인, 1년 넘게 요양원비가 체납됐지만 자녀는 면회를 오지 않는 노인 등입니다. 그곳에서 그들과 하루를 함께했습니다.

 

미닫이문을 열자 일제히 쏠리던 눈동자들, 요양보호사의 분주한 발걸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 ‘기저귀 타임’을 알리는 냄새 등 ‘사냥 이후’ 방치된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시리즈 3회에 담았습니다.

 

고장 난 대책들, 우리는 누구에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이 사냥을 막을 제도가 고장 나 있었다는 점입니다. 취재팀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사냥을 막을 해결책으로 ‘후견제도 활성화’를 꼽았습니다. 특히 건강할 때 미리 믿을 만한 자녀나 전문가를 후견인으로 정해 두는 ‘임의후견(예방)’이 가장 필요한 대책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비싸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 제도를 이용하겠다고 신청한 이들은 2013년 제도 도입 이후 229명뿐입니다. 하지만 일본과 독일 등 해외는 달랐습니다. 일본 역시 후견 제도 등이 비싸고 어려운 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냥으로부터 자산을 지켜줄 후견인을 건강할 때 미리 정해놓는 이들은 한국보다 500배 이상 많았습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취재팀은 일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치매 머니 사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선 변호사, 법무사, 사회복지사, 교수 등을 만났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한국과 달리 이 어려운 제도를 도울 전문 기관을 대부분의 지자체에 설치해 뒀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 등 해외와의 비교를 통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은 시리즈 마지막 회차의 주요 내용이 됐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인지 능력이 떨어진 노인들을 노리는 ‘은밀한 사냥’은 계속 이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할 부처들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뒷짐을 지고, 사냥꾼들은 치매 노인의 진술이라 믿기 어렵고 가해자가 유일한 혈육이라 달리 돌볼 사람이 없다며 수사망을 빠져나갑니다. 사냥을 사전 예방할 후견 제도는 비싸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당사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취재팀이 만난 36명의 치매 노인과 가족들은 사냥을 막게 해달라며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냈습니다. 취재 중 세상을 떠난 강대용 씨의 아들은 “지금까지 한 일이 헛된 일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보도가 ‘고장 난 제도’들이 정비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누구나 늙고, 언젠가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기 힘든 순간은 올 겁니다. 그 순간이 닥쳤을 때 우리는 사냥꾼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5개월 취재기의 결론은 “지금 이대로라면 절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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