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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 EBS <싸느냐, 참느냐 화장실 전쟁> 제작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6-02-27

화장실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라고 생각되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야외에서 일하는 이동 방문 노동자, 철도 기관사 등 누군가에게 화장실은 고통이자 피하고 싶은 전쟁터다. 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로 화장실 문제를 공론화한 프로그램 제작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화장실이 너무 급한데, 갈 곳이 없어 식은땀이 줄줄 흐르던 순간. 엘리베이터는 더디게 올라가고, 가까스로 찾은 화장실은 잠겨 있고. 그 짧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경험 말이다

 

.나는 평소 먹는 것도 부실하고 스트레스에도 취약한 성격 탓에 장염을 자주 앓는다. 한번 화장실에 들어가면 최소 10분 이상은 어르고 달래줘야 하는 예민한 장의 소유자다. 장거리를 이동하거나 장기 출장을 갈 때면 항상 유산균과 차전자피환을 비상식량처럼 챙기는 것도 그래서 생긴 습관이다.

 

그렇다고 ‘화장실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방송일을 하다 보면 화장실이 없는 열대우림이나 사막, 화장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온갖 장소를 가게 된다. 화장실이 있더라도 휴식 시간 없이 촬영을 이어갈 때도 많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원할 때, 자유롭게, 비교적 청결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화장실은 늘 자기 관리 부족이나 컨디션 조절 문제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다.

 

싸느냐, 참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화장실 문제를 취재하면서, 지금이 2025년이 맞나 싶었다. 매일 화장실 가는 것 자체가 전쟁인 사람들이 있었다.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물도 마시지 않고, 일부러 탈수를 선택하는 삶. 그들에게 방광염, 신우신염, 장염은 일시적인 질환이 아니라 직업에 따라붙는 일상이었다. 현장에서 마주한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도시가스 안전 점검원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했고, 조선소 도장 노동자는 더럽고 멀리 떨어진 간이화장실을 가지 못해 배 안에서 몰래 해결해야 했다. 철도 기관사는 고객이 훤히 보이는 기관실 내에서 휴대용 변기를 사용해야 했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데만 30~40분이 걸려 아예 하루 종일 물을 마시지 않았던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도 

있었다.

 

직업도 근무 환경도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몸의 신호를 제때 처리할 수 없다는 것. 그 단순한 조건이 사람들의 몸과 일상을 병들게 하고 있었다. 이는 비단 화장실 설치가 어려운 현장 노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분 안에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콜센터 직원, 업무 대체자가 없어 생리대도 갈지 못한 채 근무했던 사무직 노동자, 화장실 가기 눈치가 보여 결국 회사를 그만둔 직원까지, 공간만 달라졌을 뿐 화장실을 둘러싼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학내일》이 전국 만 19~34세 청년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의 하한선’ 조사에서, 청년들이 꼽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 직장 조건 1위’는 ‘청결한 화장실’이었다. 세계적으로 깨끗한 공중화장실 문화로 유명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일을 하다가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없다면, 밖에 나와 있는데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다면, 그런 상황이 하루이틀이 아니라 매일 반복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싸느냐, 참느냐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실제 기관사가 사용하는 간이 변기 ⓒEBS

 

화장실, 그것이 또 문제였다

 

하지만 화장실을 다루는 데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가장 큰 난관은 아이템 그 자체였다. 열악한 화장실을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 그것도 남의 회사에 있는 화장실을 과연 카메라로 담을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다. 세상의 나쁜 개와 예쁜 집, 그리고 위대한 석학들만 주로 촬영해 왔던 EBS PD에게 탐사보도 성격의 취재는 솔직히 낯설고도 부담스러웠다. 잠입 취재를 해야 하나, 위장 취업이라도 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을 떠올렸지만 간이 콩알만 한 나에게는 상상만으로도 버거운 선택지였다.

 

더 큰 고민도 있었다. 설령 촬영에 성공한다 해도 사람들이 과연 이 더럽고 불편한 화장실을 굳이 보고 싶어 할까 하는 점이었다. 예쁜 것만, 재밌는 것만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일 텐데, 화장실, 그것도 4D로 냄새 지원까지 될 것 같은 화장실을 TV 방송으로 내보낸다는 건 사실상 시청률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열악한 화장실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채널이 돌아가지 않게 하는 방법이 뭘까?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였다.

 

급할 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답은 의외로 단순한 데서 나왔다. 촬영하기 어렵다면, 만들어보자. 우리가 보고 경악했던 화장실을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자. 말로 설명하는 대신 몸으로 느끼게 하고, 그 리액션을 있는 그대로 담아보자. 그렇게 우리가 선택한 해결책이 바로 ‘화장실 실험’이었다. 2025년 한국 사회 곳곳에 실제 존재하는 화장실을 스튜디오에 재현하고 일반인 참여자들이 직접 그 공간을 체험하도록 했다.

 

우리가 재현한 화장실은 불편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했다. 유아용 변기가 없어 늘 불안하게 화장실에 가야 했던 아이의 화장실, 몰래카메라가 잔뜩 설치됐을 것 같은 불길한 화장실, 거품이 제때 충전되지 않아 배설물이 겹겹이 쌓인 간이 화장실, 운전 중 앞이 훤히 뚫린 기관사실에서 용변을 해결해야 하는 기관사용 화장실, 페트병 하나에 의존해야 하는 타워크레인 조종실, 공개된 공간에서 소변을 봐야 하는 공사장 간이 소변기, 그리고 아예 화장실이 존재하지 않는 길 위의 상황까지.

 

기상천외한 모형 화장실을 만들고, 여기에 도전(?)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처음엔 이걸 굳이 체험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무려 170명의 지원자가 신청했고, 마주한 화장실 앞에서 진심을 다해 ‘볼일을 볼 것인지’를 고민했다. 모든 화장실을 담담하게(?) 통과한 사람도 있었고, 모든 화장실에서 ‘참겠다’를 외친 사람도 있었다. 선택은 제각각이었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화장실 가는 일이 힘들어야 하냐는 분노만큼은 모두 같았다.

 

 

스튜디오에 설치된 화장실 실험 세트 ⓒEBS

 

 

가장 개인적이면서 가장 정치적인 공간

 

인터뷰하다 보면 늘 비슷한 말이 돌아왔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화장실 이야기한 적이 처음인데, 민망하네요.” 화장실 이야기는 늘 사적인 영역에 묶여 있었다. 누군가는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말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수치스러운 이야기라 여겨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화장실은 오랫동안 개인의 문제로만 남아 있었고, 공론장으로 나오지 못했다. 원청 관리자의 엄격한 통제로 제때 화장실에 가지 못해 생리혈로 옷이 흠뻑 젖었던 한 여성 노동자는 ‘차라리 폐경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은 일터에서 인간의 신체가 어디까지 통제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고백에 가까웠다.

 

화장실을 참는 사람들은 화장실만 참는 것이 아니었다. 차별과 감시, 통제, 불안정한 고용구조까지 함께 참고 있었고, 인간이길 포기하도록 강요받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수정 노무사는 말했다.

 

“화장실은 일터에서 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화장실은 이 사회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내가 인간으로 존중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안전하게 프라이버시가 지켜져야 하는 아주 개인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권력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다.

 

싸우느냐 참느냐, 그것이 문제다

 

역사적으로 화장실은 평등하지 않았다. 1966년, 백인 전용 공공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흑인 청년 새미 영 주니어(Sammy Younge Jr), 여성용 공중화장실 설치를 요구하며 세계 곳곳에서 이어져 온 여성들의 투쟁. 그리고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이후, 들불처럼 일어났던 여성들의 시위까지. 화장실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끝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고,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었으며, 존재 자체가 배제된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결국 싸느냐, 참느냐의 문제는 ‘싸우느냐 참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출연자들이 직접 쓴 화장실 낙서들 ⓒEBS

 

 

우리가 인터뷰한 사례자들은 지금도 회사의 감시와 고소·고발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프로그램에 다 담지 못했지만, 여전히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일터 곳곳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마음 편히 그리고 안전하게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기를. 그 당연한 권리가 더 이상 투쟁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모두가 인간답게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위해 소중한 목소리를 내어주신 출연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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