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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교실에 혼란의 시대가 도래했다.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AI와 토론하는 학생과 AI에 학습 주도권을 맡겨 버리는 학생이 공존하는 현장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2025년은 교사로서 내 수업을 톺아보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본격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AI를 수업에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하며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AI를 활용해 정답을 삽시간에 얻는 만큼 생각의 과정이 등한시되는 지금,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방향과 교사의 역할에 대한 고뇌가 쌓여가던 때 《AI 혁명과 비판적 사고 학습》을 만났다. AI가 정답을 쏟아내는 시대에 비판적 사고력을 갖춘 질문의 힘을 강조하고 싶었던 필자에게 이 책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아가 교사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교실의 자존감을 지켜 줄 나침반 역할을 해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AI 혁명과 비판적 사고 학습》은 기술이 독점하는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질문과 교사의 역할을 제시한다. 저자 우르비 고시(Urbi Ghosh)는 1장에서 생성형 AI를 ‘새로운 내러티브’로 명명하고 추론·창조하는 혁신적 파트너로 정의한다. 5장에서는 비판적 사고와 함께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사는 학생을 단순한 지식 수용자가 아닌 질문 설계자로 키워야 함을 역설한다. 저자는 생성형 AI를 개인 맞춤형 학습, 실시간 피드백, 교사의 행정 업무 간소화 등 교육의 협력자로 잘 활용한다면 학습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AI의 역기능인 편향성, 할루시네이션(환각) 등을 명확히 인식하고 보완해 어떻게 교실 현장에 접목해야 할지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PBL(Project-Based Learning)을 바탕으로 생성형 AI 기반 비판적 사고 학습 모델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1단계: 문제 마주하기
‘대안적 미디어로서 광고 만들기’ 수행평가로 PBL 1단계 프로젝트의 포문을 열었다. 제작에 앞서 광고를 알아야 했기에 수많은 광고의 설득 전략, 재현 등을 비판적으로 탐구했다. 이 과정에서 생성형 AI가 만든 광고는 훌륭한 사례가 됐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든 상업 광고에서 이 책의 9장에서 경고한 ‘데이터의 사회적 편향성’이 적나라하게 구현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프롬프트에는 성별에 대한 언급이 없었음에도 광고에서 전문적 이미지의 회사원은 남성으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가족 구성원은 여성으로 묘사됐다.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공익광고 주인공은 주로 여성 혹은 아시아인으로 한정 짓는 편향성을 보였다. 수업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학생들은 AI의 알고리즘 뒤에 숨은 편견에 비판적 질문들을 쏟아냈다. AI가 내놓은 정답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역할은 오직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자 비판적 리터러시의 정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단계: 정보 탐색 및 탐구 수행
저자는 1장에서 AI가 교육의 보조자로서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나 경험과 맥락에 기반한 정서적 통찰은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임을 명시하며 인공지능의 한계를 지적한다. PBL의 두 번째 단계인 정보 탐색 및 탐구 수행 과정과 연계해 인간 고유의 영역인 문학적 감수성과 AI 기술을 융합하는 탐구 활동을 진행했다. 박준 시인의 <미아>를 영상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생성형 AI의 활용 비중을 학생들의 선택에 맡겼다. 선택에 따른 최종 결과물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드러났다.
한 모둠은 프롬프트에 시 전문을 입력하고 구체적인 주제만을 명시한 채 대부분의 제작 과정을 AI에 의존했다. 이 모둠의 결과물은 기술적으로 화려했으나 시를 읽고 느낀 문학적 감수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른 모둠은 스토리보드 제작부터 연기, 영상 촬영 등 모든 활동에서 모둠별 협의를 거쳤고 편집 과정에서만 소량의 AI를 활용했다. 그들은 협의한 분위기를 담아 자막을 만들고 음악을 선정했으며, 서로 감독과 배우를 도맡아 연기까지 하며 영상을 제작했다. 결과물은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AI가 발견하지 못하는 행간의 의미를 자신들이 직접 연기하며 감각적으로 퇴고하고 제작하는 과정이 영상에 반영됐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기술을 이용해 시를 시각화하는 활동 이상으로 텍스트를 심도 있게 파악하고 행간의 의미까지 읽어냈다. 이는 기술이 제공하는 시각적 풍요 속에서 인간만이 지닌 감수성을 표현하는 일이었으며 이것이야말로 향후 교육 현장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AI가 기술적 측면의 조력자로서 교육 활동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을 확인했다. 학습 협력자로서의 생성형 AI의 순기능과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교실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3단계: 해결 방안 도출 및 산출물 제작
이 책의 9장은 AI 과의존이 초래할 비판적 사고 역량의 퇴화를 역기능으로 언급한다. 프로젝트의 3단계는 이 우려에 정면으로 맞서는 활동이었다.
필자는 AI가 결코 모방하고 학습할 수 없는 ‘나’에 관한 과제를 설계했고, 학생과 AI의 자서전 쓰기 대결을 진행했다. 과제는 두 개로, 하나는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담아 자서전을 직접 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프롬프트를 활용해 생성형 AI로 자서전을 쓰는 것이었다.
두 개의 과제를 진행한 후 학생들과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다수는 나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임을 깨달았다고 답변했다.
AI가 생성한 자서전은 문장이 수려하고 문법적으로 완벽하나, 정작 그 안에서 진정한 나를 찾기는 힘들었다고 답했다. 저자가 언급했듯 AI는 독립적 문제 해결의 도구는 될 수 있으나 인간 삶의 고유한 맥락과 진실성까지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AI의 할루시네이션으로 인해 허구성이 더해진 수려한 자서전보다 투박하지만 자신의 진심과 감정이 담긴 글이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계가 만든 문장 사이에서 인간의 진정한 내면을 글로 표현하는 이 과정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주체적 필자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나아가 향후 교육 현장에서 평가와 과제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4단계: 공유와 성찰
공유·성찰은 디지털 시민성의 관점에서 PBL 과정이 반드시 다뤄야 할 핵심 단계다. 각 활동의 종결 시점마다 결과물을 함께 감상하고 공유하며 학습의 정도를 점검했다. 이 단계는 이 책의 6장과 9장에서 강조하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산출물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것과 맥을 함께했다.
학생들이 산출물을 제작하며 AI를 어떻게 얼마나 활용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 AI 사용과 관련된 윤리적 경계를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디지털 시민성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수업에서 학생들은 산출물을 공유하며 어떤 AI를 활용했는지, 자신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AI에 던진 질문이 무엇이며, 기술의 한계를 어떠한 질문으로 극복했는지도 발표했다. 이는 프로젝트 착수 전 교사가 AI 활용 지침과 윤리적 규범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AI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주체적으로 사용하고 결과에 책임을 다하는 디지털 시민성을 키울 수 있었다.
AI 활용 표절 문제는 현재 교육 현장의 주요 화두 중 하나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단순한 금지를 넘어 다각적인 접근을 제안한다. 저자는 무조건적인 금지보다는 AI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학생이 주체적으로 사용 윤리를 구축하도록 이끄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AI의 윤리적 활용에 대한 교육이 선행될 때 비판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주도성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결과보다 과정, AI 시대의 평가 방안
이 책은 생성형 AI로 인해 학문적 정직성이 위협받는 교육 현장에 평가와 관련된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 책의 백미는 9장과 10장이다.
AI 시대의 평가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교사들에게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구두시험, 실시간 글쓰기, 포트폴리오 평가 등 사고의 과정을 정교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다단계 평가 설계를 제안한다.
필자는 그중 ‘반대 신문식 토론’1)을 실제 평가에 적용했다. AI가 생성한 논거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교차 질문을 주고받는 토론을 진행하고 실시간 상호작용을 거치며 이뤄진 논리적 사고 과정을 평가했다. 이제 평가는 단순히 수치화된 잣대를 들이대는 선별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학생과의 실질적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그들의 사고 과정을 관찰·기록하는 과정 중심 평가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평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는 때다.
AI 혁명 속에서 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AI에게 정답을 갈구하는 시대에 교사 무용론이 심심찮게 고개를 든다. 모든 것이 기계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인간적인 것’에 갈증을 느낀다. AI는 오답을 수정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감정을 헤아릴 수 없고, 알고리즘은 학습 경로를 제시할 수 있으나 인간의 성장을 묵묵히 기다리는 인내심은 부족하다. 저자가 9장에서 강조하듯 실수를 학습의 기회로 보는 ‘성장 마인드’가 절실한 때다.
이제는 어려운 개념을 탐구하며 인고하는 과정과 시간을 응원하는 교육 문화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AI는 시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시를 낭독하는 학생의 목소리에 담긴 떨림의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 책이 오늘날 교육자에게 던지는 화두는 명확하다. AI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교사는 학습자가 이 낯선 환경에 현명하게 대처하고, AI가 결코 대체하지 못할 인간만의 직관, 판단력, 창의성을 기를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의 급격한 진화로 인해 이 책에 소개된 일부 AI 도구가 시효를 다하거나 번역의 한계로 현장 적용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오히려 이러한 도구적 한계는 교사에게 인공지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리터러시 역량의 성장을 요구하기도 한다. 결국 이 책의 가치는 AI 도구 활용법을 넘어 비판적 사고라는 본질에 집중하게 하는 데 있다.
교육의 본질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기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 AI에 의존하지 않고 서툴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이끌어 주는 것. 이 모든 것은 교사의 숙명이자 의무이기에 향후 교사의 역할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AI 혁명과 비판적 사고 학습》은 지금 혼란의 교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에게 하나의 이정표이자, 나침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1) 어떤 논제에 대해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며 서로의 논지를 반박하는 형태의 토론. 편집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