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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뷰] 북리뷰①: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
미디어 리뷰 | 등록일 : 2026-02-27

 

정재철 저,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 ⓒ원더박스

 

 

 

한때 우리나라가 ‘음모론 청정국’이던 때도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더불어 백신에 마이크로칩이 들어갔다거나 5G 전자파가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황당한 음모론이 전 세계에 퍼졌지만, 우리나라에선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 정부 방역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았고, 의료계와 언론계도 각종 음모론에 단호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부정선거 음모론’은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현직 대통령과 정치권,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음모론이 재생산됐고, 중국이 배후라는 ‘혐중 정서’까지 결합돼 종교계와 청년 세대까지 파고들었다. 결국 대통령 자신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고 음모론을 앞세워 비상계엄까지 선포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렀다.

 

음모론 신봉자에게 필요한 건 ‘조롱 아닌 경청’

 

지난 10년 동안 팩트체크 업무를 해오면서 ‘사전투표 조작설’ 같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상대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다. 수많은 언론 보도로 부정선거론은 이미 허위 정보로 드러났고, 법원에서 그들이 제시한 근거 하나하나를 모두 반박했음에도 해마다 선거 때만 되면 똑같은 주장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없애려 해도 끊임없이 되살아나 덤벼드는 ‘좀비’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정재철 내일신문 기자도 그동안 언론 현업인이자 언론학자로서 허위 조작 정보의 위험성을 알려왔고, ‘팩트체크 저널리즘’과 ‘미디어 리터러시(문해력)’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책도 여러 권 썼다. 누구보다 음모론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을 그가 내놓은 새 책 제목이 의외였다.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는 음모론 신봉자를 비판하기에 앞서 왜 그들이 음모론에 빠졌는지 진단하고, 그들과 이 세상을 음모론에서 구할 방법을 담은 처방전이었다. 음모론 신봉자를 <워킹데드(The Walking Dead)> 같은 미국 드라마 속 좀비 떼처럼 ‘박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한국 영화 <좀비딸>(2025)에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랑하는 딸처럼 ‘구해야 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저자는 책에서도 ‘음모론자’보다는 ‘음모론 신봉자’란 표현을 주로 썼다).

 

저자는 음모론 신봉자를 설득하기 어려운 것은 오늘날 음모론이 단순한 정보 오류가 아닌 감정을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음모론이 단순히 잘못된 정보 때문이라면 객관적인 증거를 통한 반박이나 논리적인 설득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음모론을 받아들이는 사람 내면에 이미 사회적 불안이나 제도에 대한 불신, 분노, 외로움, 배신감 같은 감정이 가득하다면, 단순한 의심에서 비롯된 음모론이 자신의 ‘신념’이 되고 더는 이성적 반박이 통하지 않게 된다.

 

설득할 수 있는 음모론, 맞서야 할 음모론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미국이나 유럽에는 UFO(미확인비행물체)의 존재나 지구 평면설을 신봉하는 비과학적 음모론부터 기후 위기 위협이 조작됐다고 믿는 ‘기후 음모론’, 이민자가 유럽 백인을 대체하려 한다는 ‘백인 대체론’, 악마를 숭배하는 엘리트 집단이 존재한다고 믿는 ‘종교적 종말론’까지 다양한 형태의 음모론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도 이런 음모론에 빠진 가족이나 지인을 설득하려는 시도를 다룬 대목이었다. 미국 공영방송 NPR 기자인 잭 맥(Zach Mack)은 전자기 펄스 공격으로 곧 미국 전체가 마비될 것이고 백신에 마이크로칩이 들어있다고 믿는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1년 뒤 그 예측이 맞는지를 놓고 내기를 건다. 결국 아버지는 내기에 졌지만, ‘타이밍 문제일 뿐’이라며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잭은 당장 아버지의 믿음을 바꾸는 데 실패했지만, 아버지는 자식과 꾸준한 대화를 통해 자신이 왜 그런 믿음을 갖게 됐고 주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다양한 음모론 신봉자를 인터뷰한 도니 오설리번(Donie O’Sullivan) CNN 기자는 언론이 오랫동안 음모론 신봉자를 ‘괴짜’나 ‘광신자’로 묘사해 왔기 때문에 그들이 주류 사회에 더 등을 돌렸고, 언론에 대한 신뢰도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조롱이 아닌 경청, 배제 대신 포용, 싸움 대신 대화만이 그들을 되돌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모든 음모론 신봉자가 대화나 포용 상대라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의 ‘큐어넌(QAnon)’1)처럼 인종차별이나 정치적 폭력에는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국가 최고 지도자가 음모론을 믿고 유포하는 이른바 ‘음모론의 권력화’는 단순한 착오가 아닌 의도적 선동이어서 더 심각하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 난입 사태와 2023년 1월 8일 브라질 정부 청사 점거 사태, 2024년 12월 3일 한국의 비상계엄과 2025년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공통점이 있다. 각각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보우소나루(Jair Messias Bolsonaro) 전 브라질 대통령, 윤석열 전 대통령 등 국가 최고 지도자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지지자를 선동했고, 물리적인 민주주의 파괴 행위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처럼 음모론을 퍼뜨리는 무책임한 리더와 무관심한 시민이 만나면 음모론은 더 빨리 퍼지게 된다.

 

저항하는 ‘책임 있는 리더’와 ‘깨어 있는 시민’

 

저자는 “거짓은 고립에서 탄생하고 진실은 협력에서 만들어진다”면서 ‘연대와 협력’을 “민주주의 숨구멍이자 가장 강력한 방역”이라고 강조했다. 거짓과 음모론이 세계화되면서 이제 어느 국가도 단독으로 음모론에 맞서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와 시민, 언론, 기술, 교육, 국제기구가 서로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책임 있는 리더’와 ‘깨어 있는 시민’을 음모론에 저항할 두 축으로 봤다. 허위 정보나 선동, 혐오 표현에 기대지 않고 사실에 기반해 말하고 행동하는 책임 있는 리더의 특성은 정치 지도자뿐 아니라 우리 언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리더를 선택하고 감시해야 할 ‘깨어 있는 시민’의 실천 지침 역시 언론 역할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팩트체크에 참여해 SNS에 떠도는 허위 정보를 가려내고, 진실을 보도하고, 정보를 공유할 때 극단적인 표현이나 자극적인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퍼뜨려선 안 된다는 지침은 언론인이 더 유념할 대목이다.

 

음모론이 퍼지기 전에 차단하는 ‘프리벙킹(Prebunking)’도 언론과 디지털 플랫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선거가 다가오면 이러저러한 조작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같은 메시지만 미리 전달해도 정치적 음모론에 선제적 면역 효과가 발생한다.

 

아울러 EU의 대형 플랫폼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 공개 의무화, 독일의 허위 정보 유포 채널 제재 같은 실효성 있는 제도적 대응과 대만의 민간 주도 실시간 팩트체크 시스템(Cofacts), 핀란드의 사이버 시민교육 모델도 해법으로 제시했다.

 

저자는 오늘날 음모론은 단순한 정보 오류보다 제도에 대한 불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단지 거짓에 반박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제도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정부와 정당, 학계와 더불어 언론의 ‘신뢰 회복’이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그동안 팩트체크 기사를 쓰면서도 음모론이 ‘거짓’이라고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언론도 이제 ‘음모론에 빠진 독자’를 조롱이 아닌 소통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언론에 대한 불신을 줄일 필요가 있다.

 

 

 

 

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음모론 단체.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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