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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가 창작의 영역까지 빠르게 파고들면서 AI 학습 방법이 저작권법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AI 학습 관련 판례가 아직 부족한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이를 둘러싸고 80건 이상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미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살펴야 할 시사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생성형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시대에 ‘AI는 무엇으로 학습했는가’라는 질문은 창작자의 권리 보호, 산업의 경쟁 질서, 그리고 기술 혁신의 속도를 동시에 흔드는 핵심적인 법·정책 쟁점으로 부상했다. 한편에서는 “AI 학습은 인간이 읽고 배우는 과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AI 학습은 대규모 복제이자 기존 저작물 시장을 대체하는 행위”라는 반론이 정면으로 맞선다.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저작권법상 배타적 이용행위 중 하나가 권리자의 허락 없이 이뤄져야 한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이용 형태로 복제, 2차적 저작물 작성, 공연, 배포, 전시, 공중 송신, 대여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각 이용행위는 독립된 지분권(이용권)으로 보호된다. 이중 생성형 AI의 학습 단계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문제되는 이용행위는 ‘복제’다.
이 지점에서 학습 과정에서 이뤄진 무단 이용을 ‘공정이용(fair use)’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는 오늘날 법원이 가장 난해하게 씨름하는 쟁점이 됐다. 공정이용은 저작권이라는 배타적 권리가 표현의 자유, 학문 연구, 기술 발전을 과도하게 제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균형 장치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은 언제나 조건부이며, 구체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제35조의5에 포괄적인 공정이용 조항을 두고 있다. 다만 AI 학습과 관련된 판례는 아직 축적되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공정이용 조항을 저작권법에 규정하고 있는 미국은 AI 학습을 둘러싸고 80건 이상의 소송이 진행 중이며 피고 측은 침해에 대해 공정이용으로 맞서는 중이다. 이러한 미국의 사례들은 한국에 중요한 비교법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시장 희석’ 효과 있다면 공정이용 인정 안 돼
미국에서 제기된 바르츠 대 앤트로픽(Bartz v. Anthropic) 사건1)과 카드리 대 메타(Kadrey v. Meta) 사건2)은 생성형 AI 학습 과정에서의 데이터 이용이 공정이용에 해당하는지를 법원이 본격적으로 판단한 최초의 사례들이다. 미국 저작권법상 공정이용은 제107조에 규정된 네 가지 요소, 즉 △이용의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성격, △이용된 분량과 그 본질성, △잠재적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된다. AI 학습을 위한 저작물 이용이 공정이용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 미국 저작권청은 <저작권과 인공지능(AI) 보고서> 제3부에서 네 가지 요소 중 제4요소와 관련해 매출 손실, 라이선스 시장 침해, 공공의 이익 그리고 ‘시장 희석(market dilution)’과 같은 간접적 효과를 중요한 판단 요소로 제시했다. 이는 생성형 AI가 단일 저작물을 직접 대체하지 않더라도, 다수의 유사 산출물을 통해 시장 전체의 가치를 잠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앤트로픽과 메타 사건에서 핵심적인 쟁점으로 작용한 것은 바로 제1요소의 ‘변형적 이용(transformativeuse)’ 여부와 제4요소의 시장 희석 가능성이었다. 두 사건에서 법원은 AI 학습 자체가 일정한 범위에서는 변형적 목적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으나, 공정이용 항변을 전면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먼저 두 재판부가 공통적으로 검토한 쟁점은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을 복제해 생성형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행위가 변형적 목적을 갖는지 여부였다. 여기서 변형적 이용이란 단순히 표현 형식이 변경됐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원저작물과는 다른 목적과 기능을 위해 이용됐는지를 판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동일한 AI 학습이라 하더라도, 경쟁 서비스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인지, 일반적 언어 능력이나 통계적 패턴을 학습하기 위한 기초 모델 훈련인지, 또는 원저작물의 스타일이나 내용을 그대로 대체하는 산출을 목표로 하는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앤트로픽과 메타는 도서의 내용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기초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로 이용했을 뿐, 해당 도서 자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거나 경쟁 서비스로 대체하려는 목적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앤트로픽 사건의 윌리엄 알섭(William Alsup) 판사와 메타 사건의 빈스 차브리아(Vince Chhabria) 판사는 이러한 학습 목적을 변형적 이용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에서 공정이용이 부정될 수 있는 한계 역시 분명히 제시됐다. 알섭 판사는 앤트로픽이 불법 복제된 도서를 내려받아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보관한 행위에 대해서는 별도의 책임을 인정했다. 또한 차브리아 판사는 메타 사건에서 공정이용을 인정하면서도, 만약 원고 측이 생성형 AI의 산출물이 저작권 시장을 희석시키거나 인간 창작자의 창작 유인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킨다는 점을 입증한다면, AI 학습은 공정이용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확히 경고했다.
두 재판부 모두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의 일부 학습 데이터 이용은 공정이용이 될 수 있지만, 데이터의 수집이 불법적이거나 시장을 희석시키는 이용행위는 공정이용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 것이다.
‘학습이냐, 아니냐’ 이분법으론 판단 어려워
이 두 사건이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AI 학습은 공정이용일 수 있다’는 판단이 곧바로 불법 복제본의 수집·축적·보관·유통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AI 학습의 공정이용 여부는 학습 그 자체의 추상적 성격이 아니라, 데이터의 취득 방식, 이용 목적, 기술적 관리 방식, 그리고 결과물이 원저작물의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특히 메타 사건의 차브리아 판사가 강조한 것은, 생성형 AI의 산출물이 개별 저작물을 직접적으로 표절하지 않더라도, 원작과 경쟁하는 수많은 유사 저작물이 단기간에 대량 생산되는 현상 자체가 저작권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즉, 저작권청이 보고서를 통해 시장 희석을 언급한 것은 전통적인 저작권 침해 판단이 주로 ‘직접적 대체 효과’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는 점을 넘어, 생성형 AI 시대에는 ‘간접적·누적적 시장 대체 효과’ 역시 정당한 고려 대상이 돼야 함을 시사한다.
결국 AI 학습에서의 공정이용 판단의 핵심은 ‘AI 학습이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에 있지 않다. 문제는 무엇을 만들기 위해 이용되었는지(목적), 어떠한 방식으로 데이터가 수집·저장·관리됐는지(기술적·조직적 통제), 어떤 데이터가 사용됐는지(출처의 적법성, 계약 및 라이선스 여부), 그리고 그 결과가 누구의 시장을 어느 정도 잠식하는지(직간접적 대체 효과)에 있다. 생성형 AI 시대의 공정이용 기준은 바로 이 다층적 질문들에 대한 종합적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정이용의 판단 기준은 AI 학습의 저작권 침해 판단의 기준이면서 동시에 ‘AI 설계’의 기준이 돼야 한다.
1) Andrea Bartz et al. v. Anthropic PBC., 3:24-cv-05417-WHA
2) Richard Kadrey et al. v. Meta Platforms Inc., 3:23-cv-03417-V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