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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스포츠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장애인 선수들에게는 이 말이 더욱 와닿을 수밖에 없다. 신체적 어려움에 더해 경제적 여건을 비롯한 많은 난관 속에서도 훈련을 이어가고 있는 보치아 선수들을 조명한 중부일보의 취재기를 만나본다. 편집자 주
누군가에게 스포츠는 취미나 여가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영역을 넓히는 중요한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취재를 준비하면서 저는 ‘보치아(Boccia, 革球(혁구))’라는 종목이 단순한 장애인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경기장 안에서 공 하나를 굴리는 짧은 순간이 선수들에게는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보치아를 취재 아이템으로 떠올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패럴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일상에서 보치아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나 이들이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겪는 현실이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재를 진행하면서 만난 선수들은 각기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보치아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선수들에게 보치아는 승패를 가르는 경기 이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훈련 환경, 시설 부족, 대중적 인지도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존재했습니다.

이번 취재는 보치아라는 종목 자체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습니다.
‘은메달이라서 다행’이라는 말
취재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보치아 선수들이 겪는 제도적 문제는 분명 존재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려는 목소리를 찾는 일부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많은 선수와 관계자들은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선뜻 인터뷰에 나서기를 망설였습니다. 장애인 스포츠계는 규모가 크지 않고 선수들의 활동 무대 역시 제한적이다 보니, 제도에 대한 비판이 자칫 개인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일부 선수들은 취재진에게 문제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실명이 공개되는 것은 부담스럽다”라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선수와 관계자들을 수차례 설득하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 국가에 명예를 가져다주는 성과가 오히려 선수 개인의 삶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현실이었습니다. 취재의 계기가 된 것도 한 국가대표 선수의 이야기였습니다. 2024년 파리 패럴림픽 보치아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 선수는 경기 후 “금메달이 아니라 은메달을 따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금융재산 기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금메달을 획득해 더 많은 포상금을 받았다면, 해당 선수는 기초생활수급 자격에서 제외돼 의료와 주거 지원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가를 대표해 메달을 따는 순간이 오히려 생계를 위협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취재진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이후 취재진은 선수들과 관계자들의 증언, 과거 사례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가 개인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제도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나갔습니다. 보치아 선수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취재진이 가장 크게 마주한 문제는 ‘성과’와 ‘생계’ 사이의 모순이었습니다.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국위를 선양했음에도, 정작 선수 개인의 삶에서는 성과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취재를 진행하며 만난 선수 중 일부는 이 문제를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자신의 소득을 의도적으로 낮추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패럴림픽 보치아 은메달리스트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선수의 현재 월 급여는 약 110만 원 수준이지만, 공제액 등을 제외하면 실제 소득인정액은 70만 원대에 머무르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의료비와 주거 지원 등 기초생활수급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급여 수준을 조정한 결과였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들은 설명에 따르면, 이 선수가 수급 자격을 통해 받고 있는 의료·주거 지원은 월 70~80만 원 수준입니다. 월 급여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지원입니다. 만약 금메달을 따거나 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 수급 자격이 박탈될 경우, 현재와 같은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현실은 선수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한 선수는 더 높은 급여를 제시받은 팀의 제안을 포기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월 300만 원 이상의 급여 조건이었지만, 수급 자격을 잃을 경우 의료비와 치료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했습니다. 보치아 선수들은 경기 특성상 재활과 치료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상 위험 역시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안정적인 의료 지원을 포기하는 선택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안산시 와동체육관에서 훈련 중인 보치아 선수들 ⓒ중부일보
제도와 지원 없이는 활동 어려워
취재를 이어가며 또 하나 확인한 문제는 보치아 선수들의 활동지원사 제도였습니다. 보치아 선수들에게 활동지원사는 단순한 보조 인력이 아니라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보치아는 장애 정도가 심한 선수들이 많이 참여하는 종목으로, 훈련과 대회 참가 과정에서 활동지원사의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일부 선수들은 ‘홈통’이라는 보조기구를 이용해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활동지원사는 돌봄 등 선수 케어와 함께 경기를 이해하고 기술적인 보조 역할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면서 장기간 대회 일정에 동행할 활동지원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국가대표 선발을 위해서는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대회에 꾸준히 참가해야 하지만, 대회 한 번에 최소 3일 이상 타지에 머무르는 일정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현행 활동지원사 제도는 시간 단위로 운영돼 장기간 출장이나 합숙 형태의 돌봄을 요구하는 선수 생활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취재를 통해 확인한 것은, 보치아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공을 굴리기까지의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선수들의 노력 뒤에는 여전히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선수들의 노력 뒤에는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중부일보
가족의 희생 딛고 오늘도 훈련하는 선수들
취재를 이어가며 마지막으로 마주한 현실은 보치아 선수들의 뒤에서 묵묵히 선수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부모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안산시 안산와동체육관에서 만난 한 와상장애 보치아 선수의 어머니는 “결국 보치아 선수 생활은 부모의 희생이 있어야 돌아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체육관에서 진행되는 훈련 현장에는 선수들을 돕는 부모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평일 오전 훈련에 참여한 선수 중 절반가량은 부모가 직접 보조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장기간 선수 생활을 이어온 선수들 가운데는 40대도 있었고, 이들의 곁에는 60~70대로 보이는 고령의 부모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부모들은 자녀의 선수 생활을 돕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훈련과 대회 일정을 함께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활동지원사 제도의 한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홈통을 다뤄야 하고, 대회 참가를 위해 며칠씩 타지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과 환경을 감당할 활동지원사를 찾기 어려워 결국 부모가 직접 지원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입니다. 선수들 역시 부모의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부담을 털어놓았습니다. 활동지원사 이용 시간이 제한돼있는 상황에서 훈련과 대회를 모두 소화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도움에 기대는 방법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치아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공을 굴리기까지의 과정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의 뒤에는 오랜 시간 함께 버텨온 가족들의 희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보치아 선수들이 생계와 제도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고 오롯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취재를 이어가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습니다. 선수들이 흘린 노력과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그리고 미처 보지 못했던 현실을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