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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각 분야에서 AI 도입이 늘어나며 미래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AI가 본격적으로 업무에 투입되고 휴머노이드 도입을 눈앞에 둔 세계 일터는 어떤 모습일까. 막연한 두려움의 실체를 현실적인 보도로 확인시켜 준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휴머노이드 ‘아틀라스’가 등장했습니다.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가 만들 미래를 기다렸던 현장은 환호했습니다. 기업은 혁신적 기술을 통해 이윤을 크게 늘리고 인간도 드디어 노동에서 해방된다는 기대감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학 관점에서는 AI와 휴머노이드가 암울한 미래를 만들 것이란 비관론이 팽배합니다. 혁신 기술을 독점한 기업이 막대한 부를 움켜쥐면서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AI와 휴머노이드 시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공존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단순히 일자리를 대체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을 게 자명합니다. 오히려 인간 사회의 큰 변곡점으로서 기존의 모든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쓴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 노동하는 인간)’를 기획 전면에 내건 이유입니다. AI가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놓고 노동자, 기업, 학문, 세제, 복지 등 전 분야에서 일어나거나, 일어날 수 있는 시대상을 조망하기로 했습니다.
불안한 개발자들? 실리콘밸리 문을 두드리다
“자기가 잘렸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특히 실리콘밸리 개발자처럼 고학력에 자존심까지 높은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AI 시대를 열고 AI 산업 전환을 주도하는 미국에서도 노동의 종말을 예견하는 이들이 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습니다. 협력사, 투자사까지 수소문하던 김창영 기자는 결국 기업에 직접 부딪히기로 했습니다.
미국 ‘메타’를 찾아가 만난 인도 출신의 한 개발자는 “전문 비자 수수료가 10만 달러(약 1억 4,800만 원)로 올라버렸는데 실직자들에게 어느 기업이 선뜻 지원해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퇴근길에 만난 한 직원은 “이번에 감원 대상인 사업과 관련이 없어 나는 해고를 피했다”면서도 “구조조정은 분명 조직에 좋지 않은 신호”라고 걱정했습니다.
사무실 주변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하는 모습들이 눈에 띠었습니다. 취재를 위해 다가가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담배를 끄고 사무실로 들어가 버리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억대 연봉을 받고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자리에 있는 개발자들이지만 실리콘밸리에서 본 이들은 먼저 나간 동료들처럼 하루하루 AI에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도전받는 애덤 스미스… 피케티의 경고가 현실로
250여 년 전 《국부론》을 써 자본주의 경제학의 기초를 닦았던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다크 팩토리’1)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가 제시하고 뒤이어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받아들였던 ‘모든 부(wealth)의 근원은 노동’이라는 노동가치론이 “잘못됐을 수 있다”고 고백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동가치론, 한계생산성 이론, 비교우위론, 유효수요이론은 모두 AI 시대에 흔들릴 학문입니다. AI는 이들 학문의 기반인 교환가치를 무위로 만듭니다.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물가가 오르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내려간다’는 필립스 곡선도 이제는 평평해질 수 있습니다. 이는 학문을 기반으로 한 정책과 사회시스템의 재설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경제학 영역 취재는 기사와 보고서의 줄타기와 같았습니다. 한 경제학과 교수가 “AI 시대와 경제학을 함께 다룬 언론보도는 처음 본다”라고 말할 정도로 참고할 수 있는 사례가 없었습니다. 비경제학 전공 기자가 경제학을 이해하고 기사로 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필립 트래멀(Philip Trammell)과 AI 전문가인 드와르케시 파텔(Dwarkesh Patel)의 주장에 이르렀습니다. 필립 트래멀은 국내 언론에 생소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22세기 자본’이라는 에세이에서 피케티(Thomas Piketty) 이론을 주목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도 뜨거운 논쟁을 붙였습니다. 불평등의 공식으로 부의 재분배를 믿지 않았던 피케티의 암울한 전망은 AI시대 독점 기업이 나타나면서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김태기 전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사회주의를 전망하는 이들까지 나타났다”란 섬뜩한 경고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 치열한 논쟁AI가 본격적으로 적용되고 휴머노이드 도입을 눈앞에 둔 세계 각국 일터의 지형도는 어떨까요. 각국의 노동조합들이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SAP SE는 지난해 AI 사업 확장을 위해 8,000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결정했는데, 독일 노동자단체들은 ‘강제 해고에 나섰다’며 반발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기업 스텔란티스(Stellantis)에서도 지난해 말 북미·이탈리아 등에서 연쇄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인 스웨덴 에릭슨(Ericsson), 영국의 로이드은행(Lloyd Bank) 등도 비슷한 이유로 노사 간 갈등이 격화됐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일자리 너머 암울한 시대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21세기판 인클로저 운동’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인클로저 운동은 16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양털값 급등으로 농지를 양을 기르기 위한 목장으로 바꾸는 지주들이 늘어나며 소작농을 비롯한 농민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소설 《유토피아》의 작가로 유명한 토머스 모어(Thomas More)는 ‘양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며 인클로저 운동에 대해 비판의식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21세기 산업 현장에서는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만든 로봇이 사람의 밥그릇을 빼앗아가는 로봇발(發)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납니다.

기업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기업이 휴머노이드에 수백억 달러의 돈을 쏟아붓는 것은 결국 인간의 노동을 로봇으로 대체할 경우 정체 중인 인간의 노동생산성 한계를 단숨에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아마존과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빅테크 4개 기업의 지난해 AI 인프라 분야 자본투자(CAPEX)는 3,746억 달러(약 557조 원)였지만 올해는 5,900억 달러(약 877조 원)가 넘었습니다.
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앞으로 근로소득에 기반한 조세 체계를 비롯해 소득 분배 방식, 교육기관의 역할,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 재설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입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각국은 근로시간 규제, 산재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제도 도입, 근로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 등으로 대응했지만 AI·휴머노이드 시대에는 이 같은 제도 변화의 폭과 속도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대타협이 시급하다고 한 목소리로 경고합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AI와 노동연구회’ 위원 등 고용노동 전문가 15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AI 시대 고용 노동정책 대응 수준을 물은 결과 ‘못함’이 40%로 ‘잘함(33.3%)’ 보다 많았습니다. 이들은 AI 시대 일자리 상실, 부의 재분배 실패, 취약계층 충격 등에 대비할 정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설문에 참가한 한 교수는 “기술 독점기업의 사적 이윤 추구는 사회 공공선과 노동권 보호라는 원칙을 무너뜨릴 것”이라며 “(사회적 대화와 같은) 민주적인 형태를 통해 기술이 공동체의 발전에 봉사할 수 있는 방식을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빨라진 호모 라보란스의 종말>은 ‘기여적 정의’에 대한 질문과 답입니다. AI 시대는 단순한 배분을 넘어 공동선을 구축하기 위한 시스템적 배분이 필요합니다. 근로소득에 기반한 조세 체계를 비롯해 소득 분배 방식, 교육기관의 역할,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 재설정에 대한 논의가 시급합니다. 특히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일정 소득을 정부가 메워주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향후 활발해질 것입니다.

이번 기획은 산업적 측면에서 AI 성과를 벗어나 새로운 사회적 담론을 모색하자는 서울경제의 신년 기획 중 하나였습니다. 산업부 출입이 아닌 사회부에서 각각 노동과 교육을 맡고 있는 저와 양철민 기자가 기획에 참여한 배경입니다. 특히 저희는 자료 수집과 선별 과정에 가장 공을 들였습니다. AI와 관련한 논문, 유튜브, 서적 등을 모아놓고 전문가 조언을 따라가면서 필요한 통계와 현상을 추려냈습니다. 특히 AI의 ‘가짜 정보’를 걸러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원문을 확인하지 못한 자료는 모두 버렸습니다.
많은 질문을 던진 기획이었지만, 제대로 답을 찾지 못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큽니다. 하지만 박성호 사회부 부장과 양철민·김창영 기자와 함께 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모여 미처 끝맺지 못한 질문에 답을 찾는 AI 기획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1) 인공지능, 로봇 등으로 자동화되어 24시간 가동되는 무인 공장.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