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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익숙한 기자들도 관행적으로 단어를 잘못 쓰거나, 말의 명확한 의미를 고민하지 않고 쓰는 일이 많다. 기사는 독자에게 읽혀 그들의 언어 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주의 깊게 작성해야 한다.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잘못된 표현의 사례를 짚어봤다. 더 많은 사례는 권말 부록(82p)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신문·방송·뉴스통신 기사에서 틀린 글쓰기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 중견 기자, 논설위원들의 글에서도 오류가 숱하게 드러난다. 기자들의 글은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 때문에 전문성을 지녔을 것으로 여겨지는 기자들의 틀린 글쓰기는 수용자나 언중(말무리)의 언어 생활을 오도하기 쉽다. 너무 많이 틀리는 표현은 인공지능(AI)도 틀리게 한다. 기자들의 틀린 글쓰기는 선배들이 잘못 써온 관행을 그대로 따라 하는 탓이 큰 것 같다. 잘못된 글쓰기 사례를 모아봤다. 이 가운데 십중팔구가 틀리는 표현도 수두룩하다.
기사 문장에서 자주 발견되는 오류는 대체로 두 갈래다. 하나는 낱말의 뜻을 잘못 알고 쓰는 경우다. 한자어를 어감으로 짐작하거나, 사전적 의미를 따지지 않고 습관처럼 가져다 쓰다 보니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많다. 다른 하나는 겹말이다. 같은 뜻의 말이 겹쳐 불필요하게 길어진 문장은 정보 전달을 방해하고 문장의 힘을 떨어뜨린다.
제한된 지면에서 간명하게 사실을 전해야 하는 기사 문장에서는 더욱 경계해야 한다. 틀린 표현은 뜻을 흐리고, 겹말은 문장을 늘어지게 만든다. 둘 다 기사 문장의 정확성과 경제성을 해친다.
흔한 말이어도 쓰기 전 잘 살펴야
잘못된 표현의 대표적인 사례가 ‘유명세(有名稅)’다. 기사에서는 ‘유명세를 탔다’, ‘유명세를 떨쳤다’, ‘유명세를 누린다’, ‘유명세를 얻었다’ 같은 표현이 흔히 보인다.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유명세는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당하는 불편이나 곤욕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세’는 세금 세(稅)다. 명성이나 권세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유명세를 치렀다’, ‘유명세가 따른다’라고 써야 한다. 긍정적인 뜻으로 쓰려면 ‘명성을 얻었다’, ‘명성을 떨쳤다’, ‘이름을 날렸다’처럼 고쳐야 한다.
‘금도(襟度)’도 정치 기사와 사회 기사에서 유난히 많이 틀린다. ‘금도를 넘었다’, ‘금도를 지켜라’ 같은 표현은 기사와 정치인의 발언, 정당 성명에서 거의 관용구처럼 굳어 있다. 그러나 금도는 남에게 용인될 수 있는 언행의 정도나 지켜야 할 선을 뜻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포용할 만한 도량을 뜻한다. 그러므로 ‘선을 넘었다’, ‘도를 넘었다’, ‘선을 지켜라’라고 써야 한다. 반대로 ‘금도를 발휘하다’는 옳은 표현이다. 뜻을 잘못 알고 한자 말을 남용하면 그럴듯해 보여도 어법에는 맞지 않는 문장이 된다.
한 단어에 여러 의미 담긴 경우 더욱 조심할 것
‘안위(安危)’ 역시 품위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잘못 쓰는 사례가 많다. ‘국가 안위가 위태롭다’, ‘자신의 안위만 도모한다’, ‘국가의 안위를 해치는 세력’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안위는 편안함과 위태함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이미 상반된 두 개념이 함께 들어 있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 ‘안전’, ‘안녕’ ‘보위’ 등으로 바꿔 써야 자연스럽다. 뜻이 서로 반대인 말을 한 낱말에 함께 묶은 경우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그와 비슷한 예가 ‘존망’과 ‘생사’다. ‘존망이 위태롭다’, ‘생사가 위태롭다’, 같은 문장은 기사에서 자주 보이지만 뜻을 따져보면 이상하다. 존망은 존속과 멸망을, 생사는 삶과 죽음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존망이 위태롭다’는 ‘존속도 위태롭고 멸망도 위태롭다’는 말이 되고, ‘생사가 위태롭다’는 ‘삶도 위태롭고 죽음도 위태롭다’는 말이 된다. ‘존속이 위태롭다’, ‘목숨이 위태롭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라고 써야 한다. 정반대 뜻이 함께 들어 있는 단어는 그 자체로 대비를 품고 있으므로 뒤에 다른 말을 덧붙일 때 뜻이 중복되거나 어색해지기 쉽다.
‘애환(哀歡)’도 자주 오해되는 단어다. ‘서민의 애환을 달래다’, ‘삶의 애환을 치유하다’, ‘시대의 애환을 위로하다’ 같은 표현이 흔하지만, 애환은 슬픔과 기쁨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슬픔은 달래고 위로할 수 있으나 기쁨은 달랠 대상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슬픔을 달래다’, ‘시름을 덜다’, ‘아픔을 위로하다’라고 하면 충분하다. 낱말의 뜻을 정확히 따지지 않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표현이 오히려 어색한 문장이 된다.
단어에서 문장으로 확장되는 바른 글쓰기
동사와의 호응이 틀린 경우도 많다. ‘자문(諮問)을 구했다’, ‘자문을 받았다’는 말은 너무 널리 퍼져 있어 바른 표현처럼 여겨지지만 어법에는 맞지 않는다. 자문은 ‘무엇을 묻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문가에게 자문했다’라고 써야 한다. 답을 해 주는 쪽은 ‘자문에 응했다’라고 표현한다. ‘사열(査閱)을 받았다’도 마찬가지다. 사열은 부대의 훈련 정도나 사기를 열병과 분열을 통해 살피는 것을 뜻한다. 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했다’라고 해야 맞는다. 사열을 받는 쪽은 의장대나 군대다. ‘사사(師事)를 받았다’도 흔한 오용이다. 사사는 스승으로 삼아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므로 ‘○○을 사사했다’라고 써야 한다. ‘사사를 받았다’라고 하면 뜻이 꼬인다.
기사에는 정반대 뜻을 이미 포함하고 있는 단어 뒤에 다시 ‘여부’를 붙이는 오류도 많다. ‘진위 여부’가 대표적이다. 진위는 참과 거짓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생사, 존폐, 찬반, 진퇴, 성패, 당락, 승패도 마찬가지다. 이런 단어에는 다시 ‘여부’를 붙일 필요가 없다. ‘진위’라고 하면 충분하다. 반대로 ‘진실 여부’, ‘허위 여부’, ‘생존 여부’, ‘사망 여부’처럼 한쪽 의미만 담은 말에는 ‘여부’를 붙일 수 있다.
‘피로 회복’은 너무 익숙해서 잘못된 줄 모르는 표현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피로를 회복하면 더 피로해진다는 말이 된다. 회복(回復)은 원래 상태로 돌이키거나 되찾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건강 회복, 명예 회복, 경기 회복, 신용 회복은 가능하지만, 피로 회복은 어색하다. ‘피로 해소’라고 써야 맞다. 광고 문구나 상투적 표현을 무심코 따라 쓰다 보면 기사 문장까지 흔들리게 된다.
불필요한 표현 없어야 읽기 좋은 문장 된다
겹말은 기사 문장을 느슨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같은 뜻이 거듭되는 문장은 군더더기가 많고, 군더더기가 많으면 문장의 핵심이 흐려진다. ‘예시(例示)를 들었다’, ‘예시를 보여주었다’는 모두 겹말이다. 예시 자체가 ‘예를 들어 보임’이라는 뜻이므로 ‘예를 들었다’ 또는 ‘예시했다’라고 해야 한다. ‘안보 보장’도 마찬가지다. 안보는 안전보장의 준말이다. 따라서 안보 보장은 ‘안전보장 보장’이 된다. ‘과반(過半)을 넘었다’, ‘과반 이상’도 같은 오류다. 과반은 이미 절반이 넘는다는 뜻이다. ‘과반을 차지했다’, ‘절반을 넘었다’처럼 써야 한다. 숫자 표현에서는 ‘수천여 명’, ‘수억여 원’, ‘약 2,500여 명’ 같은 겹말도 흔하다. ‘수천 명’, ‘수억 원’, ‘2,500여 명’, ‘약 2,500명’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기사 문장에서 겹말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의미가 중복되면 문장은 길어지고, 길어진 문장은 정보 전달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방금 전’, ‘그때 당시’, ‘함께 동행하다’, ‘스스로 자각하다’, ‘다가올 미래’, ‘우선 먼저’처럼 아무 생각 없이 붙여 쓰는 표현들은 대부분 뜻이 겹친다.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면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는 말들이다.
문제는 이런 오용이 개인의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언론에 실린 말은 반복을 통해 사회 전체의 언어 습관에 영향을 준다. 기자가 잘못 쓰면 독자가 따라 쓰고, 독자가 따라 쓰면 그 말이 다시 기사로 돌아온다. 그래서 더욱 기사의 문장이 중요하다. 뜻을 잘못 아는 표현, 동사와의 호응이 틀린 표현, 상반된 개념을 중복해서 덧붙인 표현, 같은 뜻을 겹쳐 쓴 겹말부터 차근차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