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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비실명화 관행에 따라 익명 처리된 채 공개된 12.3 내란 판결문. 뉴스타파는 그 안에 가려진 진실을 드러내고자 판결문을 실명화·시각화해 특별 페이지로 공개했다. 지워진 이름을 복원해 판결문이 숨기고 있던 권력의 논리와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취재기·제작기를 읽는 독자들의 바람은 분명하다. ‘어떻게 저런 취재를 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했는지’다. 이 글을 읽는 《신문과방송》 독자 대부분은 현직 기자나 언론사 지망생들로 시간에 쫓기는 분들일 테니, 빠르게 핵심부터 말씀드리겠다. 최대한 많은 인명을 실명화한 판결문을 입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윤석열 내란 Part Ⅲ. 기록된 변명> 취재 및 제작 과정의 핵심이다.
취재기 원고 청탁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특히 이 보도의 경우, 익명 판결문 전문을 실명화하신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작업 과정과 노하우를 담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의뢰자는 실명화 작업의 어떤 지점에 ‘의미’가 있다고 보았을까? 또 어떤 ‘과정과 노하우’가 숨어있다고 생각했을까? 그 질문의 본질이 무엇인지 나 또한 궁금해졌다.
사실 기고를 처음 제안 받은 기자는 ‘실명화에 직접 기여한 바가 없다’며 담당자에게 공을 돌렸다. 하지만 제안을 받은 다른 기자 역시 본인은 비실명화 작업만 했다며 집필을 고사했다. 이번 판결문 공개 페이지 제작은 실명화만큼이나 비실명화 작업의 비중도 컸기 때문이다.
익명 처리된 판결문, 무엇을 확인할 수 있나
뉴스타파 데이터·개발팀은 그동안 윤석열의 내란을 꾸준히 기록해 왔다. <Part I. 윤석열의 내란, 그날 서울의 밤을 기록하다>에서는 2024년 12월 3일 발생한 사건들을 분 단위로 기록한 타임라인을 제작했고, 국회 인근 상황은 위성지도 위에 위치를 표시했다. <Part II. 윤석열의 내란, 부역자는 기록된다>에서는 2024년 12월 4일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이후 자행된 공직자들의 파렴치한 언행을 기록했다. 이른바 ‘부역 행위 박제’ 페이지다. 이어지는 <윤석열 내란 Part III. 기록된 변명>에서는 판결문을 전격 공개했다. 시민들이 내란의 전모를 판결문을 통해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취지였다.
판결문 공개는 내란 판결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한 기자로서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의지로 시작된 팀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판결문을 독자들이 읽기 쉽게 시각화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판결문은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좀처럼 읽히지 않는 글이다. 분량이 방대해지면 핵심 파악이 어렵고, 내용이 반복되거나 복잡한 단락 번호 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난관은 판결문 입수였다. 선고 직후 공개되는 판결문은 법원 출입 기자들에게만 제공된다. 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뉴스타파 기자들에게 그들이 판결문을 쉽게 공유해 줄 리 만무했다. 내부 규정을 깰 수 없다는 명분도 확고했기에, 단순히 친분만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여러 경로로 확보한 판결문은 버전조차 다양했다. ‘OOO 판결문’, ‘재판부 설명자료’, ‘내란수괴 1심’, ‘언론제공용’, ‘사건번호 OOO’ 등 파일명부터 제각각이었다. 파일 형식 또한 이미지 PDF, OCR(문자인식) 처리된 PDF, 심지어 한글(hwp) 파일까지 있었다.
내용도 천차만별이었다. 피고인까지 익명 처리된 버전이 있는가 하면, 피고인 외 인물만 익명인 버전, 이미 알려진 인물은 실명 처리된 버전, 같은 사건의 판결인데 한 파일은 700여 쪽, 다른 파일은 1,200여 쪽인 판결문도 존재했다.
2026년 1월 21일, 한덕수의 내란우두머리방조(인정된 죄명: 내란중요임무종사) 선고 판결문으로 제작에 착수했을 당시만 해도, 우리는 ‘A, B, C’ 등으로 비실명화된 언론 제공용 버전을 활용해 변호인 측 주장과 재판부의 판단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판결문 실명화가 전격 결정된 것은 페이지 공개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귀연 판사의 발언이었다. 2026년 2월 19일, 윤석열 내란우두머리 선고 공판이 생중계됐다. 지 판사는 선고 도중 “판결문에 기재해 놓았다”, “판결문을 확인해 보시라”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내란의 구체적인 모의 과정과 법적 판단을 법정에서 일일이 설명할 수 없으니, 직접 판결문을 통해 확인하라는 뜻이었다.
지귀연 판사가 선고 공판에서 ‘판결문’을 언급하며 한 발언은 다음과 같다.
①자세한 입법례와 분석 관련 내용 등은 판결문에 자세히 기재해 놓았습니다. ②판결문에 별지로 첨부했습니다. ③판결문에 자세한 이유를 설시했기 때문에 관련 부분을 살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④판결문에 자세히 기재가 돼 있습니다. ⑤이후에 관련된 내용들은 판결문에 자세히 기재돼 있습니다. ⑥그 이외에 대해서도 판결문에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시를 했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확인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⑦기타 여러 가지 사정에 대해서는 판결문에 자세히 설시가 됐습니다. ⑧이 부분 이유는 판결문에 자세히 설시돼 있기 때문에 해당 부분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⑨구체적인 내용은 판결문에 자세한 기재가 나와 있습니다. ⑩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판결문에 자세히 기재돼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확인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판결문도 주요 인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명을 익명 처리한 ‘비실명화’ 상태로 제공했다. 언론 제공용 판결문에서는 ‘윤석열’과 ‘김용현’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 노상원·김용군·조지호·김봉식·윤승영·목현태 등 모든 피고인과 관련자들이 익명 처리됐다. 지난 3월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우리법원 주요판결’ 게시판에 업로드된 ‘[형사] 12.3. 계엄 관련 내란우두머리 등 사건에 관한 판결, 2025고합129 판결문.pdf’ 파일에도 윤석열은 익명처리된 ‘피고인 E’로 기재돼 있다.

최대한 많은 인명의 실명화, 해체된 권력의 논리사법부의 비실명화 명분은 피고인의 개인정보와 인권 보호다. 하지만 내란은 사생활의 영역이 아니다. 내란은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한 공적 범죄다. 국가 전복을 꾀한 행위자의 성명을 보호하는 것은 ‘인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 이는 법의 정신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국가가 은폐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법원의 판결문 비실명화는 단순히 이름을 가리는 행위를 넘어 정보의 사유화를 뜻한다. 지귀연 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판결문을 확인하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확인하라고 말하면서도 확인할 수 없도록 문을 잠그는 행위, 이것은 ‘순진한 모순’이 아닌 ‘의도된 차단’이다. 사법부는 판결문의 주인이 국민임을 망각한 채, ‘법 기술자’의 논리로 진실을 감추려 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팀원들에게 ‘판결문을 실명으로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공개 시점을 얼마 앞두고 내려진 팀장의 갑작스러운 방향 선회였지만, 팀원들은 각자 역할을 찾아 일정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AI를 활용해 판결문에 기재된 인명 목록을 추출하고 실명 여부를 대조했다. 다만 모든 인명을 실명화할 수는 없었다. 내란 가담 정도가 무거운 대령급 이상의 고위 장교들과, 국회·법정 증언을 통해 이미 이름이 알려진 치안·행정 책임자들을 실명 공개 대상으로 삼고 나머지는 익명 처리했다.
여러 버전의 판결문을 비교해 이름을 확인하고,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실명 보도 사례가 있는지 일일이 검증했다. 실명이 새로 확인되거나 익명 처리가 필요한 경우가 생길 때마다 판결문 텍스트를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했다. ‘최대한 많은 인명을 실명화한 판결문을 입수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다’라고 말한 이유다.
페이지 제작에 있어서는 실명 처리와 동시에 ‘독자 친화적 시각화’라는 초기 기획 의도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접한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진실에 닿길 바랐기 때문이다. 판결문 시각화는 단순히 정보를 보기 좋게 나열하는 것을 넘어, 재판부의 논리 구조를 해부하는 데 목표를 뒀다.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피고인의 주장은 빨간색, 그 근거는 노란색으로 코딩했다. 이 색깔 코딩은 그 자체로 강력한 편집적 메시지였다. 빨간색으로 도드라진 문장들은 역사의 법정에서 기각된 ‘기록된 변명’들이다. 독자들은 긴 텍스트를 다 읽지 않고도 사법부가 어떤 논리에 천착했는지, 어떤 주장을 외면했는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과거 기자가 펜과 수첩으로 세상을 기록했다면, 이제는 코딩과 데이터를 통해 권력의 논리를 해체한다. 기술의 발전은 변치 않는 진실을 향하고 있다.

시민의 후원이 이뤄내는 성역 없는 보도
이 모든 작업이 가능했던 결정적 이유는 뉴스타파라는 매체의 특수성에 있다. 광고 없이 시민의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이 조직은 기자에게 ‘성역 없는 보도’를 허락하는 유일한 해방구다. 만약 내가 거대 자본과 광고주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기성 언론에 몸담고 있었다면, 이 기획은 데스크의 ‘안정론’과 경영진의 ‘현실론’에 부딪혀 좌초됐을 것이다.
대형 언론사가 ‘영향력’과 ‘속보’에 주력하는 가운데, 뉴스타파는 ‘기록’과 ‘공적 자산’으로서의 가치에 집중했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을 실명화해 공개하는 작업은 효율성을 따지는 상업 언론의 관점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광고 없이 후원 회원들의 회비로만 운영된다는 것은 단순히 재정의 문제가 아니다. 기자가 진실 앞에 설 때 마주하는 장벽이 없다는 것, 그것은 50년 전 선언된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이 지금 이곳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훗날 누군가 윤석열의 내란을 복기하며, 국가가 공개한 공식 판결문이 아닌 뉴스타파의 특별페이지 <윤석열 내란 Part Ⅲ. 기록된 변명>을 1차 사료로 인용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내란을 극복한 이후의 세대들은 당시 법원이 진실을 보존하기보다 감추는 데 더 급급했다고 평가할 것이다.
뉴스타파가 복원한 이름들은 이제 판결문 속의 차가운 기호가 아니라, 역사의 심판대 위에 선 준엄한 증거물로 남을 것이다. 역사는 익명 뒤에 숨을 수 없다. 그리고 기자는 그 숨바꼭질을 끝내는 술래여야 한다. 그것이 뉴스타파의 존재 이유이며, 앞으로도 지켜나가야 할 단 하나의 소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