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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세계일보 <사각의 사각> 취재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6-05-29

아동 방임 문제는 언론 보도를 통해 사회적인 관심사가 되지만, 청소년 방임은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다. 아동 방임 피해자 중 12~17세 청소년 비율이 높다는 사실에 착안해 탐사보도로 이 문제를 세상에 드러낸 세계일보의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취재기자를 제외한 모든 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일요일 저녁, 편집국장에게 전화가 왔다. 신설되는 탐사보도2팀의 팀장 자리를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탐사보도팀 소속으로, 환경미화원의 산업재해를 다룬 <당신이 잠든 사이> 기획을 막 마무리하고 겨우 숨을 돌리던 참이었다.

 

세계일보가 한때 탐사보도의 명가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2001년 특별취재기획팀을 꾸린 세계일보는 국내 탐사보도 흐름을 주도한 매체 중 하나였다. 정부 기록물의 무단 폐기 및 방치 실태를 고발한 2004년 <기록이 없는 나라>,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의 시발점이 된 2014년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보도와 같은 유산은 후배들에겐 자부심인 동시에 거대한 벽이었다.

 

 

탐사보도2팀 최우석 기자가 경기 성남시 수빈의 반지하 집을 둘러보고 있다. ⓒ세계일보

 

 

전통은 고질적인 인력난에 발목이 잡혔다. 2021년 7월을 끝으로 세계일보 탐사보도는 암전에 들어갔다. 주요 출입처에 기자들을 배치하기에도 빠듯했다. 시간과 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탐사보도에 전념할 상황은 아니었다. 휴지기가 끝난 건 지난해 9월이었다. “언론은 기사로 승부한다”는 기치 아래, 탐사보도팀이 4년여 만에 다시 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불과 넉 달 뒤 탐사보도팀은 2개 팀 체제로 확대 개편을 앞두고 있었다.

 

부담감이 앞섰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한편으로는 탐사보도팀에서 겪었던 초기의 시행착오를 신설되는 2팀에서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팀원들과 함께 공부했던 내러티브 기사 작법을 조금 더 내 방식대로 펼칠 수 있겠다는 욕심도 없지 않았다. 곧, 야심이 있는 젊은 후배 이예림·최우석 기자가 새로운 팀에 합류했다.

 

돌봄 밖의 아이들을 찾아서

 

아이템의 출발점은 지난해 3월 인천 서구에서 일어난 한 빌라 화재 사고였다. 혼자 집을 지키던 12살 문하은 양이 그 불에 숨졌다. 문 양의 사망 1주기를 앞두고 취재팀은 아동 방임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동 방임은 이미 지면과 방송에서 숱하게 다뤄진 주제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른 각도였다. 일주일간 사무실에 앉아 논문과 보고서를 뒤지는 동안, 현장이 익숙한 두 후배는 영 몸이 근질거려 보였다. 사무실 한편에 쌓아둔 훈제 계란과 초콜릿이 빠른 속도로 축났다.

 

보고서의 짧은 단락이 눈길을 끌었다. 아동 방임 피해자 중 12~17세 청소년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것이었다. 뜻밖이었다. 기존의 연구와 보도는 대부분 영유아 피해자에 집중돼 있었다. 청소년 피해자에 대한 관심은 놀라울 만큼 적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중·고등학생 정도면 혼자서도 지낼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다. 그 인식이 청소년 방임을 오랫동안 묵인해 왔다. 사회적 관계와 자립 역량이 형성되는 바로 그 시기의 방임이 성인기까지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외면당하고 있었다. 취재팀이 이번 기획 보도의 이름을 ‘사각의 사각’으로 정한 것은 이러한 이유였다.

 

취재팀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방임 범죄의 재범률은 높다. 유죄판결을 받은 집이라면 지금도 비슷한 상황일 가능성이 컸다. 이들을 만날 수 있다면 청소년 방임의 실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피해자들을 만날 방법이었다. 기존 탐사보도팀에서 ‘서부지법 난동 사태’를 취재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판결문에서 시작해 이를 토대로 피고인들을 역추적한 방식이었다.

 

경기 고양시에 있는 법원도서관을 각자 십수 차례씩 드나들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도서관 데스크톱 앞에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청소년 방임은 별도 처벌 규정이 없고 아동복지법상 아동방임죄를 적용한다. 판결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 피해자가 12~17세에 해당하는 경우를 추려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총 47건, 364쪽 분량의 판결문을 손에 쥐었다.

 

도서관에서 회사까지 택시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각자가 확인한 사건 번호와 내용, 그간의 취재 내용을 공유하는 와중에 잠자코 있던 택시 기사가 끼어들었다. “그 나이까지 ‘쓰레기 집’에 살고 있으면 아이한테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에요?” 악의 없는 참견이었지만, 청소년 방임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무심한 태도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을 찾아 나설 차례였다.

 

닭강정과 ‘우노’

 

“안녕하세요, 세계일보 백….” 면전에서 문이 세게 닫혔다. 예상은 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자를 반갑게 맞아줄 사람은 드물다. 더군다나 아동방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부모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광주까지 내려가 어렵게 찾아간 주소지에는 엉뚱한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허탕을 친 날이 더 많았다. 이대로 취재가 가능한 건지 회의감이 들 무렵, 최우석 기자로부터 피해자를 만났다는 연락이 왔다. 경기 성남시 달동네의 반지하에서 수빈을 만난 것이 그즈음이었다. 외할머니의 간병을 위해 집을 비운 엄마 대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초등학생 동생 둘을 보살펴 온 스무 살 청년이었다. 주 1회 성우 학원 수업과 비정기적인 뷔페 아르바이트를 제외하면, 수빈은 대개 혼자서 집을 지켰다. 무료해서였을까, 외로워서였을까. 수빈은 낯선 기자에게 문을 열어줬다.

 

단답으로 뚝뚝 끊기던 대화는 만남이 잦아질수록 길어졌다. 다른 출입처에서 만났던, 준비된 취재원들과 수빈은 달랐다. 속 깊은 이야기를 들으려면 친밀감을 쌓는 것이 먼저였다. 시간이 필요했다. 

 

수빈 남매와 함께 닭강정을 나눠 먹던 저녁이었다. 넌지시 수빈의 일과를 묻자, “저는 요즘 일찍 자요. 12시면 자요”라고 답했다. 5학년인 동생 수아가 “언니 새벽 2시, 3시에 잤잖아”라며 깐족였고, 수빈은 아무 말 없이 눈을 흘겼다. 예상치 못한 ‘팩트체커’를 얻은 셈이었다. 취재는 뒤로 미뤄두고 저녁 내내 남매들과 ‘우노’라는 보드게임을 즐긴 적도 있었다. 초등학생들에게도 전력을 다하는 최우석 기자가 옆에 앉은 이예림 기자를 난처하게 만들었다.웃고 떠드는 중에도 집안 곳곳에 눈길이 닿았다. 세 식구의 묵은 빨래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인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싱크대 안에는 언제 마지막으로 사용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식기가 가득했다. 수빈이 쓰는 작은 방 안에는 텅 빈 생수병 서너 개가 굴러다녔다. 그런데도 수빈은 “동생들이 독립하기 전까지는 이 정도로 살아도 괜찮겠다 싶더라”고 말했다. 수아가 성인이 되려면 8년을 기다려야 했다.

 

수빈 남매와의 만남이 취재의 물꼬를 텄다. 이후 세종에서 혼자 살고 있는 민서, 울산의 한 공업고등학교에 다니는 민준, 전북 익산시에 거주하는 지적장애 엄마 영희 씨 등을 차례대로 만났다. 취재팀은 가해 부모와 피해 청소년, 가족·이웃은 물론 기관 관계자 등 31개 도시에서 62명을 인터뷰했다. 

 

 

지적장애가 있는 영희 씨와 자녀들이 거주하고 있는 전북 익산시의 한 임대아파트. 그들이 각각 거주하고 있는 3층과 11층 사이의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세계일보

 

 

따로, 또 같이 

협업을 통해 만들어 낸 기사

 

사연을 온전히 전달하기에 숫자와 통계는 무력한 도구였다. 독자가 그 삶 안으로 들어올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의 일상과 가족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내러티브 작법이 필요했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의 저서 《뉴스 스토리: 내러티브 기사의 작법과 효과》가 우리의 나침반이 됐다.

 

회차별 중심인물을 다르게 설정했다. 전 회차에 걸쳐 자연스럽게 내러티브 기사가 이어지는 것이 목표였다. 1회에선 민준의 하루를 통해 현재진행형인 청소년 방임의 모습을 드러냈다. 2회는 방임 피해를 겪은 수빈과 민서가 청년기에 진입한 순간을 그렸다. 자녀들과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따로 거주하는 영희 씨의 사연을 통해 3회에서는 보호자에게만 방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원칙적으로는 각 기자가 한 회차를 맡았지만, 합의를 통한 공동의 작업물을 구현하려고 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완성된 초고를 ‘구글 독스’를 이용해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날 선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동일한 문장을 다른 두 사람이 동시에 달라붙어 벼려낼 때가 많았다. 서로 감정이 상해 식사를 따로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협업의 장점은 분명했다. 같이 현장을 방문했어도 눈여겨본 것이 달랐기에 기사에 살이 붙었다. 이를테면 민준의 집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남자 고등학생의 방 안에 책상이 없다는 점이었다. 민준은 이불 위에 엎드린 채 노트북으로 몇 시간 동안 온라인 게임에 집중했다. 이예림 기자의 제안으로 “어른이 필요할 때가 있다”라는 민서의 인터뷰 내용이 2회 기사에 추가되면서, 문맥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돌봄 체계 공백 짚어낸 기사 

예산 복원 이끌어내

 

기획의 매듭을 지을 기사가 필요했다. 청소년 방임이 돌봄 체계의 공백에서 비롯됐음을 실증해야 했다. 이예림 기자의 집요함이 빛을 발했다. 의원실과의 협업을 주도하는 한편 정보공개청구 결과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지친 팀원들을 상대로 잔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와 정보공개청구 결과를 교차 검증해 보니 비로소 유의미한 데이터가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의 드림스타트 사업은 취약 가정을 직접 찾아가 장기 개입하는 핵심 사업이다. 13세가 되는 순간 드림스타트는 종결되고 이후 성평등가족부의 청소년안전망으로 인계된다. 그러나 실제로 인계가 되고 있는지 확인할 데이터가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2007년 드림스타트 사업 시행 이후 2024년 단 한 차례만 연계 여부를 집계하고 있었다. 

 

13세 이후의 삶을 지원해야 할 성평등부 또한 손을 놓은 것처럼 보였다. 성평등부의 전신인 여성가족부는 2019년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청소년안전망팀(이하 안전망팀)을 만들었지만, 2023년 윤석열 정부 시절 이듬해 안전망팀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망팀을 운영했던 22개 기초 지자체에 일일이 확인해 보니, 10개 지자체는 자체 예산으로 축소 운영하고 있었지만 성평등부는 이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

 

마지막 기사를 마감한 날 저녁, 취재팀은 뒤풀이 자리를 가졌다. 후련할 줄 알았다. 막상 마주한 건 지칠 대로 지친 세 사람의 얼굴이었다. 술잔이 몇 번 오고 간 뒤 이예림 기자가 말했다. “이런 생고생이 의미가 있을까요?” 이미 3회까지 출고된 뒤였지만 세상은 조용했다. 반향이 없었다. 내심 나도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 참이었다.

 

술자리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다른 부서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늦게 출근했다. 술이 덜 깬 눈으로 멍하게 모니터를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건복지부와 성평등부가 공동으로 보도 설명 자료를 냈다. 드림스타트 지원 연령 연장과 청소년안전망팀 예산 복원 추진 의지를 밝히는 내용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취재기는 반쪽짜리다. 어디까지나 내 입장과 시각에서 쓴 것이다. 함께 기사를 완성한 이예림·최우석 기자가 얼마나 동의할지는 알 수 없다.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수빈과 민서, 민준, 영희 씨 그리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 기사가 그들의 삶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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