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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웨이브 <베팅 온 팩트> 제작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6-05-29

​가짜뉴스는 이제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인 난제가 됐다. 인간은 어떤 근거로 뉴스를 믿고, 또 의심하는가. 외부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가짜뉴스와 진짜 정보를 구별할까. 이러한 의문을 예능 형식으로 풀어낸 <베팅 온 팩트>의 제작기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스마트폰을 손에 쥐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눈을 뜨자마자 카톡을 확인하고, 포털의 뉴스 헤드라인을 훑고, SNS 피드를 내리다 보면 세상이 내 손 안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이 든다. 정치, 경제, 국제, 사건·사고, 연예, 스포츠, 그리고 누군가의 분노와 누군가의 해명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정보를 본다. 문득 이런 질문이 생겼다. 내가 방금 본 그 뉴스는 진짜일까?

 

처음에는 아주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2023년 어느 날, 무심코 접한 뉴스 하나가 있었다. 제목만 보면 그럴듯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이상했다. 진짜 같기도 하고, 가짜 같기도 했다. 확인해 보려 검색했더니 비슷한 내용의 글들이 또 쏟아졌다. 그 순간 더 헷갈렸다. 진짜가 가짜를 뒷받침하는 것인지,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진짜의 외피를 입은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무렵 겪은 또 하나의 경험. KBS <우리말 겨루기>의 미국 LA 촬영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이었다. 9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당연히 내가 알고 있을 거라는 듯 어떤 국내 뉴스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는 전혀 몰랐다. 촬영하는 동안 한국 뉴스를 제대로 챙겨볼 틈이 없었던 것. 모두가 아는 이야기인데 나만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는데, 나만 잠시 끊겨 있었던 셈이다.

 

그때부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만약 누군가의 스마트폰을 빼앗고,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 들어가게 한다면? 태평양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른 채 동남아시아의 어느 섬에서 홀로 싸움을 계속했다는 일본 군인 오노다 히로오(小野田 寛郎)처럼, 정보가 차단된 사람들은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 <베팅 온 팩트>의 시작이었다.

 

<베팅 온 팩트>는 ‘서바이벌’이라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붙들고 있었던 것은 단순히 누가 이기고 지는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뉴스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스마트폰과 검색창, 알고리즘과 실시간 댓글이 사라졌을 때 인간은 어떤 근거로 뉴스를 믿거나 의심하는가. 그러한 질문을 예능의 형식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팩트하우스>라는 첫 번째 실험

 

기획에 본격적으로 살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김준규 넥스트키 대표, 김지혜 PD, 박윤주 작가와 머리를 맞대면서부터였다. 회의하며 우리가 가장 자주 던진 질문은 “뉴스로 예능이 가능할까?”였다. 정치 토크쇼도 아니고, 시사 고발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퀴즈쇼만으로 가는 걸 바라지도 않았다.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팩트냐, 페이크냐’를 두고 벌이는 심리전이자 정보전이었다. 그러나 기획안만으로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참가자들이 뉴스를 두고 토론하는 장면이 10분, 20분을 넘어가도 시청자가 따라올 수 있을까. 뉴스라는 소재가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될까.

 

그 의문을 덜어준 것은 80분짜리 파일럿 <팩트하우스>였다. 2023년 한국콘텐츠진흥원 기획안 공모에 선정된 뒤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실제 영상으로 만들어 볼 기회를 얻었다. 2024년 9월, 추석 연휴 직전 경기도 가평의 한 펜션에서 1박 2일 촬영이 이뤄졌다. 소설가 장강명, 개그맨 황현희, 튀르키예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중동 전문 기자 알파고, 방송인 서동주, 전민기, 성우 이다슬 등 여섯 명이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뉴스의 진위를 가리는 게임에 참여했다.

 

<팩트하우스>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못했지만, 제작진에게는 결정적인 확신을 줬다. 촬영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뉴스는 충분히 게임이 될 수 있었다. 진위를 가리는 과정은 출연자의 지식뿐 아니라 성격, 습관, 관계를 드러냈다.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이 아는 것보다 믿고 싶은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없는 상황이 만들어 내는 불안과 긴장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처음에는 막연했던 아이디어가 눈앞에서 장면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확신에 차서 진짜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며 가짜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답이 공개되는 순간, 그 확신이 무너진다. 그때 발생하는 놀라움과 민망함, 웃음과 반성. <팩트하우스>가 없었다면 <베팅 온 팩트>는 나오지 못했다.

 

웨이브 오리지널 8부작으로 진화하다

 

2025년, 웨이브가 손을 내밀었다. 이른바 ‘서바이벌 콘텐츠의 명가’로 자리매김해 온 웨이브였기에, 그 선택은 우리에게 큰 힘이었다. ‘뉴스로 서바이벌을 만든다’는 낯선 기획을 받아들인 것이었고, 그 결정이 없었다면 〈베팅 온 팩트〉는 기획안 파일로만 남았을 것이다. 여기에 <돌싱글즈>를 제작한 스페이스래빗이 공동 제작사로 합류하면서, 메인 PD 김민종 등과 함께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시리즈로 설계되기 시작했다. 이제 문제는 80분짜리 파일럿을 8부작 시리즈로 확장하는 일이었다.

 

 

<베팅 온 팩트> 포스터 ⓒ웨이브

 

 

단발성 실험과 시리즈는 전혀 다르다. 한두 번의 게임은 신선할 수 있지만, 8회 동안 시청자를 붙잡아 두려면 훨씬 더 정교한 구조가 필요하다. 탈락자가 매회 발생하는 잔혹한 서바이벌보다는 코인 경쟁으로 순위를 겨루는 방식을 택했다. 서바이벌의 긴장감은 가져오되, 탈락의 공포보다는 판단과 설득, 의심과 배신의 재미를 살리고 싶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게임 설계였다. 뉴스를 그냥 보여주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맞히게 하면 금세 단조로워진다. 그래서 팩트 전쟁, 프로파간다, 뉴스 경매, 팩트갤러리, 오피니언 리더, 캐스팅보트 등 라운드마다 다른 문법으로 뉴스를 게임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매번 던진 질문은 하나였다. 이 뉴스는 헷갈릴 만한가. 동시에 웃음이 생길 수 있는가. 그리고 단지 정답을 맞히는 문제가 아니라, ‘왜 우리는 이것을 진짜라고 믿었는가’라는 질문까지 남길 수 있는가. 그 지점이 <베팅 온 팩트>가 단순 퀴즈쇼와 달라지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당연히, 캐스팅이 전부였다. 제작진이 생각한 캐스팅의 콘셉트는 단 하나, ‘평소 사석에서 전혀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이들을 한 공간에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였다. 적지 않은 요청과 거절, 조정 끝에 기대 이상의 여덟 명을 모았다. 장동민, 이용진, 정영진, 진중권, 헬마우스, 예원, 강전애, 박성민. 누군가는 논리적이고, 누군가는 감각적이며, 누군가는 말의 흐름을 장악하고, 누군가는 의외의 순간에 허를 찔렀고, 누군가는 판을 좌지우지했다. 뉴스라는 소재는 이들의 지식 수준을 드러내기보다는,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보여줬다.

 

 

플레이어로 참가한 헬마우스, 강전애, 박성민, 예원(왼쪽부터) ⓒ웨이브

 

 

 

플레이어로 참가한 이용진, 장동민, 정영진, 진중권(왼쪽부터) ⓒ웨이브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6일 합숙이 원칙이었으나 현역의 정점에 선 이들에게 연속 6일의 일정은 불가능했다. 결국 1박 2일씩 세 차례로 나눠 촬영했다. 장소도 바뀌었다. 기획 초반에는 <팩트하우스>처럼 야외 펜션을 상정하고 현장 답사도 했지만, 8명이 여러 라운드를 치르며 밀도 높은 심리전을 펼치려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 낫겠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운 좋게도 삼송 MBN사옥 지하 스튜디오에 멋진 세트를 지을 수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공간, 스마트폰이 사라진 공간, 외부 뉴스가 차단된 공간. 출연자들은 오로지 제작진이 제공하는 뉴스와 서로의 말만을 근거로 판단해야 했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장치는 ‘페이커’였다. 여덟 명 중 한 명은 겉으로는 함께 팩트를 찾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참가자들이 오답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숨은 방해꾼. 페이커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출연자들의 관계를 흔들었다. 누군가 강하게 주장하면 ‘정말 아는 것인가, 아니면 속이는 것인가’가 된다. 누군가 침묵해도 ‘모르는 것인가, 숨기는 것인가’가 된다.

 

이것은 우리가 뉴스 소비에서 자주 겪는 감각과도 닮아 있었다. 우리는 정보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말하는 사람을 본다. 누가 말했는가, 어떤 표정으로 말했는가, 평소 어떤 입장을 가진 사람인가. 뉴스의 진위 판단에는 늘 사람에 대한 판단이 끼어든다. 페이커는 바로 그 불신의 구조를 게임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장치였다.

 

방송이 종료된 지금, 페이커의 정체가 공개됐을 때 적지 않은 시청자들의 놀랐다는 반응을 접했다. 그 놀라움이 단순한 반전의 충격이 아니라, 자신이 그 인물을 어떻게 보아왔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페이커라는 장치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한 셈이다.

 

방송은 끝났지만, 질문은 남았다

 

<베팅 온 팩트>는 2026년 3월 27일, 웨이브에서 첫 화가 공개됐고 지난 5월 8일 최종 8화로 마무리됐다. OTT는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과 다르다. 한눈에 들어오는 시청률 지표가 없다. 시청자들이 어느 대목에서 웃었는지, 어느 라운드가 어려웠는지, 뉴스와 게임의 결합을 신선하게 느꼈는지 주변의 반응과 온라인의 짧은 감상을 통해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OTT라는 공간이었기에 가능한 점도 있었다. 지상파 편성의 익숙한 문법에서 벗어나, 뉴스와 서바이벌과 심리전을 결합한 실험을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남는 감정은 아쉬움이다. 어떤 라운드는 더 단순해야 했고, 어떤 라운드는 더 과감해야 했다. 페이커의 역할은 더 입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고, 격리 공간의 불안감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실패의 감정이 아니라 다음을 향한 욕심에 가깝다. 한 번 해봤기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베팅 온 팩트> 시즌1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거대한 파일럿이기도 했다. 

 

<베팅 온 팩트>라는 낯선 기획에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웨이브가 이 프로그램과 함께 서바이벌 콘텐츠의 명가라는 브랜드를 더욱 단단히 다져가기를 바란다. 또한 이 포맷은 한국만의 이야기에 머물 필요가 없다.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은 전 지구적 문제다. 각 나라의 뉴스와 출연자와 미디어 환경을 반영하면 전혀 다른 버전의 게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진짜와 가짜 사이에 베팅하는 일은 이제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베팅 온 팩트>의 외연이 더 커질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다음 시즌이 온다면, 우리는 다시 그 공간으로 사람들을 초대할 것이다. 스마트폰을 걷고, 바깥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몇 개의 뉴스를 건넬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묻게 될 것이다.

 

당신이 보는 이 뉴스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어쩌면 그 질문은 출연자들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매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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